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이제 임기 2년여를 남겨두고 있다. 이 대통령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영향력은 1위로 나타나지만 신뢰도에서는 밀리고 있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는 표현처럼 대한민국에는 최근 신뢰 받는 힘 있는 리더가 없다는 지적이 많다. 집안에 어른이 있어야 하듯 나라에도 경륜 있는 경세가(輕世家)가 지혜의 병풍이 되고 어두운 밤길의 나침반(羅針盤)이 되어야 하는데 인물이 없다고 여기저기서 장탄식(長歎息)이다. 인재 풀이 약하다는 증좌다. 제왕학의 교과서인 『정관정요』(貞觀政要)는 “하늘은 항상 그 시대에 걸맞은 인재를 예비한다”면서 “아무리 뛰어난 인물이 있어도 시대를 넘어서는 빌려올 수 없다”고 가르친다. 최근 잇따라 낙마하는 장관 후보자들을 보면서 정관정요의 지적이 시공을 넘어 지금도 유효하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무신불립(無信不立) - 신뢰 받는 힘 있는 리더가 없다 작년 6월 중앙SUNDAY가 동아시아연구원(EAI)·한국리서치와 공동으로 실시한 ‘2010 파워 정치인 영향력·신뢰도 평가’에서 정치적 영향력이 가장 큰 정치인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이, 가장 신뢰하는 정치인으로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김문수 경기지사가 동시에 선정됐다. 이 대통령의 신뢰도는 오세훈 서울시장에 이어 4위에 그쳤다. ‘신뢰’를 중시하는 박근혜 전 대표는 2011년 신년사를 통해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받도록 곧고 바른 정치에 온 힘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의식한 발언이다. 흔히 명예나 권력을 잃어버리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지만 신용을 잃어버리면 모든 걸 다 잃는 것이라고 한다. 정치도 신뢰를 잃어버리면 국민들이 어찌 믿고 따를 것인가? 신뢰의 상실이 정치인에게 죽음이나 다름없다는 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다면 우리 정치의 미래는 없는 것이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은 ‘믿음이 없으면 살아나갈 수 없다’는 뜻으로 『논어』(論語) ‘안연편’(顔淵篇)에 실린 공자(孔子)의 말에서 비롯되었다. 제자인 자공(子貢)이 정치에 관해 묻자, 공자는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足食), 군대를 충분히 하고(足兵), 백성의 믿음을 얻는 일이다(民信)”라고 대답하였다. 자공이 어쩔 수 없이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택하겠느냐고 묻자 공자는 군대를 포기해야 한다고 답했다. 자공이 다시 나머지 두 가지 가운데 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이번엔 무엇이냐고 묻자 공자는 식량을 포기해야 한다고 했다. “예로부터 사람은 다 죽음을 피할 수 없지만, 백성의 믿음이 없이는 (나라가) 서지 못한다(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는 게 공자가 내린 결론이었다. 이후 ‘무신불립’은 정치나 개인의 관계에서 믿음과 의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로 쓰이기 시작하였다. 동서고금의 지도자들이 민심의 바다에서 익사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대부분 ‘무신불립’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삼국지』(三國志)도 ‘무신불립’의 사례를 들고 있다. 중국 후한(後漢) 말기 학자인 북해(北海) 태수 공융(孔融)은 조조(曹操)의 공격을 받은 서주(徐州) 자사 도겸(陶謙)을 구하기 위해 유비(劉備)에게 공손찬(公孫瓚)의 군사를 빌려 도겸을 도와주게 하였다. 공융은 군사를 가지면 유비의 마음이 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유비에게 신의를 잃지 말도록 당부하였다. 그러자 유비는『논어』 ‘안연편’에 실린 공자의 말에 따라 “성인은 ‘예부터 내려오면서 누구든지 죽지만 사람은 믿음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고 하였습니다. 저는 군대를 빌릴지라도 이곳으로 꼭 돌아올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믿음과 의리가 없으면 개인이나 국가가 존립하기 어려우므로 신의를 지켜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유비의 의지였다.
언행일치 안 되는 인사 난맥상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은 지난해 ‘노르딕 국가의 고신뢰 현황과 시사점’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도 덴마크, 스웨덴, 뉴질랜드, 핀란드, 스위스 등 북유럽 국가처럼 높은 신뢰도를 가질 수 있는 체계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한경연은 “한국은 빠른 양적성장을 이뤘지만 사회적 자본축적이 미흡하고 경제성장 과정에서 부분적인 와해를 겪었다”며 “우리나라가 경제 부국이 되려면 낮은 사회적 자본의 축적수준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밝혔다. 이어 타인과 정부에 대한 신뢰수준이 높은 북유럽 국가들의 사례를 들었다. “북유럽 국가들은 1989년 이후 20년간 신뢰수준이 59.5%로 한국 30.5%,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4.5%보다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그동안 거듭된 인사정책 실패로 신뢰도에 타격을 입어왔다. ‘회전문식 인사’, ‘강부자, 고소영 인사’라는 비판 속에 장관급 이상 8명이 낙마하며 상처를 입은 것이다. 이 대통령의 ‘공정사회론’은 인사 때마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며 레임덕을 가속화시키는 빌미가 되고 있다. ‘친(親)서민 행보’ 역시 ‘말뿐인 복지정책’, ‘정치적 쇼’라는 비아냥 속에 오히려 극빈자들과 중소기업을 더욱 힘들게 했다는 혹평을 받고 있다. 의욕만 앞선 ‘녹색성장’도 부처 혼선과 재계 반발을 부르며 정부에 대한 신뢰도를 좀먹는 실정이다. ‘공정사회’, ‘친서민’, ‘녹색성장’ 등 이른바 ‘MB 아젠다’는 취지는 좋지만 실행과정에서 흔들리며 ‘말 따로 행동 따로’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그것이 리더십을 흔드는 요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일련의 상황이 부정부패, 물가폭탄, 전세값 폭등과 같은 인화성 이슈를 만나게 되면 둑이 무너지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대통령의 언어관리 - 스핀닥터가 없거나 있어도 아마추어 수준 작년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도발의 후유증이 가시지 않은 탓인지 세상이 어수선하다. MB정부는 무언가 한다고 하는데 부산하고 눈에 보이는 것은 없다. ‘북극겨울’이라는 이 혹한만큼 모든 것이 움직이고는 있다고 하지만 결빙되어 있는 느낌이다. 차라리 망각의 겨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대통령의 말은 그래도 계속된다. 전라남도 영암 대불공업단지 전봇대서 시작된 ‘한마디 정치’가 새해 들어 다시 이슈다. ‘기름값 알아보라’는 한마디에 가격이 내리고, ‘물가를 잡으라’는 한마디에 물가비상이다. 모든 것이 ‘총력투쟁’같은 각박한 일이다. ‘한마디’ 수사(修辭)가 여과 없이 계속되며 대통령의 언어 관리가 심각한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 계획과 목표 하에 예측가능하고 우선순위의 투자가 이뤄지는 아름다운(?) 과정의 공유는 볼 수가 없는 걸까? 결과는 과정에 앞선다. 물론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것이다. ‘두고 봐라, 당신들이 반대만 일삼고 생각지 못했던 것을 만들어 보이겠다’는 오기가 저항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 저항은 수용될 수 없는 일이다. (제왕의 입장에서!) 정동기 후보자 낙마 이후 MB는 일만 하겠다는 입장이다. 당청간 소통에 이상이 감지되고 권력암투가 벌어지고 있는데도 일절 대응하지 않고 있다. 일종의 침묵의 냉대이다. 레임덕을 부추기는 것은 반대자들이고 그걸 말하는 사람들조차 일 안하고 눈치나 보는 자들로 냉대하고 있다. 상대를 겁먹게 만드는 대통령만의 오기가 어떤 식으로 갈 지 아무도 모른다. 당에서 지명받아 지지자들을 규합하여 500만 표 차의 압도적 대통령으로 당선된 MB에겐 ‘내 편과 네 편’, 즉 피아의 구분이 명확한 셈이다. 김성회 의원에게 했다는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속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내 편과의 소통은 편안하지만 같은 당내에서의 비판과 야당의 절규에는 정치적 색안경을 낀다. 대통령에게 스핀닥터가 없거나 있어도 아마추어 수준이라고 탄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공한 대통령 - 국정 실패 70%는 커뮤니케이션 문제 사실 이명박 대통령은 의회주의자의 길을 걸어왔던 사람이 아니다. 따라서 그에게 노련한 정치적 감각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이 대통령은 일에 대한 성과와 강박에만 사로잡혀 있다. 정치는 좀 자신이 하는 일에 자문위원 역할만 하고 추인만 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는 ‘경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당시 국민이 그에게 원했던 것은 먹고 살게 해달라는 것이었지 모든 것을 아우르는 통합과 통섭의 대한민국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747 공약과 ‘경제 살리겠습니다’는 슬로건으로 선택받은 대통령이다. 하지만 대통령이란 자리는 결단의 연속이지만 과정을 만들어내는 자리이기도 하다. 최소한 그의 주변이라도 과정의 진정성과 소통의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는 이들로 포진시켰어야 했다. 헌데 안타깝게도 불도저식 성과주의 패러다임에 맞는 코드인사로 채워졌을 뿐이다. 정치란 정권을 위해 있는 것만은 아니다. 정당은 정권을 위해 있을는지 모르지만, 정치는 본질적으로 국민을 위한 것이다. 어느 국민인가? 민주사회에서 너무도 다양한 국민적 함의를 하나의 색깔로 규정하는 것은 어찌 보면 불가능하다. 그래서 반대도 소중한 것이다. 자기들만의 리그에 만족하고 ‘따라오려면 따라와 봐’ 식의 견인은 상처만 낼 뿐이다. 이른바 분수효과(Trickle Down Effect)만을 염두에 두는 제왕적 대통령의 성장모델은 그 낙수를 기다리는 서민들에게는 감로수가 아니고 감질만 더할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려운 환경을 딛고 일어난 인물이다. 하지만 그 이력이 국민에게 ‘성과 제일주의’ 자랑으로 비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여러분들도 나처럼 될 수 있다’는 대통령의 과시에 그걸 이루지 못하고, 가지지 못한 자의 설움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성과가 아니라 진정성이다. 대중은 사소한 일일 지라도 ‘진짜’에 감동을 먹는다. 청와대 측이 얼마 전 퇴임한 브라질의 전 대통령 룰라를 연구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 진위는 모르겠지만 70~80%에 이른다는 그의 압도적인 지지율에만 흥미를 가지고 벤치마킹해서는 안 된다. 그는 후계자를 양성해 자신의 뜻을 계승하는 정권을 탄생시키고 퇴임 후에도 여전히 같은 길을 가고 있다. 그 동행의식의 이면에 소통의 기술이 자리 잡고 있음은 물론이다. 정치는 소통이다. 정치적 갈등의 대부분은 소통 문제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면 개와 고양이는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면서 싸우는데 그것이 천적관계 때문은 아니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상반된 의사소통 방법 탓이라는 것이다. 개가 꼬리나 엉덩이를 흔드는 것은 좋다는 신호이지만 고양이는 이를 도전으로 받아들인다. 반대로 고양이가 기분이 좋으면 목으로 ‘가르릉’ 소리를 내는데 개는 이를 싸움을 거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처절한 싸움을 하게 되는데 어려서부터 같이 자란 개와 고양이는 서로 상대방의 언어를 이해하기 때문에 싸우지 않는다고 한다. 뤄거룽은 『경영의 지혜』에서 기업 경영자들은 70%의 시간을 소통을 위해 사용하고, 기업의 문제 중 70%는 소통의 장애로 야기된다고 했다. 기업은 물론 가정에서도, 나라나 정치권에서도 소통의 문제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미국 백악관 직원 중 60% 이상이 홍보, 선전 관련 일을 맡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국정 실패의 70%는 커뮤니케이션 문제다. 성공한 대통령을 가리는 일은 소통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뢰와 소통이 ‘국민 성공’ 열쇠 사회적 자본이란 국가의 행정과 사법제도는 물론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서로를 신뢰하는 문화이다. 신뢰가 높은 사회에서는 지연이나 학연에 관계없이 공정하고 품격 있는 삶을 누릴 수 있고, 경제성장의 비용도 크게 줄일 수 있다. 사회주의의 몰락을 일찍이 예언했던 저명한 사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는『신뢰』(TRUST)라는 저서를 통해 사회적 자본이 바로 국가경쟁력의 핵심요인이라 지적했다. 실제로 세계은행은 사회적 신뢰도가 10% 상승할 때, 경제 성장률이 0.8% 증가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선진국과 후진국은 국민소득으로만 구별되는 것이 아니며, 사회적 신뢰도 역시 매우 중요한 잣대가 된다. 지금 세계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적 자본 확충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 신뢰의 근본이 바로 서로간의 소통이다. 하물며 질병도 곧 통하지 않는데서 비롯되지 않는가? 허준의『동의보감』에서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은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못하면 아프다’는 뜻이다. 서양의학에서도 ‘모든 병은 근본적으로 정체(停滯)이며, 모든 치료는 근본적으로 순환(循環)’이라고 말하고 있다. 정권은 시간이 유한하지만 국정은, 정부는 영원하다. 다음 정권 창출을 위한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골몰하지 않아도 된다. 다음 구도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까’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화장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광고카피가 눈길을 끈다. 화장한 얼굴을 고치려면 깨끗이 지워내고 그 다음에 고쳐야 한다. 이것저것 해야 할 일들은 산적해 있다. 그야말로 ‘일모도원(日暮途遠)’이다. 거기서 새로 무엇을 끄집어내 허겁지겁 매달리는 것은 천금 같은 시간을 낭비하는 짓이다. 할 수 없는 것, 하지 말아야 할 것부터 원칙 있게,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익숙한 나를 버려야 하듯이 익숙한 것들을 버려야 한다. 과감하게 잘라내야 한다. 그리고 나면 이것만큼은 이명박 정부가 해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게 자연스럽게 부상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버려야 할까?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는 인식을 버리지 않는 한 여·야의 극한대치는 계속될 것이고, 야합과 이도저도 아닌 볼썽사나운 일의 뒤치다꺼리로 세월을 보낼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탈정치’가 아니라 ‘친정치’로 자리매김할 필요성이 있다. 선거가 없으니 일만 하겠다는 부정적 시각에서 선거가 있어도 일은 더 열심히 할 수 있다는 긍정적 자세로 전환하는 것이야말로 룰라를 뛰어넘는 지지를 얻는 길이 될 것이다. 미국을 움직인 오바마의 ‘침묵의 51초’는 ‘오기(傲氣)의 시간’이 아니고 ‘감동의 시간’이다. 마음을 열고 소통하는 감동의 제왕이야말로 천하의 민심을 얻는다. 제왕학은 큰일을 맡는 사람은 항상 마지막을 염두에 두고 처신하라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성공이 국민의 성공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박종렬 ㅣ가천의과학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