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I 중국연구패널 보고서 No.5

 

저자

원동욱(元東郁)_동아대학교 국제학부 중국학 전공책임교수.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北京大學(Beijing University)에서 국제정치학 전공으로 석,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또한 한국교통연구원 동북아북한연구센터 책임연구원 및 대통령실 동북아시대위원회 경제협력분과 전문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중국 환경, 에너지, 교통물류와 동아시아 협력분야이며, 최근 논문으로는 “국제기후담판에서 중국의 입장변화 분석: 과정과 동인을 중심으로”(2011), “북중경협의 빛과 그림자: '창지투 개발계획'과 북중간 초국경 연계개발을 중심으로”(2011), “중국의 대북정책과 동맹의 딜레마: 천안함 사건을 중심으로”(2010), “중국 에너지외교의 새로운 변화와 한중간 에너지협력게임”(2009), “동아시아 지역주의와 중국의 전략”(2009) 등이 있다.

 

 


 

 

Ⅰ. 들어가는 말

 

기후변화(climate change)라는 인류 및 지구 차원의 위기에 대응하여 국제사회는 20여 년에 걸쳐 글로벌 거버넌스의 구축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경주해 왔다. 이러한 노력의 과정에서 1992년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본적 대응 틀로서 유엔기후변화협약(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 UNFCCC)이 체결되었고, 1997년에는 제3차 당사국회의(Conference of the Parties: COP-3)에서 선진국의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명문화한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가 체결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결실에도 불구하고 개별국가의 자구(self-help) 노력에 기초한 국제사회의 거버넌스 구도는 적지 않은 한계를 노정하기도 하였다. 즉, 기후변화에 대한 실질적 대응과정에서 야기되는 개별국가의 이익에 대한 영향은 물론이고 중장기적으로 기후레짐의 구축이 가져올 국제정치경제질서의 재편을 둘러싸고 선진국-개도국간, 선진국 및 개도국 내부에 복잡하고도 다층적인 이해관계의 대립을 야기하였다. 중국을 비롯한 개도국의 감축의무 배제는 물론이고, 국제레짐의 구축에 있어 주도적, 핵심적 역할을 담당해 왔던 미국의 교토의정서 탈퇴 등 기후레짐에 대한 소극적, 부정적 태도는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실제적 규제의 내용을 담고 있는 교토의정서의 실질적 발효를 늦추게 한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물론 2005년 러시아의 비준으로 교통의정서가 뒤늦게 발효되긴 하였지만, 특히 미국의 이러한 소극적, 부정적 태도는 중국을 위시한 주요 개도국들의 실질적 행동을 지연시키는 부정적 영향을 초래하였고, 기후변화라는 인류 공동의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글로벌 거버넌스의 형성을 지체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를 초래하는 온실가스의 감축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은 지속적으로 전개되어 왔다. 2007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된 제13차 당사국회의(COP-13)에서 교토의정서의 실행계획이 완료되는 2012년 이후의 포스트 교토체제를 논의할 협상 프로세스인 ‘발리행동계획’(Bali Roadmap)이 채택되었다. 이는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를 아우르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차원의 글로벌 거버넌스 구축을 위한 노력으로서, 2009년 12월의 코펜하겐 제15차 당사국회의(COP-15), 2010년 12월 칸쿤의 16차 당사국회의(COP-16)에 이어, 2011년 11월 더반에서 개최된 17차 당사국회의(COP-17)로 숨가쁘게 이어졌다. 하지만 포스트 교토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이러한 노력은 또 다시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 인도 등 주요 개도국의 온실가스 의무감축에 대한 거부의사로 인해 실질적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즉 새로운 기대 속에서 이루어진 국제기후담판은 결국 무위로 끝나게 되었고, 보다 복잡하고 다층적인 궤도에 접어들었다. 그렇다면 ‘유엔 기후변화협약’ 체결 이후 20년에 걸친 국제기후담판은 이제 더 이상 실효성을 보장할 수 없는가? 국제기후담판은 이제 유엔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구도를 필요로 하는가? 포스트 교토체제의 실질은 유엔에 의한 모든 회원국의 다자적 레짐에서 미국과 중국의 G2 구도에 의한 새로운 기후거버넌스 체제로의 이행인가?

 

주지하다시피 포스트 교토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특히 미국과 중국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선진국의 대표주자인 미국과 개도국의 대표주자인 중국, 이들 양국은 실제 기후변화를 야기하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책임당사국일 뿐만 아니라, 포스트 교토체제를 구축하는 국제협상의 성공여부를 결정짓는 핵심적 행위자들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거절의 동맹’(alliance of denial) 이라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아온(New York Times April/20/2007) 미중 양국은 그간 교토의정서의 감축의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었지만, 포스트 교토체제 논의에서는 계속적으로 거부의사를 피력하기에는 일정한 한계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Barack Obama) 행정부의 출범 이후 미국은 국내적 차원에서 기후변화대응에 적극 나서면서도 유엔의 틀을 벗어나 자국 주도의 새로운 국제기후레짐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 또한 국제사회의 의무감축 압력이 증가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국내차원의 에너지절감과 온실가스 배출저감을 위한 정책적 조치를 강화하면서도 여전히 의무감축에 대한 거부의사를 견지하고 있다. 특히 미중 양국간에는 유엔이라는 기존의 틀을 벗어나 기후문제에 대한 의견 차이와 갈등의 소지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기술적 분야를 중심으로 협력이 증진되고 있는 상황이다.

 

본 논문에서는 포스트 교토체제에 대응하여 핵심적 행위자로 등장하고 있는 중국이 국내외 차원에서 어떠한 정책적 방안들을 모색하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국제사회의 온실가스 감축의무 압력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포스트 교토체제와 관련한 핵심 당사자로서 미중 양국의 협력과 갈등에 대해서 고찰하고, 나아가 새로운 글로벌 기후거버넌스체제로서 G2의 가능성에 대해서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기후문제를 둘러싼 미중관계와 포스트 교토체제의 향방을 전망하고자 하는 것이 본 논문의 목적이다. 물론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기후변화에 관한 입장과 정책에 대한 분석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지만, 본 논문에서는 지면상의 문제는 물론이고 책 전체의 취지에 맞추어 중국의 기후정책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Ⅱ. 포스트 교토체제와 중국의 기후정책

 

1. 포스트 교토체제의 실질과 향방

 

1990년 국제기후담판이 시작된 이래로 온실가스 감축의무의 분담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국제적 정치투쟁이 날로 격렬하게 전개되어 왔다. 본질적으로 기후문제는 환경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경제 그리고 정치문제 등과 하나로 혼합된 의제이며, 국제기후레짐의 전개과정은 오늘날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지구적 문제의 딜레마를 농축해 놓은, 복잡하고도 미묘한 국제정치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국제기후레짐의 발전과정을 회고해 보면, 1992년에 통과된 ‘유엔기후변화협약’을 통해 대기중의 온실가스 농도를 안정시키는 장기적 목표와 일련의 기본원칙을 수립한 것이 첫 번째 중요한 이정표이다. 또한 1997년 교토회의(COP-3)에서 통과된 ‘교토의정서’는 이 협약의 틀 아래 처음으로 법률적 구속력을 갖춘 문건으로, 선진국과 체제전환국을 부속서 I국가로 지정하여 수량화된 감축목표를 규정함과 동시에 시장에 기초한 국제협력의 3가지 메커니즘을 도입한 두 번째 중요한 이정표이다. 1995년부터 본격적인 담판이 전개되었던 것을 고려하면 2005년 2월 교토의정서의 발효까지는 10년에 걸친 지난한 과정이 존재하였다. 2001년 미국이 교토의정서 체제에서 퇴장하고 중국, 인도 등의 주요 개도국이 의무대상국에서 배제됨으로써 환경적 유효성은 크게 떨어졌지만, 교토의정서는 인류사회가 실제적 행동을 통해 기후변화라는 인류 공멸의 아젠다에 대응하여 내딛은 중요한 일보로서 그 의미가 자못 크다고 할 수 있다.

 

교토의정서의 기한이 만료되는 2012년 이후를 대비한 국제사회의 포스트 교토체제 논의는 일찍이 2005년 12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개최된 기후협약 제11차 당사국회의 및 제1차 협약국회의(COP-11/Meeting of the Parties: MOP-1)에서 시작되었다. 이 회의에서는 두 개의 협상트랙 을 채택하여 정식으로 새로운 담판이 가동되기 시작했으며, 날로 격렬해지고 다양한 변수로 충만한 포스트 교토체제의 개막을 알렸다. 또한 2007년 11월에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된 기후변화 제13차 당사국총회(COP-13)에서 ‘발리 로드맵’이 채택되어 장기적 행동대화를 끝내기로 결정하였다. 아울러 의무감축국가인 부속서 I국가의 추가적인 감축의무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교토의정서 협상트랙(Ad Hoc Working Group on Further Commitments for Annex I Parties under the Kyoto Protocol: AWG-KP)과 달리 개도국을 포함한 기후변화협상 당사국의 감축•적응•기술•자금 등을 논의하는 장기협력행동 협상트랙(The Ad Hoc Working Group on Long-term Cooperative Action: AWG-LCA)이 설립되어 새로운 총체적 담판과정이 가동되었다. 하지만 2012년 이후 포스트 교토체제를 결정하기로 한 2009년 12월의 코펜하겐회의(COP-15)에서는 전 세계 100여개 국가의 정상들이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이견차이는 물론이고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형성된 다양한 그룹들간의 의견충돌로 인해 구속력 있고 구체적인 합의문 도출에 실패하였다. 또한 뒤이은 2010년 12월의 칸쿤 회의(COP-16)는 물론이고 2011년 11월의 더반 회의(COP-17)에서도 결국 이러한 갈등구도가 지속됨으로써 유엔이라는 다자적 틀 속에서 진행되어 온 포스트 교토체제 구축 논의는 최종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끝나고 말았다.

 

사실상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포스트 교토체제와 관련한 논의는 국제기후담판 과정에서 일정한 전환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우선 무엇보다 최근 국제기후담판의 구도가 과거 유엔의 틀을 벗어나 G20, APEC, G2 등과 같은 보다 다양한 다자간, 양자간 협력기제로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며, 또한 ‘우산형 그룹’, 유럽연합, G77+1(개도국 그룹)이라는 3대 그룹 의 삼족정립 구도에서 세계 온실가스의 40%를 넘게 배출하는 미중 양국간의 공동 거버넌스(G2) 구도로의 전환이 모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포스트 교토체제와 관련한 구속력 있는 합의서가 마련되지 않았고 여전히 협상 그룹간의 이해관계의 대립이 첨예하게 존재함으로써, 기후문제 해결과 관련한 유엔이라는 협력 틀에 대한 적지 않은 의구심과 실망이 나타난 결과이기도 하다.

 

둘째, 국제기후담판의 성공에 있어 매우 중요한 리더십의 실종이다. 즉 교토체제의 구축과정에서 실질적 리더로서 역할을 수행해 왔던 유럽연합이 재정위기의 여파로 포스트 교토체제의 구축과 관련한 국제기후담판에서의 능력과 의지가 상당히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코펜하겐회의나 칸쿤 회의, 더반 회의 등에서 유럽연합의 목소리는 다소 줄어들었고 별다른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물론 교토체제에서 감축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던 미국과 중국이라는 세계 최대 탄소배출국가가 유엔체제 하의 국제기후담판 과정에서 적극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이들이 ‘거절의 동맹’(Alliance of denial)에서 ‘이행의 동맹’(Alliance of implementation)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그리고 국제기후담판에서 ‘책임있는 강대국’으로서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셋째, 국제기후담판과 관련한 협상그룹간의 이견은 물론이고 소위 ‘3대 그룹’ 각자의 내부에도 서로 다른 목소리가 출현하는 등 포스트 교토체제의 구축과 관련하여 더욱 복잡하고 다층적인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연합의 회원국간에는 감축승인과 자금공여 문제에서 이견이 나타났으며, ‘우산형 그룹’의 경우도 온실가스 감축계획 제정에 대해 반대하던 초기의 입장에서 코펜하겐회의 이후에는 내부의 입장차이를 보이게 되었다. 또한 G77+1의 개도국 그룹의 경우에도 BASIC(Brazil, South Africa, India and China) 의 형성으로 내부의 이견이 나타났으며, BASIC 내부에서조차 일정한 입장차이가 존재하고 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