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核 先軍'이냐 '非핵화 先경제'냐…
당신은 어떤 유훈을 후계체제에 남겨줄 것인가

2010년대는 더 이상 1990년대가 아니다

 

"6자회담을 통해 북핵 프로그램의 핵심부분을 폐기하면서 동시에 북한에 확실한 안전보장을 제공하고 국제지원을 본격화하는 일괄타결(grand bargain)을 추진해야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뉴욕에서 밝힌 북핵문제의 새 해결방안이다.

새 방안이 과거처럼 비극적 운명을 반복하지 않고 드디어 북핵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것인가에 국내외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북핵문제의 어두운 역사를 되돌아보면 늘 넘기 어려운 두 난관에 항상 부딪혔다. 하나는 '확실한 안전보장'의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동시'라는 순서의 절차다. 안전보장의 제공을 모욕적 표현이라고 격렬히 비난하면서도 북한은 김정일 선군체제의 생존을 위협하는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이 북핵문제의 근본원인이라고 끊임없이 노래해 왔다. 따라서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의 포기가 북핵문제 해결의 요술방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부터 꼬이기 시작한다. 사실상 전쟁상태를 방불케 하는 상호불신의 북미관계 속에서 미국의 대북정책은 전혀 다른 두 얼굴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미국은 기회 있을 때마다 '대북 적대시정책'을 추진하고 있지 않다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 다만 현재의 대북 제재는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라는 것이다.

 

한편 북한 선군세력의 눈에 비친 미국의 대북정책은 전쟁 상대국에 대해서 취하는 적대시정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새롭게 친구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적대시정책의 구체적 표현인 주한미군의 철수와 핵군축 그리고 북한을 가상적으로 삼고 있는 한미군사동맹의 해체를 강조해 왔다. 북한을 제외한 모든 관련 당사국들이 북한의 선군정치관을 지나친 과잉안보관의 표현으로 받아들이고 있기는 하지만 현실의 국제정치 질서는 북미 간의 극단적 인식 차이를 효율적으로 줄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 궁여지책으로 등장한 것이 6자회담이다.

 

그러나 6자회담은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2005년 9·19 공동성명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4년이 지난 오늘까지 핵심적인 난관을 본격적으로 논의도 못한 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체제보장의 구체적 논의 이전에 정책 이행 선후의 난관 때문이다. 북한의 선(先) 대북 적대시정책 포기와 미국의 선 북한 비핵화정책은 상호불신 속에서 팽팽히 맞서 왔다. '형님 먼저 아우 먼저'의 순서 싸움이 계속됐다. 북한은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믿고 기댈 수 없는 각박한 현실 국제정치 속에서 선비핵화정책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편 미국은 선대북정책 변화는 북미협상과정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일방적으로 바람맞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일괄타결을 시도할 만큼 상호신뢰가 없었기 때문에 단계타결을 시도했던 것이다.

 

일괄타결의 새 방안이 성공적으로 북핵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하려면 체제보장 관련 당사국들의 원칙적 합의가 가능해야 하고 다음으로 체제보장과 비핵화를 동시에 추진할 수 있는 상호 신뢰구축이 마련돼야 한다. 현재로서는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의 현실화를 위한 조심스러운 노력을 경주해야 할 때가 왔다. 북한이 현재의 선군체제적 과잉안보관을 그대로 유지하는 한 현실적 합의는 불가능하다. 김정일 위원장이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은 불가피하게 구축해야 할 후계체제에 핵선군정책과 비핵화선경제정책 중 어떤 유훈통치를 마련하느냐는 것이다.

 

핵선군정책을 그대로 유지하면 제2의 고난의 행군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2010년대는 더 이상 1990년대가 아니다. 2010년대에 맞이하게 될 경제위기 이후 세계질서는 무대의 주인공들에게 훨씬 더 힘든 연기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후계체제의 생존전략은 완전히 새로 짜야 한다. 새로 등장하게 될 후계체제는 국내질서 유지에서도 훨씬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새 고난의 행군의 최종 도착지를 자신 있게 전망하기 어렵다. 한편 비핵화선경제정책의 새로운 길을 걷게 되면 최대 고민은 후계체제의 안전을 누가 보장하느냐는 것이다. 비정의 국제정치 현실 속에서 젊은 후계체제의 앞날을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나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의 언약만 믿고 맡기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김정일 위원장이 새로운 결단을 내리는 것과 동시에 북한이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새 한반도 평화번영체제를 하루빨리 구축해야 한다. 하루빨리 6자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려서 남북한과 관련당사국들의 복합체제보장안을 마련할 기회가 오기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