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티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석좌교수는 지난 11일 인터뷰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촛불시위로 표출되고 있는데 아마도 1987년 서울 민주항쟁보다 더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감을 보였다. 그는 이후 15일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서울을 떠나기에 앞서 12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시위에 5시간 동안 참여했는데 시민들의 열기가 놀라운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스티븐 해거드 美UCSD 석좌교수

 

스티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석좌교수는 한반도와 아시아 문제에 밝은 미국의 대표적인 정치학자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마커스 놀런드 수석부소장과 함께 한반도 현안에 대해 가장 부지런하게 논평을 하는 블로거로도 유명하다. 해거드 교수가 1990년에 쓴 ‘주변국들의 진로(Pathway from periphery)’는 한국과 대만 등 신흥공업국의 경제성장이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 덕분에 이뤄진 것임을 분석한 정치학계의 명저로 꼽힌다. 미국 대선이 여론조사기관이나 전문가들의 관측과 달리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로 끝나 미 워싱턴 정가와 주류 사회가 충격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그를 만나 트럼프 시대 한·미 관계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해거드 교수는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가 지난 1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미국 신 행정부 출범과 한반도 평화통일’ 세미나 참석차 10일 방한했다. 그는 이 세미나에 앞서 주최 측에 ‘미국 신 행정부의 외교전략’이란 제목의 발표 요지를 보냈는데, 주어는 트럼프가 아니라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이었다. 11·8 대선이 실시되기 전 작성된 발표문에서 “클린턴이 대선에서 승리할 것을 가정했을 때”를 전제로 클린턴 신 행정부의 정책을 전망하면서 발생한 해프닝이었다. 그는 이날 오후 주제 발표에 앞서 “대선에서 클린턴이 승리할 것이라는 예측이 빗나가는 바람에 쓸모없는 자료가 됐다”고 해명한 뒤 트럼프 시대 한반도에 대해 설명을 했다. 이 때문에 세미나 후 진행된 인터뷰도 미 대선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했다.

 

―세미나 발표문이 클린턴의 당선을 전제로 쓰였는데.

 

“누구도 트럼프의 당선을 예상하지 못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선거 결과가 놀랍고 충격적이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패배한 이유는 흑인과 히스패닉 등의 표는 분산된 반면 저학력 백인 남성노동자들의 표가 공화당의 트럼프로 몰렸기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인데.

 

“이번 대선의 주요 쟁점은 자유무역과 일자리 문제였다. 노동계층의 임금은 지난 20여 년간 정체됐고, 이런 측면은 공화당이나 민주당에 모두 심대한 이슈가 됐다. 백인 노동자층의 표심이 아주 중요했다. 그래서 클린턴이나 트럼프 모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한 TPP가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에도 영향을 미쳤고, 백인 노동자층에 특히 민감하게 다가온 것이다. 주로 저학력 백인 노동자들이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것 같은데, 그들만이 트럼프를 찍은 것은 아니다.”

 

―트럼프는 당선 직후 첫 트위트에서 “잊어진 사람들을 잊지 않겠다”고 했고, 뉴욕타임스는 10일 ‘누가 잊어진 사람들인가’에 대한 칼럼을 게재했다. 도대체 누가 잊어진 이들이고, 민주당은 왜 이들을 방기했다고 보는가.

 

“전통적으로 민주당은 백인 노동자층의 지지를 받아 왔다. 그렇지만 민주당은 백인 노동자층의 이해관계만을 반영하는 당은 아니다. 종교적으로도 다양한 지지층이 있고, 인종적으로도 흑인과 아시안, 히스패닉 등이 지지하고 있다. 또한 성적소수자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등 민주당은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서 진보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나 오바마 대통령은 대선 캠페인 때 백인 노동자층의 이해관계를 반영해 당선됐다. 그런데 올해 대선의 경우 클린턴은 백인 노동자층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하지 못했고 그게 패인이다.”

 

―이번 미국 대선의 투표율은 56.9%인데, 2012년 대선 때보다 낮다. 트럼프가 유세과정에서 여성혐오적 발언을 하고 무슬림 비하 발언을 하는 등 수많은 논란을 일으켰는데도 정작 민주당 지지층은 투표장에 나오지 않은 것 같다.

 

“투표율이 전반적으로 낮은 것은 사실이다. 공화당 지지 유권자들의 투표율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는데 민주당 지지 유권자들의 투표율이 더 떨어졌다. 이게 중요한 포인트다. 트럼프가 공화당 유권자들의 표를 많이 받은 것은 아니다. 그것은 환상이다. 많은 공화당 지지 유권자들은 트럼프에게 표를 주지 않았다. 문제는 클린턴과 트럼프가 아주 인기 없는 후보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투표율이 떨어졌는데 민주당 지지자들의 투표율이 더 떨어지면서 클린턴이 진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것은 아니다. 선거인단에서는 트럼프가 290명을 확보해 승리했지만, 일반 투표(popular vote)에서는 클린턴이 100만 표가량을 더 받았다. 일반 투표에서는 클린턴이 승리한 것이다.”

 

―트럼프의 대선 승리를 과대평가할 필요는 없다는 것인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일반 투표에서는 트럼프가 클린턴에게 졌다는 점이다. 최근의 5번 대선에서 2번째로 대선 승리자가 일반 투표에서 진 것이다. 트럼프가 압도적인 국민적 지지를 받은 것은 아니다. 몇몇 경합주에서 약간 표를 더 얻었을 뿐이다.”

 

―오늘 세미나에서 ‘미국 대선과 미·중 관계’ 주제 발표를 맡은 중국 난징(南京)대 주펑(朱鋒) 교수는 이번 미국 대선을 미국의 혁명이라고 했는데 동의하는가.

 

“글쎄…. 물론 트럼프가 불만에 가득 찬 유권자들을 동원하는 데 성공한 것은 사실이다. 경제 엘리트나 미디어, 정치 엘리트들이 중산층과 노동자층 유권자들의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측면이 있다. 선거 캠페인을 엘리트가 주도한 결과 그들을 제대로 못 본 것 같다.”

 

―미국 사회가 트럼프 당선으로 큰 충격에 빠져 있는데, 한국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정국이 혼란스럽다.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고, 정치권에서는 탄핵론이 나온다. 한국 문제에 밝은 정치학자로서 박 대통령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풀어나가야 한다고 보는가.

 

“내가 보기에 박 대통령 문제에는 3개의 옵션이 있다.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이 첫 옵션이다. 그것은 어렵고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국회의 대통령 탄핵절차는 복잡하고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둘째는 박 대통령이 스스로 사임하는 것이다. 시위가 점점 확대돼 그것을 막을 방법이 없을 경우 사퇴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야당은 대통령 사퇴에 대해 신중하다. 유리한 점과 불리한 점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통합 거국내각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단기적 옵션인 것 같다. 한국은 강력한 대통령제 국가인데 이런 체제에서 거국내각이 구성되더라도 총리가 어떤 권한을 갖게 될지, 헌법에서 규정하는 대통령의 권한과 역할을 얼마나 대행할 수 있을지, 대통령은 군 총사령관인데 그 역할은 또 어떻게 행사돼야 하는지에 대해 쉽게 해법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앞으로 정국이 어떻게 될 것으로 보는가.

 

“박 대통령의 국정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황교안 총리가 사퇴하면 차기 총리는 언제 선출돼 국정을 맡게 될지 불투명한 상태다. 정국이 아주 유동적인 상황을 맞고 있다. 더구나 박 대통령은 페루 리마에서 개최되는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도 못 가게 돼 한국은 정상외교 측면에서 벌써 타격을 입고 있는 상태다.”

 

―1970년대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과 최순실 사건을 비교한다면.

 

“워터게이트 사건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내가 보기에 최순실 사건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탄핵 및 하야로 연결된 워터게이트 사건보다 훨씬 심각한 것 같다.”

 

―어떤 면에서 그렇다고 보는가.

 

“이번 스캔들의 전모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최순실 씨가 대기업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딸 정유라 씨를 이화여대에 부정 입학시킨 것을 볼 때 훨씬 심각하다. 최 씨가 박 대통령에게 어떤 수준으로 영향을 미쳤는지 밝혀져야 하지만 그런 모든 것이 범죄이고 헌법위반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최순실 사건보다 훨씬 심각한 것 아닌가.

 

“어떤 면에서 그렇게 보느냐.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단순하게 2개로 나눠 볼 수 있다. 우선, 워싱턴 워터게이트 호텔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 도청장치를 설치한 것이고 당시 닉슨 대통령은 그 사실을 몰랐다. 이후 도청장치 설치 사실이 밝혀진 뒤 닉슨 대통령은 비로소 알게 됐다. 어떤 면에서 워터게이트 사건이 최순실 사건보다 더 심각하다고 보는 것인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현직 대통령을 사퇴로 몰고 간 역사적 스캔들이라고 생각하는데 최순실 사건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데다 아직 전모가 드러나지 않아 직접 비교가 어렵지 않을까.

 

“워터게이트 사건은 단순하지만 최순실 사건은 캐면 캘수록 복잡하다. 전모가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아주 심각한 게 사실이다.”

 

―한국의 정치 현안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세세히 파악하고 있는가.

 

“나는 그저 발생한 사건을 알고 있는 것이지 한국 문제에 대해 깊이 있는 논쟁을 할 수준은 아니다.”

 

―다시 미 대선 얘기를 해보자. 트럼프 행정부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는가. 앞으로 4년간 어떤 일이 있을 것으로 보는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팀은 경험이 없는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이들이 무엇을 할지 정말 예상하기 어렵다.”

 

―노무현정부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을까.

 

“그런 측면이 있다. 행정부가 교체되면 4000여 개의 직책이 바뀌는데 그 자리를 누가 채울지 누구도 알 수 없다. 트럼프가 행정부를 출범시키려면 내각 요직에 인사들을 배치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어떻게 진행될지 현재로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역대 행정부 출범 때를 보면 통상적으로 그런 자리를 채우는 인사들이 대부분 알려졌는데 트럼프 행정부는 어떤 사람들로 채워질지 알 수 없다.”

 

―트럼프를 미국의 과거 대통령과 비교한다면.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다. 정치 기득권층의 밖에 존재하던 인물이 미디어를 이용해 대통령에 당선됐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21세기적 현상이다. 그는 미디어가 만든 피조물이다. 그는 미디어를 공격했지만 미디어가 만든 대통령이다. 말하자면 리얼리티쇼 주인공이 대통령이 된 것이다. 그러니 트럼프는 역대 어느 대통령과도 비교할 수 없다.”

 

―그래서 어프렌티스(apprentice·초보, 트럼프가 출연했던 리얼리티쇼의 제목) 대통령인가.

 

“그렇다. 딱 맞는 표현이다.”

 

―앞으로 공화당은 어떻게 될 것으로 보는가.

 

“분명한 것은 트럼프의 유세가 성공적이었다는 점이다. 공화당은 그가 잘못 가고 있다고 했는데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공화당은 트럼프의 패배를 예측했는데 그것이 빗나간 것이다. 트럼프가 선거에서 승리한 이상 공화당이 트럼프와 함께 일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성이 일고 있다. 공화당 인사들은 이제 트럼프와 함께 일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다. 대통령의 파워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물론 2012년 대선 후보였고 트럼프 후보 교체론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밋 롬니와 같은 사람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일하기 어려울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폴 라이언 하원의장이나 미치 매코널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의 행보인데, 이들은 트럼프와 정책이 많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와 일정하게 협력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민주당은 대선과 상원, 하원 선거에서 모두 패배했는데 민주당의 미래에 대해선 어떻게 보는가.

 

“민주당은 선거에서 패했지만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등이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그가 클린턴보다 더 경쟁력 있는 후보였을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샌더스 의원은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주 등에서 클린턴보다 더 잘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흑인이나 히스패닉 표를 얻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샌더스가 클린턴의 러닝메이트로 나섰다면 달라졌을까.

 

“그 질문에는 대답하기 힘들다. 우리가 역사를 가정해서 쓸 수는 없는 일이다.”

 

―미국 대선 후 대표적인 민주당 지지주인 캘리포니아에서는 연방에서 탈퇴하자는 캘렉시트(Calexit) 주장이 일고 있는데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미국은 연방시스템이다. 한국인들이 이해하기 어렵지만, 각 주가 많은 권한을 갖고 움직이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각 주에 더 권한을 주자는 얘기를 하고 있다. 원래 그 이슈는 공화당의 어젠다였다. 캘리포니아가 미 연방과의 관계 변화를 원하지만 그렇다고 탈퇴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연방 탈퇴라기보다 주 단위에서 주의 권한과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주장이다.”

 

―오늘 세미나에서 ‘트럼프는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해온 TPP를 중단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는데 동의하는가.

 

“TPP의 구성요소가 일부 사문화됐다고 볼 수는 있지만, 그중 군사적인 측면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바마 행정부는 ‘피벗 투 아시아’(아시아 재균형 정책)를 제창하면서도 군사적 측면은 간과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유세과정에서 미국의 군사력 현대화를 강조하면서 군사력 강화론을 폈다. 트럼프가 주장대로 군사력 강화에 나선다면 아마 해군과 공군, 해병대를 강화할 텐데 이들 중 일부는 아시아로 배치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피벗 투 아시아의 군사적 요소가 강화되는 것이다. 그러니 피벗 투 아시아가 죽었다고 볼 수는 없다. 말하자면 트럼프 시대엔 군사적인 측면의 피벗 투 아시아가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유세 중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을 내비쳤는데 아시아에서 미군의 역할은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인가.

 

“트럼프가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주한미군 감축 얘기를 꺼낸 것은 분담금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전략일 뿐이다. 주한미군 철수 주장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없다.”

 

―왜 없다고 보는가.

 

“미군이 동맹국인 한국에서 철수할 경우 이는 한국을 약화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미국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물론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이 어떻게 될지 봐야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다.”

 

―한국의 일부 논자들은 트럼프가 주한미군을 감축하거나 철수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거듭 말하지만 주한미군 감축은 한국을 약화시키는 것일 뿐만 아니라 동북아에서 미국의 역할을 약화시키는 결정이다. 그러니 앞으로 있을 주한미군 관련 협상에서 한국이 이 문제를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 나는 트럼프가 협상 전술 차원에서 그런 얘기를 한 것이지 한·미 동맹의 의미를 경시하거나 한국 방위 의지가 약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북한은 핵실험을 계속하고 있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로 한국은 물론 미국 본토까지 잠재적으로 위협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트럼프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과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주한미군의 존재는 여전히 중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주한미군의 위상과 의미를 격하시킬 이유가 없다.”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한국의 우파세력에는 핵개발의 길이 열리고, 좌파세력에는 미군 철수의 길이 열린다는 점에서 한국에 축복일 수 있다는 얘기를 여러 번 했는데.

 

“나는 문 교수를 좋아하지만, 그런 아이디어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한·미 동맹은 지속될 것이고, 트럼프에도 불구하고 미군은 한국을 지키고, 한국은 핵개발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한·미 동맹은 강건하게 유지될 것이다. 한국은 핵무기가 필요하지 않은 상태가 될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이미 주한미군 분담금으로 1조 원 가까이 부담하고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비용의 얼마를 부담하는 거야’라고 물으면서 ‘너무 적은 거 아닌가’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협상 입지를 선점하기 위한 제스처일 뿐이다. 주한미군 지위는 확고하고 근본적인 것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페루 리마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 가는 길에 17일 뉴욕에 들러 트럼프와 회동하는데 이런 협상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오늘 세미나 주제 발표 때 중국과 북한에 북핵 관련 특사 파견 가능성을 제안했는데 어느 수준급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아주 고위급 인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실무급 정도가 아니라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과 같은 고위급 인물이 필요하다. 고위급에서 얘기를 진행할 수 있는 인사여야 한다.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나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전직 상원의원 수준은 아니고, 중국 측에 미국의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수준의 인사, 말하자면 오바마 행정부에서 중동평화특사를 맡았던 조지 미첼 같은 협상가라고 할까? 여하튼 중국과 북한의 고위급 인사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초강력 제재를 유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협상을 위한 고위급 특사를 파견하라는 것인가.

 

“누구도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라고 보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양 측면 모두에서 게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을 방어하고 미국의 동북아 이해를 추구하는 동시에 한편으로 강력한 제재 속에서 협상을 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를 논의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비난에 열중할 게 아니라 협력하고 협의하면서 북핵 문제를 풀어야 한다.”

 

―오늘 세미나 발표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북핵이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그렇다. 트럼프는 중국과 무역문제, 이란 핵협상 합의 등에 더 관심이 있다. 이란 핵 합의에 대해 트럼프는 지속적으로 반대해 왔다. 특히 트럼프는 정치·행정 분야에 문외한이라서 트럼프 행정부가 구체적으로 정책에 집중하며 작동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트럼프 행정부로의 권력이동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아마추어들이 너무 많아 행정부가 세팅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남중국해,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 등 수많은 문제가 있고 중국과 협력해야 할 사안도 많은데 각각의 쟁점들에 어떻게 접근하고 풀어야 할까가 문제다. 그런 만큼 행정부 출범 후 곧바로 북핵 문제에 집중할 것으로 보기 힘들다. 북한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그 문제가 최우선시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북핵 특사를 제안한 것인가.

 

“그렇다. 중국과는 남중국해 문제 등 갈등하는 문제가 많지만 북핵 문제는 그런 사안들과 분리해 상호 협력하며 해결방안을 찾자는 의미에서 특사 파견 방안을 검토해 보자는 것이다.”

 

워터게이트 사건 = 1972년 6월 17일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비밀공작 요원들이 민주당 전국위원회(DNC)가 있던 워싱턴 시내 워터게이트 호텔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워싱턴포스트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는데 이 과정에서 선거 방해와 부정 정치헌금 등 닉슨 정권의 부정부패가 드러났다. 닉슨 대통령은 1974년 7월 말 하원 사법위원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채택된 후 8월 8일 사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