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협치의 관점에서 국화-대통령 관계를 상상하라

 

한국에서 대통령과 국회 사이의 관계를 언급할 때 일반적으로 ‘대통령- 국회 관계’로 말하거나 쓴다. 그러나 이 장에서는 ‘국회-대통령 관계’로 썼다. 일반적인 관행과 어긋남에도 굳이 이처럼 적은 이유는 법치주의에 입각한 민주주의 체제에서 입법을 담당하는 국회는 법의 집행을 담당하는 대통령보다 그 제도적 중요성이 크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우리의 국회는 한때 입법부보다는 ‘통법부’로 간주되던, 즉 대통령이 요구하는 정책에 별다른 이견 없이 ‘입법’이라는 정당성의 겉옷을 입히는 통법부로 기능하던 시기도 있었다. 국회가 통법부로 존재할 때 ‘대통령-국회 관계’라는 표현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우리의 국회는 입법부로서의 독자적 위상을 꾸준히 신장시켜왔다(손병권 외 2020; 함성득 2017; Park and Wilding 2016). 이제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대통령은 한 발자국도 떼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다시 말해 대통령과 국회의 상호작용에 있어서 대통령이 아니라 국회에 방점이 찍히게 되었고, 따라서 ‘대통령-국회 관계’가 아니라 ‘국회-대통령 관계’로 부르는 것이 적절 한 시대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우리 민주주의의 심화·발전을 위해 국회-대통령 관계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한가? 결론부터 말하면 ‘협치’에 입각한 국회-대통령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사실 우리나라 정치에서 협치만큼 중요하면서도 공허한 개념은 없다. 대립과 갈등이 커져가는 사회에서 누구나 협치가 중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막상 실천하는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해리포터와 불의 잔』에 “우리는 옳은 것과 쉬운 것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옳은 것’과 ‘쉬운 것’의 일대일 대조를 통해 옳은 것에는 어렵다는 뉘앙스를, 쉬운 것에는 옳지 않다는 뉘앙스를 함축시켜 놓은 구절이다. 대통령이 여야와 함께 의논하여 결정한다는 협치는 다양하고 갈등적인 이해관계를 정책 결정에 수렴하여 통합된 공익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옳은 것이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반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제나 존재하는 이해관계의 대립과 갈등을 방관·조장·확산하여 권력을 획득·행사하는 방식은 옳지 않지만 비교적 쉬운 일이다. 민주화 이후 우리의 정치는 옳은 것과 쉬운 것 가운데 주로 쉬운 것을 선택해 왔다.

 

협치에 입각한 국회-대통령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말은 어렵지만 옳은 길을 가달라는 요구이다. 여야가 공감하고 합의할 수 있는 정책 영 역을 개척·개발하고 확산시켜 나가는 정치, 대립·갈등보다는 협력의 정치문화를 구축하는 정치를 해달라는 요청이다. 이러한 요구는 ‘무엇을 이루어낼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이루어낼 것인가’에 관심을 둔다. 따라서 결과 중심적이기보다는 과정 중심적이다. 그러나 과정은 결과를 결정 짓는 훨씬 근본적인 요소다. 제작 공정이 엉망인 공장에서 제대로 된 제 품이 만들어질 수 없듯이, 정책 결정 과정이 엉망인 정부에서 제대로 된 정책이 만들어질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대통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대통령은 입법부로서 국회의 위상이 매우 커진 시대적 변화를 냉철하게 인식해야 한다. 국회는 더이상 과거 권위주의 시절처럼 대통령이 명령하면 그대로 따르는 존재가 아니다. 대통령은 국회를 국정 운영의 동등한 파트너로서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만 한다. 둘째, 대통령은 제대로 된 정책적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선 제대로 된 정책 결정 과정이 우선된다는 점을 인식해야만 한다. 대통령은 적대적이고 제로섬적인 여야 관계를 지양하여 협치에 입각한 정치 문화를 만들어야 하며, 이를 통해 경쟁·갈등하는 정파적 사익을 조율하여 통합된 공익으로 전환하는 정책 결정 과정을 구축해야 한다. 이 두 가지는 민주화 이후 어떤 대통령도 못 했던 것이다. 어쩌면 못 한 것이 아니라 하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들 모두에게는 통치하기보다는 군림하기를 원했던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제왕의 딱지를 떼고 ‘협치’의 ‘국회-대통령 관계’를 만들어 군림하기보다 통치하는 대통령이 출현할 때 비로소 우리는 민주화 이후 최초로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대통령을 맞이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럼 협치의 국회-대통령 관계는 어떻게 형성될 수 있는가? 필자는 협치의 국회-대통령 관계를 제도의 측면에서 고려하는 대신, 이를 위해 대통령이 어떠한 마음의 습관을 가져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제도보다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제도가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제도는 제도 안에서 참여하는 행위자 간의 안정적인 상호작용을 창출하여 불확실성을 줄이는 구조가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North 1990). 문제는 아무리 좋은 취지의 제도라 하더라도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들이 민주주의에 필요한 ‘마음의 습관’을 지니지 못하면 악용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에 있다(토크빌 2018; Levitsky and Ziblatt 2018).[1] 우리 정치인의 정파적이고 적대적인 마음의 습관이 바뀌지 않는 한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마련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정치는 대립과 갈등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협치의 국회-대통령 관계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측면을 마음에 담고 실천해야 한다. 첫째, 정치가 없으면 정책도 없다. 둘째, 국민을 동원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크다. 셋째, 다수제보다는 합의제다. 넷째, 야당과의 협상 과정은 불투명한 것이 좋다. 물론 협치의 국회-대통령 관계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회, 특히 야당의 자세도 바뀌어야만 한다. 그러나 변화의 시작은 대통령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국회의원 300명 모두가 변하는 것보다 대통령 한 사람이 변하는 것이 더 실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통령 한 사람의 변화는 갈등으로 점철된 한국 민주주의의 지형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초 석이 될 수 있다. 적대와 대립의 한국 정치를 협력과 통합의 한국 정치라는 선진화의 경로로 전진시키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 이제 선진화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선진화의 길로 접어드는 첫발을 떼는 일은 분명 역사적 업적으로 기록될 것이다.

 

2. 정치 없이 정책 없다

 

한국의 대통령은 대개 국회의원 출신이지만 대통령에 당선되는 순간 국회 를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대통령은 입법부를 견제와 균형이라는 수평적 관점에서 보지 않고 대통령을 위해 일해야 하는 종속적 관계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의 말이다(함성득 2017, 235쪽에서 재인용). 앞서 지적 한 대로 민주화 이후 국회는 대통령의 명령에 복종하는 통법부에서 명실 상부한 입법부로 거듭났다. 슬픈 현실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들은 대부분 여전히 자신이 ‘주(主)’고 국회는 ‘종(從)’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견지해 왔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국회에 명령하는 존재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한 결과, 정치는 실종됐고 정치의 실종은 정책의 실패로 이어졌다.

 

대통령은 더이상 국회에 명령하는 존재가 될 수 없다. 민주화 이후 입 법부로서의 국회의 권한이 매우 커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제19대 국회부터 시행된 국회선진화법은 야당이 전체 의석의 5분의 2 정도를 차지하는 경우 이들과의 합의 없이는 어떤 법안도 국회를 통과하기 어렵게 만들어놓았다. 식물 국회로 불렸던 제20대 국회를 떠올려보라. 당시 과반 의석도 얻지 못한 야당이 실질적인 거부권 행사자로 활동하며 대통령이 제시한 정책 의제의 입법화를 번번이 지연·차단시켰다. 야당뿐만이 아니다. 여당도 대통령에게 반기를 드는 경우가 잦아졌다. 노무현 대통령 당시 한미 FTA 체결이나 이명박 대통령 당시 정부 청사 세종시 이전 문제 등에 대한 여당의 반발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정치적 환경의 변화는 대통령의 정치적 능력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음을 의미한다. 신뢰에 입각한 여야 관계를 만들고 이에 기반하여 협상과 설득을 통해 갈등의 조정과 통합을 이루어낼 수 있는 대통령의 정치적 능력 말이다. 그러나 명령자로서의 대통령은 국회 내 원만한 여야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여야 의원들을 직접 만나 대화하고 설득하는 정치적 노력을 펼칠 생각이나 의지가 없다. 또 여야 간 대립과 갈등이 일상화된 국회는 입법 교착을 스스로의 힘으로 벗어나지도 못한다. 이러한 상황은 대통령 정책 의제의 표류와 실패로 귀결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 활성화나 노동 개혁 법안 등이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국회가) 맨날 앉아서 립서비스만 하고, 민생이 어렵다고 하면서 자기 할 일은 하지 않는다. 위선이라고 생각한다… 국회가 다른 이유를 들어 경제의 발목을 잡는 것은 직무유기이자 국민에 대한 도전이다(함성득 2017, 160쪽에서 재인용).

 

국회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말이다. 그러나 정작 박 대통령은 이러한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야당의 대표나 당직자들과 대화 한번 나눈 적이 없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은 “대운하 사업은 경제나 환경문제를 넘어 정치 문제로 변질되어갔다. 우리 정치 환경에서는 아직 정책이 정치를 이기지 못한다”고 한탄했다(이명박 2015). 그러나 정책이 정치를 이기지 못하는 상황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어떤 민주주의 체제에서도 정치 없이 정책을 얻을 수는 없다(Binder and Lee 2015).

 

대통령이 원하는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선 반드시 국회 내 여야의 도움 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들의 도움을 얻기 위해서는 상호 신뢰에 기반한 여야 관계를 형성하여 대립과 갈등보다는 대화와 타협에 입각한 입법과 정을 만들어가는 ‘정치’를 해야만 한다. 대통령은 여야 간 상호 신뢰를 형 성하기 위해 여야를 막론하고 지속적으로 의원들을 만날 필요가 있다. 공식적인 만남도 중요하지만 사적인 만남도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사적인 만남을 통해 허심탄회하게 자신들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을 때, 비로 소 대화 파트너로서의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에 대한 넓어진 이해의 폭은 서로 간에 타협과 합의를 추동하는 효율적인 연료로 쓰일 수 있다.

 

한편 대통령은 국회 내 여야 간 갈등에서 파생되는 팽팽한 긴장을 조급하게 끊으려고 하기보다는 인내심을 가지고 끌어안고 가려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대통령의 인내심은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하다. 첫째, 여야 간 팽팽한 줄다리기를 조급하게 끊어버리려는 행위는 갈등을 오히려 증폭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대통령의 정책 의제에 대한 입법 교착 상태를 신속히 타개하기 위해 국회의장이 직권상정 권한을 발동한 경우 여야 간 원내 갈등은 언제나 더욱 심화되는 모습을 보였다(전진영 2011). 둘째, 갈등을 통합하는 새롭고 참신한 정책적 아이디어는 여야 간 긴장이 유지되어 충분히 숙성했을 때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대통령은 여야 간 갈등과 긴장이 서로를 적으로 간주하는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음과 동시에 그러한 긴장 속에서 새로운 창조의 싹이 자랄 수 있는 환경 이 형성될 수 있도록 인내하며 노력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여야 간 신뢰를 쌓아가는 정치에 있어서 또 한 가지 유념할 것은 정치를 선악의 관점에서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김영수 2019). 정치를 옳고 그름에 입각하여 판단하는 경우 대부분은 ‘나는 옳고 상대는 그르다’는, 따라서 상대는 반드시 꺾어야 하는 적대적 관계로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야 간 대화와 타협에 입각한 협치는 불가능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아마도 가장 많은 시간을 여야 국회의원들과 만나고 대화하는 데 썼던 대통령이다(김병준 2012). 그런데도 정작 야당과의 관계는 매우 좋지 않았다. 집권 초 불거진 정치자금 수사에서 야당인 한나라당을 ‘차떼기 정당’으로 부르고 “내 불법 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이 넘으면 책임을 지겠다”는 발언까지 하며 한나라 당을 거의 암적인 존재로 몰아갔기 때문이다. 이렇게 처음부터 틀어진 관계는 노 대통령 임기 내내 한나라당이 노 대통령의 정책적 의제를 무시와 거부로 일관하게 만들었다(윤여준 2011).

 

정치는 선악의 구분이 선명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영역이다. 맥락과 상황에 따라서 어제의 선이 오늘의 악이 될 수도 있다. 심지어 현재 갈등하고 있는 두 입장이 모두 맞을 수도 또는 틀릴 수도 있는 것이 정치의 영역이다. 정치는 선악을 넘어선다. 선악의 프레임을 억지로 정치에 씌울 경우 불필요한 갈등과 대립이 만들어져 문제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다. 민주주의에서 정치는 누가 옳고 그른가가 아니라 대립하는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율하고 절충할 것인가, 즉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라 는 목표에 맞추어져야 한다.

 

3. 국민을 동원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크다

 

민주화 이후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은 대국회 정치는 소홀히 하면서도 대국민 정치는 매우 적극적으로 펼쳐왔다(김혁 2016). 국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입법 교착 상황을 여야와 직접 소통하여 풀어나가기보다 국민을 동원하여 국회에 압박을 가해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는 정치를 선택해 왔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국민을 동원하는 정치는 득보다 실이 더 크다.

 

우선 대통령이 원하는 방향으로 국민의 여론을 바꾸기 매우 어렵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통령도 ‘대중 속으로(going public)’이라는 전략을 활용하여 국민 여론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해왔다. 그러나 여러 연구들은 이러한 대통령의 시도는 성공보다는 실패로 귀결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Edwards III 2004, 2015). 이처럼 국민의 여론 자체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기 힘든 상황에서 대통령이 국민을 동원하여 국회에 대한 입법적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2] 한편 대통령의 ‘대중 속으로’ 전략은 오히려 자신의 지지율을 떨어뜨릴 위험성도 존재한다. 국민을 동원하여 국회를 압박하려는 대통령은 국회, 특히 야당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대통령의 행위에 의해 촉발된 야당의 비난과 비판은 국민으로 하여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좀 더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정보를 제공하고, 이는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떨어뜨리는 역풍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Christenson and Kriner 2017).

 

그러나 이것들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대통령에 의한 국민의 동원은 국 민 간의 갈등을 부추겨 공동체를 분열시킬 가능성을 크게 키운다는 점이다(박상훈 2018; Edwards III 2015). 국민은 서로 다른 의견과 이해관계를 가진 여러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대통령은 국민 전체를 동원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 대통령이 동원의 목표로 삼는 국민은 자신의 지지층이다. 이들이 대통령의 호소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경우 필연적으로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반대 세력을 자극하여 행동에 나서게 한다.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에 갈등과 반목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이는 공동체의 분열로 이어진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사회 내 이견, 갈등, 충돌은 국민의 대표가 모여 있는 국회라는 공적 공간으로 옮겨져 다루어져야 한다. 대통령에 의해 동원된 지지 세력과 이에 반발하여 형성된 반대 세력이 사회 내에서 어떠한 객관적 중재자도 없이 직접 다투게 된다면, 이들 사이의 갈등은 흡사 전쟁과 같은 양상으로 격화될 뿐이다. 마치 홉스가 얘기했던 국가 등장 이전의 자연 상태에서처럼.

 

국민의 동원 문제와 관련하여 또 한 가지 언급할 필요가 있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 이후 본격화된 팬덤 정치의 부상이다. 팬덤이란 ‘fanatic’(광신자)에 ‘dom’(세력범위)이 합쳐진 것으로, 일반적으로 특정 인물이나 분야를 열광적으로 사랑하는 팬들의 집단을 가리킨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몇몇 아이돌 그룹을 중심으로 팬덤 문화가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는데, 이러한 팬덤 문화가 이제 문재인 대통령을 팬 객체(fan object)로 한 팬덤 정치로 이어졌다. 물론 팬덤 정치가 문 대통령에 의해 의도적으로 동원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소위 ‘문팬’들은 자신의 돈과 시간을 들여 자발적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이들을 동원하지는 않았더라도 적어도 용인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2017년 더불어민주당 경선 당시 문재인 후보는 문팬들이 다른 후보들을 부당하게 비방하고 있다는 지적에 “경선을 더 재미있게 만드는 양념 같은 것”이 라고 답했다. 또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문팬에 대해 여러 문제가 제기되었음에도 문 대통령은 이에 대해 어떠한 의견을 표명한 바 없다. 실질적으로 문팬의 존재와 활동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팬덤 정치는 우리의 민주주의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선 팬덤은 팬 객체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표방하기에 무비판적이며 동시에 배타적인 성격을 지닌다. 팬덤 정치의 무비판적 성격은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는 말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대통령이 어떤 정책 을 펼치든 또 그것이 성공했던 실패했던 문팬들은 맹목적으로 응원하고 지지한다. 한편 팬덤 정치의 배타적 성격은 문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설령 그것이 아무리 건설적인 비판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문 대통령을 비판하는 자는 곧 적으로 간주되며, 공격의 대상이 된다. 팬덤 정치의 또 다른 문제는 문팬의 실체는 보이지 않지만 이들이 비난하고 공격하는 대상은 소위 ‘좌표 찍기’를 통해 구체적으로 명시되며, 이러한 비난과 공격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대대적으로 확산된다는 점이다. 박상훈(2018)의 주장대로 “분명 실존하는 힘인데, 누군가를 향한 사적 증오와 적대를 옮기고 빠져나가는 것이 시작이자 끝” 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로의 이견과 차이를 좁히기 위한 공적 영역에서의 논쟁은 불가능하다. ‘우리 대 그들’로 분열된 공동체만이 남을 뿐이다.

 

국민 동원의 정치 그리고 팬덤 정치가 지닌 본질적인 문제는 국민을 분열시켜 서로 갈등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국민을 분노의 덫으로 몰아가지 말아야 한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국민이 직접 감당하게 하지 말고 국회라는 공적 공간에서 담당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에 대해 박상훈(2018, 226)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통령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은 역할을 했으면 한다. 지휘자가 청중을 향하지 않고 연주자들과 눈을 맞춰 화음을 만들듯이, 대통령은 국민을 향해 서서 국민만 보고 가겠다고 공언할 일이 아니라 내각, 정당, 의회를 향해 돌아서야 한다.”

 

4. 다수제보다는 합의제다

 

국회의 집합적 의사결정 방식은 크게 다수제와 합의제로 구분할 수 있다(Lijphart 1999; Powell 2000). 다수제는 다수가 선호하는 대로 신속하게 정책 결정을 하는 방식이다. 다수가 원하는 대로 정책 결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거래 비용은 적은 대신 소수의 의견이 배제될 가능성이 커진다.[3] 반면 합의제는 다양한 집단들의 의견과 이해가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보는 관점에 근거한다. 다양한 집단들이 서로 동의할 수 있는 집합적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들 사이에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 따른다. 이 때문에 거래 비용은 크고 입법 과정은 더딜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수의 선호뿐만 아니라 소수의 선호도 골고루 반영되기 때문에 순응 비용은 감소한다.

 

민주화 이후 우리 국회의 입법 절차는 주로 합의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어왔다. 민주화 직후 의사 일정·의제 상정 등 전반적인 국회 운영을 국회의장과 원내교섭단체 대표들의 협의를 통해서 하게 했으며, 국회 상임위원회 위원장직도 다수당이 독식하는 것이 아니라 의석 수에 따라 각 정당에 배분하는 관행이 자리 잡았다. 더구나 제19대 국회부터 시행된 국회선진화법은 소수당의 입법 거부권 권한을 강화함으로써 우리 국회의 합의제적 특성을 더욱 신장시켰다.

 

국회의 집합적 의사결정 방식이 이처럼 합의제의 특성이 강하게 배어 있다면, 응당 소수당의 의견도 정책 결정에 반영하는 협치의 문화가 자리 잡혔어야 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우리의 대통령들은 합의제적 제도를 역행하여 다수의 힘으로 자신의 정책적 의제를 관철하려는 모습을 보왔다. 총선 결과 분점 정부가 형성되는 경우 합당이나 의원 빼내기와 같은 비정상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인위적으로 단점 정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단점 정부가 만들어진 경우 야당의 의견을 정책 결정 과정에 담 아내기보다는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통해 다수의 힘으로 대통령의 의지를 밀어붙이고자 했다. 대통령의 이러한 행태는 야당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켜 일상적으로 국회가 파행되는 상황을 자초했다. 합의제에 입각한 국회의 의사결정 제도와 다수제 정치를 추구하는 대통령의 행위가 모순되면서 우리 정치는 지속적인 갈등과 혼란 속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국회선진화법의 실행은 국회 의사결정 방식을 거의 온전한 합 의제로 전환시켰다.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데 필요한 의원의 수가 과 반이 아니라 180석에 달하는 상황에서 합당이나 의원 빼내기와 같은 비정상적인 방법이 지닌 효용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국회의장의 직권상정도 국가비상사태의 발생이나 원내대표 간 합의 등을 거치지 않으면 할 수 없게 되어 상임위에 잡혀 있는 법안을 다수의 힘으로 통과시키기도 어렵게 되었다. 상황이 이렇다면 야당을 설득하기 위한 정치적 노 력을 할 만도 한데 명령자로서의 대통령들은 교착상태에 빠진 국회를 힐난만 할 뿐 별다른 노력을 전개하지 않았다. 결국 다수제적 정치를 고집하는 대통령이 무언가를 할 수 있기 위해선 대통령에 충성하는 여당이 180석 정도의 의석을 차지하여 소수당의 방해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나야 했다.

 

제21대 총선에서 그와 같은 기적이 발생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거의 180석에 달하는 의석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더구나 더불어민주당은 민주화 이후 지속되었던 정당 간 의석 비율에 따라 상임위원장직을 배분하던 관행을 깨고 모든 상임위원장직도 독차지하였다. 야당이 제도적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의 독주를 막을 수 있는 어떠한 방법도 없었으며, 또 문팬들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상황에서 여당 내 반대 목소리도 사라졌다. 대통령의 정책 의제가 별다른 방해 없이 입법화 될 수 있는 꿈같은 환경이 마련되었고, 실제로 대통령의 정책적 의제는 하나씩 하나씩 국회를 통과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소수에 속한 국민들의 순응 비용을 크게 증가시켰다. 일반적으로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의 가치와 이해관계의 차이가 벌어질수록 순응 비용은 증가한다(문우진 2013). 우리나라는 정치경제적, 이념적 갈등 수준이 매우 높은 국가에 속한다. 따라서 대통령과 여당에 반대하는 국민이 대통령과 여당에 의해 만들어진 정책에 순순히 따르기 위해 치러야 하는 비용은 매우 클 수밖에 없다. 증가한 순응 비용은 불만을 누적시키고 무슨 일이 있어도 정권 교체를 이뤄야겠다는 욕망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욕망이 정권을 수호해야 한다는 정반대의 열망과 만 날 때 사회 전체의 갈등은 대폭 확산한다. 다수의 힘을 획득하여 입법 생산성을 높였음에도 공동체를 통합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분열시키는 결과 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결국 다수제보다는 합의제를 전제로 국회-대통령 관계가 형성되어야만 한다. 즉 협치에 입각한 국회-대통령 관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해 국회의 집합적 의사결정 방식은 온전히 합의제적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야당의 도움 없이는 대통령 정책 의제의 입법화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 된 것이다. 제21대 국회처럼 여당이 거의 180석에 달하는 의석을 차지하여 소수당의 방해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상황은 극히 예외적이다. 따라서 야당과의 합의를 끌어내고 이를 정책 결정에 반영하는 대통령의 정치적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4] 둘째, 180석이 넘는 거대 여당이 등장하여 다수제에 입각한 입법이 가능하다 해도 소수에 속한 국민의 순응 비용을 증가시켜 사 회 전체적인 갈등 수준은 오히려 커질 위험이 있다. 다수의 힘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말고 소수 야당의 의견을 적절히 정책 결정 과정에 반영함으로써 정책의 정치적 정당성을 키우고 이를 통해 공동체의 통합을 이루려 는 노력이 필요하다.

 

5. 야당과의 협상 과정은 때론 불투명한 것이 좋다

 

지금은 상대와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는 정치적 양극화 시대다. 따라서 대통령이 야당을 협상의 테이블에 앉히는 일조차 결코 쉽지 않다. 야당의 신뢰를 얻기 위한 대통령의 정치적 노력이 반드시 있어 야만 가능하다. 그러나 일단 대통령과 국회 내 여야가 특정 정책 현안에 대해 논의하기로 하여 협상 테이블에 함께 앉게 된 상황을 가정해 보자.

 

협상을 어떻게 진행하는 것이 대통령과 야당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합의 안을 도출할 가능성이 클까? 여러 방법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많은 국민이 지역적·정파적·이념적으로 분열되어 있어 사회의 정치적 갈등 수준이 매우 높은 현실을 고려할 때, 협상 과정 자체를 비공개로 하는 것이 도움 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된다(Binder and Lee 2015; Mansbridge 2015).

 

투명성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 중 하나로 간주된다. 밀실에서 이루어지는 정치인들의 비밀 회담에서 민주주의를 연상하기란 쉽지 않다. 국회에서 이루어지는 입법 과정도 국가 안보와 관련된 중대한 사안이 아니라면 대체로 공개적으로 진행된다. 그런데도 야당과의 협상 과정을 비공개로 하라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인가? 정치적 양극화 시대에 협상 과정의 투명성은 성공적인 협상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기 때문이다.[5] 우선 중요 정책 사안에 대한 협상이 공개적으로 진행되는 경우, 협상에 참여하는 의원들이 당과 이념의 노선을 벗어나 자유롭게 협상하기 어렵다. 공개적인 협상 과정은 필연적으로 많은 국민의 관심을 끌게 된다. 협상에 참여하는 의원들은 많은 국민이, 특히 강한 이념적·당파적 성향을 지닌 국민이 이 협상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안다. 그리고 이들은 협상 과정에서 타협안을 도출하기 위해 당파적·이념적 원칙을 위배한다면 지지자들로부터 강한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안다. 이는 재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타협을 위해 원칙을 굽히는 것이 재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의원들은 차라리 선명성을 강조하며 타협을 거부하는 선택을 하게 될 것이며, 이는 협상의 결렬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인다.

 

또한 투명한 협상 과정은 합의를 위한 해법을 찾기 어렵게 만든다. 협상은 주고받는 과정이다. 내가 원치 않는 것을 들어주는 조건으로 내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상대에게서 받는 과정이다. 그러나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을 것인지 협상 당사자들 간에 합의를 찾아내는 과정은 쉽지 않다. 오랜 시간에 걸쳐 협상 당사자들 간의 밀고 당김이 반복되어야 한다. 그런데 협상이 진행되는 중간에 야당이 대통령이나 여당에 무엇을 양보했는지가 언론에 공개되었다고 치자. 당장 야당 지지자들에게서 원칙을 어겼다느니 야합이라느니 하는 비난이 쇄도할 것이다. 지지자들의 이와 같은 압력은 야당이 그 양보안을 철회하도록 만들 가능성이 크다. 즉 그 어려운 협상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협상 과정을 비공개로 진행하는 것은 의원들을 당과 이념의 원칙을 고수해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해방시킨다는 점 그리고 외부의 압력에 서 벗어나 자유롭게 타협의 조건을 검토하고 논의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해준다는 점 등 두 가지 측면에서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을 키운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대통령은 야당과 중요 정책 의제에 대한 협상을 진행할 때, 될 수 있으면 비공개로 진행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또한 대통령은 최종적인 합의안을 도출하기까지 모든 협상 참여자들이 협의 과정을 비밀에 부칠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협상이 마무리된 후 협상 결과에 대해선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만 한다(Mansbridge 2015). 어떤 이유에서 협상이 진행되었고, 여야가 무엇을 주고받는 타협을 했는지, 타협안에 소요되는 비용이 있다면 어디서 어떻게 그 비용을 충당하고 사용할 것인지, 그리고 이러한 타협이 대한민국이라는 전체 공동체를 위해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등을 상세히 국민에게 설명하고 설득할 필요가 있다. 여야 간 합의를 창출하기 위해 협상 과정상의 투명성은 포기하더라도 협상 결과의 투명성은 담보하여 국민에게 합의안에 대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6. 성공적인 대통령이 되려면 국회와 함께 더불어 논의하라

 

요약하자면 대통령이 국회, 특히 야당과의 협치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대통령은 입법부로서 국회의 위상이 과거와는 달리 매우 커진 시대적 변화에 대해 냉철하게 인식해야 한다. 대통령이 주연이고 국회는 비중 없는 조연이던 시절은 이미 막을 내렸다. 자신이 성공하고 싶다면 스스로를 낮추고 국회를 높이고 존중해야만 한다. 현재를 사는 과거나 민주주의를 사는 권위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대통령은 제대로 된 정책적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선 제대로 된 정책 결정 과정이 우선된다는 점을 인식해야만 한다. 제대로 된 정책 결정 과정이란 여야의 합의에 의한 결정을 의미한다. 신뢰에 입각한 여야 관계를 형성하고 갈등과 대립보다는 대화와 타협에 입각한 정책 결정 과정을 만들 어야 한다. 결국, 대통령의 성공조건은 ‘협치’의 ‘국회-대통령 관계’를 만들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협치의 국회-대통령 관계를 만들기 위해 대통령은 네 가지 마음의 습관을 지니고 실천해야 한다. 우선 정치가 없으면 정책도 없다는 점이다.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은 국회의 도움을 얻기 위해 적극적인 정치적 노력을 편 적이 거의 없다. 이러한 정치의 실종은 정책의 실패로 귀결됐다. 대통령은 여야를 막론하고 많은 의원들을 만나 신뢰를 형성해야만 한다. 그러한 신뢰가 형성될 때 비로소 자신의 정책 의제의 입법화도 가능하다. 또한 대통령은 인내심을 가지고 여야 간 긴장과 갈등이 상대를 적으로 간주하는 파국적 상황으로 치닫는 것을 막고 그러한 긴장과 갈등 속에서 새로운 창조의 싹을 피울 수 있는 정치적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은 선악의 관점에서 정치를 재단하는 일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정치를 옳고 그름의 기준을 가지고 접근할 때 여야 간 갈등은 확산되고 증폭되어 협치가 불가능하게 된다. 정치는 선악을 넘어선다는 인식을 가졌으면 한다.

 

둘째, 국민을 동원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크다는 것을 가슴속에 간직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국민을 동원하는 이유는 국회를 압박하고 이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입법적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는 성공하기보다는 실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구나 동원의 정치 그리고 팬 덤 정치는 국민 간 갈등을 조장하여 우리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역할만을 해왔다. 국민을 동원하여 이들이 직접 갈등하게 만들기보다는 국회라는 공적 영역에서 사회의 문제를 다루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다수제보다는 합의제다. 국회의 집합적 의사결정 방식은 합의제에 입각해 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은 이러한 제도를 역행하여 다수제적 정치로 밀어붙이는 행태를 보였다. 국회의 의사결정 방식 제도와 대통령의 행위가 모순되는 상황에서 여야 간 갈등과 국회의 파행이 일상적으로 발생했다. 대통령은 합의제에 입각한 국회의 의사결정 방식을 존중하고 협치의 정치 문화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은 협상을 비공개로 진행하는 것이 여야 간 합의 도출 가능성을 키운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각하게 진행된 한국에서 협상 과정을 비공개로 진행하는 것은 의원들을 당과 이념의 원칙을 고수해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해방시킨다는 점에서 그리고 외부의 압력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타협의 조건을 검토하고 논의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해준다는 점에서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을 키운다. 다만 협상 결과에 대해서는 국민에게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함으로써 협상 결과의 투명성은 확보할 필요가 있다.

 

결국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국회와 함께 의논하고 결정하는 자세를 가져야만 한다. 세종대왕처럼 역사에 남는 위대한 대통령이 되고 싶은가? 『세종실록』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 중 하나가 ‘함께 더불어 의 논한다’는 뜻의 여의(與議)라는 것을 기억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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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점에 대해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 문체부 장관을 역임했던 유진룡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음 미할 필요가 있다: “한 사람만 바뀌면 돼요. 대통령이 제도적 거버넌스를 무력화했습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발전에 따라 우리나라의 거버넌스도 제도적 진전이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거버넌스 의 구성 요소는 제도만이 아니에요. 제도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다양하고 서로 신뢰할뿐더러 서로 의 다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함성득 2017, 28쪽에서 재인용)

[2] 대통령이 국민을 동원하여 의회에 대한 입법적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는 국민들 사이에 특정 정책에 대한 선호가 이미 매우 높게 형성되어 있음에도 의회가 이에 대한 입법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Canes-Wrone 2001). 특정 정책에 대한 국민의 선호가 높지 않을 때 대통령이 국민을 동원하여 입법에 성공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3] 이 때문에 순응 비용은 커진다. 거래 비용은 집합적 결정에 도달하기 위해 드는 비용을 의미하며, 순응 비용은 원치 않음에도 집 합적 결정을 따라야만 하는 집단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다(Buchanan and Tullock 1962).

[4] 이는 만약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야권 후보가 승리한 경우 더욱 중요한 문제로 대두될 수 있다. 차기 대통령은 약 2년 동안 거의 180석에 달하는 거대 야당과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도움을 얻기 위해서는 신뢰에입각한 여야관계를 만들어내는 대통령의 정치적 노력이 적 극적으로 전개되어야만 한다. 다른 한편으론 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것도 한 가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연정은 주로 내각제에서나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대통령제에서도 매우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또 분점 정부 상황에서 다수 야당과 연립정부가 구성되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뛰어난 정책적 성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홍재우 외 2012).

[5] 투명성이 여야 간 협상 과정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는 Binder and Lee(2015)의 논의를 가져와 정리했다.

 


 

저자: 최준영_ 인하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국 Florida State University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한국정당학회장, 미국정치연구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의회, 선거, 미국정치 등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반드시 이겨라 그러나 싸우지는 마라 :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한국 유권자의 이중적 속성” 『한국정치학회보』(2019, 공저), “Testing legislative shirking in a new setting: the case of lame duck sessions in the Korean National Assembly” Japanese Journal of Political Science (2019, 공저), “갈등과 교착의 한국 대의민주주의: 누구의 책임이며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정당학회보』(2018), “Cognitive and partisan mobilization in new democracies: The case of South Korea” Party Politics(2017, 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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