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운영 시스템 개혁없인 성공한 대통령 기대 못한다" 전직 청와대 수석·장관들의 충고와 제언
임기 5년을 마감한 뒤 "웃고 떠나는 대통령"을 보는 것이 이제는 국민적 염원이 돼버렸다. 역대 대통령을 보좌했던 전직 청와대 수석과 장관들이 뼈저리게 절감했던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과 대통령이 빠지기 쉬운 함정등 쓴소리를 담은 신간이 나와 눈길을 끈다. 구구절절이 옳은 소리로 새 대통령이 실패한 대통령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번쯤 일독해볼만 한 내용들이다.
중견 사회과학자들의 모임인 동아시아연구원(EAI·원장 김병국고려대교수) ‘대통령프로젝트’팀은 그동안 과거 정부 핵심인사와 중요부처 관료, 학계인사들을 연사로 초청한 세미나를 정리해 ‘대통령의 조건 2-회고와 제언’(동아시아연구원)을 최근 내놓았다.
18개의 녹음테이프를 정리한 편저자 이수현(고려대 정치학과 대학원 재학)씨는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같은 오류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 문제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국가운영 시스템의 대개혁없이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에 관한 세미나에서 이홍구전국무총리는 “현행 대통령제는 대통령책임제라기보다 ‘대통령무책임제’에 가깝다”고 운을 뗐다. 공직생활동안 세명의 대통령을 거쳤다는 이 전총리는 “현재 대한민국 제도상 대통령이 책임지는 방법은 단 한가지, 하야하는 길밖에 없다”며 “권력남용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개혁의 대안은 책임총리제로, 헌법에 보장된 국무총리의 제청권을 보장해주는 것이 제도적 개혁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김경원 전주미대사는 “보통 당선자가 대통령에 취임하면 자기 비전을 갖고 국정운영에 욕심을 내지만 6개월에서 1년 정도만 지나면 이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고 꼬집었다. 그는 특히 대통령과 청와대 의전절차 문제점과 관련, “청와대에 들어가면 다들 대통령에게 절을 하고 역대 대통령들은 한결같이 절을 하지 않는데, 이제부터라도 같이 절을 해야한다”며 ‘권력을 자제할 수 있는 덕목’을 갖춘 대통령의 탄생을 기대했다.
강경식 전부총리는 “아이로니컬하게도 제왕적 대통령을 그렇게 비난하던 사람도 막상 청와대 주인이 되고부터는 이를 바꾸기보다 즐기려는 성향들이 강했다”며 역대 대통령의 표리부동을 성토했다. 그는 “앞으로 대통령과 국회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의미에서, 대통령이 연두교서를 국회에서 읽고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도 총리가 하는 대신 직접 할것”을 주문했다.
이종찬 전국정원장은 “민주화 이후 10여년간 집권한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이 모두 국정운영에 실패하는 바람에 우리나라에서 앞으로 50여년 동안은 노벨평화상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고 탄식했다. 그는 이들의 실패원인으로 참모운영등 인력활용을 제대로 못한 것과 함께 정부 내 상비군, 즉 인재 풀의 부재를 꼽은 뒤 이것은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라고 꼬집었다. 민주화 이후 두 대통령은 축적된 인재 풀이 없으니 당선되고 나서 뽑을 수밖에 없고, 인재를 뽑으면 금방 충성심 문제가 제기되고 자기방어를 위해 다시 갈아끼우는 악순환이 반복됐다는 것이다. 김대중대통령이 장관으로 임명한 사람만 85명에 이른다.
이전원장은 또 “두 대통령은 국정원 국정보고에 대해 굳이 비중을 두지 않는 바람에 오판이 나는 경우가 많은데다 대통령 자신이 거르지 않은 정보를 맹신하는 경향이 강했다”며 “두분 다 야당투사의 경험이 길어 개별창구로 이야기를 듣는 습성이 강했는데 이건 매우 위험한 관행”이라고 꼬집었다.
박철언 전정무장관은 한국에서 대통령제를 성공시키는 요체는 국가적 경륜과 비전을 가진 핵심참모를 어느정도 가지고 있느냐 여부에 달려있다며 할말하는 핵심보좌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대통령이 주변 의견을 경청하다가 1년 지나면 안듣게 된다”며 “대통령의 주변은 대통령으로 하여금 남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도록 귀를 가리고, 반대로 대통령은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순간 실패의 길로 접어든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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