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판세를 잘못 읽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최근 동아시아연구원(EAI)에서 '조용한 중도층은 무엇을 원하나'라는 주제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뒤 내린 결론이다. 강성 보수층과 달리, 중도·온건 보수층은 "계엄은 잘못됐고 탄핵은 인용돼야 한다"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정치 효능감'이 낮은 이들이 적극적인 의사 표현을 하지 않고 있다고 봤다. 이 때문에 최근까지 여당과 야당 지지율이 팽팽하게 맞선 것으로 조사된 여론조사에서 강성 보수층 중심으로 과표집된 결과가 나왔다는 설명이다.

12·3 비상계엄 이후 국민의힘이 윤석열 대통령을 옹호하면서 자꾸만 '오른쪽'으로 향하는 사이, 이에 대해 비판적이면서도 숨죽인 채 지켜보던 또 다른 유권자층이 있었다는 말이다. 이들 중도층이 전체 유권자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도 약 46%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더 자세한 설명을 듣기 위해 지난 2월 25일 서울 광화문 <오마이뉴스> 편집국에서 강원택 교수와 만났다.

강 교수에 따르면, 현재 중도층 유권자들이 정치권에 바라는 것은 '화해와 통합'이다. 중도층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부터 이어진 정치적 양극화에 "피로감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국민 과반이 '계엄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데도 일부 여론조사에서 정권교체 여론이 정권유지와 오차 범위 내로 나타났던 것도 정치적 양극화와 관련 있다는 게 강 교수의 분석이다. 그는 그동안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가 정치 양극화의 두 축이었기 때문에 중도층이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있다면서 "탄핵이 인용되면 정치 양극화의 한 축이 빠지는 셈이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경쟁 구도가 펼쳐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 탄핵이 인용될 경우 국민의힘 대선주자들이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 "윤석열 프레임이 남아 있는 한 (조기 대선에서) 보수가 이기기는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강 교수는 최근 이 대표의 '우클릭'을 가리켜 "중도층 표심에 도움이 될 수 있다"라면서도 "이 대표의 가장 큰 문제는 신뢰감이다. 우클릭을 하더라도 왜 해야 하는지 먼저 설득력 있게 설명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단순히 표심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분열과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라고 설득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 대표가 내놓은 '잘사니즘' 비전에 대해서는 "어쩐지 1960~70년대 '잘 살아보세' 느낌이 난다. 우리 사회가 당면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너무 낮은 단계의 이야기"라며 "중도층을 설득하려면 단순한 립 서비스보다 진정성 있고, 정책 사이에 일관성 있는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다음은 강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 내용이다.

최근 동아시아연구원 조사를 통해 '조용한 중도층은 무엇을 원하나'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내용을 보면 중도·온건 보수들은 강성 보수들과 달리 계엄 사태에 부정적이었다.

"중도·온건 보수들은 상식적인 분들이다. 계엄은 잘못됐고 탄핵은 인용돼야 하고, 대통령도 물러나야 할뿐더러 대선 이후 새로운 정치 질서로 나아갔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 중도층이 원하는 건 분열과 혼란의 종식이다. 현재 정치권의서 논의는 '누가 이기느냐'에 집중돼 있지만 정작 말없이 지켜보는 중도층 대다수는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정치적 피로감도 상당하다. 그들은 (조기) 대선이 지난해 12월 3일 이후의 혼란을 마무리 짓고 새로운 정치를 향한 출발점이 되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 EAI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1월 22∼23일까지 전국 성인 1514명을 상대로 진행한 '정치 양극화 관련 인식 조사'(무작위 추출 방식 웹 조사, 응답률 27.4%,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2.52%포인트)에 따르면, 중도·온건 보수층은 '계엄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강성 보수층과는 달리 모두 계엄 선포에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 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도는 전체 유권자의 몇 %인가?

"46.4%로 절반에 가까웠다. 조사할 때 자신의 이념 성향을 0~10 중 선택하도록 하고,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이재명 후보 중 누구에게 투표했는지를 기준으로 보수, 진보로 구분했다. 0~2와 3~4는 각각 강성, 온건 진보, 5 가운데 이재명 후보에 투표한 이들을 중도 진보, 윤석열 후보에 투표한 이들을 중도 보수로 나눴다. 또 6~7은 온건 보수, 8~10은 강성 보수로 분류했다. 그중 스스로 중도(5)라고 언급한 이들이 가장 많았다."

- 그렇다면 계엄 사태 이후 줄곧 대통령 옹호에 나섰던 국민의힘은 전체 보수층이 아닌 강성 보수층만의 목소리를 대변해 왔다는 건데 왜 그랬다고 보나?

"최근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수도권에서 거의 전멸한 게 굉장히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수도권 민심은 예민하다.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데다 중도층도 제일 많다. 그런데 국민의힘 의원 대부분이 TK(대구·경북) 출신이 많지 않나. TK쪽 지지자들 중에는 아무리 계엄이 잘못됐더라도 '그렇다면 이재명은 잘했냐' 하는 정서가 크다. TK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일수록 그런 주장에 익숙할 수밖에 없다.

판세 자체도 잘못 읽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 역시 궁금했다. 계엄 사태 이후 왜 김문수, 홍준표가 뜨고 오세훈, 한동훈은 지지도가 낮게 나오는지 말이다. 그래서 조사해본 결과, 상대적으로 중도층들은 정치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 정치 참여에도 적극성이 약한 데다 정치 효능감도 낮았다. '내가 말한다고 바뀔까' 라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중도층은 전화 여론조사에 적극 참여를 안 했다. 여론조사에 극단적인 이들 의견이 과대 표집된 측면이 있다는 뜻이다. 그래도 최근 조사 결과 보도가 나가면서 이제야 정치권에서도 중도층에 관심을 두게 됐다."

- 그렇다면 탄핵 인용을 전제로, 그동안 윤 대통령을 보호해 왔던 국민의힘의 행태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보나?

"그렇다. 헌법재판소에서 최종 결정이 나면 국민의힘 같은 수권 정당이 '못 받아들인다'고 할 수는 없다. 국민의힘은 지금 어떤 측면에서는 결정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재명 대표를 이기기 위해, 현 국면을 '슬슬 정리해야 한다'고 여기지만 여전히 핵심 지지층이 탄핵 반대를 주장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중도층 내에서는 민주당에 뒤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기존의 강도 높은 말만 하기는 애매해졌다. 결정이 나오면 '결과를 받아들이고 이재명을 이기겠다'며 강성 지지자들을 설득하고 나설 것이다."

- 그런데 지난 2월 24일 발표된 리얼미터 조사 결과에서는 '여당이 정권을 연장해야 한다'와 '야권이 정권 교체를 해야 한다'가 오차 범위 내였다. 현재 중도·온건 보수층의 마음은 어디에 있다고 봐야 할까?

 

"먼저 알아야 할 부분이 있다. 지금껏 정치 양극화는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가 두 축이었다 그래서 지금 중도층도 어느 한 쪽으로 가지 못한다. 그런데 탄핵이 인용되면 어떨까? 완전히 새로운 경쟁 구도가 펼쳐질 것이다. 정치 양극화의 한 축이 빠지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 누가 들어올지 알 수 없다. 홍준표나 김문수가 될 수도 있지만 오세훈이나 한동훈이 될 수도 있다. 만약 국민의힘 후보가 선거 국면에서 윤 대통령과 거리를 두고, 또 계엄 사태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차별화를 시도한다면 새로운 경쟁 구도가 생길 수 있다. 중도·온건 보수층의 표심도 달라질 수 있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몇 번 있었다."

- 어떤 사례였나?

"이회창 전 국무총리도 김영삼 전 대통령 때 외환위기로 민심이 나빠지자 차별화로 부각된 인물이다. 당 이름도 신한국당에서 한나라당으로 바꿨다. '이인제'라는 인물만 없었다면 대통령이 될 만큼 득표율이 나왔다. 아마 앞으로 국민의힘 후보들도 상당한 수준의 차별화를 할 거라고 본다. 특히 오세훈이나 한동훈처럼 계엄 당시 명확한 반대 뜻을 냈던 인물들을 중심으로 말이다."

- 그렇다면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홍준표 대구시장은 어떤 자세를 취할까?

"당내 경선 승리가 급한 만큼 일단은 주요 지지층에 호소하는 메시지를 낼 텐데 그렇게 해서는 본선에서 중도 확장이 어렵다. 그러면 지는 거다. 윤석열 프레임이 남아 있는 한, 보수가 이기기는 어렵다고 본다."

'나도 보수'라는 민주당...이재명에게 필요한 것

- 민주당이 국민의힘을 극우라고 몰아붙이고 스스로 중도보수를 자처하고 나섰다. 이런 시도가 조기 대선 국면에서 중도·온건 보수의 표심을 끌어오는 데 좋은 영향을 미칠까?

"우선 '중도 보수'라는 말은 정치적 수사겠지만 도움은 될 수 있다. 다만 이 대표의 가장 큰 문제는 신뢰감이다. 최근 메시지를 바꾸는데 이를 달리 말하면 또다시 쉽게 말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보다는 차라리 왜 우클릭을 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게 낫다. 단순히 표심 때문이 아니라 정치·사회적 분열과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라고 설득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보여준 모습이다. 그런데 요즘 이 대표는 큰 틀에서의 변화라기보다 정책을 전술적으로 이 영역에서는 이렇게 맞추고 저 영역에서는 저렇게 맞추고 있다. 나라를 운영하기 위한 큰 비전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은 어떻게 달랐나?

"본인이 갖은 억압을 받았는데도 모두를 끌어안은 사람이다. 국내 정책 관련해서도 큰 틀을 제시했기 때문에 안정감을 줬고 변화의 메시지를 냈다. DJP 연합(김 전 대통령과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총재가 맺은 연합)으로 권력도 공유했다. 경제·사회 영역은 모두 보수 진영인 자민련에 맡기지 않았나. 장관들과 경제부총리, 비서실장까지 모두 자민련에서 나왔다. 통합을 위한 노력에 무게감이 실려 있었다. 이런 모습을 이 대표가 보여줘야 한다."

- 이 대표도 최근 김부겸 전 국무총리,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박용진 전 민주당 의원과 만나면서 당내 통합 행보를 하고 있는데.

"이 대표 역시 의견이 다른 이들을 포용하겠다는 뜻으로 이런 행보를 하는 걸로 보인다. 문제는 그들에게 실질적으로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점이다. 나중에 이재명 정부가 탄생해도 그들이 중책을 맡을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이 있을까? 국민들이 쳐다만 보는 것 같아도 사실은 그 진정성을 읽고 있다."

- 이재명 대표가 '먹사니즘', '잘사니즘' 전략을 내놓았는데.

"글쎄. 어쩐지 1960~70년대 '잘 살아보세' 느낌이 난다. 그런데 지금은 산업이 상당히 고도화됐다. 미-중 갈등도 심화되고 청년 문제도 심각하고 굉장히 난제가 많다. 단순히 '먹사니즘'을 내놓는 건 유권자들에게 와닿기 쉽지 않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광우병 사태 때 이렇게 말했다. 국민들이 '값싸고 맛있는 소고기를 배불리 먹으면 좋아할 줄 알았다'고 했다. 그때도 국민들은 그 이상의 가치인 '건강'을 원했기 때문에 길거리로 나섰다. 이 대표의 '먹사니즘' 또는 '잘사니즘'은 소위 돈을 많이 벌게 해주겠다는 메시지인 셈인데 우리 사회가 당면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너무 낮은 단계의 이야기다."

- 이 대표가 주장하는 '중도 보수' 정체성이 민주당의 기존 지지자, 즉 '집토끼'에게도 영향을 줄까?

"그건 영향이 없다고 본다. 대선 국면에서 후보자 구도가 1:1이 되면 상대 후보에 대한 적대감이나 불신 때문에 각 당 지지자들은 원래 있던 자리로 들어온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이 대표가 점점 오른쪽으로 가는 건데, 결국은 중도의 선택이 중요하다. 그들을 설득하려면 단순한 립 서비스보다 진정성 있고, 정책 사이에 일관성 있는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 정치력도 중요하다. 낮에는 여당과 싸우더라도 물밑 협상은 계속해야 한다. 민주당이 국회에서 협상이 안 될 때 '우리끼리 하자'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더 큰 권한을 마음대로 행사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만들고 있다."

"한국의 중도보수, 화해와 통합 원한다"

- 그렇다면 '조용한 중도층'이 다음 정권에 바라는 가장 큰 요구사항은 무엇일까.

"화해와 통합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부터 사회가 두 쪽이 났다. 심지어 요즘 벌어지는 극단의 갈등에는 내용이 없다."

- 그게 무슨 뜻인가?

"'그냥 상대방이 싫다'는 감정적 혐오만 있다는 뜻이다. 굉장히 소모적이다. 그래서 다음 정부에서는 통합이 매우 중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했던 것처럼 승자 독식의 형태로 일방주의적인 국정 운영이 돼선 안 된다. 그러면 갈등과 혼란은 더 확산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개헌도 필요하다. 선거에서 이긴 한 사람이 A부터 Z까지 모두 결정하는 시스템은 낡았다. 이제는 대통령 권한을 줄이고 중앙정부가 틀어쥐고 있던 권한을 지방정부에 내려보내는 등의 권력 분산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