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과학기술과 혁신(innovation)의 측면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특히 과학기술은 군사력과 경제력의 동력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도전과 미국의 위상을 과학기술과 혁신의 고찰하는 것이 곧 양국 군사력과 경제력의 미래 및 패권의 향배를 가늠하는데 기여한다. 본 연구에서는 현재 진행 중인 미중 간의 기술혁신 경쟁이 21세기 세계정치 패권의 향배에 가지는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세계정치 리더십 장주기 이론과 혁신연구를 결합하여 양국 혁신체제의 특징과 성과를 비교하였다. 아울러 장주기이론에서 논의하는 여섯 번째 K-파동의 선도 부문을 주도하기 위한 중국의 노력과 이에 대한 평가들을 살펴보면서 중국 혁신 역량의 발전 잠재력과 한계를 확인해 보았다. 결론적으로 현재 단계에서 양국의 혁신역량을 평가해 보면 지표상으로는 중국이 연구개발 인력 배출 및 연구개발투자 금액에서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측되나 논문이나 특허 등의 연구개발성과에서는 아직 미국과의 격차를 많이 좁히지 못하고 있다. 다만 중국에서 많은 혁신기업들의 부상과 일부 지역에 혁신생태계가 형성된 것은 주목할 만한 성과이다. 현재 세계혁신의 중심지가 미국에서 중국으로 이동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중국이 혁신을 주도하는 새로운 구심점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기술혁신에 대한 명시적인 관심을 배경으로 중국 혁신 역량을 지속적으로 제고하기 위한 중국의 노력은 혁신의 선두 국가인 미국에 중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다. 즉, 급속한 역량 강화에도 여전히 미국에 뒤쳐지고 있다는 자신감과 열등감이 뒤섞인 중국의 입장이 여전히 최고의 혁신역량을 보유하고 있지만 중국의 추격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미국의 불안한 우월감과 교차하는 상황 속에서 양국의 기술혁신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본문

 

I. 문제의 제기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21세기 세계정치의 가장 중요한 화두 가운데 하나이다. 미국은 경제성장의 둔화 및 수출 감소와 다양한 대내외 도전에도 불구하고 21세기에도 패권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중국의 경제성장은 지속될 수 있으며, 중국이 미국을 넘어서는 패권국으로 부상할 수 있을까? 세계정치 패권은 군사력 경제력은 물론 규범이나 가치 등의 소프트파워, 해당 국가의 의지와 비전 등 다양한 요소에 토대하여 구성되고 행사된다. 미중 경쟁을 축으로 형성되는 21세기 세계정치를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영역에서 진행 중인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양상을 관찰하고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본 연구는 특히 과학기술과 혁신(innovation)의 측면에서 중국의 패권 도전 양상을 분석한다. 과학기술은 유사 이래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군사력과 무기체계 발전의 핵심적인 동력이었다. 아울러 서구 근대 과학혁명과 이에 토대한 산업혁명이 진행된 이후 과학기술은 국민경제 성장을 추동해 온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과학기술에 내재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세계관은 민주주의 진보 등 근대적 가치를 태동하고 실현하는데 중요한 토대였다. 즉 과학기술은 군사력과 경제력의 동력임과 동시에 합리성과 보편성을 대표하는 가치로 인식되어 왔다. 과학기술과 혁신의 관점에서 중국의 도전과 미국의 위상을 고찰하는 것은 양국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지속적으로 혁신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 왔으며 그 성과는 어떠한지 알 수 있게 하고 양국 군사력과 경제력의 미래 및 패권의 향배를 가늠하는데 기여한다.

 

미국과 중국은 21세기 자국의 위상을 강화하는데 기술혁신이 중요함을 인식하고 혁신역량 강화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고 각각 일정 부문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어 왔다. 본 연구에서는 양국의 기술혁신 노력과 성과를 알아보고 이것이 21세기 세계 패권 경쟁에 시사하는 바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과학기술 및 혁신과 세계정치 패권에 관한 기존 연구들을 검토하면서 과학기술혁신과 세계정치 패권과의 관계를 고찰한다. 이어서 과학기술혁신 부문에서 진행되어 온 중국의 도전과 현재 양국 과학기술 혁신 현황을 과학기술 투입, 산출, 정책 등에 관한 기존 연구들을 토대로 다양하게 비교하며 살펴본다. 아울러 세계경제 성장을 이끄는 선도 부문(leading sector)에서 중국의 도전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고찰하면서 과학기술혁신 부문에서 중국 도전의 성과와 한계를 분석한다. 

 

II. 기술혁신, 패권, 세계정치질서변화

 

1. 중국 대외전략 논쟁: 화평발전론 vs. 대미 전략적 경쟁론

 

세계정치 패권과 과학기술 혁신에 대한 연구는 각각 분리되어 진행되어 왔다. 본 연구에서는 국제정치학 패권연구와 혁신 연구(Innovation Studies) 성과들을 결합하여 세계정치패권과 혁신 관계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고 현재 진행 중인 미국과 중국 패권경쟁을 과학기술 혁신 측면에서 고찰하고자 한다. 국제정치학에서 세계정치 패권에 대한 연구는 국제정치경제질서의 안정성과 패권국의 역할을 중심으로 고찰한 패권안정이론(Hegemonic Stability Theory)이나 강대국의 패권경쟁을 설명하는 세력전이 이론(Power Transition Theory) 등에서 논의되어 왔다. 패권안정이론은 국제정치경제질서에서 개방과 안정을 위해 패권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하였다(Gilpin 1983; Kindleberger 1973; Webb and Krasner 1989). 세력전이이론에 따르면 패권국은 압도적인 능력(capability)과 의도(intention)로 위계적으로 형성된 국제질서를 이끄는 중심국가이다(Kugler 2011; Organski 1958). 강대국 중 하나가 산업화를 통하여 국력이 신장되어 패권국에 대한 도전세력으로 등장하게 되면서 체제내의 위기가 시작되며, 도전국가의 국력이 패권국을 따라잡는 세력전이 현상이 일어날 때 국가간 전쟁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주장하였다. 패권을 압도적 힘의 우위에 토대한 지배 혹은 리더십으로 인식한 이 이론들은 패권국의 역할, 패권국 교체와 전쟁을 중심으로 국제정치경제질서에서 패권국의 존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이들은 특정 국가가 패권국으로 부상하는 조건으로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간단히 언급했을 뿐 패권국으로 부상하거나 쇠퇴하는 요인과 상황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지 않았다.

 

세계정치 리더십 장주기(Leadership Long Cycle) 이론은 세계정치경제질서의 패권국 교체를 기술혁신 중심으로 설명하였다(Modelski and Thompson 1996). 이들은 패권이라는 개념보다는 리더십(leadership)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데, 1500년 이후 세계질서에서 리더십은 약 100년 장주기로 교체되었으며 이는 약 50년 주기로 진행된 기술혁신 콘드라티에프 주기(이하 K-파동)와 공진화(coevolution)해 왔다고 주장하였다. 콘드라티에프는 물가, 임금, 저축률 등의 지표를 토대로 세계경제에 불황과 호황의 주기가 40-50년 주기로 반복되어 왔다고 주장하였고(Kondratieff 1935), 슘페터는 이 주기가 기술혁신과 관련 있음을 제시하였다(Schumpeter 1939). 슘페터에 의해 발전된 K-파동이 근대자본주의 경제의 역동성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과는 달리, 모델스키 등 은 중국 송나라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서기 900년 이후 현재까지 19번의 K-파동이 존재하였으며 두 개의 K-파동당 하나의 패권국의 등장과 쇠퇴가 일치하는 양상을 보였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K-파동이 GDP, 가격, 불황 등 일반적인 경기지표가 아닌 선도 부문(leading sector)의 부상과 성장으로 구성되며 해당 부문에서 혁신이 군집적으로 진행되면서 세계경제의 순환을 이끈다고 보았다. 선도 부문의 기술혁신은 특정 지역 및 국가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며 선도 부문을 이끄는 국가는 세계정치경제질서와 규범체계 재편을 주도하면서 패권국으로 부상한다. 미국은 19세기 후반 이후 전기, 철강, 전자, 석유, 자동차 부문을 선도적으로 이끌고 자국 주도의 세계정치구조와 규범체계를 구성하면서 세계 패권국으로 등장하였고 1970년대 이후 진행된 정보통신 기술혁신을 주도하면서 패권국 지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고 보았다. 현재의 세계경제는 19번째의 주기의 하강국면이 진행되면서 20번째 주기가 태동하는 시점으로 보았다.

 

 


 

 

 

저자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분야는 국제정치경제, 해외투자의 정치경제, 과학기술과 국제정치, 인터넷과 국제정치, 과학기술외교이며 저서 및 편저로는 《네트워크와 국가전략》(2015, 공저), 《네트워크로 보는 세계 속의 북한》(2015, 공저), 《중견국의 공공외교》(2013, 편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