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세계 양대 경제대국 간 무역갈등이 격화되면서 세계경제질서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미중 간의 갈등은 과거와 달리 기존의 무역 규칙과 규범을 넘어서는 범위에서 전개되고 있어, 그 여파가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 게다가 한국처럼 대외의존도가 높은 국가에게는 더욱 치명적입니다. 이에, EAI는 연일 확대 일로를 걷고 있는 미중 미역전쟁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이며, 한국 경제 및 아태 지역 질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살펴보고, 한국의 대응전략에 대해 고민해 보고자 스페셜 리포트를 기획하였습니다. 이번 스페셜 리포트에는 국내 전문가 4인이 집필진으로 참여하였습니다. 필자들은 공히 미중 무역전쟁으로 가속화되고 있는 통상 환경의 거대한 변화를 지적하며, 이에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통상정책 설계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I. 서 론 (Executive Summary)

EAI는 2017년 2월 탄핵정국을 넘어 탄생할 새 정부 5년의 신통상정책 과제와 전략을 제시한 바 있다("향후 5년 한국의 신통상정책 제언: 트럼프 정부의 공격적 일방주의 파고 넘기"). 당시 보고서에서 "트럼프 3대 리스크"로 꼽은 한미 무역갈등, 미중 무역갈등, 아태지역질서 공백 중 1년 6개월이 지난 현 시점에서 한미 무역갈등은 한미 FTA 재협상 등을 거치면서 일단락 되었지만, 가장 크게 우려하였던 미중 무역갈등과 이에 따른 지역질서 혼란은 이제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형국이다.

2018년 5월 27일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미국의 대규모 관세부과 계획 발표로 촉발된 미중 무역갈등은 중국의 보복 관세부과와 미국의 잇따른 맞대응으로 점차 격화되고 있다. 물론 그간 양국 간에 무역마찰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1년 중국의 WTO 가입 이후, 미중 양국은 수시로 무역구제 및 분쟁해결절차 등을 통해 서로를 견제해 왔다. 다만, 과거에는 WTO 체제 아래 통상적인 수준에서 견제가 이뤄졌다면, 이번 갈등은 기존의 무역규칙과 규범을 넘어서 보복의 악순환이 전개되는 "무역전쟁"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세계 양대 경제대국이 본격적 갈등 국면에 접어들면서 세계무역질서에 격랑이 일고 있다. 한국처럼 대외의존도가 극도로 높은 국가에게 이러한 현실은 위협적이다. 한국의 1, 2위 교역상대국이 상호 긴장의 수준을 높이게 되면 한국경제 전반에 닥치는 파고는 상상외로 클 수 있다. 또한 무역갈등으로 미중관계가 전반적으로 악화되어 전략적 경쟁이 고조되면 양국 사이에 낀 한국의 안보 이익은 크게 위협받을 수 있다. 과연 미중 무역갈등은 어떻게 전개될 것이며 어디까지 갈 것인가. 지역질서와 한국경제에 주는 영향은 어느 정도이며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미중 무역전쟁의 성격

본래 경제의 세계는 윈윈(win-win)하는 비영합(non zero-sum) 게임의 장이다. 따라서 상호 손실을 보게 마련인 무역전쟁은 비경제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예컨대,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안보(national security) 측면에서 철강과 알루미늄 수입을 억제하겠다는 무역법 232조에 근거하여 수입규제를 단행하고, 양국 간 무역적자를 교정하기 위해 관세장벽을 설치하겠다는 경제이론에 반하는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 스페셜 리포트에 참여한 필자 모두 현 상황은 경제 논리를 넘어 국내정치 및 국제정치 논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이승주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다차원적 복합게임"이 전개되는 무대로 진단하고 있다.

최병일의 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공세적인 통상정책의 밑바탕에는 대내적으로는 자신의 지지세력을 결집시켜 정치적 입지를 공고히 하려는 의도가 담겨져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이러한 정책을 통해 대중 무역적자폭을 크게 축소할 경우, 이는 그가 처한 정치적 난관에 대한 타개책이 될 뿐만 아니라 대선가도를 밝히는 청신호가 될 것이라 전망한다.

대외적으로는 세계 제2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을 경계하고, 향후 세계경제질서를 좌우할 첨단산업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의도가 자리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번 무역전쟁에서 중국의 첨단산업 육성책인 ‘중국 제조 2025’를 겨냥하고 있는 이유는 중국이 경제 규모 면에서 미국을 추월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할지라도, 기술 혁신이 핵심인 질적인 측면에서는 선도적 지위를 내주지 않겠다는 데 있다. 본 기획 필진 모두가 강조하듯이 이번 미중경쟁의 숨겨진 본질은 기술패권을 둘러싼 경쟁이다.

따라서 중국 역시 ‘중국 제조 2025’에 대한 미국의 공세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기술 강국으로의 도약을 위한 중국의 산업정책으로 국가 핵심이익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숫자에 대해서는 조율이 가능하나, 시스템 자체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또한 중국이 과거 도광양회(韜光養晦: 빛을 감추고 힘을 기른다)의 노선을 걷던 모습과 달리, 미국의 거센 공세에 '선언 대 선언, 행동 대 행동'의 패턴을 보이면서 당당히 맞서는 이면에는 중국몽과 중국굴기를 앞세우며 1인지배체제를 다져온 시진핑 체제의 정치논리가 작용하고 있다.

문제는 시진핑 체제의 민족주의적 강경노선이 미국과의 무역갈등을 심화시켜 경기침체로 이어지고 국제적 위상에 손상을 입게 되면 체제 안정성에 위협을 가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트럼프 역시 경제적 상호의존이 심화되어 있는 중국과 갈등을 증폭시켜 본격적인 전략적 경쟁의 단계로 진입하기에는 정치적으로 여러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따라서 양국은 갈등을 관리하고 출구전략을 끊임없이 모색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미중 무역 갈등은 서로 마주보고 달리는 전면적 대결 양상 혹은 극적인 타결로 이를 가능성은 공히 낮은 반면, 설치된 장벽을 넘고 달리기를 반복하는 장거리 장애물 경주의 모습을 보일 것이다.


아태지역질서의 미래

이승주의 글은 트럼프 정부의 통상정책이 자유주의와 다자주의에 기반한 아태 무역질서를 교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WTO나 TPP 등 다자주의 질서가 '공정한 자유무역'을 보장하지 못한다고 보고 힘의 우위에 바탕을 둔 양자주의적 접근이 국익을 관철시키는데 유리하다고 판단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 직후부터 한미 FTA 개정에 착수하고, 아베 정부에게 미일 FTA 협상을 요구하는 등 전통 우방에 대해서도 양자주의에 기반하여 ‘공정하고 균형 잡힌’ 관계를 형성하고자 한다. 나아가, 트럼프 정부는 아시아 지역에 대한 재균형 정책을 구사했던 오바마 행정부와 달리, 지역 질서의 중심축을 서진시켜 인도•태평양으로 확대하면서 중국을 겨냥한 지역 네트워크를 포괄적으로 형성하겠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양자관계에 기반한 네트워크의 허브에 미국을 위치시키겠다는 구상이라는 점에서 '허브-앤-스포크 2.0'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승주는 미중 무역갈등이 상황 전개에 따라서는 세계무역질서에 근본적 변화를 초래할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구조적 대응의 방향을 수립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에 긴밀한 이해를 가진 국가들 사이의 협력의 토대를 강화하는 전략을 추구해야 하며, 특히 RCEP, 한중일 FTA, 한일 FTA 등 한국이 추진했던 기존 FTA와 최근 타결된 CPTPP에 대한 가입 여부 등을 사안별로 대응하기보다 큰 그림 하에서 상호 연계하여 전략적으로 추진하는 거시적·통합적 접근법을 요청하고 있다.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

미중 무역전쟁은 한국처럼 대외의존도가 높은 국가에게는 치명적이다. 게다가 이 두 국가가 한국의 1, 2위 교역상대국이라는 점에서 더욱 위협적이다. 정철의 글에 따르면 미중 무역전쟁이 단기적으로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나, 미중 무역전쟁의 전선이 확대되고 장기화되는 경우, 실물부문의 영향은 물론이고 금융부문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관세전쟁의 형태로 전개되고 있는 무역전쟁의 전선이 환율조작국 지정 등 환율전쟁으로 확대될 경우, 국내 외환시장은 물론 실물부문을 포함한 국내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그는 첨단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정부차원에서 첨단기술 유출을 막기 위한 선진국 들의 외국인 투자정책 변화를 분석하여 제도적 보완책을 강구하고, 환율전쟁 가능성에 선제적으로 대비하며, 외국인 자금 이탈과 환율 및 금리에 미칠 영향 등에 대비하여 외환시장 안정화조치, 통화스와프 확대, 가계부채 관리 등 국내 금융시장 건전성 확보 노력 등을 주문하고 있다.

끝으로 이재민의 글은 미중 양국 사이에서 거친 대응을 감수하고 있는 한국이 추구해야 할 통상외교를 제시한다. 사드(THAAD) 보복조치를 계기로 중국은 강하게 압박하면 한국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고, 미국은 한국이 중국에 양다리를 걸치고 대미교역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 불만을 표시하며 동맹국 지위가 무색할 정도로 일련의 무역 압박을 가해 왔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책으로 필자는 강대국 눈치를 살피고 선처를 바라는 소극적 대응을 탈피하여, WTO나 기존 통상협정에 기초하여 당당한 원칙적 대응, 객관적이고 균형감 있는 대응을 주문하는 한편, 뜻을 같이 하는 국가들과 공조체제를 강화해 나가는 중견국 외교 추진을 역설하고 있다.

끝으로 이 리포트의 필자들은 한 목소리로 통상 환경의 거대한 변화를 지적하고 있다. 힘에 의한 무역정책, 양자주의, 보호무역주의, 안보·통상 연계, 신흥이슈 등장 등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고 있으므로 이를 "뉴 노멀"(New Normal)로 받아들이고,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새로운 통상정책 설계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