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북한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5차 전원회의 보고를 통해 마주한 난관을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를 선언한 가운데, 미국은 여전히 핵 비확산이라는 세계질서 운영의 기본 원칙을 고수하며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북한 비핵화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는 여전히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북핵문제는 단순한 북미 양자 관계에 한정되지 않는 주요 이해당사국들 간의 다자 문제입니다. 이러한 다자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한국이 역할을 확립하고 전략을 추진해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균형잡힌 제재, 억지, 포용과 내부 변환의 전략을 시행해야 한다고 EAI 전문가들은 분석합니다. 

이번 논평은 EAI가 2020년 1월 21일 개최한 [Global NK 핵inSIDE 토크] 2020 동아시아연구원 대북 통일전략 토론회에서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백진경 EAI 연구원과 전재성 EAI 국제관계연구센터 소장(서울대 교수)이 대표집필한 것입니다.

 


 

2020년 초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를 대체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5차 전원회의 보고를 통해 국내경제와 국제안보정세의 2중 난관을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를 선언했다. 비핵화에 대해서는 ‘선(先) 적대정책 철회, 후(後) 대화재개’를 주장하며 양보하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핵 비확산이라는 세계질서 운영의 기본 원칙 고수의 의지를 강화하면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해서는 깊은 불신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내심 원하는 바 최소한의 핵 억지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북한의 전략적 태도를 인정할 가능성은 미미하다.

김정은 위원장은 미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핵 미사일을 완성한 후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체제보장과 제재 해제, 미군의 축소 등의 대가를 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목표 달성 이후 단계적 비핵화 실행으로 대외관계 개선을 통한 개혁개방을 추진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빅딜(Big deal)을 통한 비핵화 실현과 더불어 다가오는 대선에서 외교적 성과를 과시하는 것이 중요한 목적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전략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핵심 변수인 상황에서 북한은 2019년 연말까지 미국에 셈법 변화를 요구하였으나 시한을 넘겼으며, 여전히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양국 간 합의점을 찾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북한 비핵화 문제는 단순한 북미 양자 관계에 한정되지 않는 주요 이해당사국들 간의 다자 이슈이다. 북미 협상의 교착상태는 남북 관계 개선에도 정체를 가져와 남북 교류협력에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병행적이고 단계적인 실현을 목표로 전쟁을 회피하고 남북대화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한편, 북미 교섭을 중재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북핵 문제는 중국에게 한반도를 넘어 대미정책 차원에서 대처해야 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시진핑 주석에게 비핵화 진전과 평화체제 구축은 미군 감축의 호재이다. 시진핑 주석은 유엔 제재결의를 준수하지만, 동시에 김정은 위원장의 후견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미국의 대북영향력 확대를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미 모두 선제적 양보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새로운 ‘정면돌파 노선’을 내세운 북한에 대해 경제 제재를 완화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북한에 가해진 경제제재는 수 년 동안 북한 경제성장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무역의존도가 높은 북한에 대규모 무역적자와 치명적인 수출 약화라는 타격을 입혔다. 북한의 자력갱생 노력으로 중국과 무역, 인프라 구축, 관광 및 서비스 산업 분야 등에서 상승세를 나타내고는 있지만 경제제재가 완화되지 않을 경우 장기간 고도의 성장을 요구하는 북한 경제 성장에 한계가 있을 것이다. 대북 경제제재가 지속된다면 내부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외화보유액이 급감해 외환위기가 닥칠 수 있으며, 수출량의 감소가 지속될 경우 북한 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과거 헝가리, 소련 등 사회주의 국가들의 전철을 볼 때, 북한이 법적 제도와 틀을 그대로 유지한 채 정책만으로는 개혁개방의 효과를 누릴 수 없다는 점은 명백하다. 북한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핵 억지력과 자력갱생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북한이 얻을 수 있는 경제제재 완화와 개혁개방이 필수적이다.

비핵화 문제 해결을 위해서 북한 자구의 노력을 지원하는 것과 함께 국제사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대북 관여정책을 취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현재 중재자 혹은 촉진자 역할을 담당하고자 하는 한국을 협상테이블로부터 배제하려는 북한의 지속적인 움직임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대남 선전 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2019년 7월 “(북미) 두 나라가 마주 앉아 양국 사이의 현안 문제를 논의하는 마당에 남조선이 굳이 끼어들 필요는 없으며 또 여기에 끼어들었댔자 할 일도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고 강조하였으며, 북한은 지난 1월 11일 북미 정상 간 ‘특별한 연락 통로’를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북한 비핵화 게임의 성공적인 플레이어(player)가 되기 위해서는 한국의 역할을 확립하고 전략을 추진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한미간 철저한 대북 공조가 필요하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는 대선뿐만 아니라 이란 문제를 비롯한 불안정한 중동 정세로 인해 북한문제에 보다 소극적으로 대응하거나 단기적 이해에 치중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 정부는 여전히 남북관계 개선을 우선 과제로 생각하고 있으며 이러한 한미간의 인식 차이는 향후 북한의 움직임에 비효과적인 대응을 낳을 수 있다. 한미 정부는 대북정책의 목표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보다 넓은 외교문제 전선에서 다면적, 포괄적 공조를 위해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북미 협상의 구조적 취약성이 분명한 만큼 이를 고려하여 주요 이해당사국 간 다자 협상 등의 노력을 통해 공동의 목표로 북핵 문제를 해결해 나갈 방법을 구상해야 하며, 북미 협상의 교착 상태를 타개하고 적극적인 북미 대화 추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단기적 이해에 치중할 가능성이 크고,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 역시 북한의 입장과 전략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해야 할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은 출범 당시부터 현재까지 변경되어 왔다. 대선 공약 시 제시된 ‘핵동결 입구, 비핵화 출구’, 2018년 4월-6월 제시된 ‘포괄적 합의 후 단계적 이행’과 2019년 10월 이후 새롭게 제시된 ‘대북 선제 상응조치’ 등의 변화이다. 앞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 꾸준하고 체계적인 대북전략이 필수적이며, 이러한 전략 없이는 북한 비핵화 게임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나타낼 수 없다. 현 시점에서 한국과 미국은 비핵화의 정의, 목표, 최종 상태 및 상응조치 등을 포함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중장기 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협조해야 한다.

체계적인 대북 전략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아야 하며 제재, 억지, 포용과 내부 변환의 전략이 복합적이며 균형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먼저 효율적이면서도 대화를 촉진할 수 있는 대북 경제제재를 지속적으로 이행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를 위해 중장기 제재 로드맵을 마련하여 국내외로 공감대를 확산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한국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한 대응 안보태세를 구축해야 하며, 미국전략자산 순환 배치를 통한 억지체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한국형 3축 체제(선제타격체제, 미사일방어체제, 대량응징보복체제)를 조기 구축해야 한다. 제재, 억지와 더불어 관여도 핵심적인 전략인데 현실적 복합평화체제 구축 방안을 마련하고 북한 비핵화, 경제발전 및 신병진노선의 경제적 지원을 계획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자발적인 내부 변환과 발전을 위한 노력 역시 빠져서는 안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국제사회와 함께 연대하여 북한이 주장해온 정면돌파전 대신 새로운 정면돌파전으로 현재의 난관을 돌파하는 길을 마련하여 북한이 자체적인 역량으로 일어서서 스스로 새 길을 달리도록 돕는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

 

■ 저자: 백진경_ EAI 연구원. 영국 워릭대학교(University of Warwick)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EAI에서 북한•안보 연구 담당 연구원으로서 대북 복합전략 영문 종합 웹사이트 ‘Global North Korea’를 구축 및 운영하는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북한 연구, 국제관계, 국제안보 등이다. 최근 저서로는 북한의 생화학무기와 완전한 비핵화의 길 (2019, EAI 논평/ Global NK 논평),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실현을 위한 대북정책 추진 방향 (2019, EAI 이슈브리핑/Global NK 논평)이 있다.

■ 저자: 전재성_ EAI 국가안보연구센터 소장, 서울대학교 교수.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외교부 및 통일부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국제정치이론, 국제관계사, 한미동맹 및 한반도 연구 등이다. 주요 저서 및 편저로는 《남북간 전쟁 위협과 평화》(공저), 《정치는 도덕적인가》, 《동아시아 국제정치: 역사에서 이론으로》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백진경 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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