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지대학교 북한학과 교수. 황지환 교수는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학교(University of Colorado at Boulder)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대학교 통일연구소 선임연구원을 역임했다. 연구관심은 북한 핵문제를 비롯한 동북아국제관계 및 안보문제이며, 다양한 논문을 발표해 왔다. 주요 논저로는 “International Relations Theory and the North Korean Nuclear Crisis” (IRI Review, 2008), “Offensive Realism, Weaker States, and Windows of Opportunity: The Soviet Union and North Korea in Comparative Perspective” (World Affairs, 2005), “전망이론을 통해 본 북한의 핵정책” (〈국제정치논총〉, 2006) 등이 있다.
I. 세계금융위기와 한반도 안보질서
최근의 세계경제는 금융위기로부터 점차 회복되어 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그 성격이나 규모 면에서 전례가 없을 정도로 예외적인 것이어서 위기의 장기적인 영향성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번 금융위기는 장기적으로 지정학적인 세계질서의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한반도 역시 그 영향에서 예외적일 수 없다.
이 글은 세계금융위기이후 변화하는 세계질서와 동북아질서에 바탕을 두고 한반도가 직면하고 있는 새로운 안보환경을 조명하고자 한다. 특히 냉전의 종식 이후 활발하게 논의되어 온 한반도 주변의 주요한 안보이슈인 한미동맹, 북한문제,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질서의 변화가능성에 대해 관심을 집중할 것이다. 이러한 안보이슈들은 냉전의 종식 이후 커다란 변화를 겪어 왔다(황지환 2007). 한미동맹은 21세기 미국의 군사변환(military transformation) 과정에서 주한미군 감축, 주한미군기지 이전, 전략적 유연성 및 전시작전통제권의 재조정을 경험했다. 북한 문제는 1990년대 초반 이래 핵 위기와 정권생존의 문제를 야기하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커다란 도전이 되어 왔다. 또한 한반도 주변의 불안정한 안보환경에 대해 동북아 국가들은 평화질서 구축을 위한 노력을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그리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1. 미국의 외교안보전략과 한국
2010년 5월 발표한 오바마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 NSS)보고서는 세계금융위기 이후 변화된 미국의 위상과 영향력을 반영하고 있다(NSS 2010). 오바마 행정부는 현재 글로벌 차원에서 세력분포가 변하고 있으며,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The world as it is today)를 보고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미국이 직면한 ‘있는 그대로의 세계’란 지구상에 가장 강력한 국가인 미국조차도 혼자 힘으로는 글로벌 차원의 문제들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한 것이다.
글로벌 차원의 도전들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해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데, 이러한 국가들이 새로운 주요 행위자로 등장하며 새로운 ‘영향력의 중심지가 출현’(emerging centers of influence)하고 있다고 국가안보전략(NSS)는 인식하고 있다. 국제협력을 강조하는 경향은 2010년 2월 발표된 〈4개년국방검토보고서〉(Quadrennial Defense Review Report: QDR)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QDR 2010). 게이츠 국방장관이 강조하였던 '균형 전략'(balanced strategy) 개념이 〈4개년국방검토보고서〉(QDR)에서 ‘재균형’(rebalancing)으로 정교화되어 유난히 강조되고 있는 점은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안보전략이 부시행정부 때와는 달리 상대적 힘의 쇠퇴를 반영하여 기존의 하드파워 위주의 전략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오바마 행정부의 대외정책의 변화는 하드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결합한 스마트 파워와 균형 및 국제제도의 위상회복, 다자적 접근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이상현∙하영선 2010).
세계금융위기가 한미관계의 변화를 새롭게 촉발시킨 것은 아니지만, 이전부터 진행되어 오던 동맹의 변환과정을 새로운 차원으로 변모시킨 것은 사실이다. 21세기 들어 미국은 반테러전쟁과 대량살상무기의 확산방지를 외교안보정책의 가장 핵심적인 사안으로 강조하며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lobal Defense Posture Review: GPR)과 동맹변환 및 해외기지의 재조정을 핵심적인 현안으로 추진해 왔다. 이 과정에서 한미동맹 역시 주요한 변환의 대상이 되었으며, 그 결과 주한미군 감축과 주한미군 기지의 재조정, 전략적 유연성 및 전시작전통제권 등 한미동맹의 핵심적인 요소들이 재조정 과정을 거쳐 왔다(황지환 2007). 이처럼 지난 10여년간의 한미동맹 변환이 한반도에서 미국의 역할과 정책을 재조정하는데 주요한 초점이 두어졌다면, 최근의 한미동맹의 변화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글로벌 질서에서 한국의 역할을 확대시키고 재정의하는 데 논의를 집중시키고 있다(신성호∙하영선 2010). 2010년 한국이 의장국이 되어 G-20 회의를 개최하고 2012년 제 2차 핵안보정상회의(Nuclear Security Summit)를 개최할 정도로 국가역량이 강화되면서 이러한 동맹변화는 일견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2009년 6월 16일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 사이에 채택된 ‘한미동맹 미래비전’은 한미동맹의 새로운 청사진을 담고 있다(외교통상부 2009/6/16). 이 선언에서 한미 양국은 동맹의 “공고한 토대를 바탕으로 공동의 가치와 상호 신뢰에 기반한 양자 지역 범세계적 범주의 포괄적인 전략동맹을 구축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한미동맹을 재조정해 나가는데 있어서도 “대한민국은 동맹에 입각한 한국방위에 있어 주된 역할을 담당하고 미국은 한반도와 역내 및 그 외 지역에 주둔하는 지속적이고 역량을 갖춘 군사력으로 이를 지원할” 것을 합의하였다. 또한 한미는 “테러리즘, 대량살상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 WMD) 확산, 해적, 조직 범죄와 마약, 기후변화, 빈곤, 인권 침해, 에너지 안보와 전염병 같은 범세계적인 도전에 대처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며,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과 같이 평화유지와 전후 안정화, 그리고 개발 원조에 있어 공조를 제고”하며, “G20와 같은 범세계적인 경제 회복을 목표로 한 다자 체제에서의 협력을 강화해 나갈 것”을 약속하였다. 따라서 ‘한미동맹 미래비전’은 한국과 미국이 “모든 수준에서의 전략적 협력을 통해 공동의 동맹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선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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