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EAI는 2020년을 맞이하여 신년기획 특별논평 “EAI 2020 전망과 전략” 시리즈 총 6편을 아래와 같이 게재합니다.

1. 하영선: 북한의 2020년: 2대 난관의 정면돌파전  (2020년 1월 6일 발간)

2. 전재성: 2020년 한국의 미중관계 전략과 대미전략 (2020년 1월 8일 발간)

3. 이동률: 한중관계와 한국의 대중 외교전략 (2020년 1월 13일 발간 예정)

4. 손  열: 2020년 한일관계와 대일정책: 시야를 넓혀야 보이는 갈등 해법 (2020년 1월 15일 발간 예정)

5. 이승주: 미중 무역분쟁과 통상정책 (2020년 1월 20일 발간 예정)

6. 최태욱: 국내정치 (2020년 1월 22일 발간 예정)

 

신년기획 특별논평 "EAI 2020 전망과 전략" 시리즈의 두 번째 보고서로, 2020년 미중관계 전망과 한국의 전략을 제시한 전재성 EAI 국가안보연구센터 소장(서울대 교수)의 논평이 발간되었습니다. 미중 무역경쟁 속 국가들의 일방주의적 대외정책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미중 양국은 서로에 대해 국제규범 저해 세력으로 규정하였으며 각자의 지역 전략을 통해 맞서고 있습니다. 미중 경제전쟁은 현재 진행 중이며, 향후 국제질서의 향방은 불투명합니다. 이러한 미궁 속 한국의 미중관계 전략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으며 중견국으로서 낯선 환경에 신속히 대처하기 위한 전략 검토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저자는 새롭게 정립해야 할 한국의 미중관계 전략에 대해 향후 정책환경의 예측 불가성을 인지하되, 다자주의를 추구하며 구체적인 정책 목표를 선제적으로 제시하는 기본 원칙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더불어 저자는 한국의 대미전략이 한반도 문제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한국이 원하는 지역 구도를 위해 아시아 지역에서 한미 간 교집합을 형성하여 미국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I. 2020년 정세의 변화

1. 트럼프 정부의 패권 강화 전략

2020년의 국제정세는 문재인 정부가 등장했던 2017년 중반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약화된 미국의 지구적 리더십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미국이 주도했던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허무는 정책들을 단행하여 한국은 물론 국제사회를 긴장시켰다. 애초에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을 환대했던 것과 달리 미국은 대중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공격적인 보호무역주의를 추구했고 미중 경제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한국, 일본, 나토 등 동맹국들에게 더 많은 부담 분담을 요구하고 있으며, 그 방법도 일방주의적이다.

패권의 힘이 약화될 때마다 미국이 국력 회복을 위해 더 많은 부담 분담을 요구한 것이 역사적으로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세계화, 지구적 포퓰리즘 증가, 정치 양극화의 분위기 속에서 미국의 정책은 보다 공세적이고 미국의 국내정치 논리에 민감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시작한 트럼프주의는 강한 전염력을 가지고 다른 강대국들을 트럼프주의자로 만들어가고 있다. 모든 강대국이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수호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사실상 자국 이익 극대화를 위해 규범을 왜곡하거나 저해하는 행동을 일삼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향후 미국이 다시 시혜적 패권의 전략적 의도를 회복할지 불명확하고, 기존 질서가 회복될지 불투명한 상태 속에서 한국의 대미전략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2. 미중 전략 경쟁의 지속

2019년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경제와 외교, 안보 부문에서 자리 잡는 해로 기록될 것이다. 중국의 부상이 미국 외교정책의 가장 중요한 의제 중 하나로 떠오른 것은 이미 오래전이고 오바마 대통령도 아시아 중시 전략을 펴왔지만, 인도태평양 전략은 이를 더욱 구체화시키고 정책 자원도 더 적극적으로 투입하고 있다.

중국을 국제규범 저해 세력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중국이 시도하는 일대일로의 영향권과 미국을 밀어내고 확보하려는 도련선 내의 지역, 그리고 남중국해에 대한 미국의 견제는 불가피해지고 있다. 힘을 통한 평화를 내세우는 트럼프 정부는 범정부적 접근을 통해 대중 견제의 힘을 강화할 뿐 아니라, 인도태평양 지역의 각 국가들을 다차원적 네트워크로 연결함으로써 중국 주도 영향권을 약화시키고자 한다. 미중 경제분쟁 속에서 한국이 경제적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은 물론, 앞으로 미중 간 지역 아키텍처 경쟁에서 한국의 입지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미중이 점차 분리(decoupling) 되고 이에 따라 다른 국가들이 재배치(regrouping) 된다면, 한쪽으로부터의 보복과 피해가 불가피한 상황이 출현할 수 있다.

 

3. 문재인 정부의 미중관계 전략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신년사 외교 부분에서 “미국과는 전통적인 동맹 관계를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키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완성을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중국과는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강화”하고 “올해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의 방한이 예정되어 있는 만큼, 한중관계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천명하고 있다. 모두 중요한 원칙이지만, 대미, 대중 관계 부문의 언급 비중은 북핵 문제나 한반도 이슈에 비해 비중이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미중관계를 헤쳐 나갈 원칙은 구체적으로 표명되어 있지 않다. 더 높은 수준의 한미관계와 다양한 교류와 협력의 한중관계를 어떠한 방향으로 추구해야 할지에 대해 구체적 방향 설정이 꼭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는 출범 즈음 한미동맹 관련하여 호혜적 책임동맹관계로 지속, 심화, 발전하고, 미 조야를 대상으로 한 활발한 대미외교를 전개하여 한미동맹 저변을 공고화하며, 연합방위태세를 강화하고 한ㆍ미 간 현안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였다. 대중정책 관련해서는 양국 정상 및 고위급 간 활발한 교류를 시도하고, 사드 문제 관련 소통을 강화하며, 신뢰 회복을 통한 실질적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를 내실화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였다.

모두 중요한 외교전략의 목표이지만 문제는 점차 한국의 대미전략과 대중전략이 미중관계의 변화로 충돌하고 모순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이제 미중관계에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한 미중관계 전략이 중요한 의제로 등장해야 하는 상황이다.

 

II. 한국의 미중관계 전략

1. 미중관계 전략의 기본 원칙

심화일로를 겪고 있는 미중 전략 경쟁기에 한국의 미중관계 전략의 기본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미국의 패권 조정과 미중 전략 경쟁이 진행 초기이기 때문에 향후의 정책 환경을 정확히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트럼프 정부 등장 이후 미국의 대중전략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중 경제전쟁 → 공화당 정부의 대중 전면 견제 정책 → 대중 전면 견제정책의 부작용에 대한 반발로 대중 관여 전략이 등장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현재 미국의 대중전략은 미국 내 국내정치 양극화, 트럼프 정부 내 아시아 및 중국 전문가들의 부족, 미국의 대중 전략가들의 소외 등으로 향후 변화를 예측하기 어렵다. 또한 미국의 대중 경제전쟁에서 무역수지가 개선되더라도 미국 내 피해 집단이 늘어나고 있고, 양적인 대중 무역 흑자로 미국 경제의 장기적 회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중국의 대외경제정책의 구조적 변화를 촉구할 수 있는 전면적인 국제경제질서를 건설하는데 트럼프 정부가 어느 정도 유능할 것인가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부분이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거치고 차기 행정부가 등장하면서 미국의 대중전략이 어떠한 모습을 보일지 신중하게 지켜보면서 대처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대미정책 역시 전략적 방향을 가늠하기 어렵다. 과연 미국을 대체할 패권으로 등장할 전략적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신장된 국력과 영향력에 맞는 지위와 권한을 요구하는 것인지 아직은 확인이 어렵다. 중국의 전략이 미국에 대한 대응의 측면을 강하게 띠고 있고 중국 내 다양한 경제, 정치, 사회문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따라 중국의 대외전략의 방향이 결정되어 갈 것이다.

둘째, 미중관계가 앞으로 여러 국면을 거칠 것이라는 전제하에 한국은 강대국이 반박하거나 보복의 근거로 삼기 어려운 구체적인 정책 목표를 선제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미중 양국은 수사의 영역이기는 하지만 모두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규칙 기반 질서의 수호를 내세우고 있다. 국제적 자유주의는 불명확한 개념이기 때문에 국가의 이기적 이익에 따라 자의적으로 정의되는 경향이 강하다. 규칙 기반 질서라는 용어 역시 누가 만든 어떠한 규칙인가에 따라 상반된 함의를 가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용어는 군사력 중심의 세력균형 질서를 극복하고자 하는 국제사회 일반의 추세를 담고 있고 강대국들에 의해 좌우되는 강권정치에 대한 회피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한국은 어느 경우이거나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규칙기반 질서를 옹호할 필요가 있다. 자유로운 경제질서와 다자협력적인 안보질서 속에서 생존과 번영을 추구해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한국 나름대로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의미와 규칙의 내용을 정의할 수 있다. 여기에는 강대국 중심주의를 배격하고 중견국, 약소국 모두를 아우르는 포괄적, 참여적 질서라는 의미가 포함된다.

한국은 그간 중견국 외교를 한국 외교의 한 축으로 삼고자 하는 담론을 발전시켜왔다. 현 질서가 미국 주도인 것은 맞지만 주도국이 질서의 모든 부분을 결정한 것은 아니다. 미중 양국 모두 국제 자유주의 규범에 기초한 다른 국가들의 정책을 비판할 명분이 없다. 한국은 기존 질서가 미국 주도 하에서 많은 국가들의 적극적 참여와 조정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미국의 패권 역할에 대한 기대를 명확히 전달하고 다자주의 질서의 필요성을 국제사회에 역설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2. 미중관계 전략의 수단

미중관계 전략은 강대국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중견국으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적절한 정책 수단이 없다면 명확한 성과를 내기 어렵다. 미중관계 전략을 추구하는 정책 수단의 첫 번째는 지식과 전문성이다. 미중 간에 제기되는 사안들은 미중이 전략적 경쟁의 측면에서 준비한 것들이고 미중의 의도에 따라 문제를 해결해서는 결국 선택의 딜레마에 처할 수밖에 없다. 한국 스스로 각 사안을 패권경쟁 프레임에 가두면 미중 모두 한국의 선택을 더욱 주시할 것이고 이에 따라 제재와 압박을 강화할 것이다. 한국은 미중 간 갈등 사안을 패권경쟁의 전략적 이슈로 인식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사안들이 전략적 선택의 의미를 띠기 전에 선제적으로 한국이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사안 전문적 관점에서 해결해야 한다.

다가오는 구체적인 사안들을 사안별로 선제적이고, 전문적이며, 보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각 사안별로 한국이 추진하는 보편 규범의 내용을 지구적 차원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해결해 나갈 때 미중은 물론 다른 국가들의 인정과 존경을 받을 수 있다. 한국의 선택이 강대국 정치의 일환이 아니라 보편 규범에 근거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선제적, 전문적, 보편적 해결을 위해서는 국내 역량을 총결집해야 한다. 한국이 개별 사안에 어떻게 대처하는가는 미중 양국의 관점도 중요하지만 같은 딜레마를 겪고 있는 다른 국가들의 대응책과 비교를 통해 평가되기도 한다. 한국은 비슷한 딜레마에 처한 국가들이 어떠한 대응을 하는지 면밀히 관찰하여 취할 것을 취하는 한편, 한국 내 각 이슈별 전문지식을 총결집하여 창의적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려면 국내의 모든 정책자원을 동원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정치적 대립과 진영논리를 극복하는 정치력이 필요하다.

각 이슈별로 적절한 대응의 시점을 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어떤 사안은 선제적으로 빠른 선택이 필요하고 어떤 사안은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선택 자체를 미루는 것은 좋은 대안이 아니다. 미중 간의 경쟁은 양자 이익을 둘러싼 제로섬 관계를 보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소프트파워 경쟁이기도 하므로 애초에는 규칙기반 경쟁의 모습을 띠는 경향이 강하다. 한국은 미중 간 경쟁이 보편 경쟁, 혹은 표준 경쟁의 형태를 띠는 게임의 양상 속에서 입장을 정하는 것이 유리하다. 적나라한 패권경쟁의 제로섬 게임의 모습을 취하면 선택의 딜레마가 더욱 심화되기 때문이다.

둘째, 미중관계 전략의 전략 수단으로 다른 중견국과의 협력, 그 속에서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가능한 한 많은 국가들과의 협력이 필요하고, 특히 아세안과 같은 다른 중견국들과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추진하는 아시아 중견국 협력 정책이 양자 간의 협력을 넘어 동아시아 질서와 미중관계를 둘러싼 협력이어야 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이미 아세안 국가들과 한국의 경제협력은 상당 수준에 이른 바 있고, 사회문화협력도 긴밀하다. 정기적인 제도적 협력의 메커니즘도 다른 어떤 상대들보다 견고하다. 당분간 미중의 대결 역시 적나라한 군사력의 대결이 아니라 제도를 둘러싼 주도권 경쟁, 즉 제도적 균형(institutional balancing)일 확률이 높다. 한국과 중견국들은 배제적 제도적 균형이 아니라 포괄적, 참여적 제도적 균형을 함께 추진함으로써 미중 중심의 제도 경쟁 방향을 바꾸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협력이 보다 전략적 협력으로 이어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미중 갈등 구도 속에서 아세안 중심성이 약화된 것이 사실인 바, 한국은 아세안 국가들과 보다 큰 관점에서 아시아 중견국 중심성을 찾아가야 한다. 그러려면 한국과 아세안이 추구해온 신뢰구축, 예방외교, 갈등해소의 협력 방안을 더욱 발전시키고 이를 미중 간 이슈에도 적용하여 문제 해결을 기하면서 미중 간 전략적 불신 완화도 추진해야 한다. 동아시아뿐 아니라 지구적 차원에서 자리잡은 규범과 규칙을 적극 활용하여 미중 간 강대국 대결을 완화시킬 필요가 있다.

셋째, 한국의 전문성이 미중관계에서 중요한 정책 수단이 될 수 있으며, 미중의 협력 사안으로 북핵 문제를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북한의 미중 간 전략적 선택을 북한에게도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미중 양국이 협력 사안으로 양자 협력을 할 수 있는 분야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2013년 신형대국관계를 표방할 때 사이버안보와 북핵 문제는 명실공히 중요한 협력 사안이었다. 특히 북핵 문제는 비단 핵 비확산의 관점에서뿐 아니라 북한의 정상국가화라는 지정학적 문제를 둘러싼 협력이라는 점에서 미중관계 변화의 큰 전기가 될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 역시 비핵화 과정은 물론 향후 북한의 전략적 선택에서 미중관계 속 딜레마를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다.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를 줄이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자리 잡으려면 미국과 협력이 불가피하고 이 과정에서 중국의 견제도 받을 수 있다. 남북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프로세스를 위한 협력뿐 아니라 미중 간 선택의 딜레마를 완화시키는 보다 근본적 외교정책의 문제에서 협력할 수 있는 공감대를 마련해야 한다.

넷째, 그러나 모든 사안은 결국 국력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잊지 말고 국력 증강을 위한 장기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이 중재자로서 혹은 존중받는 행위자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강력한 국력, 즉, 기술력, 경제력, 그리고 군사력이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으로 기술이 게임 체인저로 자리 잡아가는 시대에 미중 간 국력 격차를 메울 수 있는 의미 있는 국력, 특히 군사력을 가지고 있을 때 한국의 국익 수호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미중 간 규칙 기반 경쟁에서 중견국으로서 보편 규범 증진자의 역할을 하면서도 다음 국면에 대비한 현실적인 국력 증강 전략도 동시에 추진하고 있어야 한다.

 

III. 대미 외교

1. 한미관계의 현주소

현재 한미관계는 북한 비핵화 및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추진의 사안을 중심에 놓고 동맹 현안들인 방위비 분담금 협상, 전작권 전환, 향후 유엔사의 위상 및 역할 등이 전면에 나와 있는 양상이다. 작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둘러싼 논란으로 한미일 안보협력에 대한 관심이 수면 위로 부상했지만 현재 악화된 한일 관계로 한미일 안보협력은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이 미래에 대한 공통의 비전보다 현안에 집중해 있다.

한미 양국은 북한 문제를 놓고 긴밀한 공조를 해왔다. 그러나 북미 협상이 난관에 봉착하면서 양국 내에서 다양한 대안들이 대두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은 북미 협상과 별도로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고 이는 미국에게 한국의 대북 압박 완화를 우려하게 하는 부분이다. 한국은 미국이 북한의 체제 안전보장 요구에 충분히 응답하지 않고 있다고 보지만 미국은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북한의 움직임 이전에 보상하지 않는다는 기조가 굳어져가고 있다. 향후 북핵 문제가 타결책을 찾지 못할 때를 대비하여 한미 간에 중장기적인 전략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미국과 한국이 생각하는 아시아 지역전략, 더 구체적으로는 대중전략이다. 중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인식, 그리고 중국과 관련한 한미 간의 국가이익이 반드시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이 미중관계에 대한 자국의 입장과 행동을 보이는 정세 속에서 신중함을 이유로 아무런 입장을 취하지 않는 것은 좋은 대안이 아니다. 한미 양국은 작년 11월 초 한미 ‘신남방·인도태평양 전략 협력’ 공동 설명서를 발표하고 한미 간 지역전략에 대한 논의를 발전시키고 있다. 올해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앞두고 지역질서에 대한 논의도 기대해본다.

그러나 다른 국가들의 행보에 뒤처지지 않는 구체적인 지역전략이 필요하다. 일례로 일본은 미일동맹 강화와 대중 접근을 동시에 추진하면서 한국을 지역전략 구도에서 배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을 소외시켜 일본의 독자적 군사력이 필요함을 강조하며 개헌의 필요성을 주창하는 데 힘을 쓰고 있다. 미일 동맹이 강화될수록 중국 역시 일본에 대한 관여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일본의 지역 내 위상이 높아져 가는 상황이다. 한국은 아시아를 둘러싼 미중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현 상황에서 한국의 독자성을 유지하면서도 어떠한 수준과 방법으로 미국과 지역전략을 논의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2. 향후 한국의 대미전략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정착은 반드시 실현해야 하는 목표이기에 북미 핵 협상의 순조로운 진행을 위해 한미 간 긴밀한 협력의 필요성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한미 현안들은 북한의 비핵화에 따라 발생할 평화프로세스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종전선언과 평화체제가 정착되면 동맹 사안들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미 관계가 한반도 이슈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지구적, 지역적 국제정치 사안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북핵 문제만 하더라도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차원에서 접근하거나 혹은 지구적 핵 비확산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경향이 강하다. 미중 경쟁 속에서 미국의 아시아 지정학적 고려는 북핵 문제와 맞닿아 있지 않다. 2019년 9월 7일 비건 북핵 특별대표는 미시건대학교 연설에서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북한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긴밀하게 연결될 수 있다는 언급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비핵화된 북한이 미국의 전략 구도에서 어떠한 위치를 점하게 될지에 대한 명확한 구도가 드러나지 않는다. 북한의 비핵화가 미국의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북한의 핵미사일 제거라는 소극적 목표에 국한된다면, 미국의 적극적 노력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국의 대북 전략의 중요한 부분이 북미 대화를 촉진시키는 것이고, 그러려면 미국의 아시아 지역 전략 차원에서 북핵 문제를 조망해야 한다. 북핵을 둘러싼 한미 간의 전략 대화와 협의가 지역 구도와 긴밀한 연관관계를 가진다는 것에 유념해야 한다. 북미 대화를 촉진하면서 남북 관계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이 어떠한 아시아 지역전략을 가지는지를 명확히 하고, 북핵 문제를 한미가 함께 고민하는 지역 전략 속에 위치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이 미중관계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전반적인 전략이 선행되고, 이에 따른 한미 간 아시아 지역 전략의 협력 청사진이 명확해질 때, 북핵 문제와 동맹의 현안문제가 원활히 해결된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는 한미동맹 강화를 강조하고 한미 간 정책 방향의 조화를 강조하지만 대부분의 이슈는 한반도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한미 양국은 한미 ‘신남방·인도태평양 전략 협력’ 공동 설명서를 발표하여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한국의 신남방정책 간의 공통분모를 찾으려 시도했다. 중요한 성과이지만 향후 문제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한미 동맹 간의 관계를 설정하는 문제가 될 것이다. 아직까지 지역구도를 둘러싼 한미 간의 전략 협의가 부재하다는 상황 자체가 문제가 되는 시기에 접어들고 있다. 앞서 논의한 미중관계 원칙에 근거한 대미전략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한미 간 정세 판단 공유, 미래 동맹 비전 제시, 구체적 정책 이슈 개발, 실행체계 수립 등의 과제가 실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안인 방위비 분담금, 전작권 전환 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미국은 한반도에 국한된 기능을 가지는 한미동맹에 대해서는 더 많은 부담을 요구할 것이며 지역 협력 구도가 부재한 한국이 전작권을 가지고 주도하는 동맹에 대해 소극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이 원하는 지역 구도를 위해 미국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정책이 필요하다. 거시적 차원에서 한국이 아시아 지역구상 설계에 참여하는 역할을 추구하면서, 개방적 자유주의 동아시아 질서를 이룬다는 논리 하에 사안별로 한국의 입장을 정리하고, 미국과 미국 동맹 체제 내에서 한국의 처지에 맞는 역할론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 미래 전략을 위한 한국의 전략을 개발하고, 이를 미국과 공유 및 조정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트럼프 리스크를 피하면서 동시에 미국 내 주류 전략 담론과 지속적이고 강화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전략 담론과 유리되는 정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의회, 전문가 집단, 여론 등에 대한 접근 전략, 공공외교 전략도 수립하여 실행해야 한다. ■

 

 

저자: 전재성_ EAI 국가안보연구센터 소장,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외교부 및 통일부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국제정치이론, 국제관계사, 한미동맹 및 한반도 연구 등이다. 주요 저서 및 편저로는 《남북간 전쟁 위협과 평화》(공저), 《정치는 도덕적인가》, 《동아시아 국제정치: 역사에서 이론으로》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윤준일 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3) I junilyoon@eai.or.kr

 


 

[EAI논평]은 국내외 주요 사안에 대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의견을 개진하고 정책적 제언을 발표할 수 있는 담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된 논평 시리즈입니다.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AI는 어떠한 정파적 이해와도 무관한 독립 연구기관입니다. EAI가 발행하는 보고서와 저널 및 단행본에 실린 주장과 의견은 EAI와는 무관하며 오로지 저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