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국제 정치의 틈바구니에서 한국이 나아갈 방향과 '인도-태평양전략'의 성공 조건
근대 이후 세계 주요국들은 지역 개념을 창안하여 경계를 획정하고, 자국에 유리한 전략공간을 조성하고 경쟁해왔다. 19세기 후반 미국이 내세운 ‘태평양’과 이러한 서양 제국주의의 압력에 대응해 나타난 ‘아시아’의 대립을 시작으로, 탈냉전기에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주도하는 개념으로 부상한 ‘아시아-태평양’과 이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동아시아’, 그리고 오늘날 미중 경쟁의 갈등 속에서 국제적인 화두가 된 ‘인도-태평양’까지, 언제나 국제사회는 개념의 정립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다. 그러므로 국제 정치의 역사는 곧, 개념전쟁의 역사라 할 수 있다.
한국은 그동안 개념투쟁의 역사에서 주변부에 머물러 있었지만 새로운 지역 질서를 건축해나갈 책임이 있는 선진 중견국이 되었다. 이 책은 개념전쟁의 주변부에 위치했던 한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지도의 중심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개념사적 접근법’을 통해 치열하게 전개되어 온 개념투쟁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과 동시에 오늘날 우리에게 ‘인도-태평양’ 개념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한국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떠한 방향으로 정책 어젠다를 수립해 나가야 할지 그 방안을 모색한다.
왜 지금 ‘인도-태평양'인가? 국제적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개념전쟁의 역사
윤석열 정부는 2022년 12월 “자유, 평화, 번영의 인도-태평양전략”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그 구체적 내용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또한 인도-태평양전략을 “윤석열 정부의 외교독트린”이라 규정하고, 향후 이를 정부의 핵심 외교정책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미중 간 경쟁 구도가 심화되고, 미국이 인도를 끌어들여 중국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면서 인도-태평양의 중요성이 커짐으로써 한국도 이 개념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 책은 이처럼 국제 환경의 변화 속에서 왜 한국이 인도-태평양 개념을 수용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동안 세계 주요국들은 국제 사회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지역어를 창안하여 경계를 획정하고, 이를 이용해 자국에 유리한 전략공간을 조성하고 경쟁해왔다. 이는 상대의 행위를 직접적으로 규제하는 게 아니라 특정 공간에 가두거나 배제함으로써 일종의 구조적 권력을 행사하는 것인데, 이를 주도하는 세력은 공간 개념을 이용하여 자기의 정치적·사회적 행위를 통제하고 타자를 구별하고자 한다. 이로 인해 국제적 패권을 장악하는 국가가 있는가 하면, 자국의 위상이 현실 혹은 미래의 열망과 괴리가 있다고 느끼는 국가는 이에 대항하는 개념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 책은 이처럼 지역어와 그로 인해 형성되는 세력 지도를 두고 벌어지는 치열한 국제적 갈등을 다루고 있으며 이를 ‘개념전쟁’이라고 정의한다.
이 전쟁의 핵심적인 세 가지 개념 축은 아시아-태평양, 동아시아, 인도-태평양이다. 아시아-태평양은 유일한 지구적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한 미국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추진을 목표로 설정하고 그 실천 전략으로 구획한 전략공간이며, 동아시아는 이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개념으로서 토착적 관념과 제도에 기반한 자본주의, 나아가 대안 문명을 모색하는 공간이다. 마지막으로 인도-태평양은 미국이 중국의 패권적 부상을 저지하는 동시에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수정하는 재세계화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21세기의 국제 정치는 이러한 세 개념 축을 중심으로 공간 지배를 획책하는 강대국과 이를 수용·변용하려는 주요국의 전략적 경쟁과 제휴, 타협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 가운데 한국은 아시아-태평양에서 동아시아로, 그리고 동아시아에서 인도-태평양으로 개념을 전환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어떻게 주체적인 외교전략을 수립할지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이 책은 한국이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각 지역어의 의미와 그 용어들이 갈등하고 대립하는 역사를 아는 것이 시작이라고 말하며, 이를 통해 한국의 인도-태평양전략, 더 나아가 국제 전략의 방향을 모색한다.
목차 책을 펴내며
서장 공간 지배와 개념전쟁 공간을 둘러싼 개념전쟁의 시작 공간, 개념, 지역 개념사적 접근을 통한 분석 개념전쟁의 역사를 통해 이 책은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제1장 아시아 대 태평양, 개념전쟁의 서막 천하(天下)라는 전통적인 세계관 문명의 교체, 천하에서 아시아로 인종 개념으로서의 아시아 조선의 개념전쟁 태평양 개념의 등장 태평양 개념의 전파 ‘동아(東亞)’라는 대항 개념의 등장 동아 개념의 전파: 동아협동체론 동아협동체 개념과 미키 기요시 조선의 동아협동체 수용 태평양 대 동아, 두 개념의 충돌과 전쟁
제2장 태평양에서 아시아-태평양으로 전후 질서의 확립과 태평양 개념의 진화 경제 개념으로서 태평양의 재부상 아시아-태평양 개념의 등장 아시아-태평양 개념의 전파 미국의 패권과 아시아-태평양 개념의 관계
제3장 동아시아의 재구성 동아시아라는 개념의 재현 기적의 동아시아, 위기의 동아시아 문화적 공간으로서의 동아시아 동아시아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중국의 노력 일본이 내세운 동아시아공동체의 개념 동아시아 공간을 둘러싼 중일 간 개념전쟁 아시아-태평양의 반격 동아시아 개념의 후퇴
제4장 인도-태평양의 등장과 경합 인도-태평양의 부상 인도-태평양을 둘러싼 세력 배분 구조의 변화 인도-태평양 개념으로 지정학적 변화를 꾀한 일본 인도의 인도-태평양전략 호주의 인도-태평양전략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 인도-태평양전략에 대한 중국의 저항 인도-태평양 지역의 과잉 안보 딜레마 깊어가는 한국의 고민
제5장 동북아에서 인도-태평양으로 한국, 동북아 vs. 인도-태평양 동북아시아 개념의 기원과 탄생 친숙한 동북아 개념에 매달린 한국 한국에게는 낯선 인도-태평양 개념 인도-태평양 개념의 뒤늦은 수용 인도-태평양을 익숙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조건
제6장 한국의 인도-태평양전략 7대 성공 조건 개념전쟁의 역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1. 지구적 맥락에서 미래 변화를 담는 개념을 설정하라 2. 인도-태평양을 친숙한 공간으로 만들어라: 인도와 동남아와의 관여 강화 3. 인도-태평양전략의 대목표를 설정하라 4. 인도-태평양 개념에 전략적 지향성을 담아라: ‘전략적 균형’전략 5. ‘중층적 공간’전략을 짜라 6. 선진 중견국 네트워크 외교를 펼쳐라 7. 제도적 역량을 강화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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