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젠칭 공상은행장ㆍ저우샤오촨 인민은행장…
◆상하이엑스포 D-1 중국의 힘 ⑤◆ 중국 엘리트 그룹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상하이ㆍ화둥 인맥들은 주로 정보기술(IT) 분야와 금융 부문에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 중국공상은행의 장젠칭을 들 수 있다. 장젠칭은 상하이에서 태어나 상하이 재경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학을 거쳐 상하이 자오퉁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형` 기업인. 장젠칭은 1984년 공상은행이 설립되면서 상하이지점 판공실 부주임으로 자리를 옮긴 이래 상하이 푸둥지점 부행장과 상하이지점 부행장을 거쳐 2000년 공상은행장 자리에 올랐다. 국유은행인 공상은행 행장이 된 후 장젠칭은 은행 개혁을 진두지휘했고, 2005년에 홍콩 증시 상장을 주도했다. 이후 공상은행은 세계 3위 은행(시가총액 기준)으로 급성장하게 된다. 중국의 앨런 그린스펀으로 불리는 인민은행장 저우샤오촨은 주목을 끄는 화둥 금융계의 거목이다. 장쑤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는 제1기계공업부 부장을 지냈던 저우젠난이다. 특히 저우젠난은 장쩌민이 성장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다. 저우샤오촨의 주변 파워는 가히 가공할 만하다. 아버지 저우젠난과 장쩌민의 이와 같은 오랜 인연에 더해 국무원 총리인 주룽지와는 칭화대 동문이라는 학연으로 얽혀 있다. 장쩌민이 중국 권력을 장악하게 되는 1990년대 저우샤오촨은 금융계의 요직을 거치면서 성장했다. 저우샤오촨은 1986년 대외무역부 부장 보좌관과 경제체제개혁위원회 위원 등을 거쳐 1991년에 중국은행 부행장으로 금융계에 들어왔다. 이후 국가외환관리 국장과 인민은행 부행장, 건설은행 행장, 증권감독관리위원회 주석 등 금융계 요직을 거쳤다. 역시 칭화대 동문인 후진타오가 부상하면서 2002년에는 인민은행 행장으로 고속 승진했다. 국가부주석인 시진핑이나 국무원 부총리인 왕치산과는 칭화대 학연과 `태자당(太子黨)` 인맥으로 연결돼 있다. 그러나 저우샤오촨은 단순히 `줄`로만 성공가도를 달렸던 게 아니다. 그는 중국에서 손꼽히는 금융재정 분야의 학자 관료로 평가받고 있다. 인민은행 행장에 발탁된 후 저우샤오촨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 따른 금융시장 개방과 국유 상업은행인 중국은행과 공상은행의 증시 상장을 주도했다. 또 위안화 고정환율제 폐지 등 시장경제친화적 개혁을 과감하게 단행해 중국 안팎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젊은 화둥 경제엘리트의 중심에는 최연소 인민은행 부행장인 류스위를 주목할 수 있다. 1961년생으로 올해 49세. 칭화대 출신으로 주룽지가 시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상하이시 경제체제개혁 판공실에서 첫 공직을 시작했다. 당시 상하이 경제체제개혁 판공실은 시장이 직접 관장하는 핵심 부서로 상하이 경제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다. 1991년 주룽지가 부총리에 선출되자 류스위는 국가경제체제개혁위원회로 자리를 옮겼다. 주룽지가 총리로 선출된 후 곧바로 인민은행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일약 금융계의 차세대 엘리트로 부상했다. 저우샤오촨 밑에서 판공청 주임과 행장보좌관을 지낸 후 45세인 2006년 인민은행 부행장으로 발탁됐다. [기획취재팀=김경도 차장 / 김은정 기자 / 박승철 기자 / 상하이 = 장종회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