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31일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일 정상회담이 개최되었으나, 이례적으로 양국 정부는 회담 내용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손열 EAI 일본연구센터 소장(연세대 교수)은 지난해 말 이뤄진 위안부 합의가 축복 속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한 양국관계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또한 위안부 문제는 국내정치는 물론, 한일관계 및 동북아 국제정치와도 긴밀히 연계되어 있어 고도의 전략적 접근이 필요한 바, 정체성 충돌로 외교전이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이것이 안보·경제 등 다른 영역에서의 협력을 저해하지 않도록 관리할 수 있는 리더십이 요구된다고 강조합니다.

 

 


 

 

침묵하는 한일관계

 

작년 12월 28일 한일 정부 간 일본군 위안부 합의가 이뤄진 지 100일이 지났지만 양국은 최대한 말을 아끼고 있다. 지난 3월 31일 워싱턴에서 이뤄진 숨가쁜 릴레이 정상회담 속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아베 신조 총리와 20분간 만남을 가졌다. 하지만 이례적으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공표되지 않고 있다. 일부 일본 언론이 박근혜 대통령의 합의 이행 의지를 확인했다고 보도하는 정도고, 외교부는 정례 브리핑에서 합의 이행을 위한 준비를 착실히 하고 있다고 설명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깜깜이 정상회담은 12월 합의가 축복 속에 받아들여지지 못한 한일관계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지난 1월 8일 한국 갤럽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민 56%가 합의에 반대하고 26%만이 찬성하고 있다. 국민의 72%가 일본이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았다고 평가하며, 같은 수의 응답자가 위안부 소녀상 이전에 반대하고 있다. 반면, 일본의 분위기는 1월 30일자 마이니치 신문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듯이 일본인 65%가 합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이 합의에 의해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는 의견은 19%에 불과하다. 일본 우파를 중심으로 한국이 결국 위안부 합의를 파기할 것이라는 악성 비관론이 고개를 드는 가운데 하기우다(萩生田光一) 관방 부장관이 4월 6일 소녀상 이전과 재단 설립이 하나의 패키지로 실행돼야 한다고 견제구를 날린 바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한국의 합의 이행 노력을 관망하는 분위기이다.

 

공은 한국 측으로 넘어와 있고, 국내 여론과 당사자들의 반대라는 정치적 부담으로 침묵이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북핵 위기와 선거판이 대강 정리되면 위안부 문제는 다시 쟁점화될 것이고, 한일관계 복원 노력은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위안부 문제는 한일 양자 간에 특수한 외교 쟁점이다. 위안부의 아픈 역사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정체성의 정치(identity politics)가 충돌하는 사안인 만큼 국내 정치와 깊이 결합되어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요하는 쟁점이다. 다른 한편으로 위안부 문제는 동북아 국제 정치와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미국과 중국은 지역질서 건축을 둘러싼 주도권 경쟁 속에서 역사 문제를 자국의 국익추구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으며, 일본 역시 이를 교묘히 활용하려는 노력을 경주해 왔다. 따라서 위안부 문제는 정체성의 정치라는 국내정치 사안인 동시에 한일관계 사안이고, 나아가 동북아 국제정치 사안이라는 다면성을 가지고 있어서 고도의 전략적 접근을 필요로 한다. 이번 위안부 협상의 교훈은 이러한 다면성을 가진 사안에 대한 복합외교를 제대로 수행해 왔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찾을 수 있다.  

 

새로운 형세: 중국의 쐐기전략과 미국의 역사 개입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협상 타결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그 시발인 2014년 4월 국장급 협의 시점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2012년 12월 아베 신조 총리의 등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 이후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 양국관계 회복을 위해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4년 3월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 자리를 빌어 한일 정상과 3자 회동을 주선했고, 이를 통해 양국 간 관계회복의 시금석으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국장급 협상을 출범시켰다. 이는 한미일 관계사상 초유의 일이라 할 수 있다. 1945년 이래 미국이 직접 양국 정상 간 화해를 위한 자리를 만든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역사 문제에 관한 미국의 개입은 한일관계 악화로 인해 커지는 자국의 지역 전략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추진함에 있어서 패권의 상대적 쇠퇴로 두 핵심 동맹국에게 더욱 큰 부담과 역할을 전가하고자 하는 미국은 역사 문제를 둘러싼 양국의 갈등으로 국익이 훼손되고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우려는 중국의 행보에 의해 증폭됐다. 시진핑 주석은 역사 문제를 고리로 한국을 끌어안는 매력 공세를 전개해왔다. 그는 2013년 7월 한국 국빈 방문 시 양국의 숙명적 유대에 따른 “속마음을 터놓는 사이”(肝膽相照)를 강조하면서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에 대한 한중 역사동맹을 제안했고, 박 대통령이 요청한 안중근 열사 기념관 설치를 약속함으로써 한국의 환심을 사고자 했다. 이는 한국을 일본으로부터 멀리하고 자국 쪽으로 끌어들이려는 한미일 삼각 협력체제에 대한 쐐기전략이어서 미국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2013년 12월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방문으로 한국과 중국이 맹 반발하며 일본 비난 외교 공세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한일관계 회복을 위해 외교적 영향력을 투사하여 헤이그 삼자회동을 성사시킨 것이다.

 

미국은 한국이 역사 문제는 국장급 협의로 푸는 한편, 안보·경제문제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협력에 나서는 분리대응의 대일 "투-트랙"(two-track) 접근을 희망했다. 반면 한국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성의 있는 노력 없이는 관계 정상화는 물론 정상회담을 않겠다는 연계 대응론의 입장을 고수했고, 오히려 정체성의 정치를 강화하여 보다 강경한 대일 주장을 통해 역사 문제에 대한 국민의 기대치를 올려놓았다.

 

미국은 역사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2015년 2월 웬디 셔먼(Wendy Sherman) 국무부 부장관이 "민족주의적 대중 정서는 악용될 수 있으며 정치 지도자가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받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 같은 도발은 [지역협력]에 진전이 아니라 마비를 초래한다"며 역사 문제의 국내 정치적 이용을 경고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국내 정치와 외교를 분리할 것을 우회적으로 촉구하는 발언이다.

 

아베의 반격

 

이러한 미국의 압박과 함께 일본의 기민한 대응은 한국 외교에 딜레마를 가중시켰다. 아베 총리는 4월로 예정된 미국 국빈 방문 시 상하 양원 합동 연설문과 8월로 예정된 이른바 아베 담화에 포함될 역사관련 내용을 미국과 긴밀히 조율했고, 워싱턴은 아베 연설과 아베 담화 모두 환영으로 화답했다. 미일공동비전성명(2015년 4월 28일)은 미국의 "아태 재균형 전략"과 일본의 "국제 협조주의에 기반한 적극적 평화주의"의 결합을 통해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확보하기 위해 긴밀히 연대하고 "양국의 안전과 번영은 상호 긴밀히 얽혀있어 때어낼래야 땔 수 없는, 국경에 의해 정의될 수 없는 것임"을 선언하여 동북아 형세를 '미일 對 중국' 구도로 만들어 놓았다.

 

중일관계 개선 역시 한국에 외교적 압력으로 작용했다. 아베 총리는 2014년 10월 베이징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시진핑 주석과 간략한 정상회담을 가졌고, 2015년 4월 반둥회의 60주년 기념 정상회의에서 양자 정상회담을 통해 동중국해 갈등이 무력충돌로 가지 않도록 양국이 노력하고 안보갈등이 여타 부문에서 실질적 협력을 저해하지 않도록 관리한다는 선언을 이끌어 내었다.

 

일본이 미국과의 동맹을 일체화하고 중국과 관계개선을 이루면서 한국의 외교적 고립에 대한 우려가 점증했고, 일본에 대한 버티기 자세는 눈에 띄게 약화되어 갔다. 한국 정부는 "투-트랙" 접근을 공식적으로 언급하면서 6월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식을 앞두고 위안부 협상 타결을 위한 고위급 접촉을 시작했다. "전제조건"이 사라지고 아베 담화에 대해 8·15 경축사의 절제된 반응이 나타났다. 이어 9월 3일 박 대통령의 베이징 전승절 참석은 북한 문제 처리를 위한 중국의 지지 확보 차원에서 추진됐지만, 뒤이어 이뤄진 워싱턴 방문(10월 24일)에서 미국의 대일관계 개선 요구에 취약한 입장을 가져오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 하에 11월 2일 한일 양국 정상은 취임 이래 첫 양자 정상회담을 가졌고, 위안부 협상의 조기 타결을 약속하게 된다.  

 

위안부 합의 이후,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이렇게 보면 12월 28일 위안부 합의는 '미일 對 중국' 구도라는 형세가 형성되고 그 하위수준에서 중일관계의 회복이 이루어지면서 한국의 운신의 폭이 축소되는 현실을 반영한 산물이라 할 것이다. 한국으로서는 한계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한 것이라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형세는 구성되는 것이다. 역사 문제가 한일관계 고유의 쟁점인 동시에 보다 넓은 지역질서 경쟁 차원으로 연계되어 있음을 명확히 인식하였다면, 이 문제를 한일관계 정상화의 전제조건으로 삼는 단순외교를 지양하고, 투-트랙 복합외교로 풀어갈 수 있었고, 산케이 신문 기자 기소사건 등 감정의 과잉을 통제할 수 있었으며, 따라서 형세의 구조화 과정에서 보다 큰 기회의 창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를 교훈삼아 향후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나.

 

첫째, 지난 12월 합의는 한일관계 정상화를 위한 본격적 출발로는 성공적이지만 위안부 문제 완결의 결정적 계기는 아니라는 전제 하에서 일을 시작해야 한다. 재단 설립과 10억엔 거출, 소녀상 이전 문제 등은 기나긴 해결 과정의 일부로 인식해 풀어가야 한다.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은 수사로 받아들이는 편이 좋다.

 

둘째, 이러한 차원에서 위안부 피해자 등 이해 당사자와의 겸허하면서도 진솔하고 끈질긴 대화와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피해자와 긴밀한 소통이 합의 이전이나 이후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고, 지난 3월 31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 총리가 합의문에 담긴 사죄와 반성을 직접적으로 표명하지 않았던 것도 아쉽다.

 

셋째, 투-트랙 외교의 실행이다. 역사 문제는 정체성의 정치로 드러나므로 이슈의 정치화는 불가피한 현상이고, 그런 만큼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도 어렵다. 정체성 충돌이 불가피하여 일본과 따지고 싸워야 한다면 각박한 외교전을 치르되, 이것이 여타 영역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안보·경제·신흥이슈에서의 협력을 저해하지 않도록 관리할 수 있는 리더십이 발휘돼야 한다.

 

넷째, 양국 지도자들은 역사 문제를 정치적 동원의 기제로 활용하려는 유혹을 억제하고 역사 싸움이 가급적 전문적 영역에서 지식싸움으로 전개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위안부 문제가 국제적 역학관계에 휩쓸리거나 합의 성과에 대한 국내정치적 논쟁으로 정작 전시 여성들의 존엄과 명예를 회복하고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본질을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위안부 합의 이행이 정치 일정에 영향을 받아 위안부 논의가 위축되고 졸속 처리되지 않도록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끝으로, 국내·한일·지역 삼면에서 서로 연계되어 전개되는 위안부의 국제정치를 능동적으로 담당하는 복합외교 체제를 정비해야 한다. ■ 

 

 

 


 

 

저자

손열 EAI 일본연구센터 소장, 연세대학교 교수. 미국 시카고대학교(University of Chicago)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도쿄대학교, 와세다대학교,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채플힐(University of North Carolina at Chapel Hill) 방문교수를 거쳤다. 주 연구 분야는 일본 및 국제정치경제, 동아시아 지역주의, 글로벌 거버넌스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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