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박근혜 두 야당 후보의 지지율을 합하면 전체 유권자의 70%에 달하지만, 범여권에서는 변변한 후보조차 내세우고 있지 못한 이 기이한 현상은 노무현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 실망과 깊은 관련이 있다. 과거에 노무현 후보에 열광했고 열린우리당을 지지했던 많은 유권자들조차 노대통령에 등을 돌리고 이제 야당 후보들에게 기대감을 걸게 된 것은 노대통령 자신이 바로 그 원인을 제공해 준 것이다. 노대통령의 이번 발언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심한 분노와 배신감을 느끼게 되는 것도, 부인이 가정살림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남편 때문에 속 썩다가 이혼했는데 전 남편이 이혼한 부인의 재혼 상대자에 대해서 이 남자는 이래서 안 된다, 저 남자는 저래서 안 된다고 말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노대통령의 후보 공약 검증 발언 역시 불쾌감을 준다. 노대통령의 말대로 대선 후보 공약 검증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누구나’에 과연 현직 대통령도 포함되는지는 의문이다. 차기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온 후보의 공약은 미래에 대한 약속이고 현직과 차기 대통령의 정책 우선순위를 구분짓게 해 주는 기준점이다. 차기를 노리는 후보의 공약은 현 정부의 정책 불만이나 실정을 반영할 수밖에 없으며, 이념적 노선까지 다르다면 정책 방향과 내용은 현 정부의 입장에서는 수용할 수 없는 것이 많을 수밖에 없다. 현직 대통령에 의한 공약 검증이 객관적이기 어렵다는 말이다. 설사 현직 대통령이 대선 후보자의 정책 공약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 기관까지 동원해서 특정 야당 후보의 특정 공약의 타당성만을 검토하도록 한 것은 지나친 선거 개입이다. 이는 검증이 아니라 선거에서 유권자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겠다는 정파적인 의도가 깔린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후보 공약 검증의 중요성은 새삼스레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대선 공약 검증의 중요성을 우리 사회에 일깨워 준 것도 사실 노대통령이다. 노대통령이 ‘재미 좀 봤다’고 한 행정수도 이전 공약 추진으로 헌법재판소까지 끌고 간 소모적인 논쟁과 심각한 갈등을 경험하고 난 이후 대선 후보의 공약 검증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이제는 모두가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증의 주체는 곧 떠나갈 대통령이 아니라 선거에 나선 경쟁 후보와 언론, 그리고 유권자들이다.
정치적으로 노회한 노대통령이 자신의 이번 발언으로 인해 커다란 정치적 논란이 일어날 것을 예상치 못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 발언 뒤에는 계산된 어떤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을 것이다. 그 의도가 무엇인지 쉽게 파악하기 힘들지만 적어도 차기 대권 구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점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임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대통령이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유권자의 판단을 정치공학적으로 조정하고 선택을 강요하려는 태도는 오만해 보이기까지 하다. 역시 산을 오르기보다는 내려오기가 더 어려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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