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당선인은 진영을 넘어선 새로운 대북 정책의 판을 짜려고 합니다.”

 

장제원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이 최근 외교안보 분야의 한 인사를 만나 한 말이라고 한다. 이 인사는 장 실장이 “‘윤석열 정부는 MB(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핵·개방 3000과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넘어선 새로운 대북 접근법을 마련하려 한다’는 말을 1시간 가까이 했다”며 “고민이 깊은 것 같더라”고 말했다.

 

중앙일보가 최근 장 실장이 접촉했던 인사들과 대통령직인수위 관계자 등을 통해 파악한 윤석열 정부 대북 정책의 밑그림은 ▶새로운 판 짜기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설득하고 ▶캠프와 진영을 넘어선 인물을 기용하며 ▶기존 보수 정부와 달리 북한에 열려 있다는 시그널을 전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인수위 내부에선 10일 발표된 8개 부처 장관 후보에 통일부가 포함되지 않은 것도 이 같은 윤 당선인의 고심이 반영됐다는 해석이다.

 

윤 당선인 측이 대북 정책의 ‘새로운 접근법’을 검토하는 건 현재 남북 관계가 최악의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또한 과거 보수 정부 때의 경험으로 북한이 윤석열 정부에 가질 수 있는 적대감에 대한 고민도 담겼다고 한다.

 

최근 장 실장을 만났던 인사는 “처음부터 새로운 판을 짜지 않으면 남북 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며 “북한과 대화하며 비핵화를 추동할 수 있는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겠냐고 물어왔다”고 전했다. 인수위는 지난달 북한과 기후변화·재난재해 공동 대응 등 ‘그린 데탕트’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런 ‘새판 짜기’는 새로운 인물의 기용과 연동돼 있다. 최근까지 당선인 측이 통일부 장관 후보로 북한 경제를 연구한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경제학과 교수)을 지명하려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 원장은 전통적인 북한 전문가나 관료와 달리 북한의 경제 체제와 대북 제재, 비핵화 구상을 함께 연구하는 학자다. 지난해 9월 동아시아연구원을 통해 ‘북한 비핵화와 21세기 생존 번영을 위한 신구상’이란 보고서도 냈다.

 

당선인 측에선 무엇보다 김 원장이 특정 캠프나 진영에서 활동하지 않았다는 것을 큰 장점으로 꼽았다고 한다. 특정 정파나 이념 진영에 속하지 않은 인사를 기용해 북한에 열려 있다는 시그널을 주려 했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윤 당선인과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가 모두 동의한 후보였다. 하지만 김 원장이 “올해 2월 개원한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을 책임지고 있어 자리를 비울 수 없다”며 고사하는 바람에 인선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후 국회 정보위원장을 맡았던 4선의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이 유력하게 검토됐지만, 권 의원도 당 대표 출마 등을 이유로 난색을 보이고 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오랜 기간 활동한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도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지난 대선 때 윤석열 후보 캠프에서 유일한 대북 전문가였던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도 물망에 오르고 있지만, 대북 정책에 관한 한 이명박 정부 출신이란 점이 핸디캡으로 작용하는 분위기다.

 

당선인 측 관계자는 “통일부 장관은 전문가나 명망가 중에서 인선을 고민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