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우리나라 정치는 좋게 말해 ‘역동적’이다. 건축 공사판에서처럼 뚝딱 정당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또 쉽게 부숴버리기도 한다. 2004년 총선 전 민주당에서 탈당한 의원들이 만든 열린우리당이 4년을 못 채우고 다시 쪼개지고 있다.
여러 가지 궁리 끝에 탈당한 의원들이 자신들에게 쏟아질 이런 비판을 사전에 예상하지 못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당을 결행한 것은 열린우리당으로서는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집권당이면서도 아직까지 변변한 대통령 후보조차 내세우고 있지 못한 현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사실 국회의원들로서는 대통령 선거보다 이후 곧바로 실시될 국회의원 선거가 더 중요할 것이다. 그런데 지난 지방선거에서 본 대로 서울·경기 지역에서조차 야당의 의석 싹쓸이가 나타났다는 결과는 여당 의원들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이대로는 다 망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탈당으로까지 몰고 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탈당은 무엇보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정치적 결별의 의미를 담고 있다. 임기 말 측근 비리나 정책 실패 등으로 발목이 잡혀 정치적으로 한 걸음 물러서 있었던 전임 대통령과 달리 노대통령은 최근 개헌 제안에서 보듯이 여전히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있는 ‘살아 있는’ 존재이다. 그런 만큼 노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열린우리당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가뜩이나 어려운 판에 노대통령은 당의 지지율을 높이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에 깊게 파인 노대통령의 그림자 때문에 노대통령과 자신들을 ‘한 묶음으로 바라보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은 탈당뿐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여론의 동향을 살피기는 하겠지만 탈당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방법이 달라졌을 뿐 여당이 임기 말 대통령과 다른 색깔을 내려고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7년 후반 우리나라에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김영삼 대통령은 물론이고 당시 집권당이던 신한국당이나 국무총리·감사원장 등 각종 고위직을 역임한 이회창 후보 역시 이런 크나큰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기 어려웠다. 대선을 앞두고 여당인 신한국당은 퇴임을 앞둔 대통령에 대한 여론의 거센 비판에 함께 얽매여 들어가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신한국당에서 공천을 받은 이회창 후보는 민주당과 합당하여 당 이름을 아예 한나라당으로 바꿔버렸다. 또 다른 차별화의 전략인 셈이다. 지금과 다른 점이라면 당시는 김영삼 대통령을 ‘밟고 갈 수 있는’ 이회창이라는 분명한 당내 구심점이 있었다는 점이고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개별 탈당의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강원택 EAI 시민정치패널 위원장 · 숭실대학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