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연구원은 2002년 《대통령의 성공조건》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래 《대통령직 인수의 성공조건》 (2007년), 《2013 대통령의 성공조건》 (2012년) 프로젝트를 통해 5년마다 민주화 이후 바람직한 대통령의 역할, 권한, 책임에 관한 제도화 방안을 강구해왔다. 2017년 대선의 해를 맞아, EAI는 2016년 4월 11일 변양균 전 대통령 비서실 정책실장(현 옵티스 및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 회장)을 초청해 《2018 대통령의 성공조건》 제4차 라운드테이블을 진행했다.

 

시대를 읽는 눈

 

대통령의 첫 번째 조건은 현재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느냐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역대 대통령을 보면, 시대적 상황에 맞추어서 상당부분 해야 할 임무를 완수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근대화와 경제발전을 이끌었고, 전두환 대통령도 그 당시 경제를 비롯하여 전체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개방에 중점을 두었다. 특히 경제적인 측면에서 개방을 도모했다. 노태우 대통령도 남북관계가 경직되어 있었지만 탈냉전의 국제정세를 읽고 북방외교를 추진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문민정부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군부의 정치 개입을 근절시키고 불법적인 정치자금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IMF 극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으며, 정보화시대에 맞추어 IT기반을 위한 광케이블 등 정보 인프라 구축을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하였다. 그리하여 오늘날 전세계의 인터넷 강국의 기본을 다졌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주어진 상황을 고려하여 정책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리더십을 가질 때 대통령은 성공할 수 있다.
1997년 즈음부터 해서, 약 15년 전부터 우리나라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즉 대기업에서의 성과와 수익이 중소기업으로 흘러 들어가고, 전반적인 국민 소득이 증가하는 경제적 흐름을 낙수효과라고 할 때, 한국은 지난 15년 동안 이런 효과를 기대할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를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낙수효과만을 생각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잘 사는 사람들의 돈이 아래쪽으로 흐를 것이다, 대기업의 부가 중소기업을 일어서게 할 것이다 라는 식의 논리는 더 이상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게 된 지 15년이 넘었다는 이야기이다.
다른 예로, 우리나라 경제개발 시기에 45세부터 50세까지 98만 명이었던 인구 수가 내후년에는 436만 명까지 증가해 정점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의 일생 중에서 가장 많은 소비를 하고, 다시 말해 가장 많은 돈이 시점이 만 45세부터 만 50세까지인데, 이 인구는 소비 파워를 가지는 엄청난 인구이다. 그러나 2018년도 이후로는 급격히 줄어들 것이고 이미 그런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 이는 성장이나 경제 운영 면에서, 소비 부분이 굉장히 위축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인구 구조를 들여다보면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이러한 인구 상황을 고려할 때 기존의 정책이 가지는 한계를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소비가 급격히 줄어드는 45세부터 50세의 인구를 위해 저비용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국민이 비용을 적게 들이고도 삶을 꾸려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정책, 예를 들어 레저 또는 교육 비용이 적게 들게 하는 정책에 포커스를 맞추어야 한다. 이처럼 대통령은 시대를 정확하게 읽어내는 눈이 필요하다.

 

만능 대통령이 아닌 전문 대통령

 

정책을 발표하고 입안해서 시행까지 평균 3년이 걸린다. 정부가 무엇을 하겠다 발표하고 난 뒤에 실제로, 첫 삽을 뜨기까지는 3년이 걸린다. 이를 보면 5년제라는 것이 시기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제도이다. 그래서 대통령은 평상시에 자신이 꿈꾸고 시대적 사명으로 생각하는 것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하며, 기회가 왔을 때 우선순위를 따져 가장 중요한 것 한 두 개를 선정하여 잘해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경제학에 네팔이 왜 못사느냐 라는 질문에 대해 아버지와 아들이 주고 받은 편지를 바탕으로 설명한 것이 있다. 아들이 네팔에 가서 잠깐 머물면서 보니 네팔사람들이 지붕도 잘 수리하는 등 미국인과 비교해보니 압도적으로 재능이 좋았다. 이런데도 왜 네팔 사람들이 못 사느냐라고 아버지에게 질문을 하였다. 아들은 아버지와 편지를 주고 받으며 그 재주가 많다는 네팔 사람들의 특성이 경제적으로 낙후된 네팔의 근본적인 이유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 가지에 집중해서 전문성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나머지 문제에서도 교환가치를 가질 수 있다. 혼자서 다 하면 거래나 교환가치가 생기지 않는다. 이처럼 대통령도 절대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으며 해서도 안 된다.

 

신의와 의리

 

세 번째로 갖춰야 할 조건으로, 대통령은 사람을 아껴야 한다. 정치에서는 많은 경우 사람을 소모품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며, 주변 사람을 소모품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결국 신의와 의리가 있어야 한다. 물론 조직폭력배들도 신의와 의리를 강조하지만 정의가 없다. 정치적 정의 실현에 기반한 신의와 의리는 다르다. 어떤 정치지도자가 신의와 의리를 지키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면, 그 옆에 있는 참모들도 성심을 다해 일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의리가 없는 사람이면, 주변 사람들이 자기가 언제 버려질 지 몰라 자기 보신만 생각하게 된다.
훈민정음 해례본 발표문에 보면 “세종대왕이 직접 만드셔서 발표하셨다.”라고 나온다. 혼자서 그것을 만들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왜 훈민정음은 오로지 세종대왕의 독자적 창제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일까?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여 유추해보면, 중국과의 관계와 신하에 대한 배려를 엿볼 수 있다. 당시 중국과 조선의 관계에서 보건대, 중국에게 조선의 한글창제는 사대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한글이 한자를 잘 읽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을 해도 중국은 조선이 독자적인 문자를 갖게 되는 것을 경계할 것이 분명하였다. 그래서 한글창제에 참여한 학자들을 모두 명기하게 된다면, 그 신하는 결국 중국에 소환 당하여 고초를 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나 혼자 만들었다고 자랑하고 싶어서 오직 본인의 이름만 명기한 것이 아니라 신하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그랬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처럼 주변 사람을 아끼고 신의를 지키는 것이 대통령의 리더십이 가져야 할 최고의 덕목 중 하나다.

 

일반적인 오해1: 국가를 경영한다

 

사람들이 굉장히 착각하기 쉬운 부분이, 기업 경영과 국정 운영이 유사할 것이라고 본다는 점이다. 사실은 정반대다. 기업 경영을 잘 하는 사람일수록 국정 운영을 못할 가능성이 더 높다. 국가를 운영한다는 것은, 예를 들면 서구 사회에서 정치를 꿈꾸는 사람은 10대에 처음 당에 입당을 해서 당과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우고, 당의 전문가, 정책 전문가로 성장해 나간다. 이렇게 행정과 정치의 경험을 터득하게 되면 국정 운영을 잘해나갈 수 능력과 감각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경험 없이 어느 날 갑자기 국가를 ‘경영’하겠다고 나선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기업은 돈을 버는 곳이지만, 국가는 돈을 얼마나 잘 쓰느냐에 운영의 성패가 달려 있다. 그리고 기업은 사람을 편의에 따라 해고할 수 있지만, 국가는 함부로 할 수 없다. 내쳐야 하는 사람일수록 더 보살펴 주어야 하는 것이 국정의 논리이다. 그리고 기업 경영은 “agree”를 추구하고 의사 일치를 이루어서 결정하고 집행하는 데 반해, 국정 운영은 “agree to disagree”라고 표현할 수 있다. 즉 상대방의 반대 의견을 충분히 경청하고 존중하면서 국가를 이끌고 나가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전략적 선택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대통령을 잘 해낼 수 있는 인물이라기보다는 국방부 장관과 같이 그러한 덕목이 요구되는 자리에 더 어울리는 인물이라고 하겠다.

 

일반적인 오해2: 단기적 통치술=정치

 

두 번째로 대통령은 단기 전략에 집착하면 안 된다. 그 중 한 가지 예로 우리나라가 TPP에 처음부터 가입하지 않은 것은 굉장히 큰 실수로 볼 수 있다. 역사가 무엇인지, 그리고 국가가 무엇인지, 또한 우리나라가 앞으로 추구해야 할 힘 있는 중견국(strong medium sized country)으로 성장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해 전혀 이해가 없었던 처사라고 본다. 우리 나라가 TPP의 주도국이 되어도 모자란데, 농민들이 데모를 하면 어쩌지, 또 반대 세력이 뭘 하면 어쩌지 라는 걱정이 앞서서 TPP 문제를 후일로 미루고, 가입도 나중에 하고, 따라가고, 뒤에 숨으면 제대로 된 국가의 판단이라고 할 수 없다. TPP에 가입하지 않는 바람에 우리나라 기업의 대 탈출이 또 일어날 수 있다. 우리나라 경우 GDP의 100퍼센트 이상을 무역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의 무역의존도는 20퍼센트 밖에 안 된다. 이럴진대 우리가 일본보다 뒤늦게 TPP에 가입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일본은 수출이 23% 정도로 TPP를 안 해도 살 수 있는 나라다. 그런 일본조차도 쌀 개방을 우리보다 훨씬 앞서서 하고 TPP 주도국이 되었다. 무역의존도 100%인 나라가 가입하지 않은 것은 잘못된 것이다. 상황 모면을 위한 단시안적 판단이 올바른 통치라고 할 수 없다. 긴 안목에서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고 정책을 구상하고 실행해야 할 것이다.

 

일반적인 오해3: 참모의 잘못

 

마지막으로 잘못 임명된 참모는 있어도, 잘못하는 참모는 없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참모 탓을 많이 한다. 일반 국민도 그렇고, 언론도 비서실장을 비판하거나 주변의 참모들에 대해 비난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참모 임명은 누가 했는가? 다름 아니라 대통령이다. 참모는 — 물론 대단히 지략이 뛰어난 참모가 있을 수는 있지만 — 결국 다 최고 책임자와 그의 권력을 구성하는 하나의 부분이라 하겠다. 정말 가까운 핵심 참모들은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한다. 그러나 그 사람의 능력과 행태와 같은 것은 임명한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 그런데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우리는 그 임명권자를 비판하기보다는 참모가 잘못했다고 비난한다. 결국 상황에 대한 책임은 참모가 지고 물러난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에 상당히 팽배해 있다. 이는 우리가 여전히 왕정시대를 정신적으로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즉, 왕은 잘못을 범할 수 없다는 사고방식이다. 모든 것을 다 소화할 수 있는 제갈공명과 같은 천재적인 참모가 있기를 바라고 혹은 당연시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5년마다 바뀌는 대통령제에서 어떻게 제갈공명 같은 참모를 둘 수 있겠는가? ■

 

 


 

 

변양균 옵티스 및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 회장은 기획예산처 기획관리실장, 기획예산처 차관, 기획예산처 장관을 거쳐 청와대 비서실 정책실장을 역임했다

 

사회자
이숙종, EAI 원장, 성균관대 교수

 

토론

강원택 서울대 교수
김석호 서울대 교수
김재일 단국대 교수
김태영 경희대 교수
나태준 연세대 교수
박원호 서울대 교수
박형준 EAI 거버넌스센터 소장, 성균관대 교수
이내영 EAI 여론분석센터 소장, 고려대 교수
한규섭 서울대 교수
한승준 서울여대 교수
한정훈 서울대 교수
배진석 EAI 수석연구원
김보미 EAI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