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광_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 단국대학교를 졸업하고 중국 상해 푸단대에서 국제관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결과로는 “胡錦濤시기 중국의 대북경제교류 확대에 관한 연구”, “’2•13합의’ 이후 북미관계 진전과 중국의 입장”, “개혁기 중국의 민족주의 등장배경과 실태”, “Emergence of China and ROK-China Relations: Perceptions, Issues and Tasks”, “21세기 중•인관계 발전 : 현황, 쟁점, 전망” 등 다수가 있다.

 

 


 

 

최근 미국과 중국의 외교적 갈등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갈등의 출발점은 세계 최대의 검색엔진인 ‘구글’Google과 중국의 사이버분쟁으로 촉발되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양국간 마찰을 격화시킨 것은 미국의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 결정이었다. 현재 미중간 갈등은 무기판매 문제를 넘어 달라이 라마 면담 문제, 군사력 투명성 문제, 환율 및 통상문제로까지 확대되는 추세이다. 연초부터 마치 미중 양국 간에 난타전이 계속되는 양상이다.

 

그 동안 미국은 세계경제위기 극복을 비롯한 각종 국제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지위와 영향력을 인정하고 일정부분 ‘공동 관리자’로서의 지분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중관계를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양자관계”로 규정하는 등 과거의 ‘중국경계론’에서 벗어나 ‘중국인정론’으로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중국 언론 역시 미중관계를 “화합하면서 점점 가까워 진다”는 뜻의 ‘화이점동’(和而漸同)으로 표현하는 등 양국관계 발전에 큰 기대를 표명해 왔다.

 

그런데 이처럼 갑자기 미중관계가 난파의 위기를 맞이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그에 대한 해답은 먼저 미중관계가 지니는 기본적 성격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그 동안 미중관계는 사안에 따라 ‘갈등’과 ‘협력’을 반복하는 기계적인 모습으로 묘사되어 왔다. 그러나 엄밀히 보자면 양국관계는 근본적 갈등구조를 바탕에 두고 전략적인 필요에 따라 협력을 전개하는 ‘갈등적 협력’으로 규정되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아직까지도 미중관계는 협력의 측면보다는 근본적인 갈등구조가 양국관계를 규정하는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 동안 미중관계는 중국의 미국 패권지위 수용과 미국의 중국부상에 대한 묵인黙認이라는 상호 실리지향에 기초하여 안정적이고 협력적인 외형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언제나 뿌리 깊은 갈등 요인들과 ‘전략적 불신’strategic mistrust이 자리 잡고 있으며 봉쇄와 반反봉쇄의 상호견제가 작용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일례로 최근에 발표한 ’4개년 국방검토보고서’QDR에서도 나타나듯이 미국은 언제나 중국 국방예산의 불투명성을 지적하고 중국의 장기적 의도에 대해 의심한다. 반면 중국은 미국의 동맹체제 강화와 미사일방어MD체제 구축을 비판하며 미국이 봉쇄전략을 통해 자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것으로 생각한다.

 

비록 오바마 정부 출범과 더불어 미중관계는 협력기조를 유지해 왔지만 여전히 미중 간에는, 국제질서에 대한 동상이몽同床異夢의 전략적 고려, 동아시아를 둘러싼 주도권 경쟁 등이 존재하고 있다. 때문에 오바마 정부 등장에 따른 대對중국노선의 변화가 미중관계에 갈등과 마찰을 불러 일으키던 근본적 요소들을 일시에 제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바마 정부 하에서도 미중관계는 양국 간에 노정된 이해관계의 절충과 대립양상에 따라 ‘롤러코스터’와 같은 부침을 겪는 현실적 한계를 안고 있다.

 

미중 간에 갈등이 되는 양자적 이슈로는 인권, 티베트, 대만문제와 더불어 환율, 보호무역주의 문제 등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글로벌 이슈global issue로는 핵확산, 북핵 및 이란 핵문제, 에너지, 환경 및 기후변화, 신국제금융질서 수립 등의 문제를 들 수 있겠다. 이러한 변수들은 언제든지 미중관계에 심각한 도전이 될 수 있고 그것들의 어떠한 조합도 양국관계를 탈선시킬 수 있는 폭발성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인권, 티베트, 대만문제 등에 대해서는 자국의 주권침해와 내정간섭의 문제로 간주하기 때문에 타협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 때문에 중국은 미국 국방부가 대만 무기판매를 발표하자 곧바로 ▲미국과의 군사교류 중단 ▲안보•군축•비핵화를 다루는 차관급 대화 연기 ▲무기판매 미국기업 제재조치 등의 강경책을 발표했던 것이다.

 

최근에 중국이 미국의 조치에 대해 반발하는 강도는 과거 부시 행정부 시기에 비해 더욱 격렬한 측면이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먼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달라진 중국의 대내외적 위상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중국의 협력 없이는 금융위기 극복이나 북한, 이란 핵문제, 기후변화 등 국제사회의 주요 이슈를 해결할 수 없게 된 미국의 아킬레스건을 겨냥한 측면이 있다고 하겠다. 중국은 미국에 대해 과거와 같은 정책을 고수하면 글로벌 이슈를 해결해 나가는 데 있어 중국의 협조와 양보를 얻기 어려울 것이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의도가 숨어있는 것이다.

 

또한 이와 더불어 앞으로 중국에 대한 오바마 정부의 본격적인 공세를 꺾기 위한 의도 역시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은 무기판매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통해 오바마 정부가 티베트, 인권문제 등 민감한 현안을 놓고 중국을 자극할 경우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고 하겠다. 결국 중국으로서는 미국이 자국의 핵심 이익과 관련된 대만 문제와 달라이 라마 문제 등 주요 쟁점을 건드린 데 대해, 달라진 역학power관계를 바탕으로 미중관계의 새로운 틀을 실험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미국의 경우 오바마 정부는 최근의 지지율 하락 및 실업률 증가 등 더딘 경기회복으로 인해 직면한 문제들을 대외적 이슈를 통해 우회하려는 의도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즉 미중갈등의 본격적인 시작은 대만 무기판매에서 비롯됐지만 전선戰線을 환율과 통상문제 등 보호무역주의 논란으로 확대하고 있는 것은 나름대로의 국내정치적 의도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이 쉽사리 중국의 요구를 수용하거나 베이징의 반발에 물러서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최근 미국의 중국을 겨냥한 일련의 조치들은 다분히 감정적 요인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즉 작년 12월 코펜하겐 기후변화협약 국제회의 당시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로부터 면담요청을 거부당하는 등 전례 없는 수모를 겪은 바 있다. 어떤 면에서 이번 미중 갈등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다소 기운을 회복하고 있는 미국이 그 동안 중국에 당했던 수모에 대한 앙갚음도 작용하는지 모르겠다.

 

국제사회는 미중 간 갈등 수위가 갈수록 고조되는데 따른 파급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중간의 첨예한 갈등과 대립은 결과적으로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국제사회의 공조에 차질을 불러오고 정치, 외교, 군사 등 다른 분야로 파장이 확산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국내에서도 미중 갈등이 북핵문제 해결과 6자회담 재개 노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물론 이번에 나타난 미중 양국의 갈등에는 각기 정치적 의도가 배경에 깔려있기 때문에 일단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양보를 통해 단기간 내에 봉합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미국의 경우 중국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대만 무기판매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며 오히려 중국에게 더 이상 끌려가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내비치는 추세이다.

 

그러나 이번 미중 대립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 모두 양국관계의 파국을 감당할 수 없고, 양국의 핵심 이익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실적 상황 등을 고려할 때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을 전망이다. 다만 중국으로서는 미국에 대한 강력 반발기조를 통해 “향후 할 말은 하겠다.”는 대미정책의 변화를 과시하고 ‘도광양회’韜光養晦에서 ‘유소작위’有所作爲로 나아가는 정지 작업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중국은 미국의 대만 무기수출 조치를 기회로 자국의 첨단무기 개발 및 실험의 명분으로 활용하고, 추후 미국의 대만 무기판매 위축을 노리는 등 ‘미국 길들이기’를 기대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중 갈등상황은 올해 상반기를 넘기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 이유는 올 여름으로 예정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미국 방문 전에 양국관계의 해빙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미중 양국은 상호교류와 협력이 강화되면서 이미 서로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으며 갈수록 상대방의 중요성과 필요성도 증대되고 있다는 점에서 레드 라인red-line을 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최근의 미중 갈등이 북한 비핵화와 이를 위한 6자회담 재개 등에 있어서 직접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희박하다. 만일 미중 갈등에 따른 양국간 정책공조가 균열을 보이게 된다면 한반도관련 사안보다 기후변화, 이란 핵문제, 신국제금융질서 수립 등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더욱 높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중국의 경우 국가목표인 경제발전과 동북아 안정의 차원에서 북한 비핵화와 6자회담 재개는 자국의 국익에 적극 부합하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으로서는 미국이 관심을 두고 있는 북한 비핵화와 6자회담 재개를 위해 건설적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미중관계 회복의 매개로 이용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중국은 최근의 미중 갈등상황과는 별개로 왕자루이王家瑞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북한에 파견해 북중 전통우호관계를 다지는 한편 6자회담 복귀를 설득한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결국 한국 정부로서는 미중 갈등 심화가 우리의 국익을 저해하거나 배치되는 방향으로 발전되지 않도록 한미, 한중 간 전략적 관계의 내실을 양자관계 속에서 강화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울러 이의 연장선상에서 기존의 ‘한•미•일 공조체제’와 ‘한•중•일 협력체제’를 거울삼아 ‘한•미•중 삼각대화’의 실현을 추진할 필요가 제기된다고 하겠다. 한•미•중 삼각대화는 한반도문제와 관련된 미중 양국의 의중을 직접적으로 파악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이익과 입장을 보다 직접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소통구조를 확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