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필자는 한국개발연구원(KDI)에 근무하던 시절인 2002년 북한경제 발전전략에 관한 연구를 총괄한 적이 있었다. 북한의 대내외 환경 제약을 감안해서 현실성 있는 경제정책을 모색해 보자는 의도였다. 그래서 시장경제인 경제특구와 계획경제인 내륙경제를 분리 운영하면서 점차 연계를 강화해 나가는 ‘섬-본토 성장전략’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것을 스스로도 깨닫고 있었다. 경제발전이란 그를 뒷받침하는 정치·외교적 변화가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내용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은 경제학자의 연구능력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대외관계 개선과 신뢰성 있는 리더십 확보라는 두 가지가 필수적인 선결과제라고 지적하는 데에서 그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번의 연구는 절로 신이 났다. 비로소 각 분야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종합적 연구를 한다는 흥분 때문이었다. 연구진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런 보상 없이도 학자적 열정으로 연구에 참여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2년이 거의 다 돼가는 지금까지 연구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북한의 현실이 암울한 탓이고, 석탑 쌓듯 각 분야의 변화를 횡으로 종으로 차곡차곡 꿰맞추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두 가지 점에는 공통된 결론에 도달했다. 하나는 북한의 미래는 선군(先軍)의 포기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선군이 선경(先經), 선민(先民)으로 변하지 않는 한 위기 심화는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설령 핵을 포기하고 체제보장을 받는다 해도 선군의 지속은 내부적으로 북한을 붕괴로 이끌 뿐이다. 다른 하나는 공진화(共進化·coevolution)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본래 생물학 용어인 공진화란 여러 종(種)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진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나방은 박쥐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청각세포의 민감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했고, 박쥐는 이에 대응해서 초음파를 다양한 형태로 발사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천적관계뿐만 아니라 협력관계에서도 동일하다. 식물과 동물도 서로의 진화에 따라 함께 진화했고, 광물과 생물도 공진화했다. 마찬가지로 북한의 변화는 우리의 변화와 맞물려야 한다. 그래야 의미가 있고 북한의 변화를 촉진할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는 북한의 변화만을 이야기했을 뿐,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중요시하지 않았다. ‘비핵·개방’을 요구했지만 그때 우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했고, ‘3000’을 제의했지만 그를 통해 우리 경제는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등한시했다. ‘상생·공영’이라는 이름은 적절했지만, 그 안에 정작 ‘우리’는 빠져 있었던 것이다. 마침 이명박 대통령은 북핵 폐기와 대북지원을 일괄타결하는 ‘그랜드 바긴(grand bargain)’을 제안했다. 맞는 방향이다. 하지만 핵 이후의 북한, 그리고 우리의 공진화 전략에 대한 준비도 동시에 시작되어야 한다.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북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