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이른바 ‘범세계적 반테러 전쟁’(GWOT: Global War on Terror)이 9․11이후 미국 외교안보정책의 최대 화두로 등장하면서 유럽이나 동아시아와 같은 특정 지역에 대한 미국 외교정책은 세인들의 관심으로부터 점차 멀어졌다. 미국이 반테러 전쟁에 4년 이상 정렬을 쏟아 붇는 동안 중국은 동아태지역에서 양자 및 다자외교에 박차를 가함으로써 미국과 일본의 외교적 아성에 도전장을 던졌다. 미국은 결국 테러와 WMD 확산이라는 21세기적 안보위협과, 중국이라는 잠재적 패권 도전세력의 등장이라는 19세기적 안보위협에 동시에 대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향후 미국의 동아태전략은 이러한 ‘두 가지 도전’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들을 담게 될 것이다.

 

 

 

 


부시 2기 행정부의 외교는 기존의 반테러․반확산 기조에 자유의 확산이 더해지면서 공세적 성격을 유지할 것이나, 수행방식에 있어서 동맹국과의 협의 및 국제사회의 지지를 유도하는 등 ‘스타일’의 변화를 보여줄 것이다. 냉전 종식 후 역대 미 행정부는 동맹정책, 대 중국정책, 지역 주둔 및 협력정책, 그리고 한반도 정책에 있어서 지속성과 변화를 보여주었다. 부시 2기 행정부의 동아태전략은 반테러 동맹체제 구축, 대 중국 협력과 경쟁 병행, 지역 및 다자주의의 보완적 활용, 한미동맹 재조정 및 대 북한 ‘변환외교’ 등의 내용을 담을 것이다.

 

 

 

 


동맹정책에 있어서 미 부시 행정부는 대규모 주둔기지를 바탕으로 통합된 전략을 추구하는 전통적인 동맹체제보다는 여러 동맹국들과 소규모 기지 체계에 바탕을 둔 협력체제를 유지하면서 북핵, 테러, 인도적 사태 발생 시 신속 대응하는 ‘신동맹체제’를 구체화해 나가는 데 역점을 둘 것이다. 일본을 ‘범세계적 동반자’(global partner)라고 호칭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는 미일동맹의 ‘세계화’를 구체화하기 위해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전략적 공동목표를 설정해 갈 것이다. 특히, 전 세계 개발원조액의 40%를 차지하는 미일양국은 2005년 3월 라이스 국무장관이 제안한 ‘전략적 개발동맹’(strategic development alliance)에 따라 개발원조를 전략적 차원에서 체계화하는 노력을 배가할 것이다.

 

 

 

 


미국의 새로운 동아태전략의 핵심 내용 중의 하나는 바로 역내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다. 따라서, 한미양국은 “사전협의를 전제로 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인정”이라는 방식으로 동 문제의 해결을 도모할 것이다. 미국은 또한 미-호주 동맹과 미일동맹을 전략적으로 연계하기 위한 미-호-일 3자 전략대화를 추진해 나가고 있다. 미국은 특히 인도와 일본간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유도함으로써 일본, 호주, 인도 등과 함께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constrainment)해 나갈 것이다.

 

 

 

 


미 국방부의‘2005년 중국 군사력 평가 보고서’(Annual Report to Congress: The Military Power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2005)는 “중국의 군사력은 대만해협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나아가 미국에 대한 위협이다”라고 규정했다. 부시 행정부 출범이후 처음으로 중국의 위협이 양안관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동아태 지역적 차원의 위협임을 강조한 것이다. 미 부시 행정부는 중국과의 경제 및 반테러 협력을 지속해 나가면서도 장기적 전략이해의 충돌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중국을 좌(중앙아시아 미군 주둔 확대), 우(미일동맹 강화, 한미동맹 재조정), 아래(베트남․인도와의 협력 강화, 동남아 테러대응체제 확립)로부터 견제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북한 핵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미국은 신중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이란 핵문제 ‘악화’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는 부시 행정부는 북핵문제와의 ‘동시 악화’를 막기 위해 “북한의 요구가 지나치다”는 공감대가 국제사회에 확산되기 전까지 6자회담 틀을 고수할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북핵문제 해결 모색 과정에서 북한이 핵문제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같은 광범위한 문제로의 ‘이슈 확대’를 시도하여 핵문제에 대한 초점을 흐리고 주한미군의 지위문제에 영향을 주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가급적 평화체제 논의를 뒤로 미룰 것이며, 동시에 북한 인권문제를 이슈화해 나갈 것이다.

 

 

 

 


미국은 신동맹체제를 보완하기 위한 기제로서 역내 다자 및 지역주의 외교에도 관심을 증대시킬 것이다. 역내 안보현안들이 포괄적 성격을 띠어감에 따라 미국 혼자 혹은 동맹체제만으로 이를 다루기에는 복잡한 장애요인들이 존재하므로 미국은 역내 다자협력기구에 대해 보다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중국의 공세적 다자 및 지역주의 외교를 차단하고 미국의 역내 주도권의 유지 확대를 도모할 것으로 보인다. 단, 지역주의 외교를 전개하는데 있어서 개념적으로 ‘동아시아 지역주의’(East Asian regionalism)가 아닌 ‘아태지역주의’(Asia Pacific regionalism), 즉 동아시아 국가들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태평양 국가를 포괄하는 지역협력을 지향한다는 점을 강조할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동아태전략은 한국에게 몇 가지 전략적 도전을 제기함과 동시에 전략적 간극 조정을 위한 노력을 요구한다. 첫째, 한국은 전략적 중심축을 한미동맹에 두면서, 동시에 미국으로 하여금 대 중국 견제보다는 중․일간의 전략적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미국을 비롯한 역내 국가들의 입장을 골고루 충족시키는 전략임을 강조해야 한다.

 

 

 

 


둘째, 동북아 국가들 간의 소지역협력을 한국이 주도해 나가면서 한중협력관계를 손상시키지 않는 동시에 범지역적으로 동아시아 국가들만의 ‘동아시아 지역주의’보다는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와 같은 태평양 국가들을 포함한 ‘아태지역주의’에 동참하고 기여하는 것이 중국과 미국 모두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한미동맹이 북한의 위협이 사라진 이후에도 ‘포괄적 역동적 동맹’의 형태로 지속된다는 비전에 양국이 합의하고 이를 구체화해 나가야 한다. 포괄적 한미동맹이란 새로운 안보 위협, 즉 테러, 마약, 환경오염, 불법인구이동, 해적 행위 등에 포괄적으로 대처해 나감으로써 역내 다자안보협력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동맹을 뜻하는 한편, 역동적인 동맹 관계는 북한의 위협은 물론 중일간의 전략적 경쟁으로부터 야기되는 ‘새로운’ 위협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역동적 균형자’(dynamic balancer) 역할을 의미한다.

 

 

 

 


넷째,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지속해 나가되, 특정 국가를 적으로 삼지 않는다는 대전제하에 중국, 일본, 러시아와의 전략적 대화 및 교류를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는 21세기 한․일 파트너십의 공고화, 한․중 및 한․러 전략적 관계 구축을 뜻한다. 특히, 중국은 북한 핵문제와 미사일 개발과 같은 중요한 분야에서 협력이 필요하므로 한․중 협력관계를 지속적으로 심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동북아 내 소다자주의(minilateralism)를 한국이 주도해야 한다. 한반도와 4강을 총체적으로 포괄하는 동북아 다자협력체를 확립하기 이전에 3자 형태의 소다자주의 협의체가 활성화될 경우 동북아 안보협력 구도 정착에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 한국은 한․미․일, 한․중․일 등 3자간 공식․비공식 3자 대화를 활성화함으로써 한반도 문제와 관련하여 미․중관계, 중․일관계의 안정화를 도모해야 할 것이다.

 

 

 

저자

김성한, 외교안보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