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학교 국제학부 부교수. 김연규 교수는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퍼듀대학교(Purdue University)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미국 허드슨(Hudson Institute) 연구소 초빙연구원, 드포(DePauw)대학교 초빙조교수를 역임하였다. 주요 연구분야는 에너지안보, 국제석유정치, 자원생산국의 정치경제 문제 등이다. 주요 논저로는 “The Emerging US-China-Russia Strategic Triangle in Central Asia: Still Defying Great Power Expectations?” “The Peaceful Rise of China Sino-Russian Rivalry in Central Asia,” “Rethinking Security in Central Asia: Contending Paradigms and Current Perspectives,” “Rethinking China’s Approach to Border Disputes: China’s Border Policy towards Central Asia, 1991-2011,” “The Arctic: A New Issue on Asia’s Security Agenda,” “Why is Russian Energy Policy Failing in East Asia?” “Russia and the Six-Party Process in Korea” 등이 있다.

 

 


 

 

I. 들어가는 말

 

21세기 문턱에서 에너지•광물•식량•물 등의 자원 문제들이 또다시 국가들의 미래와 국가들간의 관계를 좌우할 중요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의 미래와 외교전략을 논의함에 있어서도 에너지의 중요성은 급격히 증가하였다. 에너지문제는 국제협력에 관한 한 무역, 금융, 빈곤, 기후변화 등 다른 이슈들과는 다소 차별화되는 경향을 보이며, 따라서 한국의 대외 에너지 자원 협력 전략도 이러한 국제에너지협력의 특징과 변화에 대응하여 세워져야 할 것이다. 국제에너지협력을 둘러싼 거대담론은 2000년대와 2010년대가 매우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2000년대의 에너지담론은 자원민족주의와 자원패권주의 확산, 석유광물자원고갈 우려, 자원투기자금의 유입/유출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에너지 접근권(access to resources), 공급차질과 석유가격 안정 등 상위의 에너지안보의 목적 달성을 둘러싼 에너지소비 강대국들의 거대전략(grand strategy)의 중요성이 핵심적이었다. 많은 연구들이 에너지가 가져온 국가행위의 변화와 국가들간의 관계변화를 주로 에너지의 지정학(The Geopolitics of Energy)관점에서 바라보았다(Ebel 2009, 2010; Kalicki 2006; Klare 2008). 이러한 국제자원개발정세에 발맞춰 한국정부의 대외 에너지전략은 “신 고유가” 속에서 유망자원부국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에너지자원 협력 외교”를 전개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한국으로서는 70년대에서 90년대까지 이어진 “안정적 도입” 이라는 목표에서 “적극적인 자주개발 물량 확보”로의 정책 패러다임의 대전환이었던 것이다. 2009년은 한국 해외자원개발의 새로운 도약기로서 해외 유망프로젝트의 확보로 자주개발률을 획기적으로 제고하기도 하였다.

 

최근 일부 연구들이 “에너지안보” 시각의 한계점을 지적하면서 글로벌에너지연구가 지정학적 관점과 현실주의적 분석을 넘어 에너지 거버넌스(energy governance)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Florini & Sovacool 2011; Carbonnier 2011; Westphal 2006; Florini & Sovacool 2009; Goldthau & Witte 2010). 2010년대 들어 국제자원개발 정세와 국제자원협력을 둘러싼 담론의 새로운 변화들이 감지되고 있으며 한국의 에너지자원협력외교도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Energy Security)에 초점을 둔 에너지위기 대응전략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지구적 차원의 새로운 에너지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다자적 거버넌스 협력체 구축에 있어서 한국의 역할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본 연구의 가장 큰 목적은 2010년대 이후 재편되고 있는 글로벌 에너지 거버넌스 체제의 성격을 규명하고 2020년까지의 한국 에너지자원협력외교의 주요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본 보고서의 주된 주장은 현재의 글로벌 에너지 거버넌스 체제는 매우 불완전하고 지역에 따라 상당한 편차를 보이며, 소비국들간의 거버넌스 체제는 다소 구축이 되어 있으나 생산국들과 기존의 소비국 협력체제 사이에 매울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에너지 문제에 관한 한 국가들을 움직이는 것은 가격과 접근권 등 근본적으로 경제적인 것이지만 에너지는 국내정치경제 발전, 금융, 군사 등 총체적인 힘과 밀접히 연관된 것으로 분석해야 한다.

 

II. 글로벌 에너지 거버넌스의 위기

 

최근의 에너지 위기는 그 동안 길게는 100여 년 짧게는 50여 년 동안 유지되어 온 구(舊) 에너지 체제가 총체적 위기에 봉착했음을 보여준다. 지난 50년 동안 국제무역과 국제금융 문제들은 미국과 유럽국가들이 주도하는 브레튼우즈 체제의 틀 안에서 다자협력의 모색을 통하여 안정과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해결되어 왔다. 반면, 에너지, 광물, 식량, 물 등의 자원 문제들에 관해서는 국가간 갈등을 조정하고 협력을 이끌어낼 에너지 다자기구가 부재했다(Spero and Hart 2003, 299-335; Oatley 2012, 202-224). 에너지 소비국과 생산국, 다국적 에너지기업과 생산국 에너지공기업간의 이해충돌을 중재할 중립적 기구의 필요성이 절실했다. 관세와 무역에 관한 협정(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GATT)이나 세계무역기구의 규칙들은 석유와 천연가스 거래는 예외규정으로 두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 IEA)는 대표적인 에너지 협력체이지만 소비국들만의 협력체이며 생산국들은 배제되어 있어 생산국-소비국 대화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에너지 시장은 수요 공급상황에 대한 정보 부족과 생산국과 공기업의 카르텔 행위 등으로 항상 시장실패가 일어나기 쉬웠다. 따라서 냉전의 에너지체제는 무역과 금융체제보다도 훨씬 더 다자적이기 보다는 미국주도 ‘패권적’성격을 띄고 있었으며 ‘에너지 시장실패’는 이러한 방식에 의해 조정되고 에너지는 ‘공공재’(public goods)와 같이 공급될 수 있었다(El-Gamel and Jaffe 2010).

 

1. 국제자유주의의 붕괴

 

구 에너지 체제에서 신(新) 에너지 체제로의 전환과정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위기의 징후는 국제자유주의의 기반들이 붕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El-Gamel and Jaffe 2010, 117-142). 구 에너지 체제를 지탱하던 미국의 패권적 리더십은 결국 ‘국제자유주의’(liberal internationalism)에 기반한 것이었다. 구 에너지 체제의 이념적 기반이었던 에너지 국제자유주의는 1970년대 위기를 맞기도 하였으나 1984-1999년 동안 실물 에너지 관계를 뒷받침하였다. 간단히 말하면, 에너지 분야의 국제자유주의란 ‘자원이 성장의 엔진’이라는 것이다. 서로 다른 정치경제 체제와 발전단계를 가진 소비국과 자원생산국의 상호보완적인 국제분업관계를 강조하는 것으로 자본과 제조업 기반을 가진 소비국과 자본과 제조업을 결여하고 자원만을 가진 생산국간의 교역관계에 있어 생산국들이 유전을 개방하고 경쟁적으로 외국인 투자자를 받아들여 석유생산량을 늘림으로써 저유가와 안정된 석유수요에 기반한 초기 자본 축적 이후 자원생산 기술과 자원 가공에서 파급된 기술 획득과 고부가가치의 제조업분야로의 산업다각화를 통하여 단순한 자원 의존국에 머무르지 않고 정상적인 경제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에 기반한다. 원활한 생산과 투자로 석유가격이 하향 안정됨으로써 선진소비국의 경제성장을 유지하고 지속적인 소비유지와 증가를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중저유가는 선진소비국에서의 석유소비량을 증대시키고 대체에너지 개발에 대한 필요성을 감소시킨다는 논리이다.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 말까지 전성기에 달했던 다른 이슈 영역에서의 전반적인 국제자유주의 추세와 무관하지 않은 이러한 에너지이슈 영역에서의 자유주의는 결국 생산국 정부에 대한 강한 불신에서 출발하였으며, 따라서 유전의 개방과 적극적인 외국인 투자의 유치가 석유생산국의 정부로 하여금 막대한 석유이익을 유용하는 것을 방지하고 석유개발의 이익을 국민들에게 골고루 돌아가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석유생산 국가들을 관찰한 결과 이렇게 얻어지는 막대한 이익은 국가가 유전을 독점하도록 내버려 두면 대부분 국가에 의해 잘못 사용되었다는 논리였다.

 

2000년 이후 현재까지 에너지 자유주의는 심각한 시험대에 올라있다. 에너지 자유주의를 지탱하던 주요 이념적 전제들은 이미 도전을 받고 있다. 자원생산국들이 믿고 있던 ‘자원이 성장의 엔진’이라는 기존의 신화가 산산조각이 난 것이다. 에너지 자유주의를 대체한 것은 ‘자원민족주의’이다. 생산국들의 이념적 기조는 1990년대에 극에 달했던 유전개방과 석유거래 자유화가 생산국들에 가져온 결과는 축복(blessing)이라기보다는 저주(curse)였다는 것이다. 석유자원을 마냥 열어젖히고 선진 석유소비국을 위한 자원의 공급기지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 2000년 이후 대다수의 생산국들은 현 단계에서의 발전전략을 소비국과의 관계에 있어 원점에서 다시 수립하고 있다. 유전 보호주의와 서구의 외국인 투자에 대한 불신에 기반한 생산국들의 새로운 발전전략이 2000년 이후 국제고유가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2. 독재와 자원개발 붐(Boom)

 

2000년대 고유가시대의 에너지 위기는 자원부국 생산국에게는 자원 붐을 의미한다. 자원부유 개도국은 최빈국에서 중소득국가에 이르기까지 발전수준이 매우 다양하고 경제규모의 격차 또한 매우 크지만 2000년대에는 대체로 국제 자원가격이 높게 유지되면서 자원부국의 대내외 거시균형조건 등 경제성장 조건이 크게 개선되어 경상수지의 누적에 의한 외환보유고의 누적과 정부의 재정수입 증가로 재정수지 흑자의 누적을 가져왔다. 많은 자원부국 정부가 이 흑자분을 국부펀드의 형태로 축적하면서 그 규모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여, 자원부국이 국제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무게도 빠르게 증가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저유가시대의 생산국 내부 정치경제 체제의 혼란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생산국들의 경제상황이 개선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바람직하지만 많은 연구자들이 최근의 자원 붐을 우려스러운 시각으로 보고 오히려 위기로 진단하는 것은 결국 정치적 변화 없는 자원 붐은 지속적이지 못하고 붐과 붕괴의 악순환을 반복할 가능성 때문이다(Haber and Menaldo 2011; John 2011; Friedman 2006, 2008). 많은 연구들에 의하면 생산국들은 짧게는 50년, 길게는 100년 동안 유지된 구 에너지 체제 속에서 자원 기지화한 결과, 겔브(Alan Gelb)의 1988년 알제리, 에콰도르, 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 트리니다드 토바고를 사례로 한 연구에서 보여주듯이 자원 붐이 오히려 경제 성장률 저하를 가져왔다. 삭스(Jeffrey Sachs)와 워너(Andrew Warner)의 1971-1989년 기간 동안 18개 자원 수출국들의 자원의존도와 경제성장률을 비교한 연구도 이들 국가의 경우 1인당 국민소득과 경제성장률이 오히려 감소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같은 고유가 붐을 경제성장에 잘 활용한 일부 국가만 제외하고 자원이 빈약한 국가들이 오히려 자원 의존국들 보다 2-3배 높은 경제성장을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자원부존의 저성장을 가져오는 원인으로서 이들은 모두 자원 붐이 가져오는 거시경제의 구조적 왜곡에 초점을 두고 있다. 대외개방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경쟁력 있는 제조업을 어떻게 육성하느냐가 자원부국 경제발전전략에 부과되는 가장 어려운 과제이다. 자원 붐 기간 동안 통화가치의 과도한 상승에 의한 제조업경쟁의 하락을 막기 위해서 적극적인 외환시장개입과 안정화 기금, 저축기금의 축적, 국부펀드의 설립 등을 통한 경상수지 흑자분의 흡수 등이 권고되고 있지만 자원 붐의 부정적 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조건은 경제발전을 목표로 삼으며 이를 추진할 역량을 갖춘 국가와 제도이다.

 

3. 신흥개도국과 국영석유기업(NOC: National Oil Company)의 부상

 

석유 가스 등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주도권이 소위 ‘일곱 자매’(seven sisters)라고 불리던 종전의 서방 메이저 석유회사에서 ‘새로운 일곱 자매’(new seven sisters)로 꼽히는 7개 개도국 국영 석유회사로 넘어가고 있다. ‘새로운 일곱 자매’란 사우디아라비아의 사우디아람코(Saudi Aramco), 이란의 국영석유공사(National Iranian Oil Company: NIOC), 베네수엘라 석유공사(Petróleos de Venezuela S.A.: PDVSA), 중국 페트로차이나(Petro China), 러시아 가즈프롬(Gazprom), 브라질 페트로브라스(Petrobras),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Petronas) 등을 말한다. 이는 과거 석유 시장을 좌지우지하던 미국계 엑손모빌(Exxon Mobil), 텍사코(Texaco), 셰브론(Chevron), 걸프(Gulf Oil)와 영국의 비피(BP), 영국과 네덜란드 합작 기업인 로열더치셸(Royal Dutch Shell) 등 7개 기업의 자리를 따돌린 신흥 주자들이다. 기존 일곱 자매 석유 메이저는 현재 엑슨모빌, 셰브론, BP, 로열더치셸 등 4개사로 통합됐다(Bentam 2009)...(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