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성공은 대통령 개인의 성공이 될 수 없다. 대통령이 성공하지 못했을 때 그 비용은 최종적으로 ‘국민’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 때 ‘국민’은 이전 대통령 선거에서 현직 대통령을 지지한 국민과 지지하지 않은 국민 모두를 지칭한다. 대통령의 실패가 국가의 실패가 되고, 결국 국민의 실패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대통령의 성공을 정파적 관점에서 다룰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AI는 이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2002년 ≪대통령의 성공조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후 EAI는 ≪대통령직 인수의 성공조건≫ (2007년), ≪2013 대통령의 성공조건≫ (2012년) 프로젝트를 통해 5년마다 민주화 이후 바람직한 대통령의 역할, 권한, 책임에 관한 제도화 방안을 강구해왔다. 초기의 문제의식은 제도화와 함께 안정적인 국정운영의 리더십 확보에 대한 연구로 발전되었다.

 

국정운영은 연습과 실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의 임기 초기 실험 비용은 국가적 손실이다. 성공과 실패의 경험이 축적되지 않으면 국정운영은 이전 정부의 성과와 한계에 대한 학습 없이 실행되거나, 학습 시간 투자 때문에 실행의 타이밍을 놓칠 수밖에 없다. EAI는 대통령의 성공조건 프로젝트의 시작을 전현직 고위공직자, 국회의원, 청와대 수석비서관 등의 국정운영 경험에서 찾아, 이를 지식 데이터베이스로 전환하는 작업을 추진하고자 한다. 취임과 함께, 혹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발족할 때,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비전과 임기 5년 동안 추진할 주요 사업에 대한 구체적 실행계획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EAI가 이전 프로젝트보다 시기를 당겨 ≪2018 대통령의 성공조건≫을 준비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EAI는 2016년 3월 7일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를 초청해 ≪2018 대통령의 성공조건≫ 제1차 라운드테이블을 진행했다. 자신의 체험 속에서 간파한 시대정신을 자신의 언어로 연설문에 반영할 수 있는 능력을 이광재 전 도지사는 성공하는 대통령의 자질로 집약해 표현했다.

 

“네 이웃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정치의 출발점

 

 ″정치가는 희망을 파는 상인″이라고 나폴레옹이 말했다. 나는 이 말에서 정치와 담론의 본질을 찾는 실마리를 발견한다. 바로 ″네 이웃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서 정치가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몸의 중심은 머리도, 가슴도, 눈도 아니다. 그 순간에 그 사람이 느끼는 가장 아픈 곳이 바로 몸의 중심이다. 뾰루지 하나만 생기더라도 그 사람의 모든 관심이 그 곳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의 가장 아픈 곳을 찾아 바로 거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시대정신이 탄생하는 곳이다. 권력을 탄생시키는 담론 생성의 출발 지점이다.

 

성공하는 대통령의 자질을 집약적으로 표현하자면, 연설문을 스스로 쓸 수 있는 능력이다. 매끄럽게 누군가 써준 연설문으로는 안 된다. 자신의 체험 속에서 간파한 시대정신을 자신의 언어로 연설문에 반영해야 한다. 그런 연설문을 스스로 쓸 수 있는 대통령이 탄생할 때 우리는 의미 있는 대통령을 맞게 된다.

 

대통령이 바꿀 수 있는 영역은 제한적

 

성공하는 대통령은 자신의 고유한 어젠다가 있어야 한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틀리지 않은 말이다. 다만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통째로 혹은 대단히 많이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잘못이다.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미국 대통령이 미국 사회를 5퍼센트만 바꿀 수 있어도 굉장한 변화라고 평가된다. 대통령이 나라 전체를 바꿀 수 있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전체를 바꾸겠다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한다. 대통령 임기 5년은 나라를 흥하게 만들기에는 상당히 부족하지만, 나라를 망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임기 5년 동안에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정하는 것이 성공의 전제조건이다.

 

대중은 현재를 봐도 대통령은 미래를 봐야 : 국가미래전략기구 설립

 

대한민국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세 가지 정도의 이슈가 있다. 우선 담론, 곧 비전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다중은 현재를 보고, 소수는 미래를 본다. 국가 지도자는 미래를 봐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은 누가 만드는가?

 

유감스럽게도 현재는 국가의 미래를 장기적으로 연구하고 전망하며 계획을 세우는 부서가 없다. 과거에는 경제기획원이 경제 성장에 초점을 맞춰 이런 역할을 담당했다. 이제는 범위를 넓혀 국가 전반에 관한 미래 전략을 구상할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국책연구기관들이 막대한 예산을 쓰고 있지만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정해준 방향대로만 움직이기 때문이다. 민간 싱크탱크도 그 역할을 일부 담당해야 하는데, 한국은 민간 싱크탱크가 활동하기에 우호적이지 않은 환경이다. 여야 정당 싱크탱크들은 정책개발보다 선거여론조사에 몰두하고 있다. 대학 역시 현실의 문제를 타개하는데 필요한 지식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 모든 여건을 고려할 때 국가미래전략기구는 반드시 설립되어야 한다. 

 

담론생산능력의 출발점: ‘만언제도’ + 엘리트 충원시스템

 

국가의 담론생산능력을 키우기 위해 제안하고 싶은 것은 이른바 ′만언제도′이다. 국가 고위직을 경험한 고위 관료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기록으로 남겨 국가제도로 편입시켜야 한다. 고위직 관료의 역량은 개인의 능력에 멈춰서는 안 된다. 국가의 역량으로 전수되어야 한다. 이들의 경험이 통합 관리되고, 재기용되는 국가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담론생산에 필요한 또 하나의 조건은 효과적인 엘리트 충원구조의 확립이다. 경험에 따르자면, 관료, 기업인, 학계 인사들은 공통의 사업을 추진하면서도 서로 장벽을 치고 있다. 학계인사들은 관료들에게 ″영혼이 없다″고 질타한다. 관료들은 학계인사에게 ″문제해결 능력이 없다″고 비판한다. 기업인들은 관료와 학계인사들의 학계인사들의 논쟁을 보고 나서 ″저들의 논의 중에 실행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비관한다. 국가 차원의 인재들이 진입장벽을 깨고 협조 체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엘리트 충원구조가 있어야 담론 생산도 발전한다. 

 

대한민국, 관중 난입 상태의 축구장: 통합 친화적 민주주의의 필요성

 

대통령의 성공조건과 관련된 두 번째 이슈는 분열보다 통합을 추구하는 민주주의 문제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관중 난입 상태의 축구장이다. 골대도 여러 개이고 공도 여러 개다. 진보는 진보가 만든 골대에 공을 넣고 골인이라 주장하지만 보수는 인정하지 않는다. 보수가 넣은 공을 진보 역시 골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분열상을 가진 국가에게 미래는 없다고 국가흥망사는 역설한다. 통합을 추구하는 민주주의를 고민해야 한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중대선거구제와 양원제를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오마에 겐이치가 말했듯이 일본이 소선거구제로 바뀌면서 ″큰 정치인″이 나오지 않고 있다. 소선구제는 경륜과 비전을 갖춘 국가지도자를 키우기에 매우 부적합하다. 선거 때만 되면 나오는 이른바 ″물갈이론″의 부작용은 중대선거구제를 검토하게 만든다. 양원제가 필요한 이유는 국토와 자연환경을 배제하고 사람만을 기준으로 삼는 ″대표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인구가 적은 강원도의 선거구는 인구가 밀집된 수도권 선거구보다 열 배가 넘는 면적이다. 인구만을 기준으로 삼는 현재 제도는 수도권의 과다대표와 지방의 과소대표로 나타난다. 국토와 환경에 대한 미래가치가 반영되지 않은 제도이다. 하원은 인구기준으로, 상원은 행정구역 기준으로 대표성을 부여하는 양원제가 미래 가치를 더 잘 반영할 수 있다.

 

여야 간 유사한 공약은 선거 전에 입법 추진: 연정 기반 마련

 

분열하면 망하고, 통합하면 산다. 이는 역사의 법칙이다. 연정을 적극 연구하고 실천해야 한다. 글로벌 차원에서도 그렇듯이 한국 역시 분단체제 하에서는 정책이 중도로 수렴될 수밖에 없다. 지난 몇 번의 대선에서도 확인되었듯이 대통령 선거 전의 공약들은 여야 간에 큰 차이가 없는 것이 많다. 다만, 선거가 끝나면 그 공약을 지키지 않고 그 결과 국민들만 손해를 본다. 이 폐해를 막기 위해 여야 간 유사한 공약들은 대통령 선거 전에 국회에서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 선거 이후에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선거 전에 여야 간 협의를 거쳐 법률로 통과시키자는 것이다. 이 제안은 선심성 공약을 제어하는 기능도 있지만, 이 과정에서 연정을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 이미 입법을 거친 정책에 대해서는 상대당에게 장관 혹은 고위직을 맡길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인다. 연정을 통한 통합의 정신이 대통령 성공의 전제조건이다. 이 밖에도 국가운영능력을 높이기 위해 여당 간사가 정무차관을 맡아 국회와 행정부의 협력체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고질적인 인사청문회의 폐해도 정부가 결단을 내려 총리실 산하에 인사검증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국회의원이 ′사립탐정′이 되는 것을 막고 정책 청문회로 전환되어야 여야 간 다툼을 벗어나 국가 차원의 인재를 등용할 수 있다.

 

국회지원 시스템의 강화: 4대 강대국 위원회 제정

 

대통령 성공조건의 세 번째 이슈는 국회지원 시스템의 강화이다. 세계 최고의 정보와 지식이 국회에 전달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국회의원 개개인이 불성실하거나 애국심이 부족해서 국회가 무능한 것이 아니다. 의정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외교와 경제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위원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4대 강국의 틈바구니에서 한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회 내에 4대 강대국 담당 위원회가 법률로 제정되어야 한다. 미국 의회의 중국 위원회가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 이 위원회에 제대로 된 개별 4대 강대국 전문가들이 포진해야 한다. 외교관 육성도 마찬가지 관점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4대 강대국 별 전문 외교관을 키워야 한다. 현재처럼 미국에 파견되었다가 오지로 가고, 다시 중국으로 가는 식의 떠돌이 배치로는 해당 지역에 충분한 경험과 전문성을 가진 외교관을 키울 수 없다. 덧붙여 국정원 해외파트와 외교안보연구원, 그리고 국방대학원 등 관련 기관들의 예산이 통합적으로 운영될 필요가 있다. 핵심은 관련 분야의 고위직 인사들은 국가 차원에서 관리되어야 문제해결 능력이 높아지고 외교적 역량을 효과적으로 투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야를 넘는 국가인재 양성 시스템

 

CEO의 크기만큼 기업이 발전한다. 국가 지도자의 능력만큼 국가가 성장한다. 로마, 미국 모두 부흥하는 시기에는 80년 안에 세계 최강이 되었다. 국가 경영, 동북아 경영, 세계 경영을 이끌 지도자를 양성해야 한다. 지도자의 유무가 곧 국가의 미래이다. 나무 한 그루 키우는데도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다. 국가 인재를 키우는데 여야를 넘어 모두 역량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는 노무현 대통령후보 선거단 기획팀장, 대통령 비서실 국정상황실장, 제17대, 제18대 국회의원을 거쳐 제35대 강원도 도지사(민선 5기)를 역임했다.

 

사회자

이숙종, EAI 원장, 성균관대 교수

 

토론

강원택 서울대 교수
김석호 서울대 교수
김재일 단국대 교수
김태영 경희대 교수
나태준 연세대 교수
박원호 서울대 교수
박형준 EAI 거버넌스센터 소장, 성균관대 교수
이내영 EAI 여론분석센터 소장, 고려대 교수
한규섭 서울대 교수
한승준 서울여대 교수
한정훈 서울대 교수
배진석 EAI 수석연구원
김보미 EAI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