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교수는 동경대학교에서 국제정치박사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국방대학교 안전보장대학원 교수로 재직중이다.

 

 


 

 

일본 정치 우경화의 배경 및 향방

 

“우경화의 배경 : ① 일본 국력 강화 ② 역사적 부채의식 없는 전후 세대 정치인의 등장 ③ 전후 전범에 대한 처리 미흡 ④ 중국의 국력 추월 및 동일본대지진 이후 일본 사회 내 자신감 상실”

“향후 흐름을 결정지을 주요 변수 : ① 7월 참의원 선거 결과에 따른 정치 지형도 변화 ② 일본 시민사회의 역할 ③ 구미권 국가들의 입장”

 

1945년 이후 일본은 요시다(吉田茂) 독트린을 국가전략으로 삼고, ‘평화헌법 준수,’ ‘미일동맹에 안전보장 의존,’ ‘경제성장에 주력’ 등의 기조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90년대 이후 일본의 국력이 성장하고 이에 걸맞은 국제사회 내 역할을 요구 받게 됨에 따라 요시다 독트린에서 벗어나 새로운 전략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를 크게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보통국가론, 국가주의(또는 국수주의)라는 세 개의 흐름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는 일본의 경제력과 과학기술력을 바탕으로 개발협력 등의 이슈영역에서 국제사회 내 일본의 역할을 확대하고 일본의 소프트파워를 증진시키자는 흐름이다. 둘째, 보통국가론은 증대된 경제력에 상응하는 안보역량 강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으로, 독일이 북대서양조약기구(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NATO)에 가입하여 미국과 함께 국제 안보문제에서 일익을 담당하듯 국내법을 정비하여 일본의 자위대도 유엔평화유지군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등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자는 흐름이다. 셋째, 국가주의는 수정주의적 역사관을 바탕으로 과거 일본의 침략 역사를 미화하고, 종군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며, 중국의 부상에 대해 핵무장을 통해서라도 견제해야 한다는 등 강경한 국가안보체제 구축을 추구하는 흐름이다. 자민당과 고이즈미(小泉純一郎), 후쿠다(福田康夫), 아소(麻生太郎) 정부 등은 보통국가론을 지지해 왔고, 민주당과 하토야마(鳩山由紀夫) 정부는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를 강조해왔다. 요즘 들어 논란이 되고 있는 아베(安倍晋三) 정권의 기조는 보통국가론을 넘어 국수주의적 국가전략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정치 우경화의 배경은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일본 국력 강화와 이에 따른 새로운 국가관의 모색이다. 둘째, 전후 세대 정치인의 등장이다. 태평양 전쟁을 경험했던 원로 정치인들은 일본의 국가주의화나 군사화에 대한 경계심이 높지만, 전후 세대 정치인들은 역사적 부채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역사에 대해 무지한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셋째, 독일과 달리 일본은 전범에 대한 처리가 미흡했다. 최대 전범인 쇼와천황(昭和天皇)이 전범으로 처벌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1946년 공식적으로 공직에서 추방된 전범들이 1952년 샌프란시스코 조약 이후 일본 정계로 복귀하여 1955년 자민당 창당을 이끌었다. 이같이 전범에 대한 처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함으로써 수정주의적 역사관이 고개를 들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넷째, 일본 사회 내 불안감 확대 및 자신감의 상실이다. 2010년 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 GDP) 측면에서 중국에 추월 당한 것이 일본의 자존심에 큰 타격을 주었고, 이어서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해 일본 사회 내부에서 불안감과 자신감 상실이 만연하게 되었다. 이것이 강력한 정치 리더십에 대한 요구로 이어져 아베 정부의 국수주의적 정책이 도리어 높은 지지를 얻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일본정치 우경화 흐름과는 대조적으로 일본의 시민사회는 민주주의적 가치를 존중하고 과거 역사를 반성하는 흐름을 여전히 강하게 유지하고 있다. 일례로 아베 수상이 추진하는 헌법개정에 대한 일본 사회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반대가 50퍼센트를 상회하는 반면 찬성은 30퍼센트에 그쳤다. 이는 아베 정부의 국가주의적 경향에도 불구하고 일본 사회 과반수 이상은 신중론을 유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만, 아베 수상이 집권 초 역사문제를 거의 언급하지 않고 엔저를 유도하는 등 아베노믹스 추진에 집중하여 지난 20년간 일본 경제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호황의 조짐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아베 수상에 대한 지지율 증가로 이어지고 있는데 집권 초 59퍼센트 정도를 기록했던 지지율이 현재는 72퍼센트를 상회하는 수준으로까지 올라섰다. 아베 정부가 바로 이 지지율에 편승하여 헌법개정을 포함한 국가주의적 공약들을 추진해 나간다면 일본사회 내 건전한 신중론이 무력화될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향후 일본 정치의 흐름을 결정지을 주요 변수는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오는 7월 참의원 선거 결과에 따른 정치 지형도 변화이다. 아베 내각의 주요 인사들은 국가주의적 기조를 추구하고 있지만, 민주당과 공명당, 심지어 자민당 내부에도 아베 정부의 역사인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7월 참의원 선거 결과 어떤 정치세력들의 발언권이 높아지느냐가 향후 일본 정치의 흐름을 좌우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사회가 헌법개정 및 역사문제에 대한 아베정부의 국가주의 경향을 얼마나 견제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셋째, 가장 중요한 변수로 구미권 국가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 하는 점이다. 미국을 포함한 구미 여러 국가들은 일본의 헌법개정이나 안보체제 강화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지만, 종군위안부나 대동아침략전쟁과 같은 역사문제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미국, 영국, 네덜란드 등 국가들이 바로 2차 대전 당시 일본과 직접 교전했던 당사국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미권 정치엘리트들과 오피니언 리더들이 아베정부의 국가주의적 경향에 대해 어느 수준의 견제 목소리를 낼 것이냐 하는 점이 향후 일본 정치의 흐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향후 아베 정부의 외교안보정책 전망

 

“대내정책 : 국내 안보체제 기반 강화 추진”

“대외정책 : ① 미일동맹 강화 ② 대중 견제 정책 ③ 한국, 인도, 호주, 동남아 국가와 네트워크 구축”

 

아베 정부는 미국을 포함한 구미권의 견제나 일본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선거 때 제시한 외교안보 공약들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자민당(47퍼센트)과 일본유신회(8퍼센트) 등 강경 보수를 대표하는 정치세력의 지지율이 민주당(7퍼센트)을 압도하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번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의 승리가 유력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다음 중의원(2016년 12월) 및 참의원 선거(2016년 7월)가 있을 때까지 향후 3년 동안은 아베 수상이 계속 정권을 잡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일관된 정책기조를 유지할 수 있는 기회가 아베정부에게 주어진 셈이다.

 

대내적으로 아베 정부는 국내 안보체제 강화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헌법 개정을 통한 국방군 명기화, 미국과 실질적으로 공동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집단적 자위권 확보, 국가안전보장회의 신설 등을 추진해 나갈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첫째, 미일동맹을 강화할 것이다. 기지 공동 사용, 연합훈련 확대, 미일 공동 작전계획지침 수립 등을 추진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둘째, 대중 견제 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이다. 아베 정부는 중국의 군사적 위협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고, 센카쿠 열도와 같은 영토•영해 문제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국내 안보체제 강화 및 미일동맹 강화를 토대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태세를 구축하려 할 것이다. 셋째, 한국, 인도, 호주, 동남아 국가와 네트워크 구축을 추진할 것이다. 대중 견제 차원에서 일본과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는 국가들과의 견실한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하며 특히, 한국과는 대중 견제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북한이 제기하는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긴밀한 안보협력이 필요하다.

 

한국의 대응전략

 

“영토 및 역사문제에 관해서는 단호히 대응”

“일본과의 경제적•안보적 협력은 필요, 시민사회 교류•학생교류•문화교류는 지속해야”

“현재의 한일관계 경색에 대한 타결책을 정부 수준에서 마련하기는 어려워, 트랙 1.5나 트랙 2를 활용해야”

 

일본이 한국과 영토 및 역사문제에 있어서는 갈등요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교안보 차원에서는 적극적인 협력을 추구하려는 입장이기 때문에 한국의 대일정책은 딜레마 상황에 놓일 수 있다.

 

현재 박근혜 정부의 대일정책이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 때 중요한 것은, 한국의 궁극적인 국가이익이 무엇이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대외관계에 있어서 추구해야 할 정책 목표의 우선 순위가 무엇인지 정립함으로써, 그 하부 전략의 일환으로 대일정책 방향을 고민하는 것이다. 한국 대외정책 목표의 우선순위는 첫째, 북핵문제 해결 및 북한 개혁개방 촉진 등을 통한 한반도 평화통일 여건조성이고, 둘째, 동아시아지역 협력질서 구축을 통해 중일을 포함한 지역 강대국 사이의 분쟁을 방지하고, 지역 국가간 경제•사회•문화 교류를 증진시켜 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당시 공약을 살펴보면, 대일정책에 있어 역사문제, 영토•영해 문제는 단호히 대응하되, 동북아 차원에서는 “아시아 패러독스”(Asia Paradox) 극복을 위한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이 필요함을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방향은 이전 정부들에서도 견지되어 왔던 접근법으로 앞으로도 계속 추진할 필요가 있다.

 

우선, 영토 및 역사문제에 관해서는 계속해서 단호히 대응해 나가야 한다. 독도문제의 경우 한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지나치게 문제를 부각시키기 보다는 내실 있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역사문제에 관해서는 다자레벨에서 일본 정치지도부의 잘못된 역사인식을 바로 잡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중일 “캠퍼스 아시아”(Collective Action for Mobility Program of University Students in Asia: CAMPUS Asia) 사업을 통해 학생들을 포함한 일본 시민 계층 내 건전한 역사인식을 세워나가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여, 태평양전쟁에 대한 국제 공동연구를 바탕으로 일본 내 잘못된 역사 인식 문제를 지적할 수 있는 학문적 역량을 축적하는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일본과는 협력해야 하는 사안도 많다. 일본의 경제력이 비교적 쇠퇴했다고 하지만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FTA)에서 보듯 여전히 경제적으로 협력이 필요한 사안이 많다. 외교안보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북핵폐기 및 북한의 개혁개방 유도를 위해 북일간에 구축되어 있는 여러 대화의 채널들을 활용할 필요가 있을 뿐 아니라, 한미일 대북공조체제 강화를 위해서도 일본과의 협력은 중요하다. 아울러, 한국 문화 발전 및 교육 기회 확대를 위해 시민사회 수준의 문화교류 및 학생교류들은 정치적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 시점에서 한일관계 경색을 타개할 만한 방안을 정부수준에서 마련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지금은 정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전문가 간 네트워크(트랙 2) 또는 정부 관계자와 전문가 그룹의 혼합 협의체(트랙 1.5)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전까지 계속되어 왔던, 이를테면 한일신시대 공동연구와 같은 사업들을 폐기하지 말고 지속함으로써 여건을 조성하면서 2015년 이후를 기약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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