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4월 27일 '2018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될 예정입니다. 2007년 정상회담 이후 약 10년 6개월 만입니다. 그간 수 차례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못했던 북핵문제가 이번 회담을 기점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될지 세간의 관심이 높습니다. 그간 '선 평화협정, 후 비핵화'를 고집하던 북한이 협상에 나섰다는 것은 적어도 협상 과정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결과로 풀이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북핵 협상의 내용, 즉 비핵화와 체제보장이라는 핵심 개념에 대한 북한의 입장으로, 한국과 미국이 합의 가능한 범위의 제안일지가 관건이라고 하영선 EAI 이사장은 분석합니다. 결국 북한의 완전 비핵화 이행을 위해서는 핵무기 이상으로 북한의 자주 국방력을 보장하고 절대적 신뢰를 바탕으로 한 복합체제보장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하 이사장은 강조합니다. 

 


 

김정은의 2018년도 신년사를 분기점으로 북한 비핵화의 숙제 풀기는 전쟁과 평화의 청룡열차를 탄 것처럼 숨가쁘게 달리고 있다.  지난 해 전쟁 일보 직전을 방불케 하는 북미 간의 막말 공격은 지나가고, 새해 들어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석, 남북의 특사교환이 이뤄졌다. 이어서 북중정상회담 및 미국 특사와 김정은 위원장 의 면담이 있었고, 4월 20일에는 북한이 '신전략노선'을 발표했다. 그리고 4월 말 남북정상회담과 뒤이은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1994년의 제네바 기본합의 이래 2017년까지 여덟 번에 걸쳐 실패했던 북핵 숙제 풀기가 성공해 청룡열차의 어지러움에서 벗어나 북한의 완전 비핵화와 함께 한반도 평화체제라는 종착역에 도착하려면, 정상회담에 임하는 북한의 전략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고 한국과 미국, 중국을 비롯한 모든 당사국들이 숙제를 함께 풀어야 한다.

이러한 세기사적 숙제를 과거와 달리 성공적으로 풀려면 현재의 소박한 낙관론과 비관론을 넘어 복합적 시각에서 북한 '신전략노선'의 변화와 지속, 북한이 추진하는 정상회담의 목적을 당사국들의 기본 문건을 기초로 해서 밝힌 다음, 임박한 정상회담에서의 핵심 숙제인 북한의 완전 비핵화와 체제보장 문제에 대해 남북한과 미중을 포함한 관련 당사국들이 모두 합의할 수 있는 해답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북한의 '신전략노선': 변화와 지속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이 어떠한 전략적 변화를 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현재까지의 두 공식 발표문과 북한의 '신전략노선'을 조심스럽게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3월 5일 평양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 후 방북결과를 언론에 발표했다. 6개 항으로 되어 있는 발표문의 핵심은 세 번째 항으로, "북측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하였으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하였습니다."라고 되어 있다.

다음으로 김정은 위원장은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3월 26일 정상회담에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총서기의 유훈에 따라 한반도 비핵화를 이루는 것이 우리의 시종 변하지 않는 입장"이라고 했다. 이어서 "우리는 장차 남북관계를 화해협력 관계로 변화시킬 것이며 남북 정상회담을 거행하고, 미국과 대화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국과 미국이 우리의 노력에 선의로 응하고 평화와 안정 분위기를 만들고 평화 실현을 위한 단계적이고 동시적 조치를 취하면 반도 비핵화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두 발표문을 종합해 보면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체제보장을 위해 단계적이고 동시적 조치를 취하면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새롭게 볼 수 있는 것은 "단계적, 동시적 조치"라는 표현이다. 

북한은 2015년 10월 17일 외교부 대변인 성명에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원칙으로 한국과 미국이 요구하는 '선 비핵화 후 평화협정'이나 중국의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동시 추진하는 쌍궤병진(雙軌竝進)을 비현실적이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하고 '선 평화협정 후 비핵화'를 강조했다. 하지만 이번 김정은 위원장의 '단계적, 동시적 조치' 발언은 이러한 북한의 종래 입장과는 다르다. 오히려 중국의 쌍궤병진 제안과 유사하게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병행을 시사했다

그러나 북한이 북핵 협상의 '과정'에 대해 유연성을 보인 것처럼 북핵 협상의 '내용', 즉 비핵화와 체제보장이라는 핵심 개념에 대해서도 전략적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우선 3월 5일의 방북결과 발표문에는 "북측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으며"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3월 26일 북중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총서기의 유훈에 따라 한반도 비핵화 실현에 진력하는 게 우리의 시종 불변된 입장"이라고 비핵화를 언급했다. 관건은 "불변된 입장"의 내용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유훈'은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라 조선반도의 비핵화였으며, 이는 북한의 비핵화뿐만 아니라 남한 내의 핵 자산 유무, 나아가서는 한반도 주변의 전략 핵 무기 유무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북한의 한반도 비핵화 의지가 조선반도 비핵화라면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라 남북한의 동시 비핵화를 가리키는 것이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 18일 아베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달성하면 북한에게 밝은 길이 있다."라고 밝혔고, 문재인 대통령은 4월 19일 언론사 사장 간담회에서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고 다시 강조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4월 20일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공화국 핵무력건설에서 이룩한 역사적 승리를 새로운 발전의 도약대로 삼고 사회주의 강국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새로운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혁명적인 총공세를 벌려 나가야 합니다."라고 말하고, ‘신전략노선’으로서 첫째, 병진노선으로 핵무기 병기화를 믿음직하게 실현했으며, 둘째, 핵실험과 대륙간 탄도유도탄 실험발사를 중지하며, 셋째, 핵실험의 전면중지를 위한 국제 노력에 합세하며, 넷째, 핵위협이나 핵도발이 없는 한 핵무기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으며 어떤 경우도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으며, 다섯째,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며, 여섯째, 주변국들과 국제사회와 긴밀한 연대와 대화를 적극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전략노선’의 비핵화는 완전 비핵화 선언을 한 것이 아니라 최소 억지화를 위한 기존 핵무기는 보유한 채, 더 이상의 핵무기 실험과 대륙간 탄도유토탄 실험 발사를 하지 않겠다는 불완전 비핵화를 제시한 것이다. 

두 번째 핵심 개념인 체제 보장의 의미는 보다 포괄적이어서 의미의 변화를 판단하기가 더욱 까다롭고 논란의 여지가 크다. 3월 5일의 방북결과 발표문의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이라는 문구의 핵심은 북한이 어떠한 조건에서 자신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안전이 보장받았다고 인정할 것이냐 하는 문제다. 북한이 지난 20여 년 간의 북핵 협상에서 제시한 체제보장 방안들은 작은 차이는 있지만 큰 틀에서는 동일했다. 북한은 조선반도 비핵화를 위해서 첫째, 외교적으로 북미수교, 둘째, 경제적으로 제재 철회 및 경제지원, 셋째, 군사적으로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했다. 북한은 2016년 7월 6일에 공화국 정부성명으로 내세운 '체제보장 5개 원칙'으로 "첫째, 남한 내 미국 핵무기 공개,  둘째, 남한 내 모든 핵무기·기지 철폐와 검증, 셋째, 미국 핵 타격 수단의 전개 중단, 넷째, 대북 핵 위협 및 핵불사용 확약, 다섯째, 주한미군 철수 선포"를 제안했다. 최근 북미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북미 간 실무접촉에서도 북한은 북미수교, 평화협정과 함께 주한미군의 철수라는 표현 대신, 미국의 핵 전략 자산을 한국에서 철수하며 한미 연합훈련에서 핵 전략 자산의 전개를 중지하고, 재래식 및 핵무기로 공격하지 않는다는 5개 체제안전보장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내용상으로 핵 전략 자산 관련 조항은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해체의 또 다른 표현이다.

정상회담을 앞둔 북한의 전략 변화의 평가는 현재 낙관론과 비관론이 병존하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 협상 과정에 대한 입장 변화와 함께 두 정상회담이 가능했다. 그러나 협상 내용상의 변화는 보다 조심스럽게 평가해야 한다. 따라서 비핵화와 체제보장의 내용에 대한 북한의 전략적 변화를 한국과 미국의 최종 목표인 '완전 비핵화'의 시각에서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에서 명확하게 평가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북핵문제 해결의 실패 사례를 강조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의 자세다. 미국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이 충분히 확인되지 않는 한 ‘단계적, 동시적’ 비핵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선 비핵화 후 평화협정'의 입장을 강하게 주장할 것이다.

북한의 '신전략노선'과 정상회담

북한의 전략적 변화에 대한 조심스러운 검토와 함께 북한의 정상회담에 대한 기본 자세를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2018년 신년사에서 올해의 구호로 "혁명적 공세 속에 사회주의 강국 건설을 위한 모든 전선에서 승리를 쟁취하자."를 제시했다. 여기에서 북한이 말하는 전선이란 국내전선, 남북전선, 국제전선의 3개 전선을 가리킨다. 그리고 국내전선은 보다 세부적으로 군사, 경제, 문화, 정치사상의 네 전선에서 펼쳐지고 있다.

신년사는 핵·경제 병진 노선의 포기를 선언한 것이 아니라, 2017년을 핵 무력 완성의 해로서 평가하고 이를 바탕으로 2018년에는 병진노선의 또 다른 핵심 목표인 경제력 향상을 달성하는 데에 집중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다만, 작년 한 해 동안 한층 강력해진 국제 경제제재와 미국의 군사적 압박으로 북한은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으므로, 2018년에는 경제제재나 군사적 압박과 같이 사회주의 강국으로 나아가는 길에 장애가 되는 요소들을 완화하려는 노력을 세 전선에서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전선의 혁명적 공세는 외부 전선의 경제제재 압박과 군사적 위협으로 현실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이를 극복하기 위한 보조역량으로서 남북 전선을 활용하겠다는 것이 북한의 의도로 보인다. 북한은 2017년 정권교체 이후에도 한국 정부의 구태의연한 자세 때문에 남북관계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지만, 한반도가 당면하고 있는 긴박한 정세 때문에 남북은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적 환경을 마련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하자고 하면서, 한국 정부는 "미국의 무모한 북침핵전쟁책도에 가담하여 정세 격화를 부추길 것이 아니라 긴장완화를 위한 우리의 성의 있는 노력에 화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국제전선에서는 간략하게 ‘책임 있는 핵강국’으로서 핵무기를 최소한의 억지를 위해서 사용할 것이며,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파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신년사 이후 사회주의 강국 건설의 걸림돌이 되는 정세를 개선하기 위해 북한은 국제전선에서 북중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이어서 북미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핵·경제 병진 노선을 기반으로 한 사회주의 강국 건설의 가장 커다란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완전비핵화를 해야 한다는 자기 모순에 직면하고 있다. 이 모순을 풀기 위해, 북한은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중정상회담과 '신전략 노선'에서 '선 평화협정 후 조선반도 비핵화'라는 기존의 강경한 입장을 완화하여 불완전 비핵화와 실질적 평화협정을 병행해서 추진할 수 있다는 협상 의지를 밝히고,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협상 과정에서 일정한 대가와 보상을 얻어내려 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완전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위해 협상은 일단 시작될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협상 초기에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충분히 보이지 않는 한, 비핵화의 대가를 지불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협상 시작단계부터 미국과 북한의 상충되는 입장을 조율해야 하는 무거운 과제를 안게 될 것이다.

북한의 완전비핵화와 체제보장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비핵화와 체제보장이다. 정상회담이 성과를 거두려면 우선 한국과 미국, 북한이 사용하는 비핵화와 체제보장 조건의 내용이 얼마나 같고 다른지를 명확히 한 다음에, 이러한 의제에 서로 합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의 역할은 핵심적이다. 한국은 비핵화와 체제보장의 의미를 북한과 미국이 그동안 얼마나 서로 다르게 해석해 왔는가를 통역해야 하고, 이와 더불어 서로 상이한 해석을 넘어서서 새로운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길잡이(navigator)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정상회담에서 완전비핵화 논의의 출발은  핵 동결이 될 것이다. 이어서 점진적으로 보고와 사찰 등의 검증 조치가 따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최종 목표가 북한의 완전비핵화라는 데에 모두가 합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두 정상회담의 첫 번째 의제인 비핵화의 논의 성과는 결국 미국과 북한이 같은 의미의 비핵화에 합의하느냐에 달려 있다. 특히 북한의 핵 능력이 1994년의 제네바 기본 합의서나 2005년의 베이징 공동성명을 위한 협상 당시보다 훨씬 더 고도화된 현 상황에서는 동결, 보고, 사찰, 폐기 등에 대한 기술적이고 구체적인 논의는 훨씬 다양하고 복잡하다. 북한이 진정성 있게 완전비핵화의 전략적 결단을 하지 않는 한 미국이 요구하게 될 다양한 시설의 특별 사찰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국은 북한에 그만큼 더 엄격한 잣대와 세밀한 기준을 적용할 것이며, 북한도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한국과 미국에 요구하게 될 경우 협상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북한을 비롯한 관련 당사국들이 북한의 완전비핵화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하더라도 비핵화의 이행을 위해서는 완전 비핵화 된 북한의 체제보장이라는 훨씬 더 어려운 숙제를 풀어야 한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 당연히 북한은 군사적 위협 감소와 체제보장 조건을 제시할 것이고 이에 대한 합의도 필요하다.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 이래 북한의 비핵화와 이에 따른 경제적, 외교적 그리고 군사적 체제보장이라는 '마(魔)의 4각 관계'는 지난 4반세기 동안 쉽사리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외교적 체제보장인 북미수교는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하더라도, 경제제재의 해제나 경제지원은 완전비핵화의 어느 단계에서 어떠한 형태로 현실화할지에 대한 국제적 조율이 필요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군사적 체제보장이다. 북한이 과거처럼 주한미군 철수, 한미군사동맹 해체, 한반도 주변 핵전략물자의 통제와 같은 체제보장 조건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면, 남북한과 미중을 비롯한 관련 당사국들이 모두 합의할 수 있는 체제보장 방안을 마련하기 어렵다.

또한 북한의 입장에서는 비핵화와 체제보장의 교환은 매우 불평등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완전비핵화의 대가로 남북한이 종전선언을 하고 남북을 비롯한 관련 당사국들이 평화협정을 체결한다고 하더라도 국내 질서와 달리 초국가적 사법 질서가 명실상부하게 작동하지 않는 국제정치 현실에서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이 아무런 효력 없는 종이조각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쉽게 벗어나기는 어렵다.

이러한 역사적 현실을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인식하고 있는 북한에게 핵무기 이상으로 진정성 있는 체제보장을 해주려면 북한의 비핵 자주 국방력을 보장하고 절대적 신뢰성을 내재한 복합 체제보장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한의 종전선언과 군비통제방안이 마련돼야 하며, 남북한과 미중을 포함한 관련 당사국들의 평화협정과 6자회담 같은 다자 또는 아태 차원의 평화체제를 연동시켜서 마련해야 한다.

북핵문제의 복합적 해결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에서 당사국들이 최종적으로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북한 비핵화와 체제보장 문제를 성공적으로 풀기 위해서는 제재, 억지, 관여, 자구(自求)의 복합적 해결 방안의 동시적 모색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북핵문제는 단순히 경제적 제재와 군사적 대응이나 또는 경제지원이나 관계개선만으로 풀리지 않는다는 것은 지난 사반세기의 핵 협상이 역사적으로 실증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궁극적으로 완전 비핵화의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기까지는 제재, 억지, 관여, 북한의 자구(自求) 중 어느 하나도 없어서는 안 되며, 마지막 순간까지 네 기둥이 함께 북한의 완전 비핵화라는 지붕을 떠받쳐야 한다.

제재와 억지가 북한을 비핵화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내는 데에는 중요한 기여를 했다. 다만 비핵화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완전비핵화된 북한의 체제보장이라는 적극적 관여가 반드시 필요하며 ‘마의 4각 관계’에 대한 복합적 고민이 필요하다. 관여를 통한 신뢰구축과 교류가 일정 단계를 넘어서지 않으면 비핵화는 언제든지 협상 이전 상태로 퇴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북핵문제를 군사적 또는 혁명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풀기 위해 제재, 억지, 관여와 함께 최종적으로 필요한 것은 북한의 21세기적 진화다. 북한의 계획경제가 불가피하게 시장화의 도움을 받고 있으며, 폐쇄적 사회문화가 정보화와 효율성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비핵 경제 병진'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정치의 진화가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그러한 변화는 외부에서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21세기적 자구 노력에 의해서만 비로소 가능하며, 이를 위해서는 관련 당사국 또한 모두 함께 공동진화해야 한다. ■

 


 

저자

하영선_ EAI 이사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미국 워싱턴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장, 미국학연구소장, 한국평화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 및 편저로는《복합세계정치론: 전략과 원리 그리고 새로운 질서》,《한일 신시대와 공생복합 네트워크》,《변환의 세계정치》, 《미중의 아태질서 건축경쟁》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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