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ok Jong Lee is a professor of Department of Public Administration and Graduate School of Governance at SungKyunKwan University. Professor Lee is currently the President of East Asia Institute.

 

 


 

 

일본의 자민당이 2012년 12월 16일 총선에서 기존 118석에서 무려 176석이 늘어난 294석을 얻는 압승을 거두었다. 반면, 2009년 8월 총선에서 장기집권 자민당을 밀어냈던 민주당은 146석을 잃고 57석만을 갖는 초라한 제1 야당으로 전락했다. 3년 3개월간의 민주당 정권 실험이 막을 내리고 전후 일본을 오랜 동안 집권해 왔던 자민당이 다시 정권을 잡게 된 드라마틱한 반전이다. 자민당은 중의원 정원 480 의원수의 과반을 훌쩍 넘는 다수당이 되었지만 종전대로 공명당과 연립정권을 수립했다. 특별국회에서 총리로 선출된 아베신조(安倍晋三)가 이끄는 자민당과 공명당 연립내각이 12월 27일 출범했다. 아베총리는 2006년 9월부터 일년간 총리를 지냈기 때문에 이번 내각을 제2차 아베 내각이라 부른다. 자민•공명 연립정권은 참의원에서 부결된 법안을 재가결할 수 있는 중의원 480석의 3분의 2를 넘는 325석을 확보함으로써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아베 총리는 중의원 선거 승리의 모멘텀을 유지하여 금년 7월 있을 참의원 선거에서도 자민당 의석 증대에 힘을 쏟을 것이다. 현재 참의원 의석수 242석 가운데 자민당과 공명당은 각각 83석과 19석을 합친 102석만을 점유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2월 25일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다. 대선 투표에서 51.6퍼센트란 높은 득표율과 집권당이 다수당을 차지하는 국회를 두고 있어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아베 총리는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郞) 한일의원연맹 간사장이 이끄는 특사단을 1월 4일 한국에 보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축하하는 아베 총리의 친서를 전달하고 한국의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한일관계를 복원하고자 하는 희망을 밝혔다. 아베 총리는 2월 22일인 ‘다케시마(독도의 일본명)의 날’의 정부행사 승격을 취소하고 독도 영유권 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 단독 제소도 연기하겠다고 밝히는 등 한일관계 정상화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1월 13일에는 야스쿠니신사 대신에 메이지신궁에 참배했다. 한국이나 중국과 연초부터 대립하는 상황은 일단 피한 셈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사임 이후 지난 6년간 총리가 일년마다 바뀌는 등 정치적 리더십이 불안정한 상황이어서 아베 내각의 안정성을 점치기 어렵다. 자민당이 압승한 총선이었지만 투표율이 전후 최저인 59퍼센트에 불과했고, 자민당 지지도 자체는 그리 높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선 압승이라는 이점을 가지고 아베 내각은 5년 박근혜 정부의 전반기 한일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꼬여만 가는 한일관계의 영토 및 과거사 문제를 경제 및 안보상의 주요 파트너십과 어떻게 차별화시킬 수 있을지 문제점들을 중심으로 논의해보기로 한다.

 

최악의 한일관계 2012년

 

2002년 월드컵 공동주최에 이후 한류붐에 힘입어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친근감이 크게 개선되어 왔다. 그러나 2012년 한국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본 천황 관련 발언으로 일본인의 혐한감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일본 내각부 조사에 의하면 한국에 대해 “친하게 느낀다”고 답한 일본인은 39.2퍼센트로 2011년 조사의 62.2퍼센트에서 무려 23퍼센트나 줄어들었다. 반면, “친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는 응답은 1년 사이 23.7퍼센트가 늘어나 59퍼센트의 일본인이 한국을 싫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일관계가 좋지 않다는 의견도 2011년 조사시점 보다 42.8퍼센트나 늘어난 78.8퍼센트로 치솟아 일본 내각부 조사 이래 최고로 한일관계가 악화되었다고 보고 있다.

 

동아시아연구원 한국 국민들의 일본 호감도 점수를 보면 한국 국민들 역시 일본과 일본국민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정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동아시아연구원이 실시한 2012년 11월 조사에서 일본과 일본국민들에 대한 호감도 평균점수는 100점 만점에 30.6점에 불과했다. 2011년 1월 조사결과(46.7점)에 비해서도 낮아진 수치일 뿐 아니라 지난 10년 동안의 모든 조사결과와 비교해서도 가장 낮은 점수다. 한국내에서 친일적이라 비판받던 이명박 정부와 동아시아공동체를 기치로 시작했던 일본 민주당 정권하에서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은 것은 역설적이다.

 

[그림1] 2002-2012 일본 국민의 한국 친근감 비율

 

자료: 内閣府大臣官房政府広報室 2012

 

[그림2] 2002-2012 한국 국민의 일본 호감도 평균점수

 

자료: EAI 여론조사

 

한일관계 2013년 전망

 

아베 내각의 최대 과제는 동일본대지진 재해를 극복하고 국가 부흥과 경제 재생을 달성하는 것이다. 대지진 이후 부흥에 대한 결의를 보이기 위해 그는 취임 직후인 12월 29일 후쿠시마(福島) 원전을 시찰했고, 디플레 탈출 및 긴급 경제대책 실시를 위해 대형 추경예산을 국회에 제출해 놓고 있다. 아베 총리는 1월 4일 신년 연두기자회견에서도 “위기돌파를 위해 새 해 신속히 경제재생, 부흥, 위기관리 과제에 전력을 다하겠다.” “스피드한 결정과 실행이 가능한 체제를 정비해 후쿠시마 재생과 피해지역의 부흥을 가속화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원전 피해 복구와 경제재생은 20년 넘게 계속 되는 장기불황 속에 대지진, 쓰나미, 원전사고라는 미증유의 큰 재해를 겪은 일본이 마땅히 집중해야 하는 커다란 국정과제들이다.

 

동시에 아베 총리는 우경적 발언을 일삼아 한국은 물론 중국의 반발과 미국의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본이 정부 이름으로 식민지배를 사죄했던 1995년의 ‘무라야마 담화’를 대신하는 “21세기에 걸맞은 아베 내각으로서 담화”를 종전 70주년을 기념해 2015년 내놓겠다거나, 일본군이 종군위안부(이하 전시 성노예) 강제 동원에 개입한 사실을 인정했던 1993년의 ‘고노 담화’를 부정하는 새로운 방침을 밝히겠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아베 총리는 자신의 1차 내각 당시인 2007년에도 성노예 강제 동원에 일본 정부가 개입한 증거가 없다는 입장을 밝혀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이른바 애국주의 교육을 위해 주변국 입장을 배려하는 근린제국조항을 수정하여 우익교과서 검정도 용이하게 만들 참이다. 역사를 거꾸로 가는 이같은 발언들로 인해 한국에서 반일감정이 거세게 일어나고 한일관계 회복의 길이 험난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다행히 최근 아베 내각은 2월 25일 취임하는 한국 새 정부와의 관계를 고려해 유화적 입장을 취하기 시작하였다. 박근혜 정부와 첫 단추를 잘못 끼우지 않으려는 의지가 주요인이겠으나, 한일관계의 악화를 바라지 않는 미국입장에 대한 고려,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한국이 중국 쪽에 더 가까워지지 않도록 하려는 판단 등이 작용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국내경제 정책이 최우선이 된 현 상황에서 주변국과의 불필요한 마찰은 피해야 한다는 실용주의적 노선이 우세했을 것이다. 아베 총리가 참의원 선거를 의식해 한국이나 중국과의 영토분쟁 문제에 있어 강한 외교를 보여주려 할 가능성도 있으나 이러한 시도는 큰 역풍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위험을 수반하기 때문에 채택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정치적 지형변화를 보면 이러한 낙관론에 손을 들어주기 조심스럽다. 정치권의 세대교체로 인해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 사이에서는 과거사에 대한 사과는 충분히 했다고 생각하며, 선대의 역사적 과오의 유산을 공유하려는 의식도 매우 약해졌다. 더욱이 장기불황이 계속 되면서 극우적인 정치가들이 득세하기 시작하였다. 지난 총선에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나 하시모토 도루(橋下徹)와 같은 우익 정치인이 이끄는 일본유신회가 54석이나 얻어 제 1야당 민주당과 맞먹는 세 번째로 큰 정당으로 부상했다. 공산당과 사민당은 각각 8석과 2석을 얻어 일본 중의원에서 진보의 목소리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이러한 일본의 정치지형 변화에 대해 일본 정치 지도자들을 우익으로만 몰아 대화를 차단하거나 다양한 현안에 대해 협력을 기피하는 것은 우둔한 일이다. 그 이유는 네 가지이다.

 

첫째, 일본은 여전히 한국에게 매우 중요한 국가라는 점이다. 일본의 경제규모가 중국에 밀렸지만 여전히 세계 3위 경제대국이며, 기술력, 투자력, 국제기구 공헌도 등에서 선진국 리더의 하나이다. 일본의 상대적 쇠퇴를 보면서 일본을 무시하는 것은 한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둘째, 증대일로에 있는 중국의 영향력을 건설적인 방향으로 견인하는 데 있어 아시아에서 일본만큼 힘을 가진 나라도 없다. 따라서 한국과 동남아 국가들은 일본과 협력해 아시아의 지속적 번영과 평화를 위한 과제들에 중국이 협조적으로 관여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 미국이란 공통의 동맹국을 가진 한일 양국은 역내 안정과 안보를 위해 협력해야 하는 구조를 갖고 있어 양국간의 갈등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 한일간 신뢰부족으로 양국간 양자 안보협력의 수준은 낮은 상황이나 북한문제, 제3국 평화유지활동, 인간안보 분야 등 양국이 아시아와 세계에서 협력할 사안이 많다.

 

넷째, 일본사회는 다양한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는 다원적 민주사회이다. 따라서 일련의 망언에 대해 과도하게 일본사회 전체를 부정하거나 매도해서는 안된다. 일본의 정치권과 시민사회를 분리해 생각해야 하며, 경제계, 언론, 지식인 등 다양한 집단의 목소리가 있음을 인정하고 경청할 필요가 있다. 일본과의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 한국인 스스로가 보다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일본사회를 바라봐야 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아직 한국 차기정부의 한일관계 노선에 대한 방침이 발표된 바 없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한국 정부도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원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아베 총리가 참석할 예정인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5월로 예정되어 있는 한중일 정상회담과 같은 기회들을 통해 신뢰회복이 진전될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일본측은 한국의 새 대통령이 빠른 시일 내 일본을 방문하기를 원하는 눈치이다. 신뢰와 실무형 국정을 강조하는 박 당선인의 스타일로 봐서 섣부른 비전 제시나 조기 일본 방문보다는 내실있는 조용한 외교관계 복원이 기저를 이룰 것 같다. 동아시아연구원의 최근 여론조사 에 의하면 한국 국민의 70.5퍼센트가 “과거사와 독도문제에 대한 납득할만한 약속이 있기 전에 일본과 관계개선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답해 “과거사와 독도문제는 당장 해결되기 어려운 것이므로 우선 일본과 관계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로 응답한 27퍼센트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한일 양국 정부는 집권 상반기에는 경제와 복지 문제에 최우선적으로 집중할 것이다. 따라서 올 상반기 양국 정부는 국내 경제문제에 주력하면서 급진적 관계 복원보다는 추가적 갈등은 방지하고 기존의 협력관계를 복원해 가는 ‘찬찬한 외교’를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아베 총리는 향후 참의원 선거시 주변국을 자극하는 발언은 피하고 경제문제들에 대한 긴급대책의 성공을 부각시키면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할 가능성이 크다. 외교 여건을 봐도 센카쿠 열도에서 중국과의 무력충돌이 높은 시기여서 한국과의 독도문제로 전선을 확대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국 정부도 관계복원에 나서는 일본 측이 우경적 공약의 퇴로를 찾도록 협력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 결론적으로 2013년 한일관계는 빠른 관계복원은 어려울 것이지만 2012년보다는 개선될 전망이다.

 

장기집권당인 자민당, 90년대 중반 자민당과 연립했던 사회당 정권, 최근 민주당의 실험을 모두 겪어 본 한국이다. 이제는 한일관계를 흔드는 쟁점들을 양자관계보다는 다자주의적 시각에서 관리하고 해결해 나아가도록 인식의 전환을 모색할 때이다. 한국은 피해자, 일본은 가해자라는 위치에서 일본을 계속 정죄하고 사죄하라는 논리는 일본의 포스트 전후세대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역사문제 인식 차이는 인류보편의 가치와 규범의 차원에서 좁혀 가고, 이 과정에서 한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한일관계의 과거사 부분을 어떻게 치유하고 화해의 길로 나아가느냐는 한국이 겨냥하는 규범•규칙의 준수자 및 협력 촉진자로서 중견국외교의 시험장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한일관계의 진전을 가로 막아 온 다음 문제들에 대해 어떠한 새로운 대안을 생각해 볼 수 있을지 검토해 본다.

 

평화헌법 개정문제

 

일본이 주권을 상실했던 미군정기에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를 사령관으로 하는 연합군최고사령부가 제국헌법의 개정을 요구함에 따라, 1946년 11월 일본국 헌법이 공표되고 1947년 5월 시행되었다. 일본 특유의 평화주의를 대표하는 헌법 조항은 제2장 9조에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일본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 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써 국권의 발동에 의거한 전쟁 및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를 영구히 포기한다. 전항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육해공군 및 그 이외의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 역시 인정치 않는다.” 1950년대 초 자위대의 창설로 전력 불보유는 곧 사문화되었고, 1990년대 초 평화유지활동에 자위대가 참여하면서 교전권 논쟁이 계속 되다가 방어를 위한 교전권도 이후 인정되게 되었다. 미국은 일본을 군사적으로 무력화하는 평화헌법을 만들게 하였으나 냉전의 시작과 한국전쟁 발발 등으로 인해 일본의 재무장을 일찌감치 바라기 시작했다. 미일안전보장조약이 이른바 일본의 자주국방을 막는 ‘병마개 효과’가 있음을 전제로 하여 일본 재무장에 대한 미국의 압력도 증대했다. 패전 이후 경제재건에 집중을 원하던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총리는 평화헌법을 역이용해 미국의 재무장 요구를 무마하기도 했다. 그러나 탈냉전기 미일동맹의 가치를 재정립하면서 1995년 신방위대강, 1996년 ‘미일안보 공동선언-21세기를 향한 동맹’(신선언), 1997년 ‘미일방위협력지침’(신가이드라인) 등이 성립되면서 미일동맹은 일본 방위에서 나아가 일본 주변지역의 유사시 안보적 도전에 초점을 두게 된다. 이러한 90년대 후반의 미일안보협력 변화의 결과, 1999년 ‘주변사태법’이 제정되어 주변사태 발생 시 미군에 대해 보급, 수송, 정비, 의료, 경비, 통신과 같은 후방지역 지원과 수색 및 구조 지원 등이 가능해 졌다. 2003년에는 일본이 외부의 무력공격을 받을 경우 자위대의 출동 등 정부의 대응 방침을 명시하는 ‘유사법제’란 일련의 법적 장치가 마련되었다.

 

새로운 방위협력지침이 집단적자위권의 문제를 함축하면서 일본이 미국과 군사행동에 협력할 시 헌법 저촉문제 여부와 이에 대한 헌법개정 여부 논의가 9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대개 일본의 진보세력은 평화헌법을 지키자는 호헌파로, 보수세력은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가 헌법개정 없이 해석변경을 통해 가능하다는 입장과 헌법 개정을 통해 위헌시비를 없애자는 입장으로 갈려 왔다. 집단자위권은 집단방어권(collective defense)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동맹국에 대한 군사적 공격이 있을 시 공동방어에 나설 수 있는 권한이다. 주변사태법안이 성립할 당시에는 중국과 대만 분쟁이나 북한도발로 인한 한반도 유사사태를 염두에 두었으나 최근 센카쿠 분쟁으로 인해 일중간의 물리적 충돌과 미국의 군사적 개입과 같은 시나리오도 염두에 두게 되었다.

 

지난 총선에서 자민당은 집단적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국가안전보장기본법’을 제정하고, 자위권의 발동을 저해하지 않도록 ‘국방군’ 보유를 명기하게끔 헌법을 고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아베 총리는 전문가회의를 설치해 현행 헌법내에서 집단적자위권 행사가 얼마나 가능한지 검토할 계획이다. 평화헌법 9조의 개정에 관해서는 일본 국회의원과 일반 일본 국민 사이에 큰 편차가 있다. 마이니치신문이 12월 26-27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중의원 선거 당선자의 72퍼센트가 헌법 9조의 개정에 찬성하는 반면에 일본 국민들은 36퍼센트만이 찬성하고 있다. 집단적자위권에 대해서도 중의원 선거 당선자의 79퍼센트가 찬성하지만 일본 국민들은 불과 28퍼센트만이 찬성하고 있다. 연립정권의 파트너인 공명당은 일관적으로 헌법개정에 반대하고 있어 자민당의 개헌문제는 정치권에서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아베 내각이 가장 중시해야 할 쟁점에 대한 조사에서도 헌법개정은 불과 2퍼센트에 그치는 대신에 경기대책 32퍼센트, 연금/의료/개호/보육 23퍼센트, 소비세 인상 및 재정재건 10퍼센트, 지진 피해로부터 부흥 7퍼센트, 원전 및 에너지 정책이 7퍼센트 등으로 경제 및 부흥 문제 정책을 우선할 것을 일본인들은 바라고 있다.

 

평화헌법 개정문제는 일본 고유의 주권사안이기 때문에 주변국에서 우려의 목소리는 내되 반대할 사안은 되지 못한다. 결국 한국이나 중국은 일본의 안전보장 강화 이면에 숨어있는 의도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평화헌법 개정을 일본의 군사대국화로 여기고 반대하는 것이다. 따라서 헌법개정 반대 자체에 초점을 두기 보다는 일본을 포함하는 동북아다자안보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신뢰구축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시각을 새롭게 상정할 필요가 있다. 다자체제 수립이 단기간에 해결될 일은 아니므로 잠정적으로는 한일 양자간 군사협력을 통한 투명성 제고로써 신뢰구축을 도모할 수 있겠다.

 

독도문제

 

작년 여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계기로 일본에서 논의되어 오던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당사국의 동의 없는 일방적인 제소가 형식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일방 제소를 통해 국제법적 해결에 응하지 않는 한국이라는 이미지를 확산시켜 공공외교상 한국이 불리해지는 것을 노리는 방안이다. 작년 하반기 한국 정부는 독도가 한국 땅임을 알리려는 홍보전에 공식, 비공식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정부가 나서는 이러한 홍보전은 득보다는 실이 더 많다. 어느 해외 언론이나 유식자도 한 나라의 홍보전에 연루되기를 원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독도문제에 대한 대응은 정부와 민간의 역할구분이 필요하다. 독도에 관한 일본 정부나 정치인의 도발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의 강력한 비판의 메시지 전달이 따라야 할 것이다. 동시에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한국 정부는 정치적 대응에 있어 여유를 갖고 보다 유연할 필요가 있다. 즉, 대통령이나 정치인의 독도방문이나 접안시설의 확충 등으로 일본을 자극하기 보다는 현상유지를 우선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센카쿠를 일본이 국유화하자 중국의 개입이 커져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커진 것을 거울삼아 독도문제는 이슈화를 지양하는 것이 낫다. 민간이 나서서 한국의 독도 영유권에 관한 역사적, 지리적, 법적 연구를 축적하되, 정부는 국제법적 분쟁해결 절차에 들어갈 경우를 대비하여 철저한 분석 및 관련 자료 준비에 집중하는 역할분담도 있어야 할 것이다.

 

식민지배 사죄와 전시 성노예 문제

 

아베 총리는 전시 성노예 강제동원과 식민지배에 관한 과거 사죄를 무력화하는 아베 담화를 준비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며, 이를 준비하기 위해 전문가회의를 구성하려 한다. 1993년 당시 고노(河野洋平) 일본 관방장관은 일본 경찰청과 방위청 등 일본 정부 자료와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자료, 일본•한국•중국의 관련 당사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일본군 요청으로 위안소가 설치됐고 위안소 설치•관리 및 이송에 일본군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며 성노예 강제 동원에 일본 정부가 개입했음을 분명히 밝혔다. 무라야마(村山富市) 총리의 담화도 1995년 8월 15일 2차 세계대전 종전(終戰) 50주년을 맞아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 제국(諸國) 여러분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줬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과거 일본 정부가 역사적 과거로 인정, 반성했던 이 두 가지 모두를 아베 담화로 갈음하려 준비할 계획이다. 그러나 아직 2년의 시간이 있고, 총리 본인도 이러한 역사인식 문제를 민간에게 맡기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아베 총리가 2015년에도 총리직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누구도 모른다. 따라서 아직 실현되지도 않은 아베담화는 대응할 가치가 없는 셈이다. 일본의 노다 내각은 작년 전시 성노예 문제에 대해 국회 차원의 사죄와 보상 등 종래보다 진일보한 조건으로 한국과 물밑협상을 벌렸었다. 아베 내각이 이 문제에 대해 완전히 뒤바뀐 입장을 취하게 됨으로써 정부간 협상은 장래 상당기간 불가능해졌다.

 

식민지문제 특히 전시 성노예문제에 있어 한국은 압도적인 도덕적 우의의 입장에 서 있다. 이러한 이점을 바탕으로 한국은 보다 유연하고 대담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유엔 인권소위와 본회의 등에서 일본의 전시 성노예 범죄에 대한 책임을 묻는 보고서가 이미 십여차례 나왔고, 2007년 미국과 네덜란드 하원도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가결한 바 있다. 전시 성노예 범죄에 대해서는 한국만이 아니라 국제사회가 질타하며, 미국도 최근 아베 총리의 고노담화 무력화에 대해 여러 채널로 비판하고 나서고 있다. 전시 성노예 문제는 국제적 쟁점인 만큼 한국 정부는 이를 양자관계에서 타결하려고 일본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기보다는 인류 보편의 인권 문제로 접근해 국제사회의 압박에 일본이 스스로 답하는 형식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도록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익 교과서 문제

 

해마다 봄이면 일본 역사교과서 개정 시점이 돌아오고, 우익 교과서 검정에 대해 분노하는 글로 한국 매체들은 뒤덮인다. 일본의 교과서제도는 정부가 교과서를 만들고 배포하는 국정교과서제도가 아니라 민간 출판사가 자율적으로 만든 교과서 신청본을 제출받아 문부과학성의 교과서 조사관이 검토하고, 이를 참조하여 검정조사심의회가 합격판정을 내린다. 필요시 심의회는 점정의견을 제시해 수정을 받고 합격여부를 결정한다. 이렇게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들은 교과서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일선 학교에서 채택 받게 된다. 일본은 역사 교과서 왜곡문제로 주변국과 1982년과 86년 교과서 파동을 일으켰다. 이후 주변국과 우호관계를 고려하여 교과서 검정시 ‘근린제국 조항’을 마련해 우익 교과서의 지나친 내용을 걸러 왔다. 90년대 중반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 같은 과거사 사죄가 잇따르자 이른바 전후 일본역사를 ‘자학사관’으로 규정하고 교과서를 새로 쓰자는 우익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학계에서는 ‘자유주의사관연구회,’ 사회운동으로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 등이 결성되어 수정주의 역사관 확산에 나서게 된다. 대중적인 우익 역사서적 출판에 이어 2001년에는 후소샤(扶桑社) 출판사가 우익 교과서를 집필, 검정을 통과한다. 당시 일본정부는 교과서 집필은 민간이 하기 때문에 정부차원에서 통제할 수 없다는 자유주의 논리로 우익 교과서 검정 책임을 부정했다. 다행히 우익 역사교과서들은 일선 학교에서 외면당해 시끄러웠던 3차 교과서 파동은 영향력을 크게 미치지 못했다.

 

아베 총리는 선거 공약으로 애국주의 역사 교육을 강조해 온 인물로 총리 직속 교육재생실행위원회 위원에 일본의 침략전쟁 미화 교과서 보급을 주도해 온 극우 인사들을 다수 내정했다. 이로써 올 해에 우익 교과서가 보다 쉽게 교과서 시장에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경험에서 보듯이 이러한 움직임이 바로 우익 역사교과서의 시장 확보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익 교과서가 등장하면 한국 정부는 우익 교과서 기술에 대한 수정을 촉구하되 한일 양국의 권위있는 학자와 교육기관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장기적으로는 유네스코와 같은 국제기구를 통해 교과서 공동집필 방안을 보다 실효있게 추진하는 것도 방안이다.

 

센카쿠를 둘러싼 일중간의 갈등이 예사롭지 않다. 동아시아의 부상과 역내 경제통합의 심화에 힘입어 지난 십여년 동아시아공동체 논의가 활발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동아시아공동체 구축에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할 한중일 삼국은 영토나 역사 문제로 인해 오히려 역내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과거 역사에 대한 바른 인식이 없이 미래를 함께 건설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영토문제는 한치의 양보도 하기 어려운 주권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해와 협력의 정신으로 현재 당면하고 있는 차이와 갈등의 문제들을 잘 관리하고 좁혀 나아가야만이 역내 평화와 지속적 번영이 담보될 수 있다. 이러한 정신에서 한일관계를 바라보면 한일 양국 모두 조화로운 양국 관계를 향해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