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대통령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민주화 이후 집권한 대통령들도 가족과 측근들을 감옥에 보낸 뒤 추락한 지지도와 함께 임기를 마친다. 대통령이 실패하는 가장 큰 원인은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점이다. 대통령의 실패는 어느 한 개인의 실패가 아니다. 국가의 실패이고, 국민의 실패라는 점에서 중단돼야 한다. 중앙일보와 동아시아연구원(EAI.원장 金炳局)은 현행 헌법의 틀 속에서 성공한 대통령의 역사를 만들기 위한 조건을 점검하는 시리즈를 공동기획한다. -편집자-

■ 정책보좌기구로 탈바꿈을

국정은 장관 중심으로 운영돼야 한다. 그러나 비서실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한국적 상황에서는 장관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노재봉(盧在鳳)전총리는 "행정부 장관은 수석비서관의 수족이 되기 쉽다"고까지 경고했다.

정부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대통령 비서실이 장관 위에서 군림하고 정부부처를 통제해서는 안된다. 현재 행정부의 일을 사소한 것까지 모조리 챙기고 간섭하는 비서실은 소수의 대통령 프로젝트 수행에 전념하는 대통령의 정책보좌기구로 바뀌어야 한다.

현재 대통령 비서실의 가장 큰 폐해는 "면접 허용권"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장관이 대통령을 만나는 것조차 비서실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장관들이 수시로 대통령과 정책을 협의하는 것과는 너무 다른 상황이다.

이승만(李承晩)전대통령 시절 개인비서에 불과하던 대통령 비서실은 박정희(朴正熙)대통령 시절 이후락(李厚洛)비서실장이 취임하면서 최고의 권부가 된다. 이후락 실장은 자기에게 미리 보고하지 않고 대통령에게 올라간 장관의 따귀까지 때렸다.

대통령의 지근거리에서 정보를 독점적으로 공급한다는 점도 위험하다. 가까운 비서진이 일정한 편향성을 가진 정보를 계속 대통령 귀에 넣어주면 대통령은 진실을 모르게 된다. 역대 대통령들이 임기 말에 가서야 가족과 측근들의 비리를 알고 땅을 치는 것도 이같은 정보차단 때문이다.

이것이 비서들의 개인적 출세욕과 맞물릴 때는 더욱 위험하다. 대통령 비서실과 장관들의 갈등과 장관들이 수시로 바뀌는 가장 큰 원인도 이것이다.

민주화 이후 다원적.수평적 행정 시스템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대통령 비서실은 행정부에 대한 통제라는 권력을 놓기 싫어하고, 관료는 이러한 시스템에 오랜 기간 관성화돼 있다.

대통령 비서실이 모든 정책을 만들고, 정부가 그것을 추진하는 것을 감독하고, 사회 각 계층.모든 이익집단의 민원이 대통령 비서실에 몰리도록 하면 대통령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의 부담이 늘어나게 된다. 대통령의 에너지가 분산돼 정작 긴요한 국정에 집중할 수가 없어진다. 대통령은 보좌진의 시각에 의존하게 되고 대통령의 메시지가 보좌진에 의해 왜곡되기 쉽다.

대통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가 해야만 할 일과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선별해야 한다. 대통령이 안 챙겨도 돌아갈 수 있는 일상업무는 총리와 장관에게 맡겨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급작스레 서거한 이후 몇달 동안 대통령 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렇지만 국정운영을 하는 데 아무런 무리가 없었다.

대통령 비서실은 "선택과 집중" 차원에서 자신의 업무를 가능한 한 좁은 범위의 전략기획 업무로 좁히고,"대통령 프로젝트"로 구체화시켜 정책목표를 명확히 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차기 대통령은 비서실의 역할과 조직, 운영방식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 정부 부처를 통제하는 데 더 관심이 있는 현재의 비서실 조직은 해체해야 한다. 대신 전략기획정책 업무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대통령의 비전과 국가전략에 따라 임기 동안 실천할 대통령 프로젝트를 5개 정도 정하고 여기에 대통령의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이를 전담할 정책기획실을 설치하고 정책기획실장은 비서실장 또는 부실장급으로 임명해 확실한 권한을 줘야 한다. <표>의 제1안에서는 정책기획실장 역할을 할 인사를 비서실장으로 임명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업무 때문에 전략기획 업무에 상대적으로 소홀할 우려가 있다. 2안은 균형을 취한다는 장점은 있으나 두 조직 사이에 갈등이 생길 수 있다. 3안은 정책기획실장의 권한을 비서실장과 다른 수석비서관들이 어떻게 차별화하느냐 하는 운영방식에 달려 있다.

정책기획실은 실장이 책임지고 그 밑에 대통령 프로젝트와 분야별 수석을 둔다. 실장과 수석은 개별 프로젝트를 맡는 팀이다. 정책기획실은 비서가 아니라 정책보좌관의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 부처에 밀려 일상적인 행정사무를 책임지기에 바쁜 지금의 비서가 아니라 주도권을 쥐고 대통령의 비전을 정책에 반영시키는 전문가여야 한다.

정책기획실이 한국 사회 구석구석에 흩어져 있는 인재들의 중지(衆智)를 모아 정책을 구상하려면 개별 수석이 일상적 차원에서 정부 출연 싱크탱크에 연결되고 민간 전문가들을 곁에 둘 수 있어야 한다.

차기 대통령은 정부출연 싱크탱크를 정책기획실에 소속시키고 해당 수석의 관장 하에 민간전문가 중심의 대통령 자문 개혁추진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정리 = 김진국 기자

 

EAI 프로젝트 참여교수

박세일(朴世逸.서울대.위원장), 김병국(金炳局.고려대.간사), 김판석(金判錫.연세대), 모종린(牟鍾璘.연세대), 박재완(朴宰完.성균관대), 염재호(廉載鎬.고려대), 이홍규(李弘圭.한국정보통신대), 장훈(張勳.중앙대), 정종섭(鄭宗燮.서울대), 최병선(崔炳善.서울대), 황성돈(黃聖敦.외국어대)

 

◇ 토론 참석자

강경식(姜慶植.전대통령비서실장),강봉균(康奉均.전재경부장관),김경원(金瓊元.사회과학원장),김영수(金榮秀.전문화체육부장관),김정렴(金正濂.전대통령비서실장),김충남(金忠男.전대통령사정비서관),박철언(朴哲彦.전체육부장관),사공일(司空壹.전재무부장관),이종찬(李鍾贊.전국정원장), 이홍구(李洪九.전총리)

 

■ 역대 대통령 비서실은

대통령 비서실은 대통령에 따라 바뀌어왔다.

이승만(李承晩)전 대통령 시절에는 개인비서만 있었다. 10명 정도가 심부름만 했다. 1백달러 이상의 지출은 직접 결제하고, 미 국무부 차관보에게 보내는 외교문서도 李전대통령이 직접 타이핑했다.

1949년 6월 이기붕(李起鵬)씨가 비서관장에 임명되면서 李대통령의 신임을 배경으로 대통령을 만나는 사람들을 통제,"인의 장막"이란 말이 생겼다.

내각제 시절인 윤보선(尹潽善)전 대통령의 비서실은 실장 1명과 비서관 3명으로 역대 가장 단출했다.

요즘 비서실의 틀을 잡은 것은 박정희(朴正熙)전 대통령이다. 이후락(李厚洛)초대 비서실장은 총무.공보.정보.민원.정무.의전 등 6개 비서진으로 확대 개편했다.

朴전대통령이 재선된 뒤 김정렴(金正濂)비서실장을 중심으로 경제1,2,3수석실 등 경제 중심의 조정통제권을 강화했다. 박정희시대 말기에는 차지철(車智澈)경호실장이 비서실을 압도했다.

전두환(全斗煥)전 대통령은 박정희시대 비서실의 월권과 내각의 무력화를 감안해 비서실의 권한을 훨씬 줄였다.특보제를 없애고, 사정특보를 수석실로 편입했다. 그러나 비서실을 통한 일상적인 행정업무의 행정부 통제는 더 강화됐다.

노태우(盧泰愚)전 대통령 때는 비서실장이나 정무수석보다 박철언(朴哲彦)정책보좌관이 국정 운영의 핵심 기획자로 역할했다. 비서실장.경호실장과 맞먹는 정책보좌관실이 각 부처에서 골라온 엘리트로 4개팀을 구성해 대북업무와 주요 국정현안 기획을 맡았다.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 시절에는 차남 현철(賢哲)씨가 사조직과 안기부(현 국정원) 일부 조직을 장악해 청와대 밖에서 국정 과제와 현안을 주물렀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취임 초 공보수석으로 기용했던 박지원(朴智元)비서실장에 대한 의존도가 특히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