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연구원은 2002년 《대통령의 성공조건》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래 《대통령직 인수의 성공조건》 (2007년), 《2013 대통령의 성공조건》 (2012년) 프로젝트를 통해 5년마다 민주화 이후 바람직한 대통령의 역할, 권한, 책임에 관한 제도화 방안을 강구해왔다. 2017년 대선의 해를 맞아, EAI는 2016년 5월 9일 김황식 전 국무총리를 초청해 《2018 대통령의 성공조건》 제6차 라운드테이블을 진행했다.
독일 정치에서 배우다
독일은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루었다. 인류에 큰 범죄를 지었으나 국제사회의 신뢰를 이미 회복했으며 경제적으로도 EU를 이끌며 번영을 누리는 등 여러 방면에서 가장 모범적인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독일의 번영을 가능케 한 것은 정치이며 정치적 성공의 핵심에 수상을 비롯한 정치 지도자들이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독일 정치가 성공적으로 평가 받는 요인은 다음과 같다.
권력의 분산
독일 정치의 첫 번째 특징은 권력 집중이 아닌 권력의 분산에 있다. 독일은 연방정부와 16개의 지방정부로 구성되는 연방제를 취하고 있다. 입법부는 하원과 상원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하원의 경우,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정원이 598명이다. 상원은 인구와 관련 없이 주의 크기를 반영해서 각 주 대표 69명으로 상원을 이루며 지방정부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관이다. 따라서 각 주의 재정이나 권한에 관한 사항은 반드시 상원의 동의를 받도록 되어있다. 독일은 지방정부와 연방정부의 집권당이 다른 경우가 많고, 상원이 지방과 중앙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상당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리하여 특정 정당 차원에서 이해가 조정되는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와 같은 당이라도, 중앙당과 지방당이 또 대화와 타협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특정 정당에 권한이 집중되어 있지 않다.
정책의 계승과 발전
독일 정치의 두 번째 특징은 정권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정책이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계승, 진화, 발전한다는 점이다. 한국의 경우 통일정책이든 경제정책이든 정권이 바뀌면 과거 정부의 정책은 중단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정치가 되풀이되었다. 독일의 경우 전 정부의 정책이 계속 진화하고 계승되면서 발전한다. 대표적으로 빌리브란트의 동방정책이 중도우파의 수상에 의해서 계속 진화, 발전되었고, 슈뢰더 사민당의 정책이 기민당의 메르켈 총리에 의해서 계속된다. 또한 독일 정치는 연정을 하기 때문에 연정의 파트너 하나는 집권당으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다. 독일의 정책 결정 프로세스는 매우 신중하다. 정당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책결정자가 대화와 타협을 해서 이루어진 정책이기 때문에 쉽게 바꿀 수 없다.
중후한 정치
세 번째 특성은 중후한 정치다. 독일의 정치는 경박하지 않고 대단히 두텁고 무거운 정치다. 인기영합주의나 포퓰리즘을 지향하지 않는다. 일시적인 지지율에 연연해서 어떻게 하면 지지율을 올릴까 하는 식의 접근을 경계한다. 독일의 경우 수상이나 고위 관료는 어느 날 갑자기 인기의 바람을 타고 나타나는 그런 사람이 없다. 대부분 연방수상이나 장관 수행 경험이 있든지, 다양한 경험과 경륜을 가진 검증된 사람이 수상이 된다.
개헌의 필요성
1987년 헌법이 30여년 동안 한 자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 국민 또는 정치가들은 부끄러워해야 한다. 현재의 헌법은 권력을 분산하고 대화와 타협이 바탕이 되는 정치 체제에 맞지 않는다. 장기적인 국가비전을 가지고 국가를 발전시켜나가는 적합한 제도라고 할 수 없다.
대통령의 철학과 소신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철학과 소신이다. 이것은 인기에 영합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통치자 나름대로의 철학과 소신을 가지고 국가의 장래와 국익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원칙을 정하는 것이다. 아이젠하워 수상 집권 초기, 당시 소련의 스탈린 수상이 분단된 독일을 통일시켜서 중립국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는 굉장히 매력적인 제안으로 야당인 사민당은 물론이고 여당인 기민당과 국민들도 상당 부분 찬동하는 제안이었다. 그러나 아이젠하워 수상은 독일이 서방 세계의 일원으로 서방 경제체제와 서방 군사동맹 안에 있어야 장래가 보장된다는 소신을 가지고 국민들의 미움을 잠재웠다. 만약 아이젠하워가 인기에 영합하여 끌려갔다면, 서구유럽에서 현재와 같은 독일의 리더십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철학과 소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포퓰리즘이나 인기를 쫓게 되면 당장은 쉬운 선택일 수도 있고 지지도 얻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국민과 나라는 멍들어간다. 독일 정치인에서 봤던 것처럼 대통령은 탈 권위하고, 끊임없이 학습하고 소통하는 자세를 유지해야 하며, 자신의 생각을 경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유연성과 포용성을 가져야 한다. 그리하여 대통령의 권한과 책임, 인사권을 과감히 단계별로 이양할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분산하고 나누고 포용하고 하는 그런 자세를 갖는 것이 정치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
김황식 前 국무총리(現 김황식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고등법원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원, 법원행정처 차장, 대법관을 거쳐 감사원 원장을 역임했다.
사회자
토론 강원택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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