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보고서는 <시사인> 커버스토리로 기고한 “남북대화 한미동맹, 국민은 둘 다 원한다”를 시사인의 양해 하에 수정 보완한 것이다(제292호 2013.4.22).

 

안보불감증이 문제인가?

 

북한의 개성공단 잠정 폐쇄 조치에 이어 주한 외국인을 철수 권고안이 나오면서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또 다시 정치권과 언론을 중심으로 한국 국민들의 안보불감증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평온한 일상이 유지되고 있는 현 상황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질타인 셈이다. 그러나 현재 국민들이 보여주고 있는 ‘냉정한 대응’에 대한 비판은 적절치 않다.


첫째, 정부 당국이 해야 할 초기 위기대응의 일차적인 과제가 국민들의 동요를 막고 안정시키는 것임을 고려할 때 오히려 국민 스스로 안정감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이지 않다. 둘째, 국민들의 차분한 대응은 안보위기가 경제위기로 파급되는 것을 억제하는 요인이다. 1990년 대 초 북한의 서울 불바다 발언 당시처럼 생필품과 비상용품 사재기 등의 동요가 나타난다면 주식 및 금융시장, 나아가 해외 투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셋째, 최소한 2000년대 이후 안보상황 변화에 따른 국민들의 안보체감인식 조사결과를 보면 대다수 국민들이 안보상황에 대해 무지하거나 둔감하지 않다. 남북관계의 악화나 한반도 안보 위기상황 변화에 따라 민감하게 안보체감인식이 반응하고 있다. 즉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안보불안감이 감소하고,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안보불안감이 커짐과 동시에 한미동맹에 대한 우호적인 인식이 증가하는 패턴이 발견된다.


실제로 [그림1]을 보면 2010년 연평도 포격사격 당시 국민들의 불안하다는 여론은 81.5%까지 치솟았지만, 이후 남북간의 직접적인 군사적 대결이 둔화되면서 2012년 11월 조사에서는 불안하다는 여론이 37% 수준으로까지 하락되었다. 그러나 2013년 들어와 북한의 3차 북핵실험이 강행되고 북한이 핵전시상태를 선포하고 미 본토에 대한 핵공격 가능성까지 언급하는 가운데, 핵폭격이 가능한 B52 폭격기와 영화에서 자주 보던 스텔스B2까지 한반도에 출현하는 사태에 이르자 다시 안보가 불안하다는 여론이 70.6%까지 상승했다. 연평도 피격시점보다는 낮지만 2000년대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안보불안감이 높은 수준이다. 따라서 현재 국민들이 보여주는 차분한 일상은 안보불감증이 아닌 안보불안 시 대응양태가 과거에 비해 성숙한 대응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림 1] 안보체감도 및 한미관계 인식

 


데이터 : 국방대학교 일반국민 안보의식여론조사(1998-2003); EAI 여론조사 데이터아카이브(2004-2012)
주: 안보체감도 수치는 1. 매우 불안 2. 대체로 불안 3. 보통 4. 대체로 안정적(불안하지 않다) 5. 매우 안정적(전혀 불안하지 않다) 중 1과 2의 응답을 합한 비율. 바람직한 한미관계에 대한 인식은 0~4점 탈미, 5점 현상유지, 6~10점 동맹강화으로 응답한 결과의 평균.


안보인식지형의 변화 : 복합적 안보인식 확산

 

안보불감증 논란에서 안보불감증 유무나 그것이 초래하는 결과에 대한 평가의 내용보다 주목할 점은 안보불감증을 제기하는 논리와 프레임에 있다. 전통적인 보수진영의 안보불감증에 대한 비판은 햇볕정책의 퍼주기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간접 지원하고, 국내적으로는 북의 도발 위협에 대한 경각심을 약화시켰다는 것이 요지다. 반대로 진보진영 일각에서 미국과 보수정권의 대북강경정책에 의해 전쟁위기가 고조되고 있으며, 이러한 전쟁위기 상황에 대한 국민들의 정치적 무관심과 대응의 부재를 비판한다. 안보불감증현상에 대한 원인진단과 해법에서 전통적인 진보-보수의 극단적인 이분법 틀이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국민들의 안보인식은 “진보=햇볕정책=탈미자주 대 보수=강경정책=한미동맹”의 이분법 구도에서 벗어나고 있다. 1월 초 동아시아연구원과 한국리서치의 조사결과를 보면. “북한 핵 문제와 연계하지 말고 남북대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남북대화우선론에 대한 지지가 62.1%,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남북대화를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비핵화 우선론 지지가 33.3%로 나타났다. 반면 한미동맹에 대해서는 “한미동맹을 유지하는 것이 한국 안보에 유리하다”는 보수의 접근법에 대한 지지가 76.6%, “한미동맹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는 것이 한국 안보에 유리하다”는 탈미자주론에 대한 지지는 19.0%에 불과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념적 경계를 뛰어넘는 태도변화가 확인된다는 점이다. 스스로 보수라고 생각하는 응답자 중에서도 북핵 해결이라는 전제조건 없이 남북대화를 우선하라는 ‘보수적 대화론자’가 57.9%에 달했다. 반대로 스스로 진보라고 믿는 응답자 중에서도 한미동맹을 유지해야 한다는 ‘진보적 한미동맹론자’가 67.1%나 된다(그림2).

 
또한, 남북이슈와 한미관계에 대한 태도를 서로 교차해보면, 한미공조와 민족공조를 대립적으로 보는 주장보다 이를 병행하라는 변형된 안보의식이 확산되었음이 확인된다. 한미동맹을 강조하면서 북핵 우선해결을 주장하는 전통적 보수 입장은 전체 국민의 28.7%, 반대로 한미동맹의 의존에서 벗어나 남북대화를 선행하라는 전통적인 진보적 시각은 12.9%에 불과하다. 전통적인 이분법 구도에서 안보문제를 접근하는 유권자들은 41.6%에 불과한 셈이다. 반면 북핵문제와 관련 없이 대화를 재개하라는 점에서는 진보적 입장이지만, 한미동맹에 긍정적인 보수적 입장을 밝힌 병행론자가 무려 51.3%에 달한다(그림3).  

 

[그림2] 대북정책 노선(대화우선대 북핵우선론)과 한미동맹 인식(탈피론 대 유지론) 인식

 

 

데이터: EAI‧한국리서치 <새정부 정책과제> (2013.1)

 

[그림3] 남북관계와 한미동맹에 대한 태도로 본 한국인의 안보인식 지형

 

데이터 : EAI‧한국리서치 <새 정부 정책과제 조사>(2013.1, 800명 RDD전화조사 결과)
주: 전체 800명 응답 중 각 문항에 대해 모름/무응답을 한 응답자 61명은 제외하고 비율을 재산정한 결과

 

안보인식 지형 변화의 원인과 신안보전략 논의의 시급성

 

이러한 변화의 원인은 무엇인가? 진보, 보수 이념이 그 동안 한반도 안보문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프레임으로서 많은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우선, 과거 냉전시대를 지배했던 보수적 접근법은 한미동맹과 대북압박 정책에 대한 맹목적 의존으로 인해 북한을 억지하기보다 자극한다고 보는 국민들이 많다. 이와 대비되어 김대중 정부 이후의 햇볕정책과 남북교류협력 관계의 진전이 남북간 상호의존을 키워 무모한 도발을 감소시키고, 남북관계의 불확실성을 약화시킨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보수층에서조차 남북대화를 우선하라는 여론이 강화된 이유다. 그러나 북한체제를 인정하고 협력을 강화하면 북한 역시 개혁과 개방이라는 합리적 선택을 할 것이라는 햇볕정책의 가정이 2010년 연평도 포격사건 등 계속된 북한의 군사적 위협으로 흔들리고 있다. 이는 대북억지력으로서의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을 정당화하는 여론을 강화시킨다. 


기존의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이 신뢰를 주지 못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는 북한이 비핵국가에서 핵무장 국가로 탈바꿈한 현실변화를 설명하고 근본적인 솔루션을 제공하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기존의 이분법적 접근법에 얽매일수록 의도에 부합하지 않는 결과들을 낳고 있다. 현재 박근혜 정부가 북핵문제와 남북교류를 연계하지 않기로 한 점은 이명박 정부 시기의 ‘상호주의적 접근’에 비해서는 진일보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비핵국가 북한’이 아닌 ‘핵무기 가진 북한’에 대한 대응전략과 비전에 대한 예습 부족이 역력하다. 한미동맹 강화와 단호한 대처라는 원칙의 강조 외에 현 위기를 극복할 프로세스가 눈에 띄지 않는다. 원칙을 강조할수록 현 위기에 이니셔티브를 발휘하지 못하는 비판여론을 키운다.

 
반대로 진보진영이 주장하는 대북특사나 대화 재개라는 주장은 여론의 공감대가 크지만, 정작 북한 비핵화를 목표로 한 대화냐, 핵보유 국가로서 인정한 조건에서의 관리를 위한 대화인가에 대한 전략적 판단이 모호하다.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나선 북한의 입장을 고려할 때 당장 비핵화를 위한 대화의 성사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반대로 대화가 급하다고 북한 핵보유를 인정하는 방향으로의 전략 수정은 그 파장을 가늠하기 어렵다. 국제역학관계 뿐 아니라 국민정서상으로도 수용하기 쉽지 않고, 미국의 핵우산론과 한국 핵무장론의 확산이라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와 연결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결론적으로 현재의 상황은 출제범위를 벗어난 문제에 보수진영과 진보진영 모두 당황해하고 있는 것으로 비춰진다. 소모적인 안보불감증 논란보다 핵 보유국 북한의 등장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맞게 진보-보수의 틀을 뛰어 넘는 버전 업된 신안보전략과 비전의 마련이 시급하게 느껴진다. 최근 기존의 한미동맹론에서 탈피한 ‘복합동맹전략’에 대한 논의나 햇볕정책과 대북강경책을 넘어서자는‘남북공진화 전략’ 등의 논의가 등장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 이해된다. 진보진영의 경우만 하더라도 햇볕정책을 이끈 김대중 전대통령이 남북간 교류와 협력을 강조하면서도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의 주둔과 한미동맹의 강화를 일관되게 주장했던 문제의식 등에 관심과 복기가 필요해 보인다. 진보-보수를 뛰어넘는 신안보전략을 마련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