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 남북관계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정부가 북한 어뢰에 의한 공격이 원인이라고 발표한 천안함 침몰 사건(3월26일)에 이어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11월23일)까지 발발하면서 남북관계는 수렁에 빠졌다. 지난 3월26일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발생한 천안함 침몰 사건은 탑승하고 있는 승조원 40명 사망, 6명 실종 등의 큰 인명피해를 초래했다. 정부는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해 “천안함은 어뢰에 의한 수중 폭발로 발생한 충격파와 버블효과에 의해 절단돼 침몰됐다”며 “무기체계는 북한에서 제조한 고성능폭약 250kg의 어뢰로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11월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은 1950년 6.25 전쟁 이래 한국 영토에 대한 첫 번째 공격이었다. 이로 인해 연평도에서 복무하던 해병대원 문광욱 일병과 서정우 하사가 전사했으며, 민간인 2명도 목숨을 잃었다. 또한 민간인 3명과 해병대원 16명은 중경상을 입었다. 포격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인천 등으로 피난을 떠났다.
연평도 포격은 김정은 후계체제 안정화를 위한 도발로 해석됐다. 국방부 측은 “김정은의 지도능력을 과시함으로써 후계체제를 강화하고 체제 결속을 유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두 사건으로 인해 남과 북은 냉랭하다 못해 전쟁 위기로까지 치달았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움직임이 한반도의 평화 회복보다는 전쟁 위기를 불러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점이다. 정부는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에 대한 초기 대응 미흡으로 뭇매를 맞아야 했다. 특히, 연평도 포격 당시 군은 도발 징후를 감지하고도 이를 간과해 기습공격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정부를 향해 ‘안보 무능 정부’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창비주간논평에서 “북한이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대한민국 영토를 공격했다. 어떤 상황논리로도 정당화 할 수 없는 명백한 도발이다. 그러나 정부는 단호하게 대응하지 못했고, 위기관리 능력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며 초기 대응에 실패한 무능한 안보라고 지적했다. 이후 정부는 ‘안보 무능’ 꼬리표를 떼어내려는 듯 이후 북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북한이 연일 추가 도발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는 가운데, 연평도에서의 사격훈련을 하는가 하면, 대북심리전의 상징인 애기봉 등탑의 점등식을 진행하기도 했다. 다행히 북한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아 무력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지난 21일 열린 <위기의 한반도, 평화 정책의 새로운 구상> 토론회에서 “연평도에서의 사격훈련은 지난 한 달 전에 무참하게 맞아 추락했던 현 정부의 안보 리더십, 안보 무능이 많이 드러났기 때문에 상처받은 자존심을 일거 회복하려던 오기의 리더십 아닌가 싶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정부는 자존심 회복 외에 아무런 이득을 보지 못했다. 국민들이 전쟁 공포에 떨고, 미국과 중국에게 한반도 문제에 대한 주도권을 넘겨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군의 연평도 포격훈련은 국민들의 위기의식을 고조 시켰다. 동아시아연구원과 한국리서치가 당초 연평도 포격훈련 예정일이었던 18일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안보불안을 느낀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79.6%였다. 이 수치는 2000년 이후 최고치다.
국제사회는 우리 정부가 한반도의 위기감을 고조시켰다고 지적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지난 22일 ‘남한군 훈련, 북한은 반응 없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북한의 보복 경고에도 불구하고 남한군은 북한의 경고를 무시한 채 훈련을 시작했다”며 “20일부터 계속된 일련의 훈련은 한반도의 긴장을 높이고 있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의 외교전을 촉발시켰다”고 보도했다. 더불어 북한이 잠잠해졌다고 해서 위기감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패트릭 크로닌 미국 신안보연구센터 아태안보프로그램소장은 여전히 한반도 전쟁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는 CNN 인터넷판에서 “평온이 계속된다는 보장은 없다”며 “일순간에 전쟁이 촉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위기그룹 다니엘핑크스톤 연구원은 다우존스를 통해 “북한의 예상치 못한 공격 가능성은 여전하며 남한은 여기에 촉각을 곤두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쟁 위기감이 감도는 한반도는 열강들의 각축장이 됐다. 지난 20일 천안함 사태에 이어 우리 군의 연평도 사격훈련은 유엔안보리 긴급회의 안건으로 상정됐다. 한반도 문제가 남북을 떠나 주변 열강들이 정치적, 외교적, 군사적으로 대립하는 사안이 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한국 최대 우방국인 미국과 북한 최대 우방국인 중국이 첨예하게 맞섰다. 미국 측은 연평도 사격훈련을 두고 “주권 국가로서의 정당한 권리”라는 입장을 표명한데 반해, 중국 측은 “긴장감을 높이고 상황을 악화시키는 어떤 행동에도 반대한다”며 대립했다. 앞서 미국과 중국은 서해에서 군사력을 과시하며 신경전을 펼치기도 했다. 중국은 미국의 주도하에 11월29일과 30일 서해에서 진행된 한미연합훈련에 맞서 잇따라 미사일 발사, 기습 폭격, 어뢰 발사 준비 태세 점검 등 다양한 군사훈련을 연이어 실시했다. 즉, 한반도 문제가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으로 번지고 있는 양상이다. 이동룔 동덕여자대학교 교수는 “천안함 사건은 미중 간 갈등과 세력 경쟁이 동아시아지역 안보 문제로 촉발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며 “미중 간 세력 경쟁은 자신의 지역기반을 확장하려는 중국과 전통적 지역 영향력을 회복하려는 미국 간의 갈등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주평화연구원, 천안함 사건 이후 미중 관계와 한중 관계, ‘10.10)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한반도 문제에 대한 주도권을 상실했다. 김관옥 계명대 교수는 한국경제와의 인터뷰를 통해 남북관계 주도권 회복이 여의치 않은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김 교수는 “북한이 핵개발 프로그램과 관련해 미국을 북한으로 불러들이고 연평도 사태 이후 한국, 미국, 일본 대 북한, 중국, 러시아로 양분되면서 우리가 남북문제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입지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며 “최근의 한반도 상황은 우리의 손을 떠나 전쟁 직전까지 갔던 김영삼 정부 시절로 회귀하는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전쟁 위기감은 여전히 존재하고, 한반도에서의 주도권마저 미국, 중국에게 넘겨준 상황. 정부의 강경일변 대북정책에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전병헌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북한의 천인공로 할 만행은 규탄해야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벼랑 끝 대치만으로는 한반도 평화를 지켜내기가 버겁다. 대북정책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은 “여야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정권과 정당 차원을 넘어 20~30년을 지속할 수 있는 긴 호흡의 대북전략을 토론하고 마련해서, 구조적인 평화체제를 만들어 나가는 노력을 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한반도 평화의 유일한 해법은 ‘대화’라고 말한다. 야당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한국진보연대 등 20여개 노동·시민·사회단체는 30일 ‘한반도 평화를 위한 비상 시국회의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위기의 남북관계 전환을 위해 남과 북, 주변국들이 즉각 대화에 나서야 한다”며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되찾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이라고 주장했다.
* 메인 사진 출처 - 월스트리트 저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