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미국과 중국의 경제 관계는 주로 지역아키텍처의 재설계를 둘러싼 경쟁의 측면이 부각되고 있으나, 그 근저에는 양자, 소다자, 다자 차원의 경제 관계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미국은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경제 관계를 강화해왔다. 미국의 관점에서 볼 때, 지역아키텍처 재설계의 핵심은 중국의 영향력 증대를 선제적으로 차단하여 자국에 유리한 지역 질서를 구축하려는 것이며, 이를 위해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경제 관계를 다각적으로 조정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경제 관계의 조정은 향후 미국과 중국의 협력과 경쟁에 영향을 미치는 기본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향후 세계 질서의 변화와 지역아키텍처의 재설계의 성격을 전망하기 위해서는 그 저변에서 작용하는 미중 양국의 상호 경제 관계뿐 아니라, 미중 양국이 아시아 또는 지구적 차원에서 다른 국가들과의 경제관계를 어떻게 형성하는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만, 지금까지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무역과 그를 기반으로 한 무역아키텍처의 형성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면, 향후 경쟁의 무대는 투자와 원조,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지역 질서의 설계로 더욱 확대되어 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일대일로정책과 그 제도적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Asia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 AIIB)을 추진하고, 미국이 일본 등 주요 우방국들에 대해 참여를 사실상 거부하도록 하는 등 동아시아 지역의 지역 아키텍처를 둘러싼 경쟁은 이미 그 영역을 빠르게 확대해 나가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정책 및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 추진과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아시아 국가들과의 경제 관계를 기반으로 한 지역아키텍처 건설이라는 측면에서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이 글에서는 그 중에서도 투자와 원조의 연계라는 관점에서 미국과 중국의 경제 전략을 검토한다. 이를 위해, 미국과 중국의 대외원조와 투자 규모의 변화 추이를 바탕으로 미중 양국이 아시아 국가들과 형성하고 있는 경제 관계를 검토하고 이어 중국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와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을 투자와 연계의 고리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며 끝으로 미국과 일본이 일대일로와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인식에 근거하여 정책 공조를 실행하는 양상을 검토한다. 

 

 


 

 

본문

 

이 글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지역 아키텍처를 재설계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경제 관계의 변화를 검토하였다. 지역 아키텍처 재설계와 역내 국가 간 경제 관계의 변화는 서로 쌍방향적 영향을 미치며 동아시아 지역 질서의 변화 성격을 가늠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글은 특히 미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주요국들이 투자와 원조를 연계하면서 경제 관계를 조정하는 현상을 검토하였다.

 

이 연구로부터 몇 가지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 동아시아 국가 간 경제 관계가 과거보다 포괄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직적할 수 있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동아시아 주요국들은 무역과 생산을 중심으로 경제 관계를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지역 경제 질서를 수립하려는 경쟁을 시도하였다.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 등과 관련한 논의와 협상이 지속적으로 진행된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중국이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을 창설하고 일대일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무역과 생산뿐 아니라, 투자, 금융, 원조 등으로 동아시아 국가들 간 경제적 상호 작용의 범위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또한 개별 영역이 독자적 중요성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영역 간 연계가 점차 강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무역과 생산, 생산과 투자, 투자와 원조 사이의 연계가 확대ㆍ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중국이 일대일로와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투자와 원조를 긴밀하게 연계하는 모습을 보이는 데 대해, 일본 역시 국내적으로 원조 절차를 개선하는 한편 새로운 인프라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등 원조ㆍ투자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둘째, 미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주요국들이 지역 아키텍처의 재설계라는 전략적 목표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경제적 수단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전략적 목표와 경제적 수단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지경학적 사고가 요청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거시적 차원에서 경제ㆍ안보 연계를 위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과도한 안보화와 과소 안보화 모두 이러한 전략적 접근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경제ㆍ안보 연계의 효과적 방법과 적절한 수준을 수립하기 위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셋째, 동아시아 주요 국가들은 지역 아키텍처를 재설계하는 새로운 게임에 돌입하고 있다. 이 게임은 하드파워 경쟁과 소프트파워 경쟁이 동시에 진행된다는 점에서 과거 강대국 간 경쟁과 그 성격을 달리 한다. 지역 아키텍처를 재설계하는 게임의 최상층에서 경쟁과 제한적 협력을 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 소프트파워 경쟁을 병행하고 있다는 것은 역내 국가들로부터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음을 의미한다(Goh 2013). 이는 한국과 같은 중견국이 지역 아키텍처를 재설계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전략적 공간이 열려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 공간을 전략적으로 활용하여 한국에 유리한 지역 아키텍처를 형성할 수 있는지는 한국 외교의 과제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계속)

 

 

 


 

 

저자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분야는 일본정치, 국제정치경제, 동아시아 정치경제, 동아시아 지역주의 등이며, 저서 및 편저로는 Trade Policy in the Asia-Pacific(2010, 공저), Northeast Asia: Ripe for Integration? (2008, 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