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손열 교수는 미국 시카고 대학(University of Chicago)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중앙대학교 교수, 도쿄대학 외국인연구원, 와세다대학 객원교수를 역임한 바 있다. 주요 연구 주제로는 일본 정치경제, 국제정치경제, 동아시아 지역주의 등이 있다. 최근 저술로는 “동아시아 경합하는 국제사회 구상” (〈세계정치〉 2009), “소프트파워의 정치 : 일본의 서로 다른 정체성” (〈일본연구논총〉 2009), “Japan Between Alliance and Community” (East Asia Institute Issue Briefing 2009), “Japan's New Regionalism: China Shock, Universal Values and East Asian Community,” (Asian Survey 2010, 50:3) 등이 있다.

 

 


 

 

I. 서론

 

무역은 국부를 증진하는 주요 수단이다. 무역 중심의 대외개방형 경제체제로 고도성장을 이룩한 동아시아국가들이 대표적이다. 또한 무역은 외교정책 수단이기도 하다. 교역상대국에게 이득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그 국가가 적국이면 비경제(diseconomy)를, 우방국이면 긍정적 외부효과(positive externality)를 가져다준다(Gowa and Mansfield 1993). 따라서 전자에게는 무역을 통제하여 견제하고, 후자는 무역을 확장하여 우호관계를 강화하는 정책을 사용하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 무역을 통해 상대국의 부가 증가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국가의 영향력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국의 성장노선(수출선)을 자국의 수입에 의존하게 만듦으로써 그 국가를 구조적으로 종속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Hirschman 1945). 무역패턴을 전략적으로 구성함으로써 외교정책적 목표를 달성할 수도 있다.

 

이렇듯 무역은 경제적 부와 정치적 권력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 때문에 국가들은 국제무역체제를 자국에 유리하도록 구성하고자 해왔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주도한 자유주의 무역질서는 전간기 주요국간 경쟁적 보호주의의 결과로 세계대전을 치렀다는 인식 속에서 일종의 지구공공재로 받아들여졌으나 다른 한편으로 세계 패권국인 미국의 이익을 담는 것이기도 하였다. 자유무역은 경쟁우위국가(즉, 패권국)에게 상대적으로 더 큰 이득을 부여하기 때문이다(Krasner 1985). 미국은 관세무역일반협정 (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GATT) 체제 속에서 일련의 라운드를 주도하면서 무역자유화를 꾸준히 추진하였다. 반면, 미국은 서유럽이 국내질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보호주의적 규제를 추진하는 것을 허용하기도 하였고, 일본과 한국이 경제성장을 위해서 중상주의적 정책을 취하는 것도 용인하는 이른바 ‘내장된 자유주의’(embedded liberalism)를 추구하였다(Ruggie 1982). 냉전이란 지정학적 고려 때문이었다(Ikenberry 2004).

 

냉전이 끝나고 미국은 신자유주의적 가치를 지구화(globalization)의 핵심으로 내세웠다.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로서 이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지구화를 의미하는 언어이고 패권의 상징이었다. 자유시장, 작은 정부, 대외개방이란 자본주의 표준을 전세계적으로 확산하기 위해 미국은 한편으로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과 세계은행(World Bank)을 활용하였고, 다른 한편으로 자유무역정책을 추구하였다. ‘자유무역’은 경제뿐만 아니라 도덕 원칙으로서 경제∙제도적 개혁, 부패타파, 자유의 습관(habits of liberty)을 고양하는 수단이므로 이를 널리 전파해야 한다는 것이다(White House 2002, 21-22). 다시 말해서, 단순히 무역장벽을 허물겠다는 것을 넘어서 국내체제도 특정하게 변화, 수렴시키겠다는 것으로서, 이제 내장된 자유주의는 부정되었다. 더욱이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의 과도한 개입이 결과적으로 기구의 효능을 감퇴시킴에 따라 워싱턴 컨센서스 전도사로서의 기능 역시 약화되면서, 자유무역은 미국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추진하는 핵심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워싱턴 컨센서스란 미국적 질서를 확산하려는 노력은 무역의 차원에서도 도전을 받게 된다. 1999년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 시애틀 회의에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반대론자의 거센 도전에 직면하였고, 곧이어 2001년 도하(Doha)선언도 정체에 빠지게 되었다. 이런 속에서 미국의 경쟁국들은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FTA)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노력을 경주해 왔다. 유럽국가들은 경제통합을 통해서 단일경제권을 형성하였고, 동아시아 국가들도 양자 자유무역협정(FTA)의 망을 확대, 심화시켜왔다(Dent 2007). 이에 대해 미국은 2002년을 전기로 국제기구를 통한 질서/레짐 구축으로부터 지역 및 양자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전략을 전환하게 된다.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미국이 원하는 무역질서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양자 및 소다자 자유무역협정(FTA)은 상대국에 대한 서로 다른 경제적, 전략적 이해가 관련되기 때문에 이를 전체적으로 엮어 특정한 레짐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네트워크 아키텍쳐와 고도의 추진 전략이 요구된다. 왜냐하면 21세기 경제의 공간은 행위자들이 네트워크적으로 통합되는 상호의존의 장(場)이기 때문이다. 생산네트워크와 그 속에서의 산업내(intra-industry), 산업간(jnter-industry) 무역이 다양한 경제행위자들을 촘촘히 연결해 나가는 경제공간인 만큼 권력장의 속성 역시 전통적 국제정치와 일정한 차이를 보이게 마련이다. 자유무역협정(FTA) 경쟁의 본질은 한 국가가 타국가를 강요하여 편 가르고 줄 세우는 경쟁이 아니라, 서로를 어떤 방식으로 연결하여 자기의 이익을 실현하는가 하는 네트워크 경쟁이 될 것이다. 여기서 네트워크 경쟁은 구성원(노드)이 네트워크속에서 서로 연결되는 방식을 규정하는 능력, 즉 네트워크의 플랫폼을 설계하는 능력(architectural power), 둘째 서로 다른 네트워크를 연결, 중개하는 능력(positional power), 셋째, 네트워크를 확산하는 능력(social power), 끝으로 이런 대외적 시도에 대한 국내적 지지를 동원하는 능력에 달려있다(Grewal 2008; 김상배 2009; Kahler 2009).

 

이 글은 주로 동아시아 지역을 주 대상으로 하여 미국적 질서의 구축과 재구축, 이에 대한 도전의 동학을 분석하고자 한다. 첫째, 국제기구를 통한 미국의 세계무역레짐 구축 전략을 기술한 다음, 둘째, 역내 권력이동의 추이와 본질의 분석, 셋째, 2008년 위기를 계기로 전개되는 새로운 정치경제 동학의 분석, 끝으로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엮일 지역무역체제의 미래를 예측해 보고자 한다. 향후 지역 무역질서는 비대칭적 상호의존의 심화를 통해 중국 중심으로 짜이는 무역네트워크에 대해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대항네트워크의 도전으로 네트워크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다. 그리고 후자의 경쟁력은 네트워크 플랫폼을 여하히 설계하여 역내국가들을 끌어들이는가에 달려있다.

 

II. 미국의 패권질서: 워싱턴 컨센서스의 부침

 

워싱턴 컨센서스는 자유시장(free market)이란 가치를 전세계적으로 구현하는 이념 프로그램이다. 애당초 이는 워싱턴에 소재한 기구(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미 재무부)들이 중남미국가들에게 제공한 정책제안의 최소 공통분모로서 자유화 경제개혁프로그램을 의미하였으나(Williamson 1989), 이후 신자유주의 혹은 시장근본주의(market fundamentalism)라는 보다 포괄적인 경제이념과 동일시되거나 혹은 더 나아가 제3세계 국가들이 경제발전을 이룩하는데 필요한 일종의 정책 매니페스토(policy manifesto)로 확장되어 사용되어왔다. 여기서 무역은 핵심적 정책수단이다. 자유로운 무역으로 국내제도를 개혁하고 시장기제가 작동하는 경제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는 믿음이 그것이다. 자유무역은 부의 증진수단인 동시에 법치와 민주정부를 추동하고 자유로운 삶을 구현하는 정책수단인 것이다.

 

워싱턴 컨센서스가 세상을 풍미한 시기는 냉전종식 이후인 1990년대부터이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세계무역질서를 ‘열린 국경, 열린 무역, 열린 마음’으로 표현하였고 나아가 빌 클린턴은 시장민주주의 공동체를 주창한다. 자유 즉,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시장경제를 핵심가치로 공유하는 세계를 만들려는 구상이다. 이는 미국의 세계비전이지만 곧 동아시아지역에 대한 비전이기도 하였다. 클린턴기의 미국의 정책은 상품, 서비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모두에게 상호이득이 된다는 자유무역정책을 무차별적으로 적용하려 하였다. 오랜 맹방인 일본이 시장개방의 타겟이 되었고 한국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우루과이 라운드의 타결과 함께 미국은 지역적으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기구(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란 제도적 기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시장개방을 추구하였다. 미국은 1993년 보고르(Bogor) 목표, 1996년 자발적 조기자유화조치(Early Voluntary Sectoral Liberalization: EVSL) 등을 통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무역자유화 드라이브를 걸었다.

 

워싱턴 컨센서스의 전성기는 1997년 동아시아금융위기이었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1990년대 초반 금융자유화를 추진하였는데 이는 더 많은 국제자본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국제적 압력 즉, 워싱턴 컨센서스의 전파 때문이었다. 개방에 따른 내부적 부적응 즉, 관리, 감독체제의 미비와 비대칭적인 - 불균등한 - 자유화의 결과로 동아시아는 금융위기에 함몰되었고, 이들에 구제금융을 공여한 국제통화기금(IMF)은 그 대가로 강도 높은 워싱턴 컨센서스 이행조건을 강요하였다. 예컨대, 한국은 고금리, 긴축정책을 넘어 금융시장 구조조정, 자본거래자유화, 기업지배구조 개혁, 노동시장개혁과 함께 무역자유화까지 포함한 전방위 신자유주의개혁을 요구 받고 이행해야 했다. 요컨대, 동아시아의 금융위기는 워싱턴 컨센서스의 부적절한 수용으로 야기되었고 위기극복을 위해 이를 더욱 철저히 수용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재미있게도 국제통화기금(IMF)에 의한 가혹한 이행조건은 역으로 국가들로 하여금 국제통화기금(IMF)를 기피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가혹한 이행조건을 받지 않으려는 까닭이었다. 동아시아국가들은 국제통화기금(IMF)에 가지 않기 위해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줄임으로써 외환보유고를 확충하는 전략을 선택하였다. 동시에 국제통화기금(IMF)와 세계은행(World Bank) 두 국제기구가 추진한 워싱턴 컨센서스 프로그램에 대한 이념적 반발이 대두되었다. 특히 시장개방에 의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일부 선진국들의 이익만을 대변한다는 개도국의 논리, 시장원리주의에 따른 사회적 가치의 실종을 비판하는 유럽의 목소리, 환경과 노동 가치를 희생한다는 선진국 비정부기구(Non-Governmental Organization: NGO) 의 비판이 어우러지면서 1999년 〈시애틀 WTO 회의〉는 파행을 맞이하였다. 미국적 질서에 대한 최초의 조직적인 대규모 반기이었다.

 

이어서 2001년 〈도하라운드〉 역시 자유무역에 대한 반기로 점철되었다. 무역에 개발이슈를 연계시키고, 농업, 서비스, 환경, 지적재산권 등 다양한 이슈를 포괄적으로 다루고자 하였으나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이해대립으로 진전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2003년 〈칸쿤 회의〉 역시 특별한 결과를 내지 못하고 혼란 속에서 끝나게 되었다.

 

워싱턴 컨센서스의 추진이 지구다자기구를 통해서 이루어 질 수 없음을 인식한 미국은 지역다자 및 양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서 추진하기로 정책을 전환하였다. 그 핵심인물은 졸릭(Robert Zoellick)이었다. 당시 미국무역대표부(United States Trade Representative: USTR) 대표로서 그는 이른바 경쟁적 자유화(competitive liberalization)란 언어로 새로운 무역정책을 표현하였다. 지구다자협정, 지역, 양자 자유무역협정(FTA)을 상호보완적이고 상호강화적 형태로 추진하여 결과적으로 전세계의 무역자유화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이다(Zoellick 2002). 여기에는 자유무역이 단순히 경제적 부를 획득하는 수단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증진하는 수단이라는 인식이 함께 깔려있다. “개방무역이 장기적으로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자유의 습관을 강화한다”는 부시의 메시지처럼, 무역은 비극적인 9.11 테러사태를 전기로 자유와 민주주의의 확산이란 미국의 목표를 추구하는 하나의 중요수단으로 간주되었다(White House 2002).

 

구체적으로 졸릭은 무역을 통해 다음과 같은 네가지 범주의 미국의 국익을 추구하고자 하였다. 첫째, ‘비대칭적 상호주의’(asymmetric reciprocity)로서 시장권력의 비대칭성으로 협상력을 확보하여 미국기업에게 유리하도록 상대국 시장을 개방한다. 둘째, 포괄적 무역협정의 촉매제 혹은 벤치마킹이 되는 선례 혹은 모델을 구축한다. 셋째, 상대방의 국내 시장주의적 개혁과 민주제도를 지원한다. 넷째, 지역의 주도국가와 전략적 파트너쉽을 강화한다.

 

히갓(Higgott 2004)에 의하면 부시정부의 일방주의는 자유주의-이상주의적 근본주의라는 희한한 이념적 조합에 기초하고 있으며, 경제정책에 있어서 ‘지구화의 안보화’(securitization of globalization)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즉, 신자유주의 혹은 워싱턴 컨센서스적 정책을 전략적 목표 하에서 추진하고자 하였고 이를 지지하는 제도적 장치는 ‘초당적 무역촉진권한’(Bipartisan Trade Promotion Authority of 2002)이었다. 의회가 행정부에 무역협상에 대한 신속지원(fast-track)권한을 부여하여 “보다 개방적이고 균등하며 상호적인 접근”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으로서 당시 테러와의 전쟁이란 상황적 맥락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은 요르단, 칠레, 싱가폴, 호주, 모로코, 오만, 바레인, 코스타리카, 도미니카 공화국, 엘 살바도르, 과테말라, 혼두라스, 니카라과, 페루, 파나마, 콜롬비아, 그리고 한국이었다. 또한 교섭중단 국가로 태국과 말레이시아가 있다. 이들은 한국과 호주를 예외로 하면 경제적 규모가 크지 않은, 따라서 경제적 가치보다는 전략적 가치를 중시하여 선정한 국가들이다. 미주지역 국가들은 미국이 지역을 견고하게 확보한다는 전략적 고려, 이슬람 국가들은 테러와의 전쟁이란 맥락에서 선정되었다(Sohn and Koo 2010). 예컨대, 미국은 말레이시아와 자유무역협정(FTA) 교섭을 시작하면서 “말레이시아는 온건한 무슬림국가로서 테러와의 전쟁에 있어서 중요한 파트너이기 때문에 이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은 안보적 차원에서 중요한 정책목표를 증진시킬 것이다”라고 말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