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6일 KBS1라디오 ‘열린 토론’에 출연했다. 3·8 여성의 날 특집으로 꾸려진 이날 방송에서는 1시간 남짓 동안 성별 임금 격차, 유리천장, 저출생, 동덕여대 공학 전환 사태 등의 일련의 이슈들을 쭉 훑었다. 방송 말미에 진행자는 예의 그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를 물었다. 한숨부터 나왔다. 솔직히 말하면 난들 알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친 해결책이라도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말을 하는 것이 시사 라디오의 본령이다. 머리를 굴리고 굴려 만든 답이 저것이었다. 유튜브로 방송을 본 엄마는 “너무 추상적인 해법”이라고 했다. 엄마 말마따나 너무 추상적이고 실제로는 ‘해법’도 못 되는 얘기지만, 나는 그 말 말곤 할 말이 없었다.

‘극우 세력과 어떻게 지낼 것인가’에 관한 논의가 뜨겁다. 미디어사회학자 박권일이 쓴 ‘윤석열 지지자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한겨레신문, 2025년 3월14일)와 여성학자 정희진의 ‘내전과 공존’(경향신문, 2025년 3월18일) 같은 칼럼들에서 촉발됐다. 박권일은 인류학자 제임스 퍼거슨의 ‘현존’(presence)이라는 개념을 가져와, ‘일상에서 소소한 불편과 짜증을 견디는’ 현존의 일상을 하나하나 쌓아가는 일이야말로 공존의 지름길이라 말한다. 정희진은 극우 세력에 대한 ‘단호한 대처’에 반대하며, 나와 생각이 다른 상대방의 존재에 관한 상호인정과 존중 만이 ‘모두가 살 길’이라고 했다.

사실 물리적으로 현존은 거스를 수 없는 일이고, 공존도 ‘평화로운’까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진행형이다. 어쩔 수 없이 같은 공간에서 숨 쉬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토요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윤석열 탄핵 찬성 집회를 조금만 비껴가면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반대 집회 행렬을 쉽게 만난다. 찬성 집회에서 나는 보통 ‘민주동덕에 봄은 오는가’라고 적힌 보라색 두건을 두르거나 성소수자 지지 피켓 등을 드는데, 절대적 소수가 되는 반대 집회 행렬을 만나면 뭔가를 두르거나 손에 들지 않는다. 대신 가만히 그들 면면과 그들이 든 피켓, 깃발을 본다. 그랬더니 전에는 웬 젊은 여성이 헐레벌떡 달려와 “젊은 분들은 흔치가 않아서요” 라더니 탄핵 반대 집회 굿즈를 한 아름 안겨줬다. ‘빨갱이 OUT’, ‘탄핵 반대’, ‘STOP THE STEAL’ 등이 적힌 스티커였다. ‘빨갱이 OUT’ 스티커는 내 주변의 자칭 ‘빨갱이’들에게 줬더니 더할 수 없이 좋아했다.

가만 들여다 보면 당연히 그 행렬에도 ‘젠더노소’가 있다. 극우 세력도 모두 다같은 ‘극우’는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서부지법을 습격한 이들, 여성과 성소수자와 이주민에 향한 혐오와 공격을 이어가는 이들에 대해서는 ‘단호한 대처’가 일정 부분 필요하다. 그러나 그 밖에 부정선거 음모론에 굳은 신념이 있거나, ‘알바’의 일환으로 집회에 참여한 이들 모두를 한 데 묶어 대처하는 것엔 문제가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극우 세력의 ‘레이어’(layer·층)를 보여주는 보도들도 많이 나온다. 시사인과 한국리서치, 동아시아연구원·한국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 기반 양적 조사도 유의미했지만, 더욱 흥미로웠던 지점은 뜻밖에 ‘문제적 언론’인 스카이데일리의 보도였다. 스카이데일리는 지난 19일 연세대 탄핵 반대 시국선언 대표인 박준영 씨를 인터뷰한 기사를 게재했다. (<박준영 연세대 시국선언 대표 “부모님과 뜻 다르지만… 난 나라 위해 바른 길 가겠다”> 2025년 3월19일)

일종의 선전 의도를 가진 기사로 보였지만, 박씨의 발언 가운데는 눈여겨 볼 만한 지점이 있었다. 박씨의 부모는 진보 인사로 알려진 박성제 전 MBC 사장과 문재인 정부 당시 대통령비서실 디지털소통센터장을 지낸 정혜승 오티움 공동 대표다. 박씨는 자신을 통제하고 ‘엘리트’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을 주는 부모의 교육 방식 탓에 ‘자유’에 대한 갈망이 커졌고, 이를 추구하는 것을 ‘우파’로 봤다고 했다. 이어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의 자녀 입시 비리를 언급하며 “조국과 부모님은 닮은 면모가 있다. 평등을 말씀하지만 본인의 자녀들은 어떻게든 ‘엘리트화’하려 하셨다. 여기서 좌파의 모순을 느꼈다”고 했다. 평등을 말하면서도 엘리트주의, 학벌주의 신화는 대를 이어 꼬박 이어가려는 진보 엘리트들의 본질을 꿰뚫는 말이었다. 자유를 잃은 박씨가 그리하여 대화가 어려운 부모님을 피해 집을 나왔다는 말은, 그래서 일정 부분 수긍이 갔다(나머지는 모두 이해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