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2024년 동아시아연구원(East Asia Institute: EAI) 동아시아 인식조사의 일본 관련 결과를 보면 분명 한일관계는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하였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일본에 대해 긍정적 인상을 갖고 있다는 여론은 2013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부정적 인상은 가장 낮은 수치를 각각 기록하였다. 또한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체감도도 높게 형성되었다. 일본에 대한 신뢰감 역시 전년도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하였다. 한일관계는 완연한 회복세이다.
이렇듯 양자관계 개선은 사실 시대의 흐름(혹은 구조적 추세)을 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이 대립하는 현재의 국제 지정학 구조, 간단없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속에서 한미일 안보협력의 전략적 가치와 요구는 나날이 높아 가고 있다. 또한 한일 양국 경제는 상호 의존이 심화되어 왔다. 2019년 일본의 반도체 3소재 수출 통제와 이에 대항하는 한국의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추진이라는 양측의 공급망 분단(decoupling) 시도는 사실상 무력화되었을 정도로, 이제 양국 경제는 뗄래야 떼기 어려울 만큼 촘촘히 연결되어 있는 상태이다. 끝으로 양 국민은 서로의 대중문화를 소비하고 관광을 통해 직접 체험을 늘리며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의 공유를 확인하고 있다. 안보, 경제, 문화 3면에서 한일 협력을 향한 동력은 커지는 추세인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흐름이 불가역적인 것은 아니다. 역사 문제가 장애물로 엄존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다만 역사 쟁점들을 둘러싼 여론의 흐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양국 내 특정한 정치적 신념, 가치, 목표를 중심으로 결속된 정치 세력들 사이에 경합이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이념 집단 간, 정치 집단 간 주요 쟁점에 관한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이번 조사 결과를 보면 제3자 변제안, 사도광산 문제 처리, 한미일 안보협력 등 주요 외교 사안에 대해 여론은 분열되어 있다.
대일 외교의 양극화는 정책 합리성을 떨어뜨리고 극단적 견해의 등장을 부추기며, 과거 오류로부터 교훈을 찾지 않고 정파적/이념적 합리화에 치우치는 경향, 반대 여론을 경시하고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한국의 대외 신뢰도와 대일 협상력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향후 대일 정책은 양극화라는 커다란 도전을 헤쳐나가야 하는 중차대한 과제를 안게 된 것이다.
Ⅱ. 대일 호감도의 원동력
이번 조사를 보면 일본에 대한 긍정적 인상이 작년에 비해 크게 증가한 점이 두드러진다. 일본에 호감(좋은 인상 또는 대체로 좋은 인상)을 갖고 있는 응답자는 41.7%, 비호감(나쁜 인상 또는 대체로 나쁜 인상)을 갖고 있는 응답자는 42.7%로 나타났다([그림 1]). 작년에 비해 호감도는 12.9%p 증가, 비호감도는 10.6%p 감소하였고, 2013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호감도는 가장 높은 수치를, 비호감도는 가장 낮은 수치를 각각 기록하였다([그림 2]).
[그림 1] 일본에 대한 인상
[그림 2] 일본에 대한 인상 추이(2013-2024)
대일 호감도는 현재 한일관계에 대한 긍정적 평가로 이어진다. 현재의 한일관계가 어떻다고 생각하는지 물었을 때, “보통이다”라는 응답이 50.9%로 가장 많았다. 나쁘다는 응답은 37.1%, 좋다는 응답은 12.0%였다([그림 3]). 좋다는 응답이 전년 수준(12.7%)에서 큰 변동 없이 유지되는 가운데, 나쁘다는 응답은 전년 대비 4.9%p 감소하고(42.0% → 37.1%) 보통이라는 응답이 전년 대비 7.8%p 증가하며(43.1% → 50.9%) “보통이다”와 “나쁘다” 간 역전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그림 3] 현재의 한일관계
장기적으로 보면 호감도의 증가는 조사를 시작한 2013년 이래 꾸준히 상승했고, 2019년 한일 갈등이 첨예화되면서 급락한 후 다시 회복세를 이어가 올해 최고점을 찍었다. 따라서 호감도의 동력은 구조적 성격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통계 분석 부록의 [표 1]을 통해 살펴보면, 호감도 상승의 주 동력은 대중문화, 관광, 인적 교류 등 민간 수준의 상호 교류 증대, 그리고 같은 민주주의 국가라는 정체성의 공유 인식 증대로 나타난다.
[그림 4]에서 보듯이 한국에서 애니메이션 등 일본 대중문화 소비층이 늘고 있으며, 일본 방문자 수는 2023년 무려 696만 명, 올해 1-7월 이미 519만 명을 기록하는 등 엄청난 수의 한국인이 일본을 직접 경험하고 있다. 이들 방문자 중 55.1%는 ‘좋은 인상이 유지되었다’고 응답하였으며 22.4%는 ‘좋은 인상으로 바뀌었다’고 응답하였다([그림 5]). 일본 대중문화 소비층의 77.9%가 대중문화가 일본에 대한 인상을 향상시킨다고 응답하고 있다([그림 6]). 즉, 일본을 직접 경험할수록 호감을 가진다는 뜻이다. 또한 [그림 7]에서 보듯이 일본에 호감을 갖게 된 이유로서 첫 번째로 꼽혀 온 “일본인의 성실한 국민성”에 이어서 “일본의 식문화와 쇼핑”이 2위, “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3위의 위치로 올라섰다.
[그림 4] 일본 대중문화 소비 여부
[그림 5] 일본 방문 후 인상 변화
[그림 6] 대중문화가 일본의 인상을 향상시키는지 여부
[그림 7] 일본에 좋은 인상을 갖게 된 이유 추이(2013-2024)
요컨대, 일본에 대한 호감도 증가는 한편으로 안보나 경제 면에서 일본과 한 배를 타고 있다는 인식이 증가한 데 기인하는 측면이 있는 한편, 보다 중요하게는 민간 차원에서의 교류의 증진, 즉 대중문화, 관광, 인적 교류 등 직접적인 접촉의 증대를 통해 상대국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정체성의 공유면을 확대하는 데 있다. 역으로, 지난 10여 년 한일관계의 현실(‘잃어버린 10년’)은 양국 저변에서 작동하는 ‘아래로부터의 힘’이 양국 정치세력 간 갈등이라는 ‘위로부터의 힘’에 의해 제약되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고 하겠다.
Ⅲ.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 상승
일본에 대한 호감도 증가, 관계 개선 체감도의 증가에 비해 한일관계를 다루는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긍정적이지 않다. 한국 정부의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정책과 태도에 대해서는 나쁘게 평가한다는 응답이 49.6%로 좋게 평가한다는 응답(34.5%)을 웃돌았다([그림 8]). 부정적 평가가 작년 32.3%에 비해 17.3%p 증가하였다. 구체적 사안으로서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제3자 변제안,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한 한국 정부의 결정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긍정적인 여론을 상당히 앞섰다([그림 9], [그림 10]). 반면, 안보 협력 추진에 대해서는 긍정론이 부정론을 크게 앞섰다. 한미일 삼각 군사안보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하여 66.5%가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그림 11]). 양자 안보협력에 대해서도 여론은 긍정적이었다. 급증하는 북핵 및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한일 안보 협력의 방향성을 물었을 때 응답자의 70.8%가 정보 공유 또는 그 이상의 안보 협력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그림 12]).
[그림 8] 한국 정부의 한일관계 개선 태도
[그림 9] 제3자 대위변제 안에 대한 평가
[그림 10] 사도광산 등재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 평가
[그림 11] 한미일 삼각 군사안보협력 강화에 대한 입장
[그림 12] 북한 위협에 대한 한일 안보 협력의 방향성
윤석열 정부의 대일정책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안보 분야를 중심으로 정부 간 관계 개선과 협력 추진에는 긍정적이나, 역사 문제를 대하는 태도에는 부정적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윤 정부가 한일관계 교착 상태를 풀기 위해 제3자 변제안을 제시하며 전향적 태세를 취한 후 12차례 정상회담을 통해 정부 수준 신뢰를 회복하는 데 기여한 바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현 정부는 안보 협력, 특히 한미일 협력을 고리로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만들어 가면 역사 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것이란 낙관론에 기대어 온 것으로 보인다. 2023년 3월 제3자 변제안 제시 이후 일본 측의 구체적 상응 조치가 나오지 않은 점,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반응이 미온적이었다는 점, 역사 현안(위안부 및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자체적 노력이 별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여전히 국민 다수는 “역사문제의 해결 없이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관계(안보, 경제, 문화, 기후변화 협력 등)는 어려울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다([그림 13]). 한일관계가 지향해야 할 목표를 2순위까지 물었을 때 “양국 간 역사 문제 해결”이 53.2%로 가장 많았고, “양국 간 신뢰 회복”이 47.8%로 뒤를 이었다([그림 14]). 이러한 결과는 결국 역사문제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한일관계 향방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계속 작용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그림 13] 한일관계와 역사문제
[그림 14] 한일관계의 목표
Ⅳ. 양극화하는 대일 인식
이상 주요 사안에 대한 여론의 흐름 속에서 드러난 현상은 정파 간, 이념 간 양극화이다. 일본에 대한 인상, 신뢰도, 현 정부의 대일정책 전반, 개별 정책 등 거의 모든 사안에서 국민의힘 지지자 및 보수 진영은 긍정 평가를 한 반면, 더불어민주당 지지자 및 진보 진영은 부정 평가를 내리고 있다. 부록의 [표 2]는 사안별 두 진영 간 입장의 편차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국 정치의 양극화가 국민 여론을 분열시키고 올바른 정책 형성 수립을 저해하는 만큼이나 외교정책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정권 교체가 있었던 지난 4년 간 여론 추이를 보면 일본의 인상에 대해서 보수와 진보 간 격차가 2023년부터 확대되었으며, 한국 정부의 관계 개선 태도에 대하여 보수 진영의 평가는 부정에서 긍정으로 바뀌고, 진보 진영의 평가는 긍정에서 부정으로 바뀌었다([그림 15], [그림 16]). 즉, 정파적 입장에 따라 일본 관련 이슈에 대한 지지와 반대가 갈리는 것이다.
세대별 격차 역시 두드러지고 있다. EAI의 『여론으로 보는 한일관계 2013-2023』[1]에서 기술한 바 있듯이, 지난 12년 조사 기간 중 일본에 대한 긍정적 인상을 이끈 연령대는 20대와 30대 청년 세대, 부정적 인상의 주력은 50-60대 이상의 연령대이다. 최근 특기할 사항은 60대와 70대 이상의 정치적 향배이다. 이들은 2023년부터 긍정적 인상으로 돌아섰고 70대의 경우 모든 연령대 중 최상위로 올라섰다([그림 17]). 마찬가지로 한국 정부의 관계 개선 태도에 대해 70대는 지지세로 급격히 돌아섰다([그림 18]). 60대와 70대의 변화는 정파적 선택(즉, 보수 정당 지지)의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40대와 50대의 부정적 태도 역시 마찬가지로(즉, 진보 정당 지지) 볼 수 있다. 요컨대, 2024년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일본에 대한 긍정적 협력적 태도는 대중문화와 관광, 인적 교류 등 일본에 대한 직접 경험을 축적하고 있는 20-30대 청년 세대와 정파적 차원에서 지지를 보내는 60-70대 노년 세대의 결합으로 나타난 것으로 해석된다.
[그림 15] 일본에 대한 인상(긍정): 이념성향별
[그림 16] 한국 정부의 한일관계 개선 태도(긍정): 이념성향별
[그림 17] 일본에 대한 인상(긍정): 세대별
[그림 18] 한국 정부의 한일관계 개선 태도(긍정): 세대별
Ⅴ. 양극화의 덫
대일 정책의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한국은 상당한 외교적 부담을 안게 될 것이다. 첫째, 정치권력은 정책 합리성보다는 정치적 당파성을 우선시한다는 점이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대중의 분열적 여론은 이들이 갖고 있는 신념이나 목표, 이념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주요 정치 지도자의 이해관계와 정치적 조작에 기인한다. 이들은 주요 정책을 분열적 이슈로 프레이밍하여 대중을 분단하고 양자택일을 강요하여 정치적 지지를 공고화하고자 한다. 비근한 사례로 작년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나 올해 사도광산 문제를 친일-반일이란 프레임으로 규정하고 여론의 양극화로 증폭시킨 사례를 꼽을 수 있다. 이런 가운데 극단적 목소리가 정치적 영향력을 획득하거나 중도적 혹은 초당파적 입장이 약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둘째, 대일정책에서 국내적 분열은 대외 교섭력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종종 결정 연기나 미봉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역으로 양극화는 대통령이 경쟁 정파의 반대를 무시하고 자기 정파의 (맹목적) 지지를 바탕으로 자신의 어젠다를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경향을 부추기기도 한다. 이는 민주적 책임성을 훼손하는 행태이다.
셋째, 정파적 대립이 지속될수록 외교정책 수립에서 과거 오류로부터 교훈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거 위안부 합의, 강제동원 판결 이후 무대응,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 GSOMIA) 연장 중단 등은 국내적(이해당사자에 대한) 설득 과정이 미흡했거나, 정책적 결정을 미루어 외교적 보복을 초래했거나, 지지층 여론에 휘둘린 강경 대응으로 동맹관계를 훼손하는 우(愚)를 범한 사례이다. 정치지도층은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일관된 전략을 마련하기보다는, 오히려 정파적 합리화에 경도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넷째, 외교정책이 양극화될수록 가짜 뉴스가 등장하고 음모론이 횡행하며 외국 세력의 개입이 용이한 환경이 조성된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바다 색깔이 변했다는 후쿠시마 괴담, 현 정부의 독도 지우기 괴담 등 가짜 뉴스가 난무하고, 상대방을 ‘밀정’으로 규정하는 친일 몰이 등으로 정쟁이 격화될수록 한국의 대외적 소프트파워가 훼손되고 제3국의 은밀한 정치 개입이 가능한 환경이 제공될 것이다.
끝으로, 이러한 정파적 계산에 따른 정책 추진은 국제 구조가 허용하는 전략적 선택 범위를 벗어날 경우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예컨대, GSOMIA 연장 중단이라는 당파적 선택은 미국의 반대로 추진되지 못하였고, 이에 따라 한국의 국제적 신뢰도가 하락하고 오히려 일본에 협상력을 부여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정학적 경쟁이 격화되고 자유주의 경제질서가 위기에 처해 있는 시점에서 한국의 외교정책적 양극화는 당면한 여러 외교정책적 도전에 대응하는 데 커다란 어려움을 가져다주고 있다. 국민 다수가 보여주고 있는 한일관계에 대한 합리적 인식이 정파적 양극화에 의해 왜곡되지 않도록 제도 개혁을 포함한 국가적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
부록
[표 1] 한국인의 대일 호감도: 순서형 로지스틱 회귀분석 결과
[표 2] 지지 정당별 대일 인식 및 정책관
[1] 손열ㆍ이정환 편. 2024. 『여론으로 보는 한일관계 2013-2023』. 서울: 동아시아연구원.
■ 손 열_동아시아연구원 원장,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 담당 및 편집: 박한수_EAI 연구원 |