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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노현 교육감이 후보 단일화 당시 "2억원을 줬다"고 스스로 밝힌 뒤 사흘째인 31일 오후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곽 교육감은 이날 반일 연가를 내고 오후 2시께 출근했다. 검찰은 이날 오후 곽 교육감의 부인인 의사 정모 씨를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 조사할 예정이다. ⓒ 연합뉴스

 

그리스어에서 자유를 의미하는 단어는 세 개가 있다고 한다. 엘레우테리아(eleurtheria)는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는 자유, 파레시아(parrhesia)는 언론의 자유, 아우타르키아(autarkia)는 자치와 자율을 뜻한다. 그리스의 엘레우테리아는 페르시아 전쟁을 계기로 데모크라시와 결합된 양상을 띠며 발전했는데, 인민이 자치를 위한 직접적이고 능동적인 정치 생활의 참여가 이루어졌다. 이에 비해 고대 로마에서 자유를 의미하는 리베르타스(libertas)는 개개인의 사적 안정성 유지를 중시함으로써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성격을 띠었다. 리베르타스는 로마적 전통을 부활시켜온 현대 공화주의의 자유로 자리잡았다. 결국 능동적인 정치적 자유의 실천을 강조하지 않고 비정치적 자유를 유지하는 수단이 되고 말았다. 그에 비해 엘레우테리아는 행위와 언어를 통해 타자와의 사이를 확장하는 근대적 자유의 공공적 성격을 확대하며 발전하였다.

 

자유란 사람들이 정당하게 접근할 수 있는 자기/타자/사회의 자원을 이용하여 달성. 향유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반성적 평가에 기초하여 스스로 판단한 것을 타자의 작위/부작위에 의해 저지당하지 않고 달성.향유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사이토 준이치)

 

누군가가 자유롭기 위해서는 복수의 선택지가 주어져야 하고, 특정한 선택지에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바람직하다고 판단한 내용이 포함되어야 하며, 선택지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에 정당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자유가 갖는 공공적 속성이다.

 

신자유주의는 사적 안정성을 옹호하고 정치적 자유의 확대를 배격한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과의 사이의 교류를 사적인 방식으로 대체하고 타자와의 교섭을 회피함으로써, 분단.격리된 상태에서의 개인이 향유하는 자유를 추종한다. 반공공적이다. 반면 자기/타자/사회의 자원을 이용하여 특정한 가치를 누군가로부터 저지당하지 않고 달성.향유할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하는 것은 반신자유주의적이며 공공적이다.

 

발리바르는 근대 시민권의 역사를 조망하며 국민-사회국가의 새로운 구성.헌정 형태를 분석했다. 그는 현 정세의 지배적인 경향인 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왜 20세기 중반 유럽의 구성.헌정 형태가 거둔 성과를 위기로 안내하는지를 살폈다. 그는 사회적 시민권에 주목하는데 이는 가장 열악하고 빈곤한 특정 집단에 대한 부조가 아니라 잠재적으로 모든 시민과 사회계층, 단적으로 ‘인격적 개인’에 관련된 사회적 연대의 보편적 메커니즘을 의미한다. 사회적 시민권은 또한 불안정(성)에 대비한다는 소극적 의미를 넘어 ‘불평등의 축소’라는 이상을 실현하는 적극적 수단이며, 사회와 관련된 개별 권리들의 단순한 합도, 위로부터 하사받은 것도 아닌, 불평등에 맞선 대중의 계급투쟁으로부터 형성되는 현실의 구성물이다.(장진범) 사회적 시민권의 확장은 정치적 자유의 문제이며 정치적 자유는 불평등의 축소와 긴밀한 관계를 갖기 때문에 자유는 평등과, 평등은 자유와 역사적으로 동일한 지위를 부여받는다.

 

민주연합이나 진보연합과 같은 연대연합의 기획은 정치권력의 찬탈을 둘러싼 정치적 기획이다. 그런데 신자유주의는 사적인 것의 강화와 공공적인 것의 해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세적 경향이다. 신자유주의의 위기는 자유를 개인의 권리로 종속시키려는 지배적 경향과 자유를 불평등의 축소를 위한 정치적 기획으로 삼으려는 피지배적 경향 간의 갈등의 정도에 의해 규정된다. 말하자면 신자유주의의 안정성은 엘레우테리아에 대한 리베르타스의 우월성의 지속 여부인 셈이다.

 

오세훈-곽노현 사태는 정치권력 찬탈의 대회전을 앞둔 공공연하고 노골적인 전초전의 성격을 띠며, 근본적으로는 정치적 자유의 축소.확장을 둘러싼 세력관계에 의해 빚어진 산물이다.

 

오세훈-곽노현 사태를 바라보는 주류적 시각은 전자이다. 대개 2012년 정치권력 찬탈의 대회전을 앞두고 서둘러 찾아온 전초전으로 바라본다. 오세훈이 추진한 주민투표는 현상과는 달리 승자를 가려내지 못했다. 한 여론기관의 보고서에 따르면 주민투표의 승자로 한나라당을 꼽은 비율이 6.6%, 야당을 꼽은 비율이 23.5%였고, 승자가 없다는 비율이 70%에 달했다. 정책대결이 실종됐고(72.1%) 주민투표 거부에 공감하지 않음으로써(60%) 정치적 냉소와 양비론이 커졌다는 진단이다. 주민투표가 대선 후보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박근혜>문재인>오세훈>손학규 순으로 득을 본 것으로 나타나 실제 여론과 현상적인 야당 승리 분위기 간의 괴리가 뚜렷하게 확인된다.(EAI 보고서)

 

서울 시장 찬탈을 기대했던 야당과 시민사회는 곽노현 사태 발발 직후 직관적으로 사퇴를 통해 수습해야 한다는 태도를 취했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데자뷰를 떠올리며 검찰의 수법에 정면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과 지켜봐야 한다는 주장이 점차 힘을 얻었지만, 사법적 대응과는 별개로 정치적 대응의 한계가 확인되는 분위기다. 곽노현의 사퇴 여부와 시점은 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정세적 유.불리를 따져 결정될 전망이며, 2012년 전초전의 승패를 가리는 중요한 포인트로 작용할 것임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곽노현의 응전이 중요한 것은 곽노현이 추진해온 노선을 유지,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는 데 있다. 오세훈-곽노현 사태가 발발하기 전 대립은 보편적 복지 정책과 선별적 복지 정책으로 압축된다. 오세훈-곽노현 사태는 이 대립물의 결과이자 하나의 국면의 변화에 불과하다. 오세훈은 무상급식론을 포퓰리즘으로 규정하고 선별급식론-선별복지론을 내세웠다. 야권은 보편주의적 복지방법론과 무상급식론을 일관되게 주창했지만 여론은 선별급식론-선별복지론의 우위가 지속적으로 확인되었다. 논쟁의 축이 복지확대-보편복지론과 복지확대-선별복지론 구도로 되고 복지 논쟁이 발전.격화될수록 후자가 유리한 위치를 점할 전망이다.(EAI 보고서)

 

주민투표 투표율은 야당의 호재나 승리가 아니며, 곽노현에 대한 검찰의 기획을 여당의 호재나 승리로 단정하는 식은 중요한 게 아니다. 요점은 곽노현이 엘레우테리아를 추구했다면 오세훈은 리베르타스를 추종했다는 것이고, 현실 지배적인 경향은 리베르타스이며, 엘레우테리아는 숨 쉴 틈 없이 박해받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데 있다. 곽노현이 드러낸 약점에 대한 심판은 저들이 아니라 곽노현을 만든 이들이 하되 엄하게 하면 된다. 즉각 사퇴와 함께 응전하는 것이 최선이었지만, 기왕 사퇴하지 않고 싸우겠다고 한 이상, 정치적 자유를 위해, 사회적 시민권을 위해 강력한 엄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