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I는 한국의 민주화 진전에 따른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여 2002년 대통령의 성공조건, 2007년 대통령직 인수의 성공조건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민주화 이후 바람직한 대통령의 역할, 권한, 책임에 관한 제도화 방안을 강구해 왔다. 이제는 SNS기술 확산에 따른 정치환경의 변화 속에 증대하는 정치참여와 소통 요구를 안정적 제도로 담아내려는 요구가 시급하다.

 

이에 EAI는 지난 정부들의 국정운영의 성과와 방식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정치환경에 부합하는 거버너빌리티(governability) 형성과 성공적인 대통령직 수행의 조건을 탐구하고자 ‘2013 대통령의 성공조건’을 기획하였다.

 

2012년 8월 9일에는 국민의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을 역임한 한광옥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를 초빙하여 제8차 라운드테이블을 진행하였다. 회의의 주요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성공적 대통령을 어떻게 규정하느냐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역대 대통령의 평가를 성공 또는 실패로 단선적으로 규정하기 보다는 각 대통령이 놓여 있던 시대적 상황에서 판단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정치현실에서는 전직 대통령을 모두 부정하는 시각이 지배적이지만 무조건 과거를 부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대부분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라 쉽게 과거를 부정하지만 그들 역시 다음 시점에서 부정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사실 대통령마다 그 집권과정은 다르지만 대통령직 수행에 따른 나름대로의 공과가 있기 마련이다. 공은 공대로 인정하고 과는 과대로 반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성공적인 대통령의 조건을 탐색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부정보다는 긍정적인 관점에서 접근하여 과오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여기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경험을 바탕으로 성공적 대통령을 위한 조건을 살펴보기로 한다

 

대통령의 리더십과 국정성과

 

D. 거겐(Gergen)은 책임감 있고 유능한 대통령 리더십의 구축을 위해서는 안으로부터의 리더십(인품, 성격, 지적 능력, 용기, 신중함 등), 정확한 목표설정, 설득력의 힘, 국민•의회•언론과 협력, 취임 즉시 정책추진, 유능하고 신중한 참모 등용, 과업수행을 위해 주변사람을 고무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 중에서 이러한 요건을 두루 갖춘 대표적인 인물로는 김대중 대통령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대통령선거에 3번을 낙선하고 4번의 도전 끝에 당선될 정도의 의지와 집념이 매우 강하였다. 그만큼 위대한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하는 강력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실무자 이상으로 사례에 밝고 학자 못지않은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1971년 제7대 대통령선거부터 3번의 낙선을 거치는 동안 대중경제론이나 4대국 안정보장론 등 소위 ‘준비된 대통령’의 역량을 쌓아 온 것이다. 당선직후에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라는 확고한 국정철학을 바탕으로 외환위기 극복과 경제활성화, 남북관계의 개선, 민주주의의 진전을 국민의 정부 3대 목표로 제시하였다. 이러한 목표달성을 위해 중도 입장에서 개혁적 노선을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분점정부 구도 속에 소수정권에 의한 개혁이 주도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 것은 시대정신에 천착해 있었기 때문이다. 차기 대통령은 사회통합, 민주주의, 경제발전, 복지, 남북통일 문제 등에 대한 뚜렷한 비전을 가진 인물이기를 기대한다.

 

개인의 능력과 별도로 정치•경제적 환경은 성공적인 국정운영의 중요한 변수이다. 외환위기 속에서 집권한 김대중 대통령이 해야 할 가장 긴급한 과제는 금융시장을 안정화하고 국가부도를 막는 일이었다. IMF 차관도입의 선결조건인 노사간 타협을 성사시키고 금 모으기 운동과 실업극복운동을 전개하는 리더십을 발휘하였다. 특히 노동조합을 설득하여 노사정위원회를 구성하여 불가피한 경우에는 근로자를 해결할 수 있다는 합의를 도출하는 성과를 이끌어 낸 것은 강력한 설득력을 가진 김대중 대통령의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이다. 취임 이후 재벌•금융•공공•노동의 4대 부문 개혁, 새로운 성장잠재력 발굴을 위한 정보화 사업의 추진, 경기진작을 위한 각종 정책의 추진을 통해 DJP 공동정권이라는 구조적 한계와 분점정부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IMF 관리체제를 조기 극복하는 성공적인 국정운영을 한 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가장 대표적 성과는 남북한관계의 개선이다. ‘햇볕정책’으로 일컬어지는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였고 마침내 남북한 정상회담을 통해 6.15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햇볕정책은 한반도의 냉전체제를 탈냉전 평화체제로 바꾼 촉매제로서 남북간에 새로운 단계의 교류와 협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가 있다.

 

성공적 국정운영을 위한 교훈

 

국가지도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 바로 측근과 친인척 문제이다. 김대중 대통령 또한 전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친인척과 측근 비리로 인해 결정적인 리더십의 한계를 드러냈다. 취임 1년 차에 나온 옷 로비 사건을 시작으로 실세와 친인척이 관련된 부정부패와 게이트가 터져 나왔고 마침내 처남과 두 아들이 구속되는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이 같은 측근과 친인척 문제로 김대중 대통령은 도덕적으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리더십이 와해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매 정권마다 예외 없이 반복되는 이러한 측근 및 친인척 비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검찰만으로는 어려우며, 한국적 문화 속에서도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상시 감시체제로서 독립성을 가진 고위공직자수사처 신설과 같은 제도적 강화방안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성공적 국정수행을 위해 주의해야 할 것은 인사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 오랜 야당생활로 인해 함께 고생한 동지나 신세를 져서 챙겨야 할 사람들이 많았다. 그럴수록 합리적인 논공행상이 필요했다. 신세를 진 사람들에게 상을 줘야 하지만 국가의 공직은 능력 있는 사람에게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청와대 인사가 매우 중요하다. 청와대는 대통령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로 채워야 하고 권력획득의 한 몫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결코 공직을 ‘전리품’으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핵심참모들은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책임감은 높게 가지되 권위는 낮추는 자세가 필요하다. 해불양수(海不洋水)라는 말처럼 겸허한 태도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자신의 뜻을 펼치는 것이 필요하다. 관료인사에 있어서도 열심히 일한 사람이 승진하도록 해야 질서가 바로 선다. 무능한 사람이 연줄을 통해 승진을 하게 된다면 관료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다. 관료체제를 잘 관리하고 충성을 얻기 위해서는 떳떳하고 공정한 인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한편으로 김대중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과 함께 오랜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형성된 많은 추종자를 거느린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보스였다. 그러다 보니 민주투사이면서도 동시에 권위주의적 지도자의 모습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대통령이 모든 국정운영을 일일이 챙기는 열성을 보였고, 특히 경제문제와 통일문제의 전문가로서 주요 정책을 직접 결정하는 모습은 독선적 혹은 신 권위주의적 리더십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대통령이 전문성을 바탕으로 확신과 자신감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하게 되면 보좌진이나 내각에는 상당한 부담을 주기 마련이다. 정치나 정책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며 자기가 아무리 옳다고 하더라도 여론의 지지, 국회의 지지, 시민사회의 지지 등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이 직접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단순히 보고서에만 의존하는 국정을 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장관을 비롯하여 보다 많은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고 정보를 얻는 제도적인 정책소통 시스템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의 성공을 위한 제도적 개선

 

성공적 국정수행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통령과 국회 및 정당 간의 관계가 원활해야 한다. 정책이 실질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국회에서 먼저 법적•제도적 뒷받침을 해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통령이 국회를 설득하고 함께 고민하고 의논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국회와 거리를 두게 되면 제대로 국정운영을 하기 어렵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정당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노무현 대통령 이후 당청 분리는 오히려 국정수행을 어렵게 만들었다. 정당을 대표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면 그 정당의 정책을 실현하는 것이 국민의 일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정당 또한 민주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정당이 인물중심이 아닌 정책중심으로 거듭나야 한다. 정당이 제대로 선 다음에 유능한 정치인을 양성하는 정치훈련소의 기능을 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정치 불신을 극복하고 민주주의가 성숙하려면 정치의 중심인 정당이 먼저 제자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정치의 근본적인 틀을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현재의 5년 단임제 대통령제를 그대로 두고서는 정권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실망이 반복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5년 단임제는 민주화과정에서 대통령의 독재를 예방하기 위해 과도기적 상황에서 만들어진 기형적 제도이다. 더욱이 현행 제도는 과도한 권한집중, 정권의 무책임성이나 측근비리의 제도적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어 더 이상 이를 유지해야 할 어떠한 논리적 근거가 찾기 어렵다. 시대적 요구에 따른 국가발전을 도모하고 시대변화와 대처하기 위해서는 4년 중임제로 변화시켜 책임정치를 실현하고 나아가 분권형 대통령제나 의원내각제와 같은 정상적 체제로 바꾸어야 한다. 이러한 제도적 개선 없이는 차기 대통령의 성공도 기대하기 어렵다.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서는 개인적 차원에서 국정통치의 철학과 능력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 이전에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이 결정적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

 

 


 

 

한광옥 전대표는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중퇴(1964년 6.3항쟁으로 제적)하였고, 1991년 제11대 민주한국당 국회의원과 제13대, 14대, 15대 평화민주당 국회의원을 지냈다. 국민의 정부에서 제1기 노사정위원회 위원장과 청와대 비서실장을 역임하였으며, 2001년 새천년 민주당 대표최고위원으로 선출되었다. 현재 통일미래연구원 이사장으로 있다.

 

사회자

이숙종, EAI 원장, 성균관대 교수

 

참석자

강원택, 서울대 교수

박형준, 성균관대 교수

윤성이, 경희대 교수

이곤수, EAI 수석연구원

이내영, 고려대 교수

이재열, 서울대 교수

장용석, 연세대 교수

정원칠, EAI 선임연구원  

정한울, EAI 수석연구원

한규섭, 서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