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이 정당했다'거나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반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성 보수층의 '소수 의견'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보수 진영 내에서도 중도·온건 보수층은 정작 계엄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던 건데, 실제 강성 보수층이 '부정선거론'을 근거로 계엄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과 달리 중도·온건 보수층은 선거관리위원회에도 높은 신뢰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탄핵 반대' 소수 의견이었나... 다수의 보수층은 "계엄 잘못"

강원택 동아시아연구원(EAI) 민주주의연구센터 소장·서울대 교수는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EAI에서 열린 '한국 민주주의 미래와 제도개혁'을 주제로 한 콘퍼런스에 참석해 최근 실시된 설문조사 결과를 근거로 이 같이 분석했다.

실제 EAI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1월 22∼23일까지 전국 성인 1514명을 상대로 진행한 '정치 양극화 관련 인식 조사'(무작위 추출 방식 웹 조사, 응답률 27.4%,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2.52%포인트)에 따르면, 지난 대선 윤 대통령을 뽑았다고 응답한 보수층 가운데 자신을 중도 또는 온건 보수로 표현한 응답자는 각각 44.9%, 32.4%에 달했다. 응답자만 놓고 보면 보수 진영 가운데 중도·온건 보수층이 77.3%에 달했다. 반면 강성 보수층은 22.7%를 기록했다.

그런데 중도·온건 보수층은 모두 계엄 선포에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강 교수가 강성 보수층 응답을 기준으로 계엄 선포에 대한 '이념 집단별 인식의 차이'를 살펴봤더니, 중도·온건 보수층은 '계엄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강성 보수층의 주장과는 각각 -0.289, -0.094씩 차이가 나 반대 결과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강성 보수층이 연일 선관위원회 '부정선거론'을 부각하며 계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과 달리, 중도·온건 보수층은 상대적으로 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신뢰도도 각각 0.219, 0.082 만큼 강성 지지층과 의견 차이가 났다. 이밖에 국민의힘에 대한 호감도 역시 강성 지지층 대비 상대적으로 부정적이었고,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호감도는 보다 높았다.

"정치 참여 적극적인 소수 강경파 목소리, 여론에 과하게 반영"

강 교수는 이날 "계엄-탄핵 정국에서 나타나는 극단의 주장이 실제 우리 사회의 양극화 된 현실을 반영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에서 출발했다"며 "의문을 풀기 위해 보수, 진보 이념 집단을 중도, 온건, 강성 세 하위 집단으로 구분해 차이를 찾아보니 각 집단 내부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특히 보수 집단 내에서는 강성 보수와 관점, 인식, 평가가 뚜렷이 다른 중도 보수 집단이 상당한 규모로 존재했고 온건 보수 역시 강성 보수와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강 교수는 이날 "(계엄 관련) 다른 목소리나 견해가 존재하고 심지어 그 비율도 더 큰데도 이들의 온건하고 합리적인 주장, 의견 대신 강경하고 극단적 주장이 논쟁을 주도하는 건 중도층의 '내적 효능감'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정치 관심도, 정치 참여가 낮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결과적으로 정치 참여에 적극적인 소수의 '강경파'의 목소리가 여론에 과하게 반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강 교수는 이날 '이념 하위집단별 내적 효능감' 자료를 통해 강성 보수층보다 상대적으로 중도·온건 보수층이 낮은 '정치 효능감'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치 참여나 정치에 대한 관심조차 이념이 중도에 가까울수록 수치가 낮아졌다.

이와 관련해 강 교수는 "극단과 강경의 목소리가 주도하는 정치적 토론과 정치 과정은 결코 건강한 민주주의라고 볼 수 없다"며 "침묵하고 있는 온건하고 합리적인 다수의 목소리가 정치 토론 과정에 제대로 반영돼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