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연구원은 2002년 《대통령의 성공조건》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래 《대통령직 인수의 성공조건》 (2007년), 《2013 대통령의 성공조건》 (2012년) 프로젝트를 통해 5년마다 민주화 이후 바람직한 대통령의 역할, 권한, 책임에 관한 제도화 방안을 강구해왔다. 2017년 대선의 해를 맞아, EAI는 2016년 6월 13일 김동연 전 국무조정실장을 초청해 《2018 대통령의 성공조건》 제7차 라운드테이블을 진행했다.
견지망월(見指忘月)
정부가 다양한 사회•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을 제시할 때 사회는 달을 쳐다보라고 가리키는데 정부는 달을 쳐다보지 않고 손가락을 쳐다본다. 청년 실업, 장기 저성장, 양극화 문제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런 문제들은 손가락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를 들면, 기준금리를 최대 수준으로 낮춘다, 재정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정책들은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인 달을 보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을 보는 견지망월이다. 그렇다면 과연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하는데, 이것은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사람 문제이고 두 번째는 사회적 구조의 문제이다. 사람 문제는 사회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인재뿐만 아니라 개개인이 자기 스스로의 가치와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좁게는 제도권 교육을 포함한 사회화(socialization)의 문제이다. 즉, 우리는 사람 문제를 잘못 다루고 있다.
두 번째는 사회적 구조 문제다. 우리 사회의 큰 문제 중 하나는 사회적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단절되어 교육의 기회도 부의 정도에 따라 좌우되며, 사회적 지위까지 대물림이 되는 폐쇄적 구조라 할 수 있다. 양극화가 심화되고 사회적 이동(social mobility)이 단절된 사회가 고착화 되면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없다. 이대로 악화된다면 20년 혹은 30년 후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기득권 카르텔(cartel)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기득권 카르텔 구조가 너무 굳어지고 있다. 카르텔에 속한 사람들이 누리는 사회적 지대(social rent), 또는 초과 이윤이 너무나 커지고 있고 내부의 사람들끼리 그 이윤을 더 키우려고 하는 욕망이 팽배해 있다. 그 외부에서는 피 튀기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는 사회 구조의 문제다. 이러한 사회적 구조의 문제가 달인데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다. 손가락만을 보고 총수요 늘리자, 청년 실업 정책 만들자 식의 해결 방법은 한계가 있다.
새 패러다임에 대한 대처
지금 우리 사회는 이미 과거와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 속으로 들어와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안에 있기 때문에 패러다임 자체를 이해하기 어렵다. 과거에 인식했던 패러다임이나 성공 경험이나 경로 의존성을 완전히 깨트려야 새로운 패러다임에 들어왔다고 할 수 있다. 산업혁명 당시에 살았던 사람은 산업혁명이 주는 의미와 파장에 대해서 잘 몰랐다. 지나고 보니 엄청난 인류 역사, 경제, 문명사의 획기적인 변환기였던 것이다.
산업혁명기 생산기술의 발달은 총수요의 확대와 화폐경제의 획기적 변화를 야기했고, 이러한 경제의 양적 성장 위에 사회 및 국가 전체의 부가 축적되었다. 농촌 인구의 도시유입으로 인한 도시화의 가속화, 신산업의 발전으로 인한 새로운 일자리 창출 등의 새로운 현상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면서, 인류는 근대의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정작 그 속에서 살고 있었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겪었던 변화가 인류 역사의 상당부분을 규정했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성하는 과정이었음을 인식하지 못했다. 지금 우리는 이미 새로운 패러다임 속으로 한 발짝 들어와 있다. 과거의 원리와 기준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지금까지 인류는 지속적으로 경제를 성장시키고 팽창시켜왔다. 전쟁이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의 양상이 나타났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산업혁명기 때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이 시대 안에 살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 사이 과거와는 전적으로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접어들고 있다.
지도자로서의 과제
첫 번째는, 비전이다. 지도자는 5년 후, 10년 후, 어떤 국가를 지향해야 할 지에 대한 비전이 확실하게 있어야 한다. 복지의 경우, 많은 정치권이나 관료나 학계에서 보편적 복지냐, 선택적 복지냐에 대한 논쟁을 한다. 이것은 달은 저기에 있는데 손가락만 쳐다보는 격이다. 보편적 복지냐 선택적 복지냐의 문제보다 더 앞서야 할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복지 제도의 모습은 무엇이고, 그때의 복지 철학은 무엇이고, 그 철학에 의한 우선 순위는 무엇이고, 여기에서 나온 보육은 어떻게 해야 하냐의 물음으로 이어져야 한다. 아무도 복지국가나 복지 철학에 대해서 얘기하는 사람이 없다.
통합, 선택과 집중
결국은 누가 대통령이 됐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 특히 기득권층으로부터 양보를 받아내고 사회적 합의를 낼 수 있는 능력이 이 시대에서 가장 필요한 능력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도자뿐만 아니라 더 가진 사람, 배운 사람의 희생,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진정성이 선행이 되어야 한다. 사회통합의 노력이 필요하다.
김동연 아주대학교 총장은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 사무관, 세계은행 선임정책관, 기획예산처 재정정책기획관, 청와대 경제수석실 경제금융비서관을 거쳐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했다.
사회자이숙종, EAI 원장, 성균관대 교수
토론 강원택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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