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서 본 EAI  [주말S] “김정은의 설계도는 19세기의 것”

 

 

 


 

 

하영선_ EAI 이사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미국 워싱턴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장, 미국학연구소장, 한국평화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대통령 국가안보자문단 자문위원, 통일준비위원회 민간위원이다. 저서 및 편저로는《하영선 국제정치 칼럼 1991-2011》,《복합세계정치론 : 전략과 원리 그리고 새로운 질서》,《한일 신시대와 공생복합 네트워크》,《변환의 세계정치》등이 있다.

 


 

김정은 제1비서의 신년사가 발표됐다. 그리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4차 핵실험이 이뤄졌다. 예상대로 아전인수식 국내외 해설이 혼란스럽다. 신년사와 핵실험을 제대로 읽으려면 발표문의 피상적 어휘 해설이나 내용 분석을 넘어서서 북한 정책 결정권자의 머리와 가슴 속으로 들어가 현 국면의 형세를 어떠한 시야에서 파악하고 어떠한 기세로 판세를 유리하게 이끌어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를 조심스럽게 해석해야 한다. 그런 다음 최종적으로는 북한의 이러한 노력이 현 국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를 판단해야 한다.

 

금년 신년사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36년 만에 열리게 될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의 예고편이라는 점이다. 당과 인민의 2016년 전투적 구호가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가 열리는 올해에 강성국가 건설의 최전성기를 열어나가자’인 것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는 위대한 수령님들의 현명한 영도 밑에 우리 당이 혁명과 건설에서 이룩한 성과들을 긍지높이 총화하고 우리 혁명의 최후 승리를 앞당겨 나가기 위한 휘황한 설계도를 펼쳐놓게 될 것입니다.”라고 예고하고 있다. 따라서 금년 신년사는 2016년의 설계도인 동시에 노동당 제7차 대회의 미래 설계도를 미리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국내역량 : 경제 • 정치 • 군사 • 문명 강국

 

2016년 신년사는 지난해의 성과를 간략하게 정리한 다음, 1960년대 이래 북한 정책결정권자의 기본 시야를 형성하고 있는 북한, 남한, 국제의 3대 혁명역량의 틀에 따라 국내역량의 설계도부터 그리고 있다. 우선 “경제강국 건설에 총력을 집중하여 나라의 경제발전과 인민생활향상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켜야 하겠습니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우리 당은 인민생활문제를 천 만가지 국사 가운데서 제일 국사로 내세우고 있습니다.”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2014년 신년사에서는 “국방력 강화는 국사 중의 국사이며 강력한 총대위에 조국의 존엄과 인민의 행복도 평화도 있습니다.”라고 얘기했다.

 

그러나 설계도는 경제, 정치사상, 군사, 문명이라는 기존 4대 진지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경제강국 건설과 함께 사회주의 정치사상 진지, 나라의 방위력, 최상의 문명을 병행해서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당 제7차 대회가 열리는 올해 ‘로동당 시대의 문명 개화기’를 열기 위해서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을 위한 집단주의적 경쟁과 자강력 제일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통일역량 : 자주 • 평화 • 민족대단결 고수

 

신년사는 이어서 ‘조국통일과 북남관계개선’의 설계도를 그리고 있다. 이 설계도는 74 공동성명 이후의 반외세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첫째, “외세의 간섭을 배격하고 북남관계의 조국통일문제를 민족의 저항과 요구에 맞게 자주적으로 풀어나가야”하며, “남조선당국은 민족내부문제를 외부에 들고 다니며 (공조)를 구걸하는 수치스러운 행위를 그만두어야”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둘째, “조선반도에서 전쟁위험을 막고 평화와 안전을 수호하는 것은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근본조건”이므로 “미국과 남조선당국은 위험천만한 침략전쟁 연습을 걷어치워야 하며 조선반도의 긴장을 격화시키는 군사적 도발을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셋째, “남조선당국이 진정으로 북남관계 개선과 평화통일을 바란다면 부질없는 체제 대결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 조국통일 3대 원칙과 615 공동선언, 104 선언을 존중하고 성실히 리행해 나가려는 의지를 보여야”하며, “진실로 민족의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와도 마주앉아 민족문제, 통일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론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설계도를 제대로 읽으려면 첫째, 북한의 대남전략은 여전히 외교전, 군사전, 정치전의 3면전으로 구성되어 있고, 둘째, 북한이 얘기하는 ‘누구와도’는 ‘아무나’가 아니라 북한 식 자주와 평화를 따르는 상대를 지적하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2016년 남북관계를 군사적 긴장의 비관론이나 화해협력의 낙관론 중 어느 한쪽만 강조하는 단순 일면전이 아니라 3중 복합전으로 전망하고 풀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북한이 말하는 ‘누구와도’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제역량 : 대미 평화협정과 핵실험

 

신년사는 마지막으로 국제역량 강화의 설계도로 미국은 ‘대조선 적대시정책’을 포기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어 조선반도에서 전쟁 위험을 제거하고 긴장을 완화하며 평화적 환경을 마련”해야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는 침략과 전쟁, 지배와 예속을 반대하는 세계 인민들과의 연대성을 더욱 강화하며 우리나라의 자주권을 존중하고 우리를 우호적으로 대하는 모든 나라들과의 친선 협조관계를 확대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지난 해 10월 17일 성명에서 “조선반도에서 평화를 보장하는 방도는 오직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핵무력을 중추로 하는 우리의 자위적 국방력을 백방으로 강화하여 미국의 가중되는 핵위협과 전쟁도발을 억제해 나가는 랭전의 방법이다. ……다른 하나의 방도는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정책을 포기하고 우리와 평화협정을 체결하는데 응해 나옴으로써 신뢰에 기초한 진정하고 항구적인 평화를 수립해 나가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미국이 평화협정 체결을 회피하면 ‘무한대한 핵억제력’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북한의 진정성에 의문을 품고 있는 미국의 부정적 반응에 대해 북한은 12월 16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도 같은 내용의 발언을 계속하면서 미국과 평화협정이 체결되지 않는 한 핵 무력을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재확인했다.

 

북한은 2016년 1월 6일 4차 핵실험을 했다. 북한 정부 성명은 “미국의 극악무도한 대조선 적대시정책이 근절되지 않는 한 우리의 핵개발 중단이나 핵포기는 하늘이 무너져도 절대로 있을 수 없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주체혁명 위업의 전만년 미래를 담보하는 우리의 정의로운 핵억제력을 질량적으로 부단히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핵무력을 강화하면 할수록 북한의 안보와 경제 미래는 어두워질 것이다.

 

 

설 자리 없는 19세기형 설계도

 

북한이 2016년 신년사를 통해서 밝히고 있는 ‘휘황한 설계도’ 는 21세기적이기보다는 19세기적이다. 19세기 동아시아 국가들은 서세동점하는 유럽 국가들과의 근대적 만남에서 생존하기 위해, 뒤늦게 안으로는 자강력을 키우고 밖으로는 독립군세를 추진하는 전략에 따라 근대국가를 건설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성공하고 한국은 실패했으며 중국은 혼란을 겪었다. 21세기 아태국가들은 19세기 설계도의 장점은 유지하면서 단점을 보완한 21세기 신 적합 설계도를 그리느라 분주하다. 신 설계도의 주인공들은 근대국가와 네트워크를 결합한 그물망 국가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고 있다. 무대 또한 기성의 부국강병과 그 한계를 보완하려는 신흥문화, 생태균형, 첨단기술지식, 공치(共治)를 엮은 복합 무대가 등장하고 있으며, 무대에서의 연기도 경쟁과 협력, 공동진화가 함께 어우러져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적합 지형도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19세기적 설계도로 설 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21세기형 新 적합 설계도 마련해야

 

북한이 노동당 제7차 전당대회에서 소개해야 할 ‘휘황한 설계도’는 이미 동아시아연구원이 《북한 2032 : 선진화로 가는 공진전략》(2010)에서 자세히 밝혔듯이 다음 두 단계로 마련돼야 한다. 첫 단계로 북한은 3중 신생존 전략으로 경제발전과 핵 없는 안보를 기반으로 한 4대 진지를 구축해야 한다. 아울러 남북관계를 계급공조가 아닌 민족공조로 받아들여 북한의 경제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구시대적 구분을 넘어서 선진 자본국가인 미국과 일본, 그리고 선진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을 동시에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이 21세기 신 아태질서에서 성공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 단계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따라서 신세기 적합 지형도에 맞는 새로운 변환의 설계도를 마련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두 번째 단계에 해당된다.

 

북한이 현재와 같은 ‘휘황한 설계도’ 대신 21세기 적합 지형도에 맞는 새로운 설계도를 그리고 21세기 신흥국가를 건설하려면 북한 스스로의 주체적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 그리고 한국이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관련 당사국들의 도움을 얻어 핵개발과 같은 북한의 잘못된 선택에 대한 제재와 억제를 강화하고, 동시에 비핵 안보경제 병진론과 같이 북한의 잘된 선택을 도울 수 있는 신대북정책의 공진적 노력을 추진해야 한다. ■ 

 

 


 

 

[EAI하영선 칼럼]은 국내외 주요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하영선 EAI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의 분석과 전망을 통해 적실성 있는 대안을 모색해 보고자 기획된 논평시리즈 입니다.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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