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에서 공동체를 꿈꾸려면…
자동차 운전을 처음 배우면서 귀가 따갑게 듣는 얘기가 있다. 큰 사고는 초보운전 때 나는 것이 아니라 길과 차에 제법 익숙해질 때 나는 법이라고. 국가를 운전해야 하는 외교도 마찬가지다. 외교사를 공부해보면 큰 실패는 상대방 국가들과 외교 무대에 자신감이 붙을 때 찾아온다.
이달 초 중국 원자바오 총리의 북한 방문이 있었다. 좀처럼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던 북핵문제에 변화의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원자바오 총리는 한·중·일 3국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북한은 6자회담을 반대하지 않았으며 양자와 다자회담을 통한 관련 문제 해결로 6자회담 재개 조건을 마련하기 원한다고 했다. 그리고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원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북한 보도에 따르면 김정일 위원장은 중국 총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조선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다. 조·미 양자회담을 통하여 조·미 사이의 적대관계는 반드시 평화적인 관계로 전환되어야 한다. 우리는 조·미회담 결과를 보고 다자회담을 진행할 용의를 표명하였다. 다자회담에는 6자회담도 포함되어 있다.” 김 위원장은 북한의 기존 원칙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다만 중국의 6자회담 참석 요구에 대해서 북·미회담의 결과에 따르겠다고 답변함으로써 참석 여부의 책임을 일단 미국에 넘기고 있다. 따라서 중국과 북한의 시각에는 여전히 중요한 편차가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일괄 또는 꾸러미의 내용이다. 북한의 선군 정치세력은 이미 일괄의 내용이 관계 정상화나 경제 지원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동시에 한국이나 미국이 생각하는 북한의 ‘안전 보장’이 아니라 북한식 ‘평화관계’임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이 미국 그리고 중국과 긴밀하게 공조해야 할 것은 극단의 불신구조 속에서 핵 없는 북한의 생존을 확신시켜 줄 수 있는 복합 평화장치의 마련이며 동시에 북한의 핵선군정책이 계속되는 한 현실적으로 일괄 결단은 불가능하다는 정치적 신호다.
그러나 장밋빛 청사진 속을 막상 걸어 들어가면 예상치 못한 가시밭길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근대의 노년기에 접어든 유럽과 달리 아직 청장년기를 겪고 있는 동아시아 3국은 협력 못지않게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따라서 동아시아에서 이해를 같이하는 국제사회의 영역을 넓혀 가고 궁극적으로 마음을 함께하는 공동체를 꿈꾸려면 우선 일국 중심의 민족주의가 패권 민족주의로 자라나지 않도록 하는 집중적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은 내년 11월 G20 정상회담 의장국으로서 행사를 주관해야 한다. 한국의 2010년은 G20의 한 해가 될 것이다. 한국이 명실상부한 의장국이 되려면 단순한 장소 제공을 넘어서서 생각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우선 한국이 비로소 세계 무대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들어섰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세계 무대의 중심 사고는 이미 다중심을 향해서 달리고 있다.
따라서 단중심이나 다중심을 넘어선 복중심의 G20을 구상할 줄 알아야 한다. 피츠버그 G20 정상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하토야마 총리는 8명이 합의 보기도 어려운데 20명이 모여서 실질적인 합의를 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를 표명했다. G20 정상회의가 세계 정치의 중심으로 부상하더라도 러시아 전통 인형 마트로시카처럼 그 안에는 G8, G2, G1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 밖에는 G200이 있다. 한국이 해야 할 일은 이 크고 작은 인형들을 어떻게 제대로 자리 매김하고 포개서 아름다운 복합 인형을 만드느냐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