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은 북한과 다르게 예측 및 계산 가능한 방식으로 행동했다. 바르샤바 조약기구 가입에 따른 정치적 억제 및 안보를 재확인했고 합의를 준수했다. 그러므로 독일의 (통일)경험은 (한반도 통일의) 교훈이라기보다는 참고점을 제공한다”  

 

 외교부와 동아시아연구원이 '통일한국의 외교비전과 동아시아의 미래'를 주제로 9일 서울 웨스턴조선호텔에서 공동 주최한 국제회의에서 한스 귄터 힐퍼트 독일 국제안보문제연구소 부국장은 독일통일이 한반도 통일에 미치는 함의를 이렇게 말했다.

 

                 ▲ 외교부와 동아시아연구원은 '통일한국의 외교비전과 동아시아의 미래'를 주제로 9일 서울 웨스턴

                 조선호텔에서 국제회의를 공동으로 개최했다.ⓒkonas.net

 

‘신뢰정책: 독일의 경험을 반영하고 있는가’ 발제에서 힐퍼트 부국장은 한국과 독일은 중요한 전략 지정학적 요충지에 위치하고 분단 요인도 유사하며, 국제사회의 동의 없이는 통일이 불가능하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간의 체제경쟁과, 이질적 의식구조·정체성·사고방식 등 유사점이 있다면서도 한반도 상황은 차이점이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차이점으로 먼저, 한반도는 6·25 혈전을 치룬 이후 냉전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반면 유럽은 1990년대에 냉전이 종식됐고, 경제 규모와 소득도 큰 차이가 있으며, 분단의 깊이와 강도에 있어서도 독일은 통신과 교류를 제한적으로 유지하면서 헌법적 정치체제로서 서로의 주권과 독립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지역통합의 정도에 있어서도 서독은 유럽연합(EU)과 유럽통화제도(EMS) 등을 통해 높은 수준의 통합을 이룩했으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도 포함된 반면, 한국은 양자동맹 체제인 한미동맹을 유지하고 있어 독일보다 지역통합의 정도가 허약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힐퍼트 부국장은 대외정책의 독립성, 재래식 선제타격 역량, 핵 전쟁 발발 가능성, 군국주의, 개인숭배, 주민 전체에 대한 세뇌가 만연한 북한의 극단적 행태가 동독과 다르며, 독일 통일에 대한 남북한이 인식도 차이가 있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힐퍼트 부국장은 (한반도 통일과정에 있어서)향후 예상되는 북한의 난관으로 체제안정과 안전보장, 남북대화보다 북미대화 우선, 한국에 대한 불신과 증오, 독일식 통일모델에 대한 경계심, 남한 문화의 북한 침습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분석했다. 
     
그리고 한국이 직면한 난관으로는 북한에 대한 불신과 증오 지속, 북한 정권 지도부에 대한 통큰 제안을 할 수 있는 준비의 부족, 북한 주민에 대한 편견과 비하적 태도 극복, 통일에 대한 국민적 의지 부족 등을 들었다.

 

힐퍼트 부국장은 한국이 독일 통일에서 참고해야 할 점으로, 굳건한 안보태세의 확립과 체제가 다르다는 점을 상호 인정하고 실행 가능한 문제를 우선적으로 다루며, 주민에 초점을 맞춰 인도주의적 사안에 우선순위를 두고, 감정을 배제하고 비즈니스 마인드로 대화에 임하며, 국제관계가 냉엄해져도 남북관계를 보물처럼 귀하게 다루고, 한국의 정권이 바뀌어도 북한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초당적 합의와, 인센티브의 제공, 의식적인 둔감함, 경제정책의 양면성, 정책적·윤리적 딜레마의 불가피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재성 서울대 교수는 ‘한국의 통일한반도 외교전략’ 발제에서 한국의 지역전략의 목적은 동아시아의 체제적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강대국 중심의 국제정치에서 다자주의적 협력을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노력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또 동북아 국제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개별 단위 국가들의 근대적 이행이 불완전했고 이에 따라 단위국가 간 경쟁이 강해졌다는 점”이라며, 통일 한국은 통일 중국, 그리고 보통국가화된 일본과 함께 공존하고 협력하는 동북아 다자협력에 공헌할 수 있다는 논리 개발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전 교수는 “통일 한반도가 현재 한국의 지역적 중견국 외교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확신을 줄 필요가 있다”며 ‘한반도의 완충 역할론’을 제시했다.

 

 이러한 외교 전략을 정초로 향후 한미동맹, 한미일 협력, 한중 전략적 협력관계를 상호 조정하는 비전을 제시할 때, 통일 한반도가 친미, 반중세력이 될 것이라는 중국의 우려와, 통일 이후 한미동맹이 약화되고 한국이 중국에 편향될 것이라는 미국과 일본의 우려를 동시에 잠재울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어 피터 벡 아시아재단 한국지부 대표가 ‘한반도 통일: 미국의 시각’을, 진찬롱 중국 인민대 교수가 ‘통일 한반도의 미래: 중국의 시각’을, 다나카 히토시 전 일본 외무성 외무심의관이 ‘한반도 통일과 동아시아의 미래: 일본의 관점’을, 알렉산더 페도로프스키 러시아 세계경제국국제관계연구소 교수가 ‘한반도 통일과 러시아의 전략적 유선순위’ 등을 발표하고 활발한 토론이 이어졌다.

 

 한편 이숙종 동아시아연구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날로 긴밀해져 가는 경제적 상호의존 속에서도 대립과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동아시아 지역이 북한으로부터 표출되고 있는 불안정 요인에 공동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며, 통일 한반도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통일에 대한 우리의 확고한 비전을 바탕으로 주변국들의 협조와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동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이날 국제회의 개최 이유를 설명했다.(kon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