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바이든 대통령 집권 이후 그동안 단절되었던 북미 대화의 재개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대화 재개 의지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냉소적인 태도로 인해 여전히 대화의 물꼬를 트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신성호 교수는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과 북한 사이를 중재할 해결사로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이 다시 한번 중요하다고 분석하며,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다시 만남으로써 북미대화까지 부활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 이후 중단된 북미 간 대화 단절이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다. 일단 새로이 들어선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메시지는 긍정적이다. 트럼프 식의 통 큰 딜을 추구하지는 않겠지만 (no grand bargain) 여전히 조율되고 실증적인 접근 (Calibrated and pragmatic approach)을 통한 대화를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5월의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남북간의 판문점 공동선언 (2018.04)는 물론 트럼프-김정은 간의 싱가포르 북미 합의 (2018.06)에 기초한 대북정책 기조를 이어나갈 것을 천명했다. 공동 기자회견장에서 트럼프 행정부에서 북미협상의 주요한 실무를 담당했던 성 김 대사를 신임 대북정책특별대표로 소개하고 박수를 보낸 바이든 대통령의 대북 대화 재개 의지는 매우 명확해 보였다.

 

미국의 대화재개 의지와 북한의 냉소적 반응

 

그러나 이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여전히 냉소적이다. 최근 코로나로 인한 심각한 내부 위기를 인정한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6월 중순에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독자적인 노선을 강조하면서도 향후 대미관계에서 “대결과 대화에 모두 준비할 것”을 지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김 위원장의 발언을 “흥미로운 신호”로 평가한 제이크 설리반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발언에(6월20일) 대해 김여정 부부장은 곧바로 “꿈보다 해몽”이라며, 미국의 잘못된 기대와 실망을 경고하며 찬물을 끼얹었다(6월22일).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과의 빅딜을 기대하며 기차를 타고 수천 킬로를 달려간 최고 존엄 김 위원장을 빈손으로 돌아오게 한 하노이의 충격이 북한의 당국자에게는 다시는 되풀이 하고 싶지 않은 뼈아픈 트라우마로 남아 있을 것이다. 하물며 트럼프의 대북외교를 비판하며 대통령에 당선된 바이든 행정부와의 외교 협상에 대한 의구심은 더욱 클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주도하는 각종 제제의 철회 없이는 김위원장이 원하는 경제건설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지난해 10월 열병식에서 인민의 고난을 언급하며 눈물을 흘린 김위원장이 결국은 북미대화에 나설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문제는 대화의 물꼬를 트기가 양측 모두가 쉽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 입장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척점에 있는 새로운 바이든 행정부와의 대화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가지기가 매우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바이든 행정부와 한층 대립각을 세운 중국이나 러시아에게 중재를 요청하기도 어렵다. 바이든과 통하기 위해 한국을 다시 한번 이용해야 하는 이유이다.

 

북한이 한국의 현 정부와 대화를 재개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바이든 정부가 한국 정부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바이든 대통령은 일본에 이어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과 취임 후 두 번째 대면 정상회담을 가졌다. 혹자는 그래봐야 스가 총리에 이은 두 번째 정상회담이라는 정도의 의미를 부여할지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일본을 제외하고 모든 나토 동맹국이나 캐나다나 멕시코 등 이웃국가를 제쳐놓고 취임 후 두 번째 대면 정상회담 상대로 한국을 초청한 점이다. 더구나 한미정상회담은 미일정상회담에 비해 그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모두 더욱 의미 있는 정상회담으로 평가 되었다.

 

둘째, 바이든 정부에게 북한 핵 문제나 북미 회담이 외교 문제의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재임 내내 가장 중요한 아젠다로 삼았던 트럼프 대통령과 비교된다. 바이든 행정부는 당장 코로나 대응, 대규모 경제부양, 첨예한 인종 및 사회갈등 치유, 인프라 투자 등 산적한 국내 문제에 집중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이는 마치 코로나 질병위기, 국경폐쇄로 인한 경제위기, 자연재해로 인한 식량위기의 3중고를 앓고 있는 김정은 정권의 절박한 상황과 비슷하다. 여기에 외교 문제도 아프가니스탄 철군, 나토 등 동맹복원, 러시아의 관계 설정, 최근 불거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은 물론 이란과의 핵협상 등 당장 급한 현안문제가 쌓여있다. 물론 중국과의 무역, 인권, 기후 변화 등의 문제를 포함한 새로운 관계 설정은 당연히 중장기적으로 바이든의 미국에 가장 중요한 외교 현안이 될 것이다. 북한이 원하더라도 바이든이 북한 협상에 집중할 동인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셋째, 이번 G7 정상회담을 통해 확인된 한국의 국제위상이다. 북한이 비록 세계 9번째에 해당하는 핵 강대국이 되었다고 스스로 자임하더라도 한국 역시 종합국력에서 명실상부한 세계 10위권의 강대국 반열에 들어선 것이 이번 회의를 통해 증명되었다. 비록 이번 회담에 참관인 자격으로 초청되었다 하더라도 회담장에서 일본을 제외한 모든 회원국이 한국의 코로나 방역과 그동안 축적된 경제력, 기술력에 경의와 찬사를 보내는 모습이 확연히 드러났다. 북한은 비핵화 협상을 미국과 순조롭게 진행한다면 각종 경제제제가 제거되고 경제 개발을 본격적으로 추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지리적으로나 인종, 언어적으로 가장 가까운 대한민국이 될 것이다. 그 이전에 지금 당장 북한이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코로나 방역에서도 한국의 지원과 노하우가 가장 효과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넷째, 다가오는 한국 대선과 문재인 대통령의 국내 정치적 요인이다. 내년 5월로 다가온 대선을 놓고 집권당과 야당 그리고 이들 내부의 각종 후보들 간에 대선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이는 반대로 이제 임기를 1년도 채 안 남긴 현 정부에게는 레임덕 현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시기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런데 심상치 않은 것이 현재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얼마 전까지 하락하는 모습에서 다시 반등하여 40% 대 내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임기 1년이 안 남은 역대 대통령 지지율과 비교할 때 이례적으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분석된다. 예를 들어 김정일 위원장과 2007년 임기말 12월 대선을 앞두고 10.4 정상회담을 가진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20퍼센트 초반의 지지율로 극심한 레임덕 현상을 겪은 것과 대조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고 하면서도 “바이든 대통령이 남북대화와 화해, 협력을 지지하고 있다” 고 말했다.

 

북미대화 재개를 위해 중요한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

 

바이든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의 제안에 따라 트럼프-김위원장의 싱가포르 합의를 미국의 대북정책으로 인정했다. 비핵화 조건만 맞는다면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실무접촉을 앞세우는 바이든 대통령과 톱다운 방식의 협상을 선호하는 북한 사이의 딜레마를 중재할 해결사로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이 다시 한번 중요할 수 있는 시점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가장 신임 받는 파트너로 떠오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다시 만나 북미대화를 부활시켜야 하는 이유이다. ■

 

 

신성호 -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미국 터프츠 대학교 플레쳐 스쿨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분야는 군사안보, 미국 외교 정책, 동아시아 및 한반도 정세이며, 저서 및 논문으로는 《북핵문제와 한반도 평화정착》(2008, 공저), “Dilemma of South Korea’s Trust Diplomacy and Unification Policy”(2014,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 Unification Studies)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 표광민 EAI 선임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3) I ppiokm@eai.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