[편집자 주]
지난 5월 7일에 치러진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에서 39세의 정치신인 마크롱 후보가 극우성향의 르펜 후보에 맞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후보들 중에서도 가장 친 유럽적 성향을 가진 마크롱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EU는 또 한 차례 큰 위기를 모면한 것으로 보입니다. EU의 또 다른 중심축인 독일에서 오는 9월 총선이 치러질 예정이나, 적어도 르펜과 같은 위협요소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EU가 보다 안정적인 운영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조홍식 숭실대 교수는 예측합니다. 다만, 국내적으로는 6월 총선에서 승리를 해야만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입니다.

 

 


 

 

한국에서 프랑스 대선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프랑스는 미국, 영국과 함께 세계 민주주의의 역사를 앞장서서 이끌어 온 나라다. 따라서 프랑스 정치는 세계 민주주의의 페이스 메이커(pace-maker) 역할을 한다. 지난해 영국에서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하는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있었고, 미국에서는 미국 우선주의를 주장한 포퓰리즘 후보였던 트럼프가 당선되는 놀라운 결과가 있었다. 이번 프랑스 대선에서도 극우 민족전선의 르펜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둘째, 프랑스는 독일과 함께 유럽연합이라는 기차를 이끄는 기관사다. 최근 독일이 유럽의 중심으로 부상하기는 했지만 독일과 프랑스로 대표되는 쌍두마차는 여전히 유럽연합에 동력을 제공한다.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하면 유럽은 커다란 충격을 받겠지만, 프랑스가 빠져나갈 경우 유럽연합이라는 배는 침몰할 가능성이 높다. 극우 르펜(Marine Le Pen) 후보는 집권할 경우 유로 단일 화폐권에서 탈퇴할 것을 선언했고 유럽연합 가입 조건에 대한 전면적 재협상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끝으로, 한국과 프랑스는 정치적 ‘동기화’가 이뤄진 나라로 세계화 시대에 민주주의의 리듬이 같은 파트너이다. 5년 임기의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두 나라는 지난 2002년부터 같은 해에 대통령 선거를 치러왔다. 프랑스는 봄에, 한국은 겨울에 대통령을 선출한 것이 이번으로 네 번째다. 한국의 탄핵정국으로 이제는 계절 차이도 사라져 두 나라가 동일한 정치 주기에 따라 움직이는 완벽한 동기화가 실현되었다.

 

이번 프랑스 대선은 위의 세 가지 차원에서 모두 중대한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페이스 메이커로서 프랑스는 2016년 부상한 세계적 민족주의 포퓰리즘의 흐름을 중단시키는 상징적 전환점이다. 물론 오스트리아 대선이나 네덜란드 총선에서 이미 포퓰리즘의 확산을 차단한 바 있다. 하지만 프랑스와 같이 대표적인 민주국가의 대통령 결선투표에서 중도세력(66%)이 극우(34%)를 크게 누르고 승리했다는 사실은 더 강한 인상을 심어준다. 르펜이 민족주의를 상징했다면 당선자 마크롱(Emmanuel Macron)은 로스차일드 투자은행에서 근무한 엘리트 관료 출신으로 개방적 세계화를 대표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유럽 통합의 쌍두마차로서도 이번 프랑스 대선에서 마크롱의 당선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마크롱은 11명의 프랑스 대선 후보 가운데 가장 친 유럽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유로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 제도적 보완을 통해 유럽의 거버넌스 구조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럽차원에서 유로를 관리하기 위한 경제정부와 장관을 임명해야 하고 이를 민주적으로 감시하기 위한 의회를 선출해야 한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난민사태와 브렉시트로 유럽 통합에 대한 회의적 태도가 광범위하게 확산된 가운데 적극적 유럽주의자가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사실은 이번 선거의 중요한 결과다.

 

한국과의 정치 동기화와 관련해 특기할 만한 점은 2017년 두 나라 모두 기성 정치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이 극도에 달했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유래가 없는 국민의 ‘촛불’ 동원으로 대통령 탄핵이 이뤄졌고 보궐선거에서는 77%의 높은 투표율로 변화의 후보가 압도적인 표 차로 당선되었다. 프랑스의 마크롱은 역사상 가장 젊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는데 더욱 놀라운 점은 그가 완전한 정치 신인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한번도 선출직에 당선된 적이 없다. 그는 또 대선을 위해 몇 달 만에 급조한 ‘전진!’이라는 정치 조직으로 중도 좌우파의 사회당과 공화당 후보를 누르고 결선에 진출한 것은 물론, 결국 극우 후보 르펜에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물론, 이처럼 결과론적 해석에만 치우치는 우를 범해서는 곤란하다. 프랑스 대선의 과정을 살펴보면 사람들이 우려하는 경향들이 결코 간단치 않음을 발견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 포퓰리즘을 앞세운 정당이 집권하지는 못했지만 그 세력은 그 어느 때보다 강화되었다. 2002년 아버지 장마리 르펜의 결선투표 진출이 하나의 사고였다면, 이번 2017년 딸 마린 르펜의 결선 진출은 오래 전부터 예상된 일이었다. 그만큼 극우가 프랑스 정치의 강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는 뜻이다. 또한 결선 득표율도 2002년 17%에서 2017년 34%로 두 배 늘어났다.

 

유럽 통합과 관련해 마크롱의 승리는 친 유럽 노선의 집권을 의미하지만 1차 투표에서 11명의 후보 가운데 반 유럽적 입장을 가진 정치인이 무려 8명이나 되었다. 이들의 표를 합산하면 과반에 달한다. 이는 프랑스에서 유럽 통합에 대한 회의주의가 얼마나 확산되었는가를 보여준다. 극우의 르펜과 극좌의 멜랑숑은 모두 현재의 유럽이 프랑스의 국익에 반한다며 민족주의와 보호주의로의 변화를 주장했다. 사회당의 아몽과 공화당의 피용은 현실적 입장에서는 친 유럽이었지만, 이들도 추가 통합에 대해서는 상당히 유보적인 입장이었다.

 

마크롱은 정치에 혈혈단신 뛰어들어 대통령에 당선되는 기적을 이루었다. 그는 좌우의 정치구조가 강한 프랑스 지형에서 중도를 외치며 지지를 동원하여 당선되었다는 점에서도 유일하다. 이번 대선에서 그는 온건 좌파인 사회당에서 올랑드 대통령이 재선 도전을 포기하고 아몽이라는 강한 좌파 성향의 후보자가 등장한 틈을 타 사회당의 우파 성향의 지지를 빼앗아 왔다. 게다가 온건 우파인 공화당의 피용 후보가 가족 관련 부정부패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공화당 좌파의 지원을 받았다. 다시 말해, 마크롱의 성공은 매우 특별한 2017년 정치국면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 정치에서 마크롱의 대통령 당선은 절반의 성공을 의미할 뿐이다. 그가 안정적으로 집권하기 위해서는 6월에 치러지는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어야 한다. 인물 중심의 대선에서 거두었던 성공을 정당 중심의 총선에서 과연 재현할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마크롱은 ‘전진!’(En Marche!) 조직을 ‘공화국을 위한 전진’(La République en Marche)으로 확대하여 577개 전 선거구에서 후보를 낼 것이라고 천명했다. 기적의 대통령에 이어 기적의 정치세력이 탄생할지 두고 볼 일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프랑스 총선은 결선투표가 있다는 점에서 대선과 유사하지만 상세 규칙은 다르다는 사실이다. 대선에서는 2명의 후보가 결선을 치르지만 총선에서는 각 선거구에서 12.5% 이상의 지지를 받은 후보는 모두 결선에 진출할 수 있다. 3인 이상의 후보가 결선에서 경쟁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대선보다 선거 및 집권 연합의 전략이 더 중요한 이유다. 앞으로 한 달간 프랑스 정치는 총선 준비 과정에서 다양하고 복잡한 합종연횡이 이뤄질 예정이다.

 

6월 프랑스 총선에 이어 유럽 통합의 운명을 결정지을 중요한 선거는 9월에 있을 독일 총선이다.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주요 후보를 모두 면담하면서도 르펜만 제외하였다.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특정 후보에 대한 반대 의사는 명확히 밝힌 셈이다. 결선투표를 앞두고는 마크롱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이처럼 프랑스와 독일은 서로 국내 정치에도 적극 개입하여 영향을 미치는 관계다. 독일에서 메르켈이 계속 집권할지, 사민당이나 기민당이 중심이 되는 정부가 들어설지, 아니면 지금과 같은 대연정이 지속될지는 앞으로 마크롱 정부와의 관계 설정에 중요한 변수가 될것이다. 또한 역사적으로 프랑스와 독일 지도자간 개인적인 궁합(chemistry) 역시 유럽 통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드골-아데나워, 지스카르-슈미트, 미테랑-콜은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매우 긴밀한 불독관계를 구축하는 중심축이 되었고, 이들을 통해 유럽 통합은 성큼성큼 발전할 수 있었다.

 

유럽 연합의 관점에서 보면 프랑스 대선이 막을 내림으로써 커다란 위기는 지나갔다. 독일에서 어느 당이 집권하고 누가 총리가 되건 르펜과 같은 위험 요소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덧붙여 마크롱이라는 친 유럽적이고 예측가능한 안정적 인물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점에서 유럽의 거버넌스는 더 탄탄해질 가능성이 높다. 프랑스 총선에서 마크롱이 안정적 지지기반을 확보하고 독일 총선에서도 리더십을 발휘하기에 적합한 안정적 다수가 만들어진다면 유럽은 브렉시트에도 불구하고 다시 통합의 모멘텀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

 

 


 

 

저자

조홍식_ 숭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프랑스 파리정치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국제정치경제, 유럽지역연구, 정체성의 정치 등이다. 대표 저서로는《하나의 유럽: 유럽연합의 역사와 정책》,《유럽통합과 ‘민족’의 미래 》,《똑같은 것은 싫다: 조홍식 교수의 프랑스 문화 이야기》,《파리의 열두 풍경》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